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51)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51화(51/400)
제니퍼는 하리를 쳐다보며 미간을 살짝 구기더니 도진에게 물었다.
“혹시. 여자친구예요?”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대답이 즉각 나오자 제니퍼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마이크는 그런 제니퍼를 향해 혀를 찼다.
“넌 여기 왜 있냐.”
“왜? 내 마음이지.”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니잖아.”
“내년에 입학 예정자거든?”
알렉산더는 그사이에 도진을 제니퍼에게서 빼냈다.
“늘 저런다.”
도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인 남매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크는 동생과의 말다툼이 길어질까 싶어 시간을 확인하는 척했다.
“어서 가라. 꼬마가 낄 자리가 아니다.”
“꼬마? 꼬마?”
“그럼 어른이냐?”
“지도 고딩인 주제에. 내년이면 동등한 고딩이거든?”
“응. 근데 난 내년 후 졸업.”
“응. 그럼 뭐해? 네 인생 개망했는데.”
살벌하네.
도진은 둘의 대화를 지켜보며 온몸에 닭살이 돋아났다.
마이크와 제니퍼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금세 인위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동생이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
둘을 제외한 나머지 일원들은 턱이 벌어졌다.
이미 보여줄 거 다 보여줬으면서 저런 연기를 한다고?
괜히 할리우드 집안이 아니구나 싶었다.
제니퍼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등을 다시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도진에게 다가갔다.
“잠깐 귀 좀 빌려주시겠어요?”
제니퍼는 도진이 허리를 반쯤 굽히자 나직이 속삭였다.
“SNS로 쪽지 보낼게요! 교류해요!”
그 말을 끝으로 제니퍼는 진짜로 사라졌다.
마이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미안하다. 원래 통통 튀는 애라서.”
“뭐 어때. 동생인데.”
도진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마이크는 눈초리를 가늘게 찢었다.
“혹시.”
혹시?
“반한 거냐?”
도진은 하리를 힐끗 쳐다보고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미친놈이냐?”
“너라면 충분히 그럴 놈이라서.”
“개소리 좀 하지 마! 모솔한테 너무 가혹하잖아!”
“모솔? 모솔이였어?”
속삭였기에 다른 일원들에게는 들리지는 않았지만, 도진은 괜히 눈치를 봤다.
“그러니까 좀!”
“혹시 모솔이라 여자에 관심이 많은 건가?”
“내가 언제 관심을 가졌다고.”
도진은 눈초리를 가늘게 찢었다.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마이크는 이만하면 충분하다며 도진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더니 앞장을 서며 걷기 시작했다.
“그럼 가자. 고기가 우릴 기다린다.”
마이크의 여자친구 케이틀린과 알렉산더도 곧장 그의 뒤를 따랐다.
그 때문에 도진은 하리와 둘이 남게 됐다.
어색함이 공기 속에 은은히 퍼졌다.
“하. 하하. 안녕?”
도진은 마치 인간 로봇처럼 뻣뻣하게 손을 올려 인사했다.
하리는 눈웃음을 동반한 미소를 띠었다.
‘아이고. 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려나?’
* * *
학교에서 스테이크 집까지는 40분 남짓.
하지만 40분이나 되는 긴 시간에도 어색한 기류는 여전했다.
마이크나 그의 여자친구 케이틀린은 도진과 하리의 사이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기류를 원했다며 음흉한 미소만을 띠었다.
알렉산더는 그러거나 말거나 애당초 다른 넷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핸드폰에 집중했다.
“여기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이크는 표지판을 가리키더니 도진을 향해 사악한 미소를 띠었다.
“이 간판을 보니 어제 네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도진의 동공이 흔들렸다.
눈으로 하지 말라고 외쳤지만, 마이크가 이를 들을 리가 없었다.
“어제 킴이 나에게 알렉산더와 함께라서 이 집이 공짜냐고 묻더군.”
케이틀린은 지금까지 유지하던 미소를 풀었다.
알렉산더 또한 미간을 구겼다.
둘의 반응에 도진은 반박했다.
“이건 기만이야. 난 그런 적 없어!”
마이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음흉한 표정은 여전히 유지됐다.
“기만이라. 내가 어제 무엇을 녹음했더라.”
도진은 침을 꼴딱 삼켰다.
녹음까지 했다고?
또라이 새끼네?
“그래. 내가 그랬다!”
도진이 결국 시인하자 마이크는 핸드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녹음 따윈 없었지만, 이로써 증거는 확보했다.”
알렉산더는 도진을 지나치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딴 파렴치한 개그 하지 마라.”
그 말을 끝으로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이들도 알렉산더의 뒤를 따랐다.
도진도 한숨을 푹 내쉬며 마지막에 입장했다.
입장 순간 점원의 안내를 받아 원탁의 테이블에 앉았다.
도진의 양옆에는 마이크와 하리가 앉았다.
마이크는 메뉴판을 받는 즉시 격양된 목소리를 내뱉었다.
“마음껏 시켜! 오늘은 다 공짜다! 눈치 보지 말고! 특히 너!”
마이크는 도진을 가리켰다.
도진은 마이크의 시선을 외면한 채 메뉴판만 들여다보았다.
또 어떤 놀림을 당할지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메뉴판을 봤을 뿐인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젠장. 스테이크 집은 처음이라 뭘 시켜야 할지 모르겠어.’
종류만 10가지가 넘었으니까.
이런 비싼 레스토랑을 생전 처음 오는 도진은 모든 게 낯설었다.
하리는 애를 먹는 도진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내가 좀 도와줄까?”
“어? 고마워.”
오늘 인사를 제외한 첫 대화였다.
마이크와 케이틀린은 턱을 괸 채 양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더니 음험한 시선을 보냈다.
더 나아가 마이크는 도진에게 빨리 붙어 앉아서 메뉴 설명을 들으라며 손짓과 발짓까지 했다.
도진은 결국 저 둘의 성원에 못 이겨 의자를 바짝 붙였다.
하리는 도진이 메뉴판을 볼 수 있게 자신의 메뉴판을 공유했다.
“혹시 어떤 부위 좋아해?”
부위?
소고기는 다 맛있는 거 아니던가?
도진이 우물쭈물하자 하리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내가 몇 개 추천해줄까?”
“그래 줄래?”
“서로인도 괜찮고 립아이도 괜찮고 필레미뇽도 괜찮고.”
하리는 도진에게 부위별로 뭐가 다른지도 꼼꼼히 설명했다.
“이 스테이크 집이 워낙 유명해서 뭘 골라도 만족스러울 거야.”
“고마워.”
물론 도진은 하리의 장황한 설명에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이 확 와닿는 순간이었다.
‘그래. 뭘 시켜도 맛있겠지. 추천받은 것 중에서 하나 시키자.’
그때 마이크가 개입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스 차가 설명해준 스테이크들은 잘못됐어.”
잘못됐다는 말에 하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추천에 잘못됐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지?
도진 역시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게 또 뭔 개소리야!
기껏 도움을 준 사람한테 매너 없이!
하지만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오늘 킴은 혼자서 1kg을 먹는다고 했어. 티본이나 포터하우스를 먹는 게 좋겠지.”
도진은 메뉴판을 다시 들여다봤다.
하리가 추천해준 스테이크는 고작 300g 미만이지만 포터하우스나 티본은 확실히 1kg이 넘었다.
1인용이 아니라서 가격도 제일 비쌌다.
하지만 막상 주문을 하려고 보니 망설여졌다.
‘돼지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도진은 마이크를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언제…….”
“안 그랬다고? 안 그랬다고?”
마이크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알렉산더까지 거드는 바람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오전부터 고기 먹고 싶어 안달 난 표정이긴 했다.”
도진은 알렉산더까지 가세하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 자식들아. 이것도 인종차별이야!’
하지만 하리는 그런 도진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원래 운동선수들이 잘 먹잖아. 괜찮아! 많이 먹으면 좋은 거지!”
역시. 자신의 편은 한국인뿐이다.
도진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 * *
도진은 결국 포터하우스 스테이크를 시켰다.
안심과 등심이 함께 나오는 부위.
고기도 부드럽고 맛있어서 온통 먹는 데만 집중했다.
‘천상의 맛이다.’
진짜 고기에서 이런 맛이 날 수가 있구나.
한국에서도 고기를 먹었지만, 기껏해봐야 삼겹살이었다.
혹은 치킨이거나.
물론 삼겹살이나 치킨도 훌륭했지만, 처음 먹어보는 비싼 스테이크는 살살 녹았다.
마이크는 그런 도진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에휴.’
기껏 자리를 만들어주었더니 고기만 처먹고 있다니.
‘이래서 모솔은 문제가 많아.’
마이크는 친구를 위해 대화를 주도해주겠다며 입을 열었다.
“근데 둘은 같은 한국인인데 몰랐어?”
저걸 질문이라고.
도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신 마이크의 말에 반박한 건 하리였다.
“그럼 마이크는 미국 땅에 있는 모든 미국인을 다 아나 봐?”
마이크는 하리가 도진의 편을 들어주자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상 그냥 물러서진 않았다.
“그런 건 아니긴 하지. 그런데 방금 편들어준 거야?”
마이크는 여자고 나발이고 몰아붙이는구나.
도진은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미국인은 매너가 좋은 법인데.
저 미친놈에게선 매너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사자인 하리는 잘 당황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당황시키는 마이크는 고단수였다.
그가 내뱉은 말 때문에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편을 들어줬다기보다는…… 그냥 그렇다는 거지.”
“편을 들어준 거 같은데?”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겠구나.
하리는 대화 주제를 바꿨다.
“물론 나는 도진을 알고 있어.”
“도우진?”
“두오진?”
도진은 미국에서 저렇게 불렸다.
아주 간단한 도라는 발음이 되지 않아 그냥 킴이라고 부르라고 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어쨌거나 마이크는 발음은 중요한 게 아니라며 눈을 빛냈다.
“오호라! 미스 차는 미스터 킴을 알고 계셨다? 이미 미래를 약속한 사이다?”
하리는 쌩 트집을 잡는 마이크에게 어떤 반박도 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허무맹랑하며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도진은 하리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잘 될 리는 없었다.
“억결 그만해라.”
“오호? 미스터 킴은 결혼까지 꿈꾸신다?”
결국 도진과 하리는 동시에 마이크에게 KO를 당했다.
더는 반박이 들려오지 않자 마이크는 재차 물었다.
“그래서. 넌 도진을 어떻게 알아?”
그러게? 날 어떻게 알지?
도진은 궁금증을 잔뜩 안고 하리를 힐끗 쳐다봤다.
하리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내가 야구에 관심이 좀 있어서. 특히나 동대중학교 김도진은 꽤 유명하거든.”
마이크의 동공이 팽창했다.
대화에 일절 관심 없다며 고기만 썰어 씹던 알렉산더의 눈도 번뜩였다.
“동대중? 킴? 그게 뭔데?”
하리는 마이크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당황했다.
그녀는 도진에게 한국말로 물었다.
“말 안 했어?”
“어?”
도진 역시 하리가 자신을 안다는 사실에 심히 놀랐지만, 질문의 요지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내 얘기를 친구들에게만큼은 꺼낸 적이 없었구나.’
어른들은 이를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자기 자랑 같아서 꺼내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한국에서 난다 긴다 해봤자 한국일 뿐이었으니까.
“뭔데? 왜 말을 하다 말아? 알려줘!”
마이크는 재촉했다.
그럴 때마다 하리는 도진의 눈치를 봤다.
도진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직접 운을 뗐다.
“별거 아니긴 해. 그냥 구굴에 내 이름 치면 기사 몇 개 나오더라고.”
캐서린 기자가 알려준 방법이었다.
일원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저마다 핸드폰을 꺼냈다.
“어. 찾았다.”
일원들은 자동 번역까지 해가며 기사를 몇몇 개를 읽어나갔다.
마이크가 제일 빨랐다.
“이야. 심상치 않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너 이 정도였냐?”
“한국이잖아. 내세울 만한 업적은 아니지.”
알렉산더도 개입했다.
“퍼펙트게임이 내세울 만한 업적이 아니라고? 그것도 결승전에서?”
마이크도 옹호했다.
“한국 역대 최고의 재능. 중학교 때부터 93마일을 던지는 투수. 확실히 떡잎부터 달랐네?”
도진은 다시 묵묵히 고기를 씹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재능이 미국에서도 꿀리지 않다는 걸 안다.
물론 그 재능이 얼마만치 대단한지는 아직 모르지만, 곧 알게 되겠지.
그날이 머지않았다.
FS 선수단은 2일 후에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이 진행되는 노스캐롤라이나로 떠나니까.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을 경험해보면 알겠지.’
* * *
“난 간다.”
알렉산더는 식사 후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
‘표정을 보아하니 집으로 가는 게 아닌 거 같던데.’
아까 야구 얘기를 꺼냈을 때 그의 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실내 연습장에 가서 배트를 휘두르려나?
따라갈까?
도진의 생각을 읽은 마이크의 안광이 타올랐다.
‘저 미친놈이?’
“나는 데이트 좀 하고 가려고. 미스 차는 네가 데려다줘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크는 도진에게 다가와 어깨를 감쌌다.
“야. 번호 받아라. 자리 힘들게 만들었다.”
“어?”
“난 네가 남자라고 믿는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타지에서 믿을만한 사람 있으면 좋잖아? 그리고 미스 차 엄청 이쁘기도 하고! 학교에서 완전 인기인이래! 이러다 뺏긴다?”
그 말을 끝으로 마이크는 케이틀린과 함께 성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도진은 결국 하리와 둘만 남게 되자 문뜩 궁금했다.
“원래 야구를 좋아했었어?”
“응. 관심은 있었어. 꿈과도 연결되어 있고.”
“꿈? 무슨 꿈인데?”
하리는 양 볼을 빵빵하게 불렸다.
타지에서 만난 한국 친구지만, 자신의 꿈을 선뜻 말하기는 좀 부끄러웠다.
하지만 도진은 기대하는 눈치.
결국 빙빙 돌려 말했다.
“일단 1차 목표는 원하는 법대를 들어가는 거야.”
“법대? 법 공부하는 그 법대?”
“응. 스포츠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 법이 필요하거든.”
법과 연관된 스포츠.
도진의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직업이 떠올랐다.
“에이전시?”
하리는 부끄럽다며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여성은 에이전시 사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남들에게 자신의 꿈을 말할 때마다 의외라는 말만 들려올 뿐.
깊게 관심을 두는 부류는 없었다.
하지만 도진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녀가 존경스럽기도 했고 궁금했다.
“우와. 듣기만 해도 멋지네. 혹시 그 꿈을 이루려는 이유는 뭐야? 흔치는 않잖아?”
도진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하리도 도진에게는 말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처음에는 오빠 때문이었어.”
“오빠?”
“응. 차성현이라고 알려나 모르겠네.”
“알아.”
도진은 즉각 대답했다.
차성현.
한때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유망주였다.
그는 한국에서 뛰지 않고 곧장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차성현은 동대 중학교 출신.
자신의 선배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계약에 문제가 생겼다.
구단이 법을 어기면서 계약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결국 선수는 거액의 계약금도 반환해야 했으며 한순간에 팀도 잃었다.
한국에 돌아올 수도 없었다.
미국에 직행한 선수는 한국으로 돌아와도 곧장 프로 생활을 하지 못한다.
법이 그랬으니까.
결국 이런 경우에 선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다른 구단에서 손을 내밀긴 했지만, 전처럼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할 필요는 없었다.
선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해을 했지만, 의욕이 있을리가.
돈 없이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했다.
결국 그 끝은 몰락이었다.
하리는 허공을 응시했다.
“한국에도 뛰어난 유망주들이 많지. 하지만 대개 계약 때는 손해를 본다고 들었어. 물론 유명한 미국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어서 잘 되는 경우 있지만, 극소수잖아?”
“그렇지.”
“그래서 선수들을 위한 에이전시를 차리는 게 내 꿈이야. 그들의 고충까지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에이전시. 사람을 돈으로 보는 그런 에이전시 말고.”
도진은 하리에 대한 존경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 꿈을 위해 법부터 공부하겠다고?
“멋있는 거 같아.”
도진은 그녀의 꿈에 손뼉을 건넸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차후에 선수가 되면 하리의 에이전트와 계약하겠다.
이런 말을 꺼내면서 으스대지는 않았다.
‘인연이면 만나게 돼 있으니까.’
하지만 인연을 필연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왠지 나랑 비슷해.’
도진의 목표는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이었다.
하지만 그 일차적인 꿈에는 도달했다.
이제는 그 위를 볼 때가 온 것이었다.
‘나는 메이저리그를 밟기 전까지 전부 이기고 싶어.’
하리의 꿈 역시 자신과 비슷했다.
그녀가 에이전시를 하게 된다면 결국 그 배경은 미국이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엇비슷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계산적이면 안되겠지만, 도진은 그녀가 기필코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도진은 하리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번호. 알려줄래?”
하리는 단 1초의 고민 없이 도진이 내민 핸드폰에 번호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