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6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64화(64/400)
도진은 어벙벙해진 표정으로 사무실 밖을 나왔다.
조엘은 이미 이곳을 떠난 직후였다.
마이크는 도진에게 다가가더니 손바닥을 펼쳐 그의 얼굴 앞에 휘휘 저었다.
“정신 어디 감?”
“멀쩡해.”
“멀쩡하긴. 마치 미스 차에게 차인 표정이었어.”
“아니거든?”
“오호라. 사랑이 두텁다?”
“……”
“그럼 왜 이렇게 어안이 벙벙한지 좀 알아볼까?”
도진은 손에 쥔 2개의 티켓을 마이크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마이크는 티켓을 바라보며 눈을 번뜩였다.
“오? VIP 티켓이네? 그것도 개막전? 와! 이거 팔면 부자 되겠다. 판다고 올리는 순간 1분 만에 팔릴 거다.”
“팔겠냐?”
“농담이지. 쯧쯧. 넌 너무 진지하다니까?”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너무 장난스러운거야.
라는 말 대신 해결책을 내놓고자 물었다.
“같이 갈래?”
“오우 쉣.”
“왜. 싫어?”
“주말에도 너와 함께하라고? 오우 쉐엣트!”
“싫음 말아라.”
아쉬운 건 너지 내가 아니잖아?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이크는 전혀 아쉬운 표정이 아니었다.
“뭐야. 정말 안 가?”
“진심 내가 같이 가겠냐?”
“그럼 알렉산더에게 같이 가자고 물어봐야겠다.”
마이크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알렉산더라면 도진과 함께 가겠다고 말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머릿속에 그린 조합은 그게 아니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남자 좋아하지.”
“개소리하지 마. 모솔이라고 무조건 남자 좋아하냐?”
“그런데 왜 알렉산더랑 가려고?”
“야구 경기니까.”
“그게 만약 뮤지컬 티켓이었으면?”
“너네랑은 안 가지.”
“미스 차와 가나?”
“물어는 보겠지?”
“그럼 이것도 물어봐라! 좀!”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야구 경긴데?”
“미스 차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내내 응원했는데 그건 야구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학교 치어리더로 산타모니카 야구부를 응원했는데 그건 야구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건 아니지.”
“그럼 너는 미스 차가 싫다?”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뭔데?”
미친놈아! 네가 하트 보내서 읽씹 당했잖아!
되돌려내! 이 어색한 분위기 돌려달라고!
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이크는 그의 울분을 눈치챘다.
“답답한 자식! 내가 나서주지.”
마이크는 또다시 도진이 쥐고 있던 핸드폰을 쏜살같이 뺏었다.
“어? 미스 차가 하트 답장했는데?”
“어? 진짜?”
도진은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이크는 음흉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뒤로 숨겼다.
“아니.”
도진은 허탈해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럴수록 마이크의 입꼬리는 더욱 치솟았다.
“농담이고. 진짜 왔어.”
“안 믿어.”
“진짜라니까? 근데 내가 모르는 언어네.”
마이크는 도진의 얼굴 앞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나: (하트)] [차하리: 어…… 혹시 잘못 보낸 거야?]뭐야? 진짜 왔네?
도진은 마이크에게서 핸드폰을 낚아채려고 했지만, 마이크는 이를 허용하지 않겠다며 또다시 핸드폰을 등 뒤로 숨겼다.
“시뮬레이션부터다.”
“무슨 시뮬레이션.”
“너 분명히 내가 보냈다고 하려고 했지.”
도진은 뜨끔했다.
그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크는 혀를 찼다.
“쯧쯧. 그래서 네가 안 된다니까?”
“아니. 내가 안 한 건 사실이잖아?”
“미스 차도 알고 있겠지. 더럽게 무뚝뚝한 놈이 느닷없이 하트를 보냈어. 여자의 직감이란 게 있는데 모를까? 미스 차는 너같이 무지하지 않아.”
도진은 자신을 욕하는데 마이크에게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럼 뭐라 해야 하는데?”
“그냥 경기 응원해줘서 고마움의 표시라고 해.”
도진은 곧장 팔을 들이밀었다.
“닭살 돋아난 거 보여?”
마이크는 그 팔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짝.
도진은 깜짝 놀라 돋아난 닭살이 자취를 감췄다.
마이크는 태연하게 말했다.
“닭살 사라짐.”
도진은 허탈했다.
이마저도 사실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마이크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한마디로 부끄러운 건 잠깐뿐이란 거다.”
마이크는 도진이 알아들었다고 확신하며 핸드폰을 넘겼다.
도진은 마이크의 지시를 따랐다.
[나: 응원해줘서 고마워서.] [차하리: 내가 좋아서 한 건데 뭐.]“뭐라고 했어? 뭐라고 그랬냐고!”
마이크는 핸드폰 화면을 옆에서 훔쳐보며 절규했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향연이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이번만큼은 음흉한 미소를 역으로 띄웠다.
“넌 몰라도 돼!”
도진은 자신도 모르는 미소를 유지한 채 하리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나: 다저스 개막전 티켓을 우연히 구했는데 같이 갈래?] [차하리: 다저스? LA 다저스? 나 한 번도 안 가봐서 정말 가보고 싶었어! 같이 가자! 이번 주 주말이지?] [나: 응. 그럼 주말에 보자!]“야! 뭔데! 어떻게 된 건데? 아! 이 새끼 쪼개는 걸 보니 잘 된 것 같은데?”
마이크는 울부짖었지만, 도진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마이크는 입꼬리를 올리려다 금세 무표정을 지었다.
“병신. 좋단다. 너 나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
“고, 고맙다?”
“어. 대신 주말에 교복 입고 나가지 마라.”
그럴 생각이었는데?
“스테이크 집은 교복…….”
“그건 우리가 학교 학생인 걸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고!”
“아하?”
마이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야구 관련 용품 모자나 저지. 이런 거 입으면 죽여버릴 거야.”
“그럼?”
“사복 입어 이 퓨웅신아! 그리고 파울 타구 잡겠다고 글러브 들고 가지 마라!”
“안 가져가 가……”
* * *
주말이 다가왔다.
연애 고수 마이크의 코치 덕분에 도진은 사복을 입었다.
물론 사복이라고 해봤자 청바지에 하얀색 티가 전부였다.
약속 장소는 FS 학교 정문이었다.
조엘은 시간 맞춰 학교 앞으로 구단 차도 보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왔어?”
먼저 도착했던 하리가 도진을 발견하더니 미소를 띠며 손을 살포시 흔들었다.
도진도 핸드폰을 보다 목소리가 들려오자 흠칫 놀라며 그녀를 쳐다봤다.
‘엥? 나랑 똑같은 복장이잖아?’
하리도 청바지와 흰 티를 입고 있었다.
절대로 맞춰 입자고 사전에 얘기를 나눴던 건 아니었다.
도진은 멋쩍게 웃었다.
“어, 어쩌다 보니 비슷한 옷을 입게 됐네? 우리 절대 짠 거 아닌데. 그치?”
하면서 사방을 살폈다.
왠지 마이크가 이 광경을 보면 놀릴 거리가 300개는 늘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리는 수줍게 웃었다.
“그러게. 그런데 뭐 찾아?”
“어? 아니야. 그냥 차를 보내주기로 했는데 언제 오나 싶어서.”
“그런데 신기하다.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서 훌륭한 성적을 냈다고 구단에서 차도 보내주는 건가?”
도진은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고. 학교 선배가 다저스 선발 투수야. 조엘 오스틴이라고.”
“아! 나도 알아! 다저스 선발 투수잖아! FS 출신인 건 몰랐네.”
“나는 후배였음에도 처음엔 몰랐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며.
때마침 검은색 세단이 정문에 도착했다.
운전석 창문이 열리더니 백인 남성이 손짓했다.
“킴! 와서 타세요!”
도진은 차에 탑승 후 안도했다.
하리와 단둘이 만나는 건 처음이라 어색할 줄 알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리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녀는 도진이 어색하지 않게 야구 관련된 얘기를 꺼냈으니까.
“원래 미국 유망주들에겐 구단 투어할 수 있게끔 초청도 해준다고 하더라고.”
“아. 나도 들어봤어.”
“오 진짜? 누구한테?”
“구단 스카우트?”
“이야! 대단하네. 역시 슈퍼스타는 다르네?”
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슈퍼스타의 궤는 조금 달랐으니까.
최고가 곧 슈퍼스타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 최고가 아니었다.
도진은 오히려 하리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과 야구 관련된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1등 신부감…….’
도진은 자신의 머리를 콩콩 찍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식도를 열고 김칫국을 드링킹하고 있었으니까.
하리는 도진의 행동을 재밌어했다.
“그런데 도진이 너한테만 티켓을 준 거 같네?”
“어떻게 알았어?”
“그냥 느낌상 그랬어.”
여자의 직감이 무섭구나.
도진은 마이크의 말이 순간 떠올랐다.
“왜 나한테만 줬는지는 아직 모르겠어.”
“음. 다른 말은 없었어?”
“이 티켓으로 앞으로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정해지면 좋겠다고 했어.”
하리는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꺾어 도진과 눈을 마주치더니 살포시 웃었다.
“난 왠지 알 것 같네?”
“어? 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단 조엘 오스틴은 선발 투수잖아. 그리고 너도 같은 투수고. 그러니 직접 보고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보라는 거 아닐까?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도진은 일리 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
자신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자신에게 현장 감각이라도 익히려는 뜻인 줄 알았다.
아니면 정말 FS가 대회에서 예상외의 성적을 거둬 보상이라도 주는 줄 알았다.
‘하리 말처럼 정말로 자신을 보고 고민해보라는 걸 수도 있겠어.’
더욱이 자신은 다음 시즌부터는 선발로 뛸 것이다.
조엘 오스틴이라면 감독에게 전달을 받았을 테니 알고 있을 터.
“고마워. 맞는 것 같아.”
“나도 그냥 유추했을 뿐이야. 아닐 수도 있잖아? 그래도 너는 경기를 보는 즉시 정답에 도달할 수 있겠지.”
그래도 알고 보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차이는 컸다.
도진은 오늘 하리와 함께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이크에게 한턱 사야겠는데? 다음 주 월요일에 먹고 싶은 거 다 고르라고 해야겠다.’
물론 학교 돈이지만.
* * *
다저스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도진과 하리는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다저도그를 하나씩 손에 쥐고 VIP석에 착석했다.
좌석은 포수 뒤편.
투수를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둘을 자리까지 안내한 담당자가 도진의 귀에 속삭였다.
“경기 끝나면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시겠어요?”
“네? 아 네.”
다시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그러는 건가?
도진은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는 아직 시작하기 전.
도진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중석에 들어왔는지 앞뒤로 살폈다.
가득 찬 관중석과 현장감에 혀를 내두르던 그때.
옆 좌석의 배불뚝이 남성이 도진에게 다가오더니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 혹시? FS의 킴?”
남성은 몸집만큼이나 성량 또한 대단히 컸다.
그 때문에 주위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VIP석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도진을 알아봤다.
“킴? 이번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의 그 킴?”
“FS의 투타 겸업?”
“와! 진짜네? 캘리포니아의 스타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여자 친구랑 같이 온 건가? 혹시 먹고 싶은 건 없어? 팝콘이라던가. 맥주라던가.”
“미친놈아! 맥주는 안 되지!”
“졸업 후 다저스 올 거지? 다저스 와야 한다?”
“킴이 다저스에 온다? 정말 좋지.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다저스에서 킴을 뽑으려면 이번 시즌 꼴찌 해야 하는데?”
도진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래도 개막전 행사가 시작하자 관심은 곧바로 사그라들었다.
‘어후. 정신 사나워.’
하리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녀는 도진의 인기를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었다.
한국인이었음에도 대회 당시에는 캘리포니아에서는 도진의 얘기만 나왔다.
무엇보다 FS와 NY의 최고 시청자 수는 100만 명을 기록했다.
특히나 하이라이트 조회수는 2,000만 뷰가 훌쩍 넘었다.
FS는 탈락했음에도 캘리포니아 기사들은 온통 도진에 관한 것이었다.
‘당연히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도진이를 모를 리가 없지.’
캘리포니아뿐일까?
아마 전미 어디에서도 도진을 알아볼 것이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고등학교 스타들은 꾸준함을 보이지 못한다면 금세 잊히니까.
‘물론 도진이는 앞으로도 잘할 것 같지만.’
하리는 도진이 앉은자리에서 다저도그를 전부 해치우자 자신의 것을 내밀었다.
도진은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난 다 먹었어. 너도 먹어야지.”
“난 한입 먹었으니 괜찮아. 이거 먹어.”
“가서 하나 더 사 오면 되는데?”
“경기 이제 시작하잖아? 집중해야지. 그리고 난 배가 별로 안 고파서.”
도진은 결국 하리가 건넨 다저도그를 받았다.
하리가 한 입 베어 문 핫도그를 바라보며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조엘 오스틴이 마운드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 메이저리거의 투구를 이렇게나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1회 초.
도진은 첫 타자를 상대하는 조엘 오스틴에게서 한 치의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폼부터 시작해서 던지는 구종 자체가 다른 투수였다.
덕분에 도진은 쉽게 해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경기에 초청해준 의미를 알겠어.’
옛것을 버릴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