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7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74화(74/400)
한일전은 절대 져서는 안 되는 경기다.
양국의 생각은 똑같았다.
더욱이 요즘 대한민국은 일본에 크게 뒤처져 있었다.
유망주, 시설, 리그.
무엇하나 앞서는 게 없었다.
그런 불합리함 속에서도 절대로 패배는 용납되지 않았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내일 경기를 위한 미팅이 시작됐다.
최철순 감독은 이미 선발을 점찍어 두었다.
“내일 선발은 고태준이다.”
최철순은 그 후 선수들의 정보도 세세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최철순도 모르는 선수가 한 명 있었다.
바로 NY의 에이스 타카시 사토였다.
“도진아.”
“네. 감독님.”
최철순의 호명에 도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주목되자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타카시 사토. 본선에서 경기 치르는 걸 봐서 알고 있겠지만, 훌륭한 선수입니다.”
최철순이 대답했다.
“저 친구는 이미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끄는 친구더군.”
“네. 포스트 오타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합니다. 투타 겸업이며 약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작년 시즌 미국 최고의 대회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선수들도 이미 타카시 사토의 경기를 접했다.
그는 대만전에서 6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그의 활약 모니터로 보았을 뿐이지만, 화면을 뚫고 나오는 타카시 사토의 위력에 전부 움츠러들었다.
어나더 레벨. 차원이 다른 선수.
솔직한 말로 지금 한국 국가대표 중에는 저 정도의 선수급은 없다.
도진과 소수의 선수를 제외하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대한민국에도 에인절스와 계약한 상우가 존재했으며, 고태준도 그가 선택했다면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카시 사토는 투수와 타자를 병행하고 있었음에도 두 영역 모두 이상우나 고태준보다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다.
특히나 이번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4할이 넘는 타율에 홈런을 벌써 4개나 쳤다.
타점도 10개가 넘었다.
물론 한국에도 투타 겸업의 김도진이 존재했지만, 아직 그의 전력투구를 본 선수들은 없었다.
그러므로 누구도 도진이 타카시 사토를 앞선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당사자는 생각이 달랐다.
‘저번 시즌까지만 해도 확실히 타카시 사토가 나보다 잘했지.’
대신 어디까지나 저번 시즌이다.
새로운 시즌에는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욱이 도진은 자신이 있었다.
이번만큼은 최소 그와 비등해졌다는 확신이 눈동자에 박혀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판가름 나겠지. 나는 기필코 넘어설 거다.’
NY와 FS의 경기가 아니다.
한일전이다. 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대결의 승패는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
차후에 만나게 되면 기세를 탈 수 있을 테니까.
‘한 번 이겨본 상대를 다시 이기는 건 어렵지 않아.’
각오를 다진 도진은 팀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는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우리가 이길 겁니다. 결승에 올라가는 건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일본. 쉽지 않은 상대다.
오히려 이길 확률이 희박한 경기였다.
감독과 코치 그리고 선수들까지.
더 나아가 국민도 알고 있다.
하지만 도진의 목소리엔 확신이 묻어 나왔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 * *
일본 대표팀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회의가 진행됐다.
이곳에서는 타카시 사토가 발언권을 얻었다.
“김도진. 이 선수를 유의해야 합니다.”
일본은 한국보다 준비가 철저했다.
도진의 한국과 미국에서의 활약을 압축해서 영상을 준비해뒀고 전부 시청을 끝냈다.
“그는 기세에 눌리는 선수가 아닙니다.”
기세에 눌리지 않는 선수만이 저 위를 바라볼 수 있다.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었다.
타카시 사토는 FS와의 경기를 떠 올렸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경기 당시 FS 전원의 얼굴에 패배가 드리웠다.
그런 팀을 짓누른다는 건 손 안 대고 코를 풀 만큼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FS를 쉽게 누르지 못했다.’
도진만큼은 홀로 버티며 끝까지 싸웠기 때문이다.
NY라는 미국에서 두 손가락 안에 꼽히는 팀을 그 혼자서 막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도 자신의 앞길을 막아섰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말이다.
타카시 사토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일한전입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일본 선수들도 한국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었을 때만큼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스포츠 역사. 기록이 증명하고 있었다.
‘이번 기필코 이겨야 한다.’
타카시 사토 역시 도진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내년에 졸업 후 메이저리그를 밟을 생각이다.
1라운드가 예정된 아시아 선수는 역사상 자신뿐이었다.
도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최초라는 타이틀은 자신의 것인 줄 알았다.
처음 그의 등장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보다 월등히 아래 레벨이었는데.’
그런데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도진은 자신의 레벨까지 올라와 있었다.
직접 경험해봤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쫓겨본 적이 있는가?
심장이 두근거리며 손바닥에 땀이 한 움큼 쥐어진다.
혀가 바짝바짝 마르고 정신이 피폐해진다.
그렇기에 이번에 기필코 그 격차를 벌려놔야 한다.
타카시 사토의 눈동자에는 각오가 휘몰아쳤다.
‘절대로. 절대로 질 수 없다.’
마지막 시즌.
정말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아시아 1등은 오로지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 1등은 역사를 대변해도 단 한 명뿐이었다.
타카시 사토는.
그리고 도진은.
‘내가 그 자리에 올라선다.’
절대로 그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 * *
회의가 끝난 선수들은 각자 인터뷰를 위해 이동했다.
U-18 대회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기자들이 대거 투입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일전은 미국에서도 관심 깊게 보는 대목이었다.
이미 결승에 진출한 미국은 자신들의 상대가 누가 될 것인지 관심을 두고 있었다.
“상우야. 인터뷰하러 가자.”
도진과 상우는 인터뷰가 따로 예정되어 있었다.
바로 미국 측 기자들과의 만남이었다.
“야. 나 영어 못한다고! 왜 날 끌어들인 건데!”
“같이 하면 좋지. 통역분 계시잖아?”
“아니. 넌 영어로 하는데 난 한국말로 해야 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고!”
도진은 그러든가 말든가 표정으로 상우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었다.
“너 이번 대회 끝나면 바로 에인절스 합류하는 거 아니었어?”
“어. 정확히는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하지만.”
“그러니까 미국인들과 더 부딪혀봐야지. 이게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야.”
아시아 선수들이 해외 생활에서 애를 먹는 것이 바로 언어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피폐해짐을 느낀다.
그렇기에 언어가 통하기만 한다면, 이는 자신감으로도 이어지며 최종적으로는 성적에도 영향을 끼친다.
아무리 훌륭한 유망주라도 소외감을 느끼며 야구를 한다면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도진은 상우를 힐끗 쳐다봤다.
그는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지만, 저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너도 내가 처음 미국 왔을 때 느껴본 지옥을 초반에는 겪겠지. 그래도 어쩌겠냐. 온전히 네 선택인데.’
큰 도움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적응하길 바랐다.
둘은 인터뷰가 예정된 호텔의 작은 회의실로 이동했다.
그곳엔 5명의 기자가 존재했다.
전부 캘리포니아 소속 기자로서 도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킴! 오랜만이에요!”
“이번 대회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 인터뷰도 잘 부탁해요.”
캐서린도 있었다.
그녀는 편한 후드 차림으로 도진을 향해 해맑은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킴! 4, 5개월만인가요? 보고 싶었어요.”
상우는 캐서린을 힐끗 쳐다보더니 도진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 눈빛엔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이놈 봐라?’
또 여자야? 야구만 해도 모자랄 판에!
상우는 준비된 자리에 앉자마자 도진의 옆구리를 툭 쳤다.
“뭐야? 금발 미녀가 왜 너한테 살갑게 굴어?”
“친하니까?”
“뭐? 친하다고? 어떻게?”
언제 설명하냐.
도진은 상우의 말을 무시했다.
상우는 꼭 들어야만 한다며 도진의 옆구리를 연속해서 쿡쿡 찔렀지만, 질문이 영어로 들려오자 몸이 일순 마비가 됐다.
덕분에 도진은 자유롭게 인터뷰에 답변할 수 있었다.
시작을 알리는 인터뷰는 비교적 일반적인 질문이었다.
“한일전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킴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서로 좋은 라이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부족한 면을 메꿔줄 수 있는 최고의 상대입니다. 역사가 그래왔으니까요.”
다음 기자가 물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십니까?”
도진은 비장한 각오를 담은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제가 이겨야만 하는 이유가 존재합니다. 첫째, 한일전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승패는 갈리기 마련이지만, 최소 이번 해에는 한국이 조금 더 앞서나가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도진은 긴 호흡을 바탕으로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저를. 그리고 FS를 위해섭니다. 저희는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서 NY에 패배했습니다. 이번 경기를 승리로 가져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캘리포니아를 위한 것이기도 하네요?”
도진은 입꼬리를 올렸다.
“네.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죠. 누가 뭐래도 저는 캘리포니아 소속이니까요.”
기자들은 도진의 대답에 박수를 건넸다.
예전에 인터뷰라면 기겁하며 도망을 다니려고 했던 그 도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캐서린 역시 뿌듯함을 느꼈다.
괜스레 자신 때문에 저렇게 인터뷰 스킬이 는 건 아닌지.
적어도 1%의 지분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으니까.
다음 기자의 질문은 그녀의 차례.
대상은 상우였다.
“그럼 리! 질문 좀 할게요!”
상우는 자신의 성이 들려오자 순간 움츠러들었지만, 캐서린은 개의치 않고 질문했다.
“킴과 친구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났다고 들었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상우는 통역에게서 질문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왜 질문이 이렇지?’
경기에 관한 질문이나 미국에 관한 질문일 줄 알았는데 친구와의 재회라니.
“매우 좋습니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만나서 더 뜻깊고요.”
“이곳 식사는 어떠세요? 잘 맞나요?”
“아. 네. 잘 먹고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미국에서 생활하게 되시는데 각오 좀 들어봐도 될까요?”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캐서린은 피식 웃었다.
오늘 도진은 친구의 긴장감을 풀어달라며 인터뷰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렇기에 쉬는 날이었음에도 이렇게 달려온 것이었다.
그녀는 부탁받은 입장으로서 본분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미국에서 활약해야 하는 저 한국 유망주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음. 자신감 넘치는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나 봐요? 대만전 세레모니도 인상 깊게 봤는데요.”
상우는 울상이었다.
자신감? 넘쳐흐른다.
하지만 이 자리는 자신감을 내비칠 수 없는 자리였다.
‘말이 통해야지.’
더욱이 포부나 각오를 통역에게 전달시킨다?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도진은 상우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너다운 모습을 보여야지. 구단도 인터뷰를 볼 텐데 참 좋아하겠다.”
“아니!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냐고.”
“왜. 너 준비하던 거 있잖아. 그거 해. 그거.”
인터뷰가 시작되기 1시간 전.
상우는 그래도 영어로 포부를 내비치고 싶다며 호텔 방에서 혼자 연습했다.
어리숙한 영어였지만, 그때만 해도 자신감은 꽤 있었다.
물론 미국인들 앞에서 막상 영어를 사용하려고 하자 부끄러워지는 것은 당연했지만.
“하라니까? 진짜 좋아한다. 날 믿어라. 특히 여기 있는 기자들 다 우리 응원한다. 아까 못 봤어? 손뼉도 쳐주잖아?”
상우는 벌겋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금세 안색을 되찾았다.
생각해보니 도진이 건넨 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각오가 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었다.
“아임 코리아 넘버 원 캐처!”
하지만 기세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막상 영어가 자신의 입에서 나오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어. 어. 그리고…….”
상우는 1시간을 준비했던 멘트가 단 1글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내뱉었다.
“아이 러브 캘리포니아!”
푸웁.
도진은 입 틈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은 캘리포니아.
기자들 역시 전부 캘리포니아 출신이었다.
더욱이 LA 에인절스도 캘리포니아였다.
기자들은 환호와 휘파람 박수갈채를 보냈다.
상우도 예상치 못한 환호에 얼떨떨했지만, 평소 그와 같이 어깨가 치솟아 있었다.
물론 도진은 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눈만 끔뻑였다.
‘와. 이게 되네.’
어쨌거나 상우의 기도 살려줬으니 내일 경기 더욱 해볼 만해졌다.
* * *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하얀색 유니폼과 일본을 대표하는 남색의 유니폼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악수!”
심판의 콜이 들려오자 도진은 자신의 앞에 선 일본 선수에게 다가갔다.
다카시 사토.
그 역시도 도진과의 거리를 좁혔다.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손에는 힘이 느껴졌다.
타카시 사토는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둘의 첫 만남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이었지만, 어쨌거나 승리자는 자신이었다.
결국 한 번 패배했던 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굿 게임.”
그제야 타카시 사토 역시 입꼬리를 올렸다.
“굿 게임.”
둘은 3초간 눈 하나 끔뻑하지 않고 서로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는 기필코 승리하겠다는 투쟁심이 박혀 있었다.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일종의 기 싸움이 끝나자 도진은 몸을 돌렸다.
그의 양쪽 입꼬리는 솟아나 있었다.
‘다음에 먼저 입을 여는 건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