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5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54화(54/400)
FS는 연습 대신 후버 고등학교의 영상을 먼저 시청했다.
그들의 행동이나 습관. 혹은 어떤 팀 컬러를 갖췄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선수들은 3시간짜리의 영상이 끝나자 자괴감이 들었다.
지루해서가 아니었다.
상대가 잘해도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실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데?’
‘콜드 게임만 안나길 빌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역시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은 다르구나.’
고작 영상만으로도 압도적인 격차가 느껴졌다.
실전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불안감들은 선수들의 사기를 꺾었다.
도널드 감독은 선수들의 표정에 당황하지 않았다.
‘역시. 사기가 깎였군.’
원래는 선수들에게 후버 고등학교의 영상을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후버 고등학교는 FS와 비교하기 민망할만큼 훨씬 강했다.
타자나 투수들의 퍼포먼스가 전부 몇 단계 위였다.
물론 FS도 저들에게 밀리지 않은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존재했지만, 극소수일 뿐이었다.
도진도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잘하네.’
그래도 도진은 좌절하지 않았다.
어려운 경기가 될 것임은 확실하지만, 못 이길 상대인가?
아니. 충분히 해봄 직했다.
물론 후버 고등학교는 전력상 산타모니카와 샌프란시스코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FS도 그 팀들을 전부 이기고 이 대회에 진출했다.
도진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되찾길 원했다.
자신감만 되찾는다면 전력이 밀려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해서 나온 학교거든.’
도진은 팔을 번쩍 들었다.
감독은 손가락으로 도진을 짚었다.
“킴. 할 말 있나.”
“어려운 상대임이 확실하지만, 못 이길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진에게 쏠렸다.
영상을 보고도 저런 말이 나와?
이런 표정이었다.
한편으로는 도진이라서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도진만큼은 영상 속에 나오는 선수들을 웃도는 기량을 갖췄으니 저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그가 갖춘 개인의 능력일 뿐이었다.
야구 경기에서 전체적인 전력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도진은 선수들의 시선에도 피식 웃었다.
“익숙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캘리포니아 내에서도 비슷한 대우를 받았잖아요?”
리그가 진행되고 있었을 때도.
전반기에서 1패를 제외 전부 승리를 거뒀음에도 그 누구도 FS가 우승하리라 점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은 그걸 뒤집었다.
우승이라는 결과로 증명했다.
도진의 눈동자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저는 저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확신에 찬 도진의 표정에 불안했던 감정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그 방법이 무엇이냐며 눈빛에 호기심을 담았다.
도진도 지체하지 않았다.
“상대? 강합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그걸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감독은 재차 물었다.
“상대의 강함을 역으로 이용한다? 정확히 무슨 뜻이지?”
도진은 대답이 길어질 거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들에게선 여유가 느껴집니다. 타격, 수비, 심지어 주루할 때도 여유가 느껴집니다. 저것은 은연중에 상대를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스포츠에서는 전력상 우위에 있는 팀이 승리할 확률이 높다.
후버 고등학교는 FS보다 전력상 우위에 있었다.
FS는 전력으로만 놓고 봤을 때는 제일 약체였으니 말이다.
모든 정황이 FS보다 후버의 손을 들어준다.
그리고 그들은 확실히 강했다.
하지만 도진은 그들의 약점을 발견했다.
“영상을 세세하게 뜯어보면 저들의 플레이는 오만합니다.”
선수들은 도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타자가 안타를 치면 타구부터 확인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저들은 주먹을 불끈 쥐거나 더그아웃의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세레모니부터 나왔다.
“저런 자신감은 상대적 강팀에게서만 나오는 여유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전력상 후버에 밀리죠. 이런 큰 대회라도 저들의 마음가짐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후버는 자신들이 FS보다 전력이 강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물론 저게 나쁜 건 아니야. 분위기를 타는 순간 선수들 전원의 사기가 오른다.’
신바람 야구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신바람 야구에서 신이 나지 않는다면?
경기력은 오히려 역행한다.
FS는 바로 이 부분을 노리면 된다.
도널드 감독은 놀랍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걸 파악했다고?’
자신이 영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들의 활약에 움츠러들기만 할 뿐 본질적인 문제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도진은 달랐다.
그는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물론 정답을 안다고 해답이 나왔다고는 볼 수 없었다.
실전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니까.
“그래서 해결책이 있나?”
“솔직히 말해서 해결책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도진은 자신이 해야 할 일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들의 기세를 꺾는 방법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야구 센스는 전부 제각각이다.
그들에게 자신만큼의 퍼포먼스를 강요할 수는 없다.
‘선수 개개인의 잠재력을 제일 잘 아는 건 감독님이지.’
감독도 도진의 말뜻을 이해했다.
지금 앉아서 상의나 할 때가 아니다.
당장에라도 상대를 부술 수 있게 몸을 움직여 해답을 찾아야 했다.
“좋다. 전부 그라운드에 모여라.”
* * *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로 나온 도널드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FS의 승리 시나리오는 비슷하다.
페드로와 도진이라는 훌륭한 투수 자원이 실점을 최소화한다.
타자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점수를 쌓는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대회는 9이닝이다.’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은 7이닝이 아닌 9이닝이다.
2명의 투수만으로 9이닝을 틀어막는다?
불가능에 가까웠다.
선발투수가 완봉한다면 모를까.
적어도 최소 6이닝은 틀어막고 도진이 나머지 이닝을 소화해야 한다.
상대가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전문가, 미디어도 이 부분을 우려했다.
전미에서도 통할만 한 선수가 4명이나 존재했지만, 2명의 투수로는 마운드 운용이 힘들다.
‘상대는 페드로를 집중적으로 무너뜨리려고 할 거야.’
후버는 페드로를 괴롭힐 수 있는 타자가 즐비했다.
“타자들은 오늘 번트 훈련으로 시작한다.”
도널드 감독은 고심만 해서는 안 된다며 타자들에게 번트 훈련을 지시했다.
알렉산더나 마이크라고 다르지 않았다.
중심 타선들도 번트 훈련에 가담해야만 했다.
후버를 이길 수 있는 승리 방정식은 단 하나이다.
‘킴의 말마따나 상대가 신을 내게 둘 수는 없어.’
그렇다면 그들의 기세를 눌러야 한다는 것인데.
약팀이 강팀의 기세를 누를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상대의 허를 찔러서 당황하게 만든다.’
이 방법 말고는 없었다.
지금까지 FS의 승리패턴은 후버 고등학교에 먹혀들지 않을 테니까.
그러므로 상대를 당황하게 하려면?
전혀 예상치 못한 수를 써야만 한다.
그중 하나가 스몰볼이었다.
스몰볼은 미국이 지양하는 야구다.
번트로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낼 수는 있지만, 아웃 카운트를 공짜로 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국 야구에서 스몰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몰볼 전략을 쓰면 상대의 허를 찔러 승리할 수도 있다.
경기 중에 예측하지 못한 전략이 나올 경우 선수들은 늘 당황하기 마련이고, 그 당황이 기세를 바꾸는 시발점이 되기 마련이니까.
지금 하는 번트 훈련도 그걸 위한 것이었다.
그때 도진은 번트 훈련에 가담하는 대신 도널드 감독에게 다가갔다.
스몰볼보다 상대를 당황하게 할 색다른 무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감독님. 주제넘은 말일 수도 있겠지만, 내일 경기에 관해 상의를 좀 하고 싶습니다.”
도널드 감독은 피식 웃었다.
이곳은 미국이다.
더욱이 학생들은 제 생각을 자신 있게 어필하는 것을 언제나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도진은 감독이 미소를 짓자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가 유리한 점은 또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말이지?”
“감독님은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상대는 저희를 만나 낙승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투수 운용을 빠듯하게 가져가지는 않을 겁니다.”
후버 고등학교는 미래를 바라보며 8강을 위한 경기 운용을 하겠지.
하지만 자신들은 달랐다.
16강에서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경기에 임해야 했다.
“그렇다. 상대는 1선발을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물론 2선발도 1선발에 비해 기량이 크게 떨어지진 않는다.”
두 선발투수의 평균 구속은 93마일.
구속도 빠른데다 훌륭한 제구력과 다양한 구종을 갖춰 까다로웠다.
“네. 영상으로 접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좌완 선발을 내세우지 않은 저들은 후회하게 될 겁니다.”
후버 고등학교의 1선발은 좌완투수이며 2선발은 우완투수다.
좌완이 우완보다 희소성이 있다.
더욱이 캘리포니아 리그에서는 대부분 선발투수가 우완투수였다.
‘우리 선수들도 우투수를 만날 때 훨씬 성적이 좋았지. 그만큼 많이 상대해봐서 익숙하니까.’
도널드 감독도 동의했다.
무엇보다 좌완투수라면 1루 주자의 발을 쉽게 묶어 둘 수 있다.
하지만 우완투수는 투구할 때 1루를 향해 등을 보이기 때문에 주자를 신경 쓰기 어려웠다.
‘우리 선수들은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나지.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고.’
하지만 상대는 강팀.
눈 뜨고 코 베일 만큼 무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텐데. 생각해둔 부분이 있나?”
도진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도널드 감독은 생각해둔 현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일반적인 작전만으로 상대를 흔들 수 없다.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만, 강팀들이 무턱대고 당해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지.”
“혹시 감독님은 FS가 이길 확률이 있다고 보십니까?”
“없다고 보진 않는다. 스포츠가 다 그런 법이니까. 물론 확률은 매우 미비하지.”
그거면 충분하다.
도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감독님. 1차전에서 유격수로 뛰고 싶습니다.”
“유격수?”
감독은 미간을 구겼다.
늘 읽히던 도진의 생각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FS가 지금까지 승리한 패턴을 되짚어보자.
페드로와 도진.
단 두 명의 믿음직한 투수로 승리를 꼬박 챙겼다.
하지만 9이닝 경기다.
비록 2이닝이 늘어난 거지만, 선수들이 느끼는 체력적인 부담은 훨씬 크다.
그런데 도진이 유격수를 맡는다?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도진은 지금까지 유격수로 경기를 뛴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대개 투수로 등판하지 않아도 될 경기에서 유격수를 봤고 대부분 중견수로 뛰었다.
‘킴이 유격수로 출전할 때는 상대가 비교적 약팀이었지.’
고등학교 야구에서는 유격수 방면으로 향하는 공이 중견수 방면보다 훨씬 많았다.
플라이보다는 땅볼 타구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진이 후버와의 경기에서 유격수를 본다면?
FS가 앞서나갈 시 마운드에서 평상시의 퍼포먼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당연히 체력은 투구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진의 체력을 안배한다.
도널드 감독은 이것을 제일 중점으로 두었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틀어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던가?
도진은 걱정 따윈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미소를 띠었다.
“제가 유격수로 뛰겠다는 이유는 바로 트릭 때문입니다.”
트릭. 속임수.
야구에서는 상대를 속이는 동작이다.
도널드 감독의 동공이 팽창했다.
전혀 염두에 둔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입꼬리는 금세 치솟았다.
‘확실히. 너라면 그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낼 수 있겠지. 아니.’
도진만 수행해낼 수 있는 임무였다.
그의 야구 센스는 이미 탈 고등학생급이었으니 말이다.
1%였다. 도널드 감독이 예측한 FS의 승리 확률이 말이다.
하지만 도진의 전략을 듣는 순간 50%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