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5)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5화(5/400)
도진은 베이스를 돌며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상대로 위력적인 공은 아니었네.’
경기를 쭉 지켜보며 상대 투수를 자세히 살폈다.
2군 투수라서 그런 것인지. 130km 초반의 패스트볼은 구속과 구위가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만루 홈런을 쳤음에도 도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자신은 1군의 실력을 가늠하고 싶었으니까.
도진이 3루를 돌아 홈에 도착했을 땐 그는 친하지도 않은 팀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들은 하나가 되어 도진의 헬멧을 마구 두들기고 있었다.
“이야! 만루 홈런이라니!”
“역전이야! 역전!”
조금 전 도진을 향한 불평불만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미 홈런으로 점수가 뒤집혀 진 상황만큼이나 이들의 반응 또한 뒤집혔다.
머리로 날아드는 다수의 손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었던지라.
도진은 그들의 구타 아닌 구타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만이지.’
누군가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하지만 도진의 얼굴에선 미소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나이스 홈런.”
감독은 도진을 향해 말아쥔 주먹을 내밀었다.
도진도 주먹을 말아쥐며 그의 주먹을 톡 건드리기는 했지만, 무표정을 유지했다.
“만루 홈런으로 점수를 뒤집었음에도 기쁘지 않은가 보군.”
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잊고 있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오른 탓이었다.
만루 홈런이고 나발이고 아직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다.
당장 이번 이닝이 끝나고 역전당할 수도 있는 노릇인데 어찌 좋아할 수 있겠는가.
이왕 야구를 다시 하는 만큼, 자신이 속한 야구부가 더욱 높은 곳을 향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부모님께 허락을 받기도 더 쉬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진이 느끼기엔 FS 야구부의 미래가 밝지는 않았다.
“고작 연습 경기일 뿐이라네. 오늘 같은 날은 마음껏 좋아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감독은 도진의 표정을 읽었다.
그의 마음을 완벽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도진이 어떤 심정으로 야구를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만루에서의 기회를 줬고 그는 이 기회를 완벽히 살렸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홈을 밟고 축하를 밟는 순간에는 활짝 웃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도진에게서 여전히 표정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실타래가 잔뜩 꼬였나 보군. 조금 더 야구를 즐기게 해주고 싶은데.’
* * *
어떤 스포츠든 그러하겠지만, 야구는 분위기가 꽤 중요한 법이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전하게 되면 선수들은 이를 지키고자 더욱 열심히 경기에 임한다.
지금의 상황이 딱 그랬다.
처음 보는 아시아인이 만루 홈런으로 역전을 만들었다.
이에 FS 선수들은 이 점수를 지켜내고자 투지를 발동했다.
연습 경기라 그 부담감이 덜하지만, 어떻게서든 이번 경기에서 이기고 싶다며 저마다 이를 악물고 경기에 임했다.
도진도 그나마 한숨 놓았다.
‘그래도 아예 즐기러 나온 건 아닌가 보네.’
한편 경기를 지켜보던 산타모니카 측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여전히 한결같았다.
자신들은 2군을 내보냈기에 이 경기에서 져도 타격은 없다.
FS 고등학교 야구부는 도약을 위해 다양한 선수들을 영입했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이번 연습 시합은 저들의 실력을 체감하기 위한 가벼운 경기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경기가 진행될수록 산타모니카 더그아웃의 긴장감은 갈수록 떨어지기 시작했다.
2군에 지는 1군이라니.
이번 시즌도 FS는 경쟁자가 아니라며, 머릿속에서 지우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아시아인의 홈런 한 방으로 경기를 뒤집어버렸다.
“감독님.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약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산타모니카 고등학교 측 더그아웃에서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쓴 백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그의 시선은 도진에게 꽂혀 있었다.
산타모니카 감독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저 학생은 확실히 남다르군. 스윙부터가 완벽했어.”
“저 아시아인의 FS도 나름의 경계 대상이겠네요. 고작 나름이겠지만요.”
야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야구는 한 명의 슈퍼스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한 명의 슈퍼스타만으로 경기의 분위기를 단번에 가져올 수 있었으며.
그 한 명의 슈퍼스타를 얻기 위해 학교들은 경쟁한다.
지금도 그 사실을 잘 대변해주고 있지 않은가?
저 아시아인의 홈런으로 경기가 뒤집혔고, 다른 아이들의 수준까지 덩달아 올라갔다.
대신 야구는 결국 투수 놀음.
타자 한 명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나름이라는 말을 덧붙였던 것이다.
수건을 뒤집어쓴 남성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저 아시아인을 뒤받쳐줄 뛰어난 투수들의 부재가 커요.”
하지만 그때.
백인 남성은 뒤집어쓴 수건을 내팽개치며 미간을 구겼다.
“뭐야?”
눈여겨보던 아시아인이 더그아웃을 벗어나 불펜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 * *
8회 말.
스코어는 7:5.
마운드에 선 도진은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잡생각은 금물.’
투수에게 잡생각은 위력을 감퇴시킨다.
‘마운드에 올라왔으니 최선을 다하자.’
도진은 떨어진 로진백을 들어 올려 주물렀다.
그러고는 연습 투구를 가볍게 진행했다.
연습 투구가 끝난 직후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어떤 공을 던져?”
“패스트볼.”
“그거 하나야?”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도진은 커브라는 변화구를 던질 줄 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야구를 하기 위한 최상의 몸이 아니었다.
어쭙잖은 변화구를 던지느니 차라리 패스트볼 하나만 던지는 편이 나았다.
포수는 한숨을 내쉬더니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고작 패스트볼밖에 던지지 못하는 투수를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올리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역전은 도진의 손에서 나왔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대놓고 불평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걱정은 더그아웃에서도 이어졌다.
“감독님. 괜찮을까요?”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서 저 선수를 내보내도 되는 건가요?”
도진이 타자로 나섰을 때 입을 꾹 다물었던 감독은 이번만큼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측 더그아웃도 도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홈런을 친 타자가 마운드에까지 오른다고?”
“저건 좀 선 넘지 않았나?”
“이야. 아무리 우리가 2군을 내보냈다지만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물론 저들의 말이 도진에게까지 들리지 않았다.
이제 공을 던져야 하는 도진은 주위의 소리를 원천 차단했다.
그렇게 초구.
모두에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도진은 와인드업했다.
‘몸쪽 패스트볼.’
도진이 던진 공은 포수가 요구하는 곳으로 빠르고 날카롭게 날아갔다.
퍼억.
“스트라이크!”
예상했던 구속보다 훨씬 빠른 공이 포수의 미트로 날아들자 일순 침묵이 흘렀다.
그 정적은 3초간 유지되었다.
그러더니 산타모니카 측 더그아웃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 꽤 빠른데?”
“그러게. 85~6마일은 나왔을 것 같은데?”
“이야. 투수였어?”
고등학생치고는 나름 준수한 구속이었다.
완벽히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도진이 던진 구속은 평균을 살짝 웃돌았다.
그러니 FS 측 더그아웃의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적어도 도진은 오늘 경기에 임한 어떤 투수보다 빠른 공을 던졌으니까.
“와. 잘던지네.”
“그러게. 괜히 마무리로 내보낸 게 아녔나 봐.”
다양한 반응들이 고막을 콕콕 찌르는 가운데 도진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역시. 전문 포수가 아니구나.’
여태껏 경기를 쭉 지켜봐 온 결과 도진은 포수 마스크를 쓴 선수가 전문 포수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블로킹도 리드도 무엇 하나 시원찮았다.
무엇보다 포수의 기본 덕목인 포구가 완벽하지 않았고.
지금 던진 초구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힘을 잔뜩 빼고 던졌는데도 못 잡으면 어째야 하는 거지?’
투수가 던진 공을 포수가 제대로 잡지도 못한다?
폭투까지 고려해야 했기에 투구의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진은 잠깐 타임을 외치며 포수를 다시 마운드로 불렀다.
포수는 급하게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미안한 표정을 동반한 채 도진에게 다가갔다.
“미안. 내가 제대로 못 잡았지.”
시작부터 사과를 때려 박으니, 도진도 굳이 불평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원래 포수가 아니지?”
고개를 끄덕이자 도진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그럼 한복판으로 던지는 공은 잡을 수 있어?”
“그건 잡을 수 있어. 아직 코너 쪽으로 향하는 공이 좀 어렵네.”
“그럼 한복판으로 던질 테니 잘 부탁해.”
포수는 뒤통수를 벅벅 긁어댔다.
솔직히 못 잡을 공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같은 공이 날아오면 제대로 포구할 자신은 있었다.
그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공이 날아와 잠깐 놀랐을 뿐이었으니까.
물론 자신이 공을 제대로 잡지 못해 발생한 상황이라지만.
‘굳이 이 한 번의 실수가 한복판으로만 던질 정도의 실수인가?’
하지만 이미 수긍을 해버렸던지라 포수는 얌전히 마스크를 쓴 채 정 가운데 미트를 고정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도진은 말없이 지켜봤다.
‘음. 확실히 정 가운데는 안정적이네. 미트를 제대로 고정할 줄 알아.’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어.
도진의 입꼬리가 살짝 솟았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굳히고는 곧장 와인드업했다.
디딤발이 바닥에 내디뎌지는 순간.
손을 떠난 공은 바람을 가로지르며 홈플레이트 한가운데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퍼억.
“스, 스트라이크.”
심판의 놀란 목소리를 제외하면 초구와 다르지 않게 정적만이 흘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시간이 완전히 멈춘 듯한 정적이 꽤 오랫동안 유지됐다.
10초 정도 흐르고 나서야 한쪽에서는 거대한 함성이.
“우와아아아아! 미쳤다!”
“지금 90마일 정도 나온 거 아니야?”
맞은편에서는 탄성만이 들려왔다.
“뭐, 뭐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85마일 정도밖에 안 나왔잖아. 갑자기 90마일을 던져버린다고?”
5마일의 차이는 무려 8km 이상의 차이다.
하지만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달라진 구위가 내는 바람 소리는 타석에 선 타자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세 타자 연속 삼진.
도진이 공을 던질 때마다 구속과 구위는 높아지고 있었다.
“미쳤다! 미쳤어!”
“와. 너 진짜 잘 던진다.”
“저거 괴물 아니야?”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도진은 동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역시나 도진의 표정은 일절 변하지 않았다.
입 밖으로는 땡큐를 연발하기는 했지만, 굳어버린 표정에서 미소를 찾을 수는 없었다.
감독은 그런 도진을 따로 불렀다.
“여전히 기쁘지 않나 보군.”
“상대는 2군이니까요.”
감독은 헛웃음을 꾹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의 말은 틀렸다고 볼 수 없었지만, 90마일이란 공은 설사 1군이라도 결코 쉽게 칠 수 있는 구속이 아니었다.
감독은 그런 도진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마지막 9회에는 자네가 원하는 그림이 그려질 것 같군.”
도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감독은 반대편 더그아웃을 향해 턱짓했다.
“저기 보이는가?”
시선을 따라가자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는 상대측의 모습이 보였다.
“산타모니카 1군이 9회에 나올 생각인가 보군. 아무래도 자네의 투구에 자존심이 많이 상한 모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