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77)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77화(77/400)
대한민국은 5회까지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고태준이 꾸역꾸역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일본 타자들의 타격은 너무나도 강했다.
그들은 매 이닝 출루하며 투수의 진땀을 쏙 빼놨다.
출루를 허용해도 실점이 없다는 걸 긍정적으로 본다면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태준 본인의 힘이 아닌 도진의 호수비 덕분이었다.
그는 어려운 타구들을 전부 뒤로 흐르지 못하게 막는 것도 모자라 매번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빠졌다고 생각한 타구가 그의 글러브에 꽂혔다.
주자의 발이 빨라, 내야 안타가 될 법한 타구도 강한 어깨로 아웃을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고태준은 일본을 상대로 5이닝 2실점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준수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태준은 몰래 어금니를 갈았다.
물론 온전한 분노는 아니었다.
‘놈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4실점 이상을 내주며 강판당했겠지.
6회 초.
고태준은 이미 투구 수가 80개까지 올라갔다.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었다.
무실점으로 막아내야 결승에 가까워질 수 있겠지만 쉽지는 않았다.
8번부터 시작하는 일본의 타선.
9번까지는 완벽히 틀어막아 기분 좋게 2아웃을 올렸다.
하지만 이미 구속은 140km대 중후반대로 떨어졌고 투구에도 힘이 실리지 않았다.
1번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2번 타자는 2루타를 기록해 2사 2, 3루.
위기를 맞이한 그때.
최철순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태준아. 어떻게 할래.”
“불펜에 누구 있습니까.”
“홍지현 등판시킬 생각이다.”
“제가 조금만 더 해보겠습니다.”
태준은 홍지현이 훌륭한 투수라고 생각했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그를 등판시키는 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일본의 타자들이 너무 강하다.
자신도 쩔쩔매는데 지현이라면 점수를 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부 자신이 내보낸 주자들이다.
그가 점수를 헌납한다면 패전투수가 되는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하지만 마운드를 지킨 고태준은 곧이어 3번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었다.
3-2 풀카운트에서 상우가 요구한 바깥쪽 패스트볼의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밖으로 완전히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6회 초. 2사 만루.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고태준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젠장……’
하필 2아웃 만루에서 제일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타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더그아웃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최철순은 고태준을 내릴 생각으로 다시 한번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두 번째 마운드 방문인 만큼 교체는 필수였다.
툭.
최철순은 태준의 어깨를 도닥였다.
“고생했다. 다음은 지현이에게 맡겨라.”
하지만 고태준은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단 한 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이 내려가고 어떤 투수가 올라와도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불펜에서 몸을 푸는 선수 중 타카시 사토를 이길 선수는 없었다.
하지만 태준의 뒤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닿았다.
“감독님. 제가 마운드에 오르겠습니다.”
도진이었다.
그의 발언에 한국 선수들 전원의 동공이 팽창했다.
최철순은 선수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불펜에서 몸도 풀지 못했는데 등판하겠다고?”
“상관없습니다. 이미 어깨는 꽤 풀렸습니다.”
도진은 유격수 수비를 보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1루 송구도 몇 번은 했다.
불펜에서 몸을 푼 것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던질 수 있었다.
최철순도 고민하지 않았다.
8번부터 시작하는 일본의 타선이라 고태준이 잘 막아줄 줄 알았다.
그리고 이번 이닝이 끝나면 도진을 지명타자로 옮긴 후 불펜에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도 모자라 지금 크나큰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일본 최고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악재까지 겹쳤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회생 불가. 숨통이 끊길 것이다.
최철순도 희망은 도진뿐이란 것을 알았다.
“태준아. 공 다오.”
최철순은 고태준에게 손을 뻗었다.
지금까지 미동조차 하지 않던 태준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감독에게 공을 건넸다.
바닥에 굳건히 고정돼있던 그의 발도 덩달아 떨어졌다.
그 역시도 지금 당장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건 오로지 도진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자신이 조금 더 잘 던졌더라면…….
더 신중했다면 이런 위기에 봉착하지 않았을 텐데.
태준은 그러한 마음가짐 때문에 고개를 떨군 채 마운드를 벗어났고.
동시에 장내 아나운서는 도진의 등판을 알렸다.
* * *
[한국. 선수교체입니다.] [투수가 고태준 선수에서 김도진 선수로 바뀝니다.]-나왔다! 김도진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운드에 등판하지 않아서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그런데 괜찮을까? 2사 만루에 타자는 일본의 미친놈이잖아!
-유격수를 보다가 바로 등판한다고? 말이 됨? 몸은 안 풀어?
-인정. 다른 선수 올리는 게 낫지 않나?
-지금 국대에 저 4번 타자 상대할만한 투수가 있어?
-홍지현 준비 중이던데. 못 막을 듯.
-그래도 몸도 풀리지 않은 선수를 올리는 건 아니지!
-도진이 미국에서 뛰던 저번 시즌에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어. 그때 타카시 사토한테 3타점을 헌납했지.
-대한민국의 역대급 유망주도 결국 일본의 유망주한테는 안되는 건가?
채팅창의 반응과는 다르게 상우는 기대를 안고 등판한 도진과 마운드 위에서 여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위기의 상황에서 등판이라. 슈퍼 히어로냐? 미국물 먹더니 영웅이라도 된 모양이지?”
도진은 피식 웃었다.
“영웅일지 역적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
“그것도 그래. 이걸 넘어서야지만 영웅이 될 수 있겠지. 일단 연습구는 다 던져라.”
“그럴 생각이야.”
“볼 배합은?”
“믿는다.”
“하. 이놈 보소. 예전이나 지금이나 책임 전가는 똑같네. 맞으면 네 탓. 막으면 내 덕이다.”
도진은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은 상우에게서 늘 듣던 말이지만, 미국에서는 마이크에게서도 들어봤다.
그리고 다시 상우에게서 들려오자 감회가 새로웠다.
그 말을 끝으로 상우는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도진도 로진백을 주무르며 오른쪽 어깨를 빙빙 돌렸다.
5개의 연습 투구는 끝이 나자 타카시 사토는 곧장 타석에 들어섰다.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선수였음에도 이번만큼은 솟아오른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2사 만루.
사방이 막혀버려 도망칠 곳이 존재하지 않는 한판 대결.
승리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예전에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이겼으니 말이다.
한편 도진도 위풍당당한 타자의 표정에도 광대가 씰룩댔다.
‘자신감 봐라.’
2아웃 만루다.
아웃 카운트 하나면 자신이 이긴다.
그런데도 타자는 여유로웠다.
저 자신감의 원천은 실력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나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그리고 이번만큼은 기필코 자신이 이길 것이다.
타카시 사토는 성장했다.
‘하지만 내가 너보다 더 성장했거든.’
그리고 이 대결에서 증명하겠다며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마침내 사인이 나왔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구.
2아웃 만루에서도 도진의 와인드업에는 일말의 지체도 찾아볼 수 없었다.
타카시 사토의 눈이 희번덕였다.
위기에서도 고민 없이 와인드업하는 자신감 때문에도 그랬지만, 정확히는 그의 투구폼 때문이었다.
뒤로 확 젖혀져야 할 상체. 올드스쿨 매커니즘은 온데간데없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이어 나갈 여유가 없었다.
도진이 던진 투구는 좌타석에 선 자신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움찔.
타카시 사토는 순간 공을 피하려고 몸을 틀었다.
하지만 여기서 몸에 맞는 공이 나오면 그대로 한 점을 올릴 수 있다.
그의 머릿속은 오만 생각으로 헤집어졌다.
피해야 할까?
아니면 맞아서 공짜로 1점을 올려야 하나?
몸은 피하라고 일렀다.
더욱이 100마일 가까운 구속이 몸에 닿는다면 결승전에 출전 못 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 짧은 찰나에 타카시 사토는 몸을 휙 틀었다.
강제로 몸이 뒤틀려 하체에 힘이 풀려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머지않아 타카시 사토의 동공이 팽창했다.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턱도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날아오던 공이 크게 휘더니 미트에 정확히 꽂혔기 때문이다.
“스, 스트라이크!”
심판의 콜에 묻힌 타카시 사토의 읊조림은 이랬다.
“투심…… 이라고?”
타카시 사토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구종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도진이 갈고 닦은 신무기가 세상에 처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카운트는 고작 0-1.
아직 아웃 카운트를 올리려면 2개의 스트라이크가 더 필요했다.
투수로서는 여전히 2개의 산을 넘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도진에게는 그저 평평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것과도 같다며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2구.
상우의 사인은 이번에도 투심.
도진은 지체없이 와인드업했다.
이미 한번 속은 경험을 바탕으로 타카시 사토는 타석에 우뚝 서서 배트를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그의 배트는 애먼 허공만 가를 뿐.
도진이 던진 공의 구질이 너무나도 지저분했기 때문이다.
좌타자인 타카시 사토의 기준으로 바깥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것으로 부족하다며 살짝 가라앉았으니까.
“스트라이크!”
카운트는 0-2.
투수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카운트.
하지만 아직 2사 만루라는 위기는 변함없었다.
자칫 실수 한 번이면 최대 4점까지 벌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마운드 위에선 도진에게는 미세한 떨림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 96마일의 투심이 바로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3구를 앞둔 타카시 사토는 머리가 멍해졌다.
2구는 노리고 스윙했지만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이번에도 지체하지 않았다.
한껏 올라간 입꼬리는 승리라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
칠 수 있으면 쳐보라며 손을 떠난 도진의 공은 앞선 2개의 공과는 달랐다.
한복판 패스트볼.
타자가 제일 치기 쉬운 공.
하지만 타자의 배트는 이번에도 허공을 크게 갈랐다.
퍼억.
횡으로 꺾이지 않고 솟아오르는 포심패스트볼은 미트에 진작 꽂혀 있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전광판은 도진의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을 99마일.
무려 159km라고 알렸다.
“스트라이크 아웃!”
타카시 사토는 턱이 벌어진 채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했다.
반면 도진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두 에이스의 대결.
도진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자 태산처럼 굳건하던 타카시 사토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사, 삼진! 대한민국! 2아웃 만루의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저, 정말 훌륭한 퍼포먼스였습니다. 김도진 선수가 일본의 자랑을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솔직히 보는 입장에서 손에 땀이 홍수가 날 만큼 긴장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가볍게 위기를 벗어납니다.]-미쳤다!!!
-와!!! 이게 대한민국 최고의 재능이냐?
-일본에 꿀릴 게 없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타자가 안 쳐짐.
-한국 야구 미래 겁나 밝다.
-인정. 솔직히 한 명 때문에 밝다고 말하기는 뭐한데. 적어도 쟤는 떡잎부터가 다르다.
-2아웃 만루? 그게 뭔데요? 아웃 카운트 하나만 올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제발! 제발! 설레발 좀 치지 좀 마! 아직 경기 안 끝났어.
6회 말.
1번부터 시작하는 대한민국의 공격.
타카시 사토는 1번과 2번을 완벽히 막아냈다.
[정말 어마어마한 투수입니다.] [그렇습니다. 흔들릴 법도 한 상황에서도 무결점의 투구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이게 일본의 에이스냐.
-거기에 미국물까지 먹어서 그런가? 인간이 아닌 것 같아.
-표정 봐라. 균열도 없다.
-분위기 넘어왔을 때 한방 갈겨야 하는데.
해설이나 채팅창의 말마따나 다카시 사토는 여전히 위력적인 투구를 펼쳤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그의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는 것을.
[김도진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