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8)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8화(8/400)
무사 만루.
타석에는 4번 타자.
도진은 이 위기의 상황에서도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SC의 4번 타자는 미간을 잔뜩 구겼다.
‘뭘 쪼개고 있어?’
연속 볼넷으로 위기를 자초하더니 이제는 웃기까지 한다?
애당초 미국에서 아시아인이 마운드에 선다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은 상황인데.
야구를 대하는 자세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개한 자식. 홈런을 날려주마.’
물론 생각만 그랬을 뿐.
애당초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에게는 스윙하는 것조차 아까웠다.
하지만 초구가 포수 미트에 정확히 꽂히자 타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야?’
예상치 못한 강속구. 공이 보이지도 않았다.
타자는 미간을 구긴 채 이를 악물었다.
‘잘못 본 거겠지? 내가 볼이라고 생각해서 집중을 안 한 거잖아.’
타자는 이번만큼은 방심하지 않겠다며 배트를 움켜쥐었다.
2구.
퍼억.
“스트라이크!”
타자는 눈을 끔뻑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타석에 임했음에도 투수의 공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제, 젠장.’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저 아시아인의 재능은 최소 캘리포니아 내에서도 최상위권이다.
타자의 전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지만 금세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작년 시즌 리그에서도 홈런왕을 차지했을 정도의 강타자.
‘제구는 잡혔나 보네. 대신 한복판에밖에 못 던지나 봐?’
타자는 배트를 더욱 움켜쥐었다.
대충 공이 날아오는 타이밍은 눈에 익었다.
‘이번에도 한복판으로 날아오면 무조건 홈런을 날려버리겠다.’
한편 도진은 후련한 표정과는 다르게 금세 미간을 구겼다.
‘아니. 왜 정 가운데로 던지는데 못 치는 거야?’
마이크의 말을 떠올렸다.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는 홈런왕도 거머쥘 정도로 나름 이름있는 타자라고 했다.
‘아니. 이걸 쳐줘야 내 구위를 가늠해보지.’
꽤 이름난 타자를 상대로 자신의 구위를 가늠해보고자 2구 연속 한가운데로만 던졌다.
투수가 평생 삼진만 잡을 수는 없었기에 맞춰 잡는 방향도 점검해보기 위함이었다.
‘이번에는 치겠지.’
도진은 또다시 와인드업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미 앞선 두 번의 공으로 배트에 맞추겠지?’
공은 도진의 손을 떠났고.
타자의 배트도 어김없이 나왔다.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
도진은 말라버린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이게 도대체 뭐냐?’
비록 SC가 산타모니카처럼 뛰어난 야구 명문은 아닐지라도 같은 공을 3번이나 연속으로 던졌다.
그런데 저걸 못 친다고?
도진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사실 지금의 도진은 방금 전의 도진과 완전히 다른 상태였다.
아무 생각 없이 폭투를 던지던 도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그동안 본인도 모르게 억제하고 있던 실력이 조금씩 고개를 들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한 도진은 그저 상대가 잘하지 못해서라고 판단했다.
‘하긴. 4번은 타격 매커니즘이 좋지 못하다고 했지? 진짜로 그러네. 하긴, 힘으로 승부하는 타자들이 저렇지 뭐. 다음 타자와 다시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도진은 침착했지만, 아직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곧장 클린업트리오의 한 축을 담당하는 5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저 선수를 상대로 구위를 가늠해보면…….
“스트라이크 아웃!”
뭐지?
이번에도 도진은 3번 연속 한복판 패스트볼을 던졌다.
하지만 타자는 3번의 스윙을 가져갔음에도 자신의 공을 건들지도 못했다.
이에 도진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비록 야구 명문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는 나름 베스트 멤버다.
그런데 6개의 공에 6번 헛스윙이라니.
‘내가 미국 고등학교 야구의 수준을 너무 높게 잡았던 건가?’
그리고 도진이 느끼는 게 마치 사실인 것마냥.
“스트라이크 아웃!”
다음 타자도 역시나 삼진.
도진은 아직도 자신의 투구가 좋아진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미국 고등학교 야구부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 * *
“스트라이크 아웃!”
9타자 연속 삼진.
3회도 깔끔하게 마무리한 도진은 마운드에서 내려와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와! 진짜 미쳤나 봐!”
“9타자 연속 삼진이라니. 그것도 SC 1군을 상대로!”
도진은 그들의 칭찬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9타자 연속 삼진.
아직 시즌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선수들의 몸 상태는 완전치 않다.
‘그렇기에 예상치 못한 패스트볼 구속에 헛스윙이 나온 거겠지.’
그러니 지금 동료들의 칭찬은 과한 립서비스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도진은 미소를 띠었다.
감독은 그런 도진에게 손짓했다.
“킴. 잠깐 나 좀 보지.”
“부르셨습니까.”
“그래. 오늘은 약속대로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하지.”
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이면 충분하다.
캘리포니아 리그 내에서도 중위권 팀쯤 되는 타자들에게 자신의 공이 통한다.
그렇기에 적어도 자신은 한국에서 주목받던 유망주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SC는 어디까지나 고작 중위권이며, 상위권에서 뛰고 있는 메이저리거가 될 괴물들을 만나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 당장은 내 공이 리그에서 통한다는 게 중요하니까.’
자신의 재능에 대한 조금의 믿음.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 * *
연습 경기는 도진이 속한 FS 고등학교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모두가 승리를 만끽하며 환호를 지르는 사이, 도진은 부모님과 함께 감독을 따라 조용히 교장실로 향했다.
아직 확실히 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쪽입니다.”
감독은 도진과 그의 부모님을 모시고 교장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교장실 안에 들어섰을 땐 교장은 도진의 부모님을 국빈처럼 대우했다.
“이쪽으로 앉으시길 바랍니다.”
교장은 차를 한 잔씩 내어주며 착석하더니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가 도진 학생의 부모님을 학교에 초청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교장의 말에 부모님은 입을 꾹 다무셨다.
미국에 온 지 벌써 1년 반이 되었다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으셨다.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언어를 따로 배울 수는 없었기에 기본적인 단어들을 제외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하셨다.
“도진 학생이 통역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부모님이 오늘 연습 경기를 응원해줬다곤 하지만, 그게 곧 자신의 야구부에 들어가는 걸 허락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걸 확인할 차례.
최종관문만을 앞둔 지금 온전히 학교에 기댈 수는 없었다.
교장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도진 학생은 야구에 재능이 있습니다. 학교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사 그에게 야구부 제안을 했습니다.”
“부모님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오늘 그는 다른 학교 선수들을 압도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야구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진은 눈을 질끈 감고는 교장의 말을 통역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알아들었다며 살포시 고개를 끄덕이자 교장은 말을 이었다.
“도진 학생은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허락해주신다면 그를 야구부로 정식 스카웃 하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선뜻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도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교장도 이를 눈치챘지만,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저도 한국의 문화를 좀 알아보기는 했습니다만……”
교장은 눈을 질끈 감더니 이내 부릅떴다.
“솔직히 지금 두 분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보호자의 역할입니다.”
교장은 최대한 돌려 말했다.
아이들의 인생은 아이들의 것.
아이들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권한은 없다고.
미국은 한국과 다르다.
비록 한국인에게는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소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내뱉는다.
‘젠장.’
도진도 아들 된 도리로서 저 말들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통역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야구를 할 수 있는 수단은 이것뿐이었다.
적어도.
최소한 학교만큼은 자신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도진의 부모님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도진은 부모님이 아직도 고민 중이기에 대답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잠시 교장실이 침묵에 빠졌다.
도진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도진의 아버지의 뜻은 달랐다.
도진의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제 뜻을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직접 자신의 입으로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어가 부족했던 탓에 쉽게 말이 트이지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진의 아버지는 미국에 온 뒤, 빠르게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렇기에 낮에는 누나 밑에서, 밤에는 한인타운에서 일을 하곤 했다.
미국에 있건만 영어를 접할 일도 적었고, 따로 공부할 시간도 없었다.
침묵이 5분여간 흐르자 교장은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이런. 거절인가?’
저들의 생각을 돌려야 한다.
좀 치사하지만, 도진이 야구부에 들면 얻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 말해주기로 했다.
‘돈의 힘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두 분께 직접 허락하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도진의 아버지는 낡디낡은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이, 이걸……”
처음으로 입을 연 도진의 아버지는 신문지 몇 장을 주섬주섬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교장은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한참을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도진은 단번에 그 신문지가 무엇인지 알아봤다.
곧 도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그의 시야를 가렸다.
이러한 도진의 반응에 교장과 감독은 고개를 잠깐 갸웃하더니, 신문지들을 하나씩 펼치기 시작했다.
전부 한국 신문이라 제목조차 읽을 수 없었지만.
신문지 속 사진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건. 전부 도진 학생의 기사입니까?”
감독의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문은 한 개가 아니었다.
10개가 넘는 신문지를 세세하게 살펴보는 교장과 감독은 벌어지는 턱을 통제하지 못했다.
학생이 신문에 나올 정도의 활약을 펼쳤다.
한글을 읽을 수 없을지라도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대답이기도 했다.
“저는 부족한 아빠입니다. 아들의 재능을 앗아간 정말 나쁜 아빠죠.”
더듬거리는 영어로 운을 뗀 도진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어눌한 영어로, 때로는 도진에게 단어를 물어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도 야구를 시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생활이 나아지지 않더군요. 사실 미국으로 이민 온 것도 도진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곳의 야구 인프라는 어디보다 뛰어났으니까요.”
하지만 미국에서 스포츠를 하기 위해선 돈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는 현실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생활은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악화했다.
도진이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저는…… 미국에 온 순간부터 단 하루도 편히 발을 뻗은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서든 아들이 야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에 이미 밤낮으로 일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부업까지 찾아봤다.
“하지만 결국 아들에게 야구를 다시 하게 해주는 건 무리였습니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도진은 단 한마디도 뻥긋하지 못했다.
목이 메었던지라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도진이를 잘 부탁합니다. 제가 이렇게 부탁하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장과 감독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교장과 감독도 그런 부모님의 손을 맞잡았다.
“아니요. 저희야말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목이 메일만큼의 숨 막혔던 공기는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제야 교장도 도진이 얻을 수 있는 조건을 마음 편히 얘기할 수 있었다.
“도진 학생이 야구부에 입단하면 학비부터 전액 면제가 될 겁니다. 그리고 최고의 용품들로 그를 지원할 생각이니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도진도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들의 손을 잡았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