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7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76화(76/400)
[일본의 4번 타자 타카시 사토. 홈런으로 일본에게 리드를 안겨줍니다.] [실투가 아니었습니다. 몸쪽 꽉 찬 완벽한 공이었습니다. 이걸 잡아당겨 홈런을 만들어내다뇨. 이 선수가 왜 고평가받는지 알 수 있는 타격이었습니다.]-구속도 152km 나왔음.
-고태준이 못 던진 게 아니야. 타자가 잘 친 거지.
-이게 넥스트 오타니의 위력이냐?
-PTSD 온다. 언제였더라? 2015년이었나? 프리미어12에서 오타니 한 명한테 개 발렸었잖아.
-어 근데 그 경기 이기긴 했음.
-문제는 일본도 그때부터 절대 방심하지 않았지.
-인정. 그 후로 우리가 일본을 앞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아! 그리운 08년도여.
-아재. 몇 살이에요? 15년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08이요?
해설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고자 최선을 다했다.
[이제 1회 말입니다. 경기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본이 점수를 냈으면 저희도 따라가면 되는 겁니다!]-그래. 우리 라인업도 꽤 좋잖아?
-믿어보자! 진짜 타격 좋은 애들로 라인업 꾸렸음.
하지만 해설과 시청자들의 기대는 금세 식었다.
타카시 사토는 1번 타자 김민준을 상대로 3구 삼진을 잡고 기분 좋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구속은 154km 패스트볼.
공만 빠른 것이 아니라 칼날 같은 제구가 동반되었다.
위력적이기는 하나 한국의 2번 타자는 다르리라.
박지훈은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에 발탁된 좌타 거포였다.
따-악!
그는 한복판의 패스트볼에 스윙했다.
하지만 구위에 눌려 쭉쭉 뻗어나가지 못해 중견수 플라이가 됐다.
-중견수 플라이? 제대로 얹히지 않았어?
-저 투수. 공만 빠른 게 아니었네. 박지훈이 구위에 눌렸어.
-박지훈은 이상우 다음으로 고등학교 통산 홈런 개수가 제일 많잖아. 그런데 힘에서 눌렸다고?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이게 실력 차이인가보다.
-괜히 끝까지 보면 기분만 상할 것 같아.
시청자들이 부정적인 마음을 가는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근 10년 이상 일본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기지 않을까?
야구는 약팀이 강팀을 잡을 확률이 높은 스포츠니까 한 번쯤은 이기지 않을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한 게 10년이 더 됐다.
그렇기에 이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알았다.
-이번에도 힘들어. 못 이겨.
-언제는 이겼냐…….
지금 당장 마운드에 선 투수의 격차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타카시 사토는 고태준보다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것을.
물론 시청자들은 고태준의 멘탈이 흔들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마저도 전부 투수가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1회부터 수준 차이가 드러나 패배가 드리웠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10년을 넘게 속았으면서도 경기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중계를 끌 수 없었다.
빌어먹을 미련 때문에.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적어도 가슴팍에 태극기 마크를 단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해야 하는 건 자신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한국의 희망이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 * *
떠들썩한 일본 관중들도 도진이 타석에 들어서자 일순 침묵했다.
그들 역시 도진이 누군지 알았다.
매스컴에서는 포스트 오타니의 앞길을 막는 한국인이라는 평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한국 관중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 대결에 방해되지 않겠다며 입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침묵이 유지되는 가운데 도진은 타석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타카시 사토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
‘성장했구나.’
구위나 구속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여름 방학내 제구력을 보강했나 보네.’
도진은 말라버린 아랫입술을 혀로 훑었다.
정말 무서운 선수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참 쉽지 않아.’
성장은 자신만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고를 바라는 선수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리고 도진은 그런 선수 중 한 명과 마주하고 있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더니 전신을 지배했다.
처음 타카시 사토를 만났을 때 느꼈던 긴장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짓누르겠다는 희열에 가득 차 있었다.
‘난 오늘 널 기필코 넘어설 거다.’
타카시 사토는 도진이 타석에 들어서자 입꼬리가 씰룩댔다.
그 역시도 이 대결을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누가 위에 있는지 확실히 각인시켜주마.’
타카시 사토는 눈을 번뜩이며 곧장 와인드업했다.
투구는 바깥쪽에 걸쳐서 들어갔다.
퍼억.
“스트라이크.”
도진은 타석에서 벗어나 헬멧을 걷어내며 소매로 이마를 닦아냈다.
그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증폭되어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젠장. 투구에 힘 들어간 거 봐라.’
타카시 사토는 1, 2번 타자를 상대할 때 완급조절을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전력투구 중이었다.
초구가 미트에 꽂혔을 때 터질듯한 소리가 고막을 관통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도진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2구는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위험했다.’
패스트볼인지 체인지업인지 긴가민가했다.
도진은 몸이 움찔대자 스윙하지 않았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타카시 사토는 6개월 전 만났을 때의 그가 아니었다.
도진은 이번에도 타석에서 벗어나 장갑을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하려는 찰나.
데일듯한 뜨거운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었다.
도진은 눈을 힐끗 위로 치켜떴다. 시선을 보내는 주인공은 상우였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도진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출루하라고?’
메시지를 전달받은 도진은 다시 타석에 들어서며 타격 자세를 잡기 전 피식 웃었다.
‘상우야. 출루가 쉬워 보이냐?’
생각은 다소 부정적이었지만, 도진의 입꼬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상우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긴 해.’
야구는 1회에 점수가 꽤 많이 나는 스포츠다.
그도 그럴 것이 투수의 몸이 예열되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수가 대한민국의 1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1회를 완벽히 틀어막는다면?
‘예열도 끝나고 기세도 덩달아 오른다.’
특히나 상대가 타카시 사토라면 1회에 흔들어놔야 한다.
1회는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이닝이지만, 다르게 해석하자면 마지막 기회라고도 볼 수 있었다.
‘이번 이닝이 끝나면 타카시 사토는 제 페이스를 완벽히 찾아서 더욱 굳건해질 테니까.’
하지만 오늘 투수의 공은 훌륭하다.
더욱이 타자와 투수의 승부에서는 원래 투수가 유리한 법.
확정적으로 출루할 방법은 극히 적었다.
볼넷, 혹은 몸에 맞는 공이라면 모를까.
배트가 투구를 정확히 갖다 맞춰도 수비 정면으로 갈 수 있는 게 야구였다.
특히나 투수는 위기가 아니었음에도 1회부터 전력투구한다.
‘내가 출루만 할 수 있다면 상우에게 기회는 올 거야.’
하지만 어떻게?
도진은 해답을 찾고자 오히려 투수에게 집중하는 대신 시야를 넓혔다.
그 순간 해답을 찾았다.
‘카운트는 1-1.’
외야수와 내야수는 평소의 수비 위치보다 조금 더 뒤로 떨어져 있었다.
‘장타를 의식하고 있군.’
그리고 저 수비 위치가 바로 해답이었다.
타카시 사토가 와인드업에 들어가자 도진은 지체없이 결단을 내렸다.
공은 던져졌다.
코스는 몸쪽.
도진은 즉각 번트 자세를 취했다.
토옥.
투구가 배트에 닿는 즉시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번트 타구는 3루수와 투수 사이로 절묘하게 굴러갔다.
3루수는 뒤늦게 도진의 번트 모션을 보고 뒤늦게 뛰어 들어왔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타카시 사토 역시 번트 모션이 나오자마자 앞으로 뛰쳐나가 굴러가는 공을 포구했다.
하지만 번트는 아예 머릿속에서 지웠던지라 반응 자체가 늦었다.
타카시 사토는 결국 1루에 공을 던지지 못했다.
타자가 이미 1루에 안착해 있었으니 말이다.
“세이프! 세이프!”
관중석은 환호했다.
해설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도진 선수! 기습 번트로 내야 안타를 기록합니다!] [굉장히 영리한 선수입니다. 수비수들이 장타를 의식해 전부 뒤로 물러섰거든요? 그걸 노리는 기습 번트였어요!]-번트도 번트인데. 달리기 속도 본 사람?
-번개를 어떻게 봐!
-고등학교에서 제일 빠르다고 소문난 김민준보다 빠른데?
-와! 눈떠보니 1루에 도착해 있네!
-캘리포니아 역대 1위 달성했다는 기록좌의 말이 사실인가 봐.
-서전트 점프에 이어서 달리기 속도까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도진은 타격 장비를 1루 코치에게 건네며 목을 좌우로 풀었다.
타카시 사토를 상대로 번트를 댔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개인적인 승리보다는 팀 승리가 중요해.’
결승전에 진출하는 선수가 결국 최후의 승자니까.
번트? 계속 대라면 댈 수 있다.
그것이 팀이 승리로 가는 길이라면 말이다.
이후 도진은 상우를 스윽 쳐다보며 미소를 띠었다.
‘어때?’
상우는 도진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고는 유유히 타석으로 걸어 나갔다.
대한민국의 4번 타자는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었다.
“와라!”
* * *
타석에 들어선 상우는 타카시 사토를 도발했다.
물론 도발이라고 보기는 다소 애매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평소의 상우에게서 볼 수 없었다.
그만큼 그에게도 이번 타석은 의미가 있었다.
‘한일전이다. 절대 질 수 없다.’
무엇보다 일본과의 경기 전 도진과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몇 번이나 타카시 사토가 굉장한 선수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또한 상우에게는 질투로 다가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고등학교 생활을 미국에서 했지.’
상우는 실없는 생각을 정리하며 입꼬리를 치켜세웠다.
그런 이상우를 보며 타카시 사토의 이마에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자신을 상대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 때문이었다.
마치 그가 더 높은 곳에 섰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건방진.’
그는 심정에도 균열이 일었다.
잔잔한 호수에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도진에게 출루를 허용한 것도 모자라 다음 타자마저 자신을 무시하고 있었다.
타카시 사토는 원래 한국인이 다 저렇다며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어차피 야구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일본이 승리하려면 내가 오랫동안 마운드를 지키면 된다.’
그리고 저 타자는 자신과 도진의 레벨까지는 아니라며 곧장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초구는 칼날 같은 제구를 동반해 바깥쪽으로 향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상우는 투구가 미트에 꽂히자 순간 흠칫했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타석에서 느끼는 투수의 공이 훨씬 위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광기에 휩싸인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게 미국 레벨이구나.’
확실히 뛰어나긴 하네. 국내에서 이 정도의 투수와 붙어본 기억이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 1순위 고태준보다도 위였다.
그런데 말이야.
‘못 칠 정도는 아닌데?’
무엇보다 상우는 혼자가 아니었다.
도진이라는 주루 속도와 능력을 갖춘 주자가 1루에 있었다.
둘은 몇 번이나 눈빛을 교환했다.
‘뛸까?’
‘뛰지 마라. 시늉만 해.’
‘자신감 좋네?’
‘너만 하겠냐?’
둘은 동시에 피식 웃었다.
일본의 배터리도 둘의 눈빛 교환을 읽었다.
특히나 타카시 사토는 도진이 발까지 빠르다는 것을 몇 번이나 대표팀에 강조했었다.
그에게 흔들리는 순간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주자를 절대 2루로 보내서는 안 된다.
2아웃이라 타자에만 신경 써야 하는 카운트다.
하지만 1루에 있는 선수가 다름 아닌 도진이라 쉽지 않았다.
그가 주자로 나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투수는 흔들리고 있었다.
2구.
타카시 사토는 체인지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포수 포지션의 상우는 수 싸움에도 능했다.
그는 배터리가 주자를 신경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훤히 보이는 볼 배합에 배트를 내지 않았다.
“볼!”
상우는 배트로 스파이크를 톡톡 건드려 흙을 털어내고는 다시 타격 자세를 잡았다.
‘카운트는 1-1. 투수는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올 터.’
하지만 주자가 신경 쓰인다.
더욱이 1-1은 작전이 나오기도 좋은 카운트였다.
‘내가 포수라면?’
상우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하이 패스트볼을 요구하겠지.’
높은 패스트볼은 스윙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자가 이를 이미 알고 있다면 배트를 낼 일은 없었다.
공은 투수의 손을 떠났지만, 상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볼!”
카운트는 2-1 역전이 되었다.
이제는 투수가 정말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올 터.
상우의 입꼬리가 사정없이 치솟았다.
‘너 체인지업 던질 거잖아.’
공은 투수의 손을 떠났다.
상우는 그 즉시 배트를 휘둘렀다.
그냥 스윙도 아니었다.
투구를 완벽히 걷어 올리는 골프 스윙이었다.
이미 앞서 체인지업 궤적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따-악!
맞는 순간 상우는 배트를 하늘 높이 내던져버렸다.
그러고는 유유히 1루로 이동했다.
세레모니가 다소 부족했던 그는 오른손을 펼치더니 이마에 가져다 댔다.
햇빛을 가리고 타구가 어디까지 뻗어나가는지 보겠다는 시늉이었다.
타구는 쭉쭉 뻗어나가 담장을 넘겼다.
어느덧 3루 베이스를 통과해 홈을 밟은 상우는 가슴팍에 존재하는 태극기를 쥐고 흔들었다.
“내가 조선의 4번 타자다!”
1회 말. 스코어는 2:2.
점수는 균형을 이루었다.
그 이후로 몸이 풀린 투수들은 점수를 쉽사리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승부처가 될 수 있는 6회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