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71)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71화(71/400)
“도진아 노올자!”
상우와 도진은 4살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며 둘도 없는 친구였다.
무엇보다 도진을 야구에 발을 들인 건 7살의 상우였다.
“도진아. 우리 야구 해볼래?”
“야구? 재밌어?”
“아빠한테 글러브와 공을 선물 받았거든? 근데 글러브가 하나뿐이니까 네가 공을 던지면 내가 잡을게!”
도진은 던졌고 상우는 받았다.
둘은 온종일 캐치볼을 하며 유년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과 별개로 둘의 인연은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때까지 쭉 유지됐다.
[U-15 왕중왕전! 9회 말 2아웃! 동대 중학교의 김도진! 무려 결승전에서 퍼펙트게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학생이 150km의 직구를 던지다뇨.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직구만 던지는 데 선수들이 치질 못해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미친 공을 받아내는 포수 역시 칭찬을 아낄 수 없겠죠!] [네. 전문가들이 말하죠. 저 포수가 아니었다면 도진 선수가 이런 기록을 세우지 못했을 거라는 걸요.] [정말 하늘이 내려준 재능입니다! 신이 빚은 배터리입니다!]신이 한국에 배터리를 내려 주었다.
도진과 상우의 등장은 암울한 대한민국의 희망이었다.
[김도진 선수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퍼펙트게임을 달성합니다!] [동대 중학교 우승! 또 우승입니다! 모든 대회를 전부 우승으로 마무리합니다!]중학교 결승전이 끝난 직후.
상우는 도진에게 물통을 건넸다.
“도진아. 졸업하면 동대 고등학교 갈 거지?”
“그만 좀 물어라. 간다니까?”
“고등학교도 전부 휩쓸어버리자고.”
둘의 목표는 어렸을 적부터 일치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그리고 둘은 함께여서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결승전이 끝난 직후.
집으로 돌아온 도진은 집안이 내려앉았다는 말을 들었다.
“도진아. 우린 미국으로 떠야 한다.”
도진은 아버지의 말씀을 처음에 믿지 않았다.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 안이 텅 비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쇼파나 티비, 침대 등등.
전부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거대한 캐리어 4개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그제야 도진도 현실과 직시했다.
집 안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도진은 그때 처음으로 중학생답게 아버지께 떼를 썼다.
가기 싫다고.
한국에 남아서 상우와 함께 야구하고 싶다고.
하지만 중학생 도진은 제일 친한 친구에게 인사조차 남기지 못한 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날 즉시 쫓겨나듯 대한민국을 떴으니 말이다.
그 둘이 미국에서 3년 만에 재회했다.
“상우야. 잘 지냈냐. 미안하다. 친구야.”
상우는 소매로 눈을 가린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입 틈을 비집고 나오는 목소리는 떨림이 가득했다.
“개새끼야. 죽은 줄 알았잖아.”
* * *
최철순 감독은 도진과 상우에게 따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줬다.
도진은 상우와 함께 더그아웃에 앉아서 지금까지 있던 일을 전부 풀어냈다.
이야기를 뜨문뜨문 풀어냈음에도 1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연락은 할 수 있었잖아.”
상우는 도진을 나무랐다.
아직 고등학생인 그는 세상을 완벽히 알지는 못했으니까.
경험해보지 못해 집안이 망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상우 입장에서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도진과의 관계만큼은 끊어지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자신에게 얘기를 해줬더라면 전부 이해했을 테니까.
도진도 상우의 마음을 알았다.
반대로 이런 일이 상우에게 벌어졌다면?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눈앞에 나타났다면?
‘나도 똑같이 행동했겠지.’
무려 12년을 알고 지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붙어 다녔다.
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를 등진 건 도진 자신이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도진은 야구를 더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어 하나 모르는 한국인이 대뜸 미국에서 지낸다는 것은 지옥이었다.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삶은 피폐 그 자체였다.
적어도 말이라도 통하려면.
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공부 말고는 답이 없었다.
그렇게 2년.
도진은 어느덧 낯선 언어가 트이기 시작했고 운이 좋게 야구도 할 수 있게 됐다.
야구를 다시 하게 된 순간에는 상우에게 연락을 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느끼는 2년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과연 상우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직도 원망하고 있을까? 혹시 자신 따위는 이미 잊은 건 않을까?
별별 생각에 결국 도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친구에게 쉽사리 연락하지 못했다.
“……다 핑계였지. 솔직히 무서웠다.”
도진은 진심이었다.
느닷없이 사라지더니 갑자기 나타나서는 잘살고 있다.
이런 말을 염치없이 건넨다는 것이 두려웠다.
덜 친했다면 모를까.
그저 안면만 튼 사이라면 안부 정도는 물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진과 상우의 사이는 그보다 훨씬 두터웠다.
태풍이 몰아쳐도 둘의 사이에는 실금도 가지 않을 만큼 굳건했다.
도진은 지금에 와서는 후회했다.
옆에 있는 친구는 정말 모든 것을 이해해줄 친구였으니까.
상우는 퉁퉁 부어오른 눈에 힘을 가득 주었다.
이제는 슬픈 얘기는 그만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은 재밌냐?”
“그래. 솔직히 재밌다.”
상우는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도진의 표정은 아까와는 달리 후련했다.
그렇기에 그가 진심이란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언제나 혼자만 재미 보고 넌 진짜 개자식이다. 하긴. 그런데 재밌을 것 같긴 해. 그래서 이곳의 수준은 어떻디?”
“글쎄. 솔직히 말하면 진짜 괴물들밖에 없는 것 같다.”
상우의 눈이 호기심으로 번뜩였다.
도진은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친구였다.
적어도 야구에서만큼은 그랬다.
누구도 그의 앞길을 막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이곳은 다르다고 얘기했다.
“그 괴물들. 너보다 잘하냐?”
“지금은.”
상우는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그래도 도진은 자신이 알던 그 도진이었다.
그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부류였고 합당한 실력도 갖추었었다.
“내년에 졸업이라고?”
“응. 넌 이번에 졸업했지?”
“그래. 구단과 계약도 했다.”
한국은 미국보다 빠르게 프로에 대비할 수 있었다.
한국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한국은 3월에 학기가 시작하는 반면 미국은 9월이 학기의 시작이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졸업 자체도 한국이 미국보다 빨랐다.
그렇기에 지금 대표팀에 참여한 선수들은 구단과 전부 계약한 상태였다.
도진은 부럽다는 눈빛으로 상우를 쳐다봤다.
“잘됐다. 부럽기도 하고. 결국 나보다 네가 프로에 먼저 데뷔하는구나. 그래서. 어디 구단이랑 했어? 몇 순위였어? 당연히 너라면 1순위였겠지?”
상우는 쉴새 없이 질문이 들려오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나씩 물어봐라.”
“그냥 네가 하나씩 천천히 말해라.”
“일단. 1순위는 아니다.”
도진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상우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상우는 타격과 수비가 전부 훌륭한 포수였다.
동대 중학교 4번 타자는 자신이며 타자로서의 기록도 여럿 갈아치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우가 내 뒤에 있어서 그런 건데?’
상우는 도진보다 타격 실력이 뛰어났다.
그와 상대하지 않으려면 도진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투수는 도진보다 상우를 타격에서만큼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다.
도진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며 턱을 매만지더니 생각에 잠겼다.
‘상우는 알렉산더와 견줘도 절대 뒤처지지 않을 텐데?’
물론 알렉산더가 이곳 미국에서 드래프트 1순위는 아니다.
대신 알렉산더가 한국 드래프트에 참여했다면 1순위일 만큼의 실력이었다.
그리고 상우도 결코 타격면에서 알렉산더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상우가 대답 대신 뜸을 들이자 도진은 그를 닦달했다.
결국 상우는 도진의 성원에 못 이겨 술술 불었다.
“메이저리그 구단이랑 계약했다.”
도진은 순간 심정지가 온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으니 그저 그가 부러웠던 것이었다.
학생 신분과 프로 신분.
자신은 아직 1시즌을 더 뛰고 나서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까.
도진은 부러움은 뒤로한 채 축하도 해줄 겸 자세히 물었다.
“어디랑 계약했는데?”
“천사.”
“LA 에인절스?”
“응. 대우도 조건도 제일 좋았어.”
“계약금 얼마 받았는데.”
“250만 달러.”
이 정도의 금액이라면 뉴스에서도 대서특필했을 것.
하지만 도진은 한국 뉴스를 읽지 않았다.
미국 소식에도 관심 없는 그가 이를 알 리는 없었다.
더욱이 250만 달러면 무려 30억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이 금액이라면 역대 한국인 신인 계약금 순위 1위를 상우가 기록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1위가 김병현 선수의 225만 달러였으니 말이다.
‘에인절스는 상우를 제대로 키워볼 생각이야.’
물론 마이너 생활부터 시작해야 하며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계약만큼은 훌륭했다.
상우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도진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후후. 이제는 내가 너보다 앞선다고 말할 수 있겠지.”
먼저 구단과 계약한 건 자신이다.
더욱이 한국 역대 신인 계약금 1위를 달성했다.
‘도진은 야구를 2년 정도 쉬었다고 했지.’
당연히 지금 당장은 자신이 앞서고 있었다.
더군다나 상우는 미국에서 도진의 위상을 일절 알지 못했다.
그가 참여한 대회. 남긴 기록.
무엇하나 들은 바 없었다.
제일 중요한 건.
상우는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도진의 피칭을 보지 못했다.
도진은 끌끌 웃어대며 만족하는 상우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상우야. 지금 많이 좋아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차후에 자신이 이곳에서 1라운드에 뽑힌다면.
상우보다 훨씬 금액에 사인하게 될 테니까.
물론 이를 알 수 없었던 상우는 몸을 일으켰다.
표정에서는 친구라서 보일 수 있는 기만이 새겨져 있었다.
“그럼 슬슬 일어날까? 오랜만에 공 좀 받아봐야겠지?”
상우는 승리의 미소를 애써 숨기지 않았다.
언제나 도진의 뒤만 바라보고 걷던 자신이 지금만큼은 그의 앞에 서고 있었으니까.
도진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활짝 편 상우의 등을 툭 쳤다.
“그래. 오랜만에 내 공 좀 받아줘라.”
둘은 더그아웃에서 나왔다.
그러자 여전히 관중석을 지키던 몇몇 학생들.
이제 학기 초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그들은 도진이 주먹질을 당하자 걱정이 태산이었다.
결국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는데 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도진아! 괜찮아?”
“저 나쁜 놈! 우리 도진이를 때리면 어떻게!”
“너 때문에 하리 울 뻔했잖아! 개 놈 자식아!”
상우는 자신을 향한 비난에 크게 당황했다.
도진은 상우와 학생들을 능숙하게 안심시켰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충분히 맞을 만했어.”
도진의 말 한마디에 비난은 사그라들었다.
상우도 그제야 관중석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못 볼 꼴 보여서 사과라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야에는 한 아리따운 한국 여학생이 들어왔다.
눈시울이 붉은 걸로 보아 혹시?
상우는 표정을 굳혔다.
그의 눈동자에는 질투가 담겨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니길 바라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야. 김도진.”
“왜.”
“저분이 저 친구들이 말한 그 하리라는 분이냐?”
“어. 그런데?”
먼 나라에 와서 하라는 야구는 안 하고 연애나 하고 있어?
희번덕인 상우의 표정은 금세 암울해졌다.
‘젠장. 졌다.’
상우는 도진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자신 역시 고등학교 내내 야구만 하느라 연애는커녕.
여자랑 대화도 나눠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금세 다시 웃었다.
도진이 제일 좋아하는.
절대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야구에서만큼은 그를 앞서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마저도 착각이었다.
“어이. 친구. 제대로 한번 던져봐라!”
포수 장비를 착용한 상우는 자신 있게 미트를 뻗었다.
도진은 피식 웃고는 글러브 안에 들어 있는 공을 만지작거렸다.
“진심으로 던져도 되냐?”
“이야. 동대 중 김도진. 여전히 자신감만큼은 살아 있어?”
“이제는 FS의 김도진이라고 해줄래?”
그게 뭔데?
상우는 새어 나오려는 말을 억지로 꾹 삼키더니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 역시 더는 지체하지 않았다.
와인드업 후 던진 공은 굉음을 내지르며 미트로 빠르게 향했다.
상우는 도진의 공이 일반적인 포심 패스트볼이 아니라는 것을 스핀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투구는 어느덧 홈플레이트 앞에서 크게 휘어 바깥쪽으로 향했지만.
상우는 그 공에서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고 포구했다.
퍼억.
공을 받은 상우는 눈이 희번덕였다.
하지만 금세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김도진. 그럼 그렇지.’
야구에서 그를 능가한다고?
상우는 잠깐이라도 그에게서 앞섰다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착각이었음에도 만족스러웠다.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재능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를 이길 수 있는 또래는 대한민국 내에는 없었다.
도진은 이번 피칭으로 또다시 증명했던 것이었다.
상우는 포수 마스크를 벗더니 바닥에 내려놓았다.
“공. 나쁘지 않네.”
“그러냐?”
“그래.”
저 말은 어렸을 적부터 미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매일 같이 듣던 말.
도진이 최고의 공을 던질 때마다 상우에게서 들었던 멘트였다.
옛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른 도진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미소를 띠었다.
“그럼 우리가 이번 대회도 한번 씹어먹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