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8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84화(84/400)
타석에 들어선 알렉산더의 턱이 바쁘게 움직였다.
껌 씹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건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희열을 느꼈을 때.
다른 의미는 당황해서였다.
지금의 알렉산더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감정선을 자극했다.
‘역시. 대단하구나.’
알렉산더는 도진을 1년 내내 지켜 봐왔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알고 있었다.
천재.
그렇다. 그는 천재였다.
하지만 하늘에서 그에게만 재능만 내려준 것은 아니었다.
도진보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는 미국에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도진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특별한 하나를 더 갖추었다.
바로 노력이었다.
‘너는 단 한 번도 안주한 적이 없지.’
끝없이 발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릴 상대로도 기가 죽지 않는 거고.’
알렉산더 역시 도진의 목표를 알고 있었다.
미국 최고가 되겠다는 것. 자신과 똑같았다.
이것과는 별개로 그가 처음 FS 야구부에 입단했을 때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미국 최고가 되겠다는 그의 목표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앞길을 U-18 미국 대표팀이 막아서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쉽게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알렉산더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도진은 와인드업했다.
자신을 상대로도 망설임이 없자 껌을 씹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려 틱틱거리는 속도가 뇌를 지배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역시도 무아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쳐내겠다.
처음 제대로 맞붙는 타석에서 도진을 눌러버리겠다는 생각만이 존재할 뿐.
하지만 초구는 예상치 못한 커브가 날아왔다.
“스트라이크!”
감정을 휘어잡을 줄 아는 알렉산더의 눈이 희번덕였다.
패스트볼이 아닌 12-6 커브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는 포수를 힐끗 쳐다봤다.
‘너구나.’
알렉산더는 그제야 이 한국인 포수가 마이크와 동급이란 것을 알았다.
타격에서는 그가 앞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리드까지 갖추고 있는지는 몰랐다.
알렉산더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도진의 성격이라면 패스트볼로 승부를 걸어왔을 터.
하지만 완벽한 컨트롤 타워가 존재하는 이상 이제는 어떤 공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2구를 앞둔 알렉산더는 침음했다.
‘커브? 포심? 투심?’
고민에 휩싸인 알렉산더의 선택은 포심 패스트볼.
예상했던 공이 날아왔다.
하지만 그는 방망이를 크게 헛돌렸다.
하이 패스트볼.
눈높이로 날아오는 투구는 예상보다 훨씬 위로 향했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0-2.
한국 배터리는 신중했다.
몸쪽 꽉 찬 투심과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투심으로 알렉산더의 눈을 현혹했다.
볼 카운트 2개를 날렸지만, 그들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2-2.
중요한 카운트에서 도진은 심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알렉산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최고의 동료이자 라이벌.
하지만 오늘만큼은 넘어서야만 하는 존재.
도진은 곧장 와인드업했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포수 미트로 향했다.
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하지만 그의 타이밍은 조금 느렸다.
12-6 커브가 아닌 파워 커브.
속도가 더 붙었기 때문이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알렉산더는 헛스윙 후 배트를 한 바퀴 돌려 거꾸로 잡았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린 채 멍하니 도진을 쳐다봤다.
도진은 알렉산더의 눈빛을 읽었다.
오늘만큼은 네가 이겼다고.
하지만 기뻐하지 않았다.
아직 이닝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대는 자신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한 놀란 카브레라.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 * *
미국 해설의 목소리는 다소 격양되어 있었다.
[삼진! 또 삼진입니다!] [한국의 도진 킴! 미국 타선을 상대로 8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합니다.]-이게 맞냐?
-조작 아니냐고!
-8타자 연속 삼진이라니. 내가 지금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황금세대잖아. 지구 최고의 타선이잖아!
-호들갑 떨지 마. 아직 리드 중이야. 그리고 놀란의 타석이지.
-놀란은 하나 해줄 거다. 믿어라.
그 가운데 놀란은 타석에 들어섰다.
여전히 발걸음부터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터질 것 같이 뛰어대는 이 감정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1학년 때부터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결승에 진출했을 때도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덤덤했다.
그런데도 놀란은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경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경외.
그것을 마운드에 선 저 한국인 투수에게서 느끼고 있었다.
‘경기 중에 성장했다고?’
놀란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첫 타석에서는 도진에게 이런 위압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외 한 단어만으로는 이 감정을 수식하기엔 부족했다.
‘이것 말고 뭔가 더 있다.’
놀란은 배트를 움켜쥔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이 미세한 진동은 전신에 전달됐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지만 그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불안 혹은 두려움.
메이저리그에 도달하기 전 최고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놀란은 금세 큭큭대며 웃었다.
자신은 최고의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었다.
메이저리그에 도착 후라면 모를까.
‘적어도 아마추어 때까지는 이 자리를 굳건하게 유지할 줄 알았는데.’
타카시 사토 역시 훌륭한 라이벌이었지만, 그에게서는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않았다.
하지만 마운드에 선 저 투수는 달랐다.
그는 지금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게 네 본모습인가 보군.’
그러니 제대로 붙어보자.
놀란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도진은 그와 마주한 순간부터 정신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어떤 공을 던졌는지.
어떻게 타자들을 요리했는지 거짓말처럼 제대로 된 기억이 없었다.
도진은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확인했다.
‘6회 말. 2아웃.’
미국을 가리키는 안타와 볼넷의 개수는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손끝의 감각은 지금의 상황이 거짓이 아니라며 대변해주고 있었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자신도 인간이다.
미국과의 대결을 앞두고 불안 요소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불안감 때문에 이따금 파르르 떨며 잠도 설쳤다.
지구 최강의 팀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건 아닐까?
‘잘하고 있구나.’
결과가 그렇다고 일러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는 무섭지 않았다.
물론 승부는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른다.
그만큼 상대는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넘지 못할 산은 아니야.’
도진은 상우의 사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저을 필요 없이 던지고 싶었던 공이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와인드업했다.
힘차게 올린 왼 다리가 바닥을 찍었다.
공이 손가락 끝에 채이더니 굉음을 내지르며 포수의 미트로 향했다.
동시에 놀란의 배트가 나왔다.
탈 고교급 배트 스피드로 도진의 포심 패스트볼을 그대로 되받아쳤다.
따-악!
놀란은 타구를 쫓았다.
타구는 쭉쭉 뻗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도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어느덧 중견수는 펜스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놀란은 서서히 힘을 잃고 떨어지는 타구에 여전히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타구가 전광판 앞에서 떨어지는 순간 숫자 99가 보였다.
그 때문에 놀란은 아직 타구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타석을 벗어나 더그아웃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터억.
중견수 플라이.
6회 말.
도진은 미국의 2번부터 4번을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마무리했다.
* * *
양측 선수들은 과열된 분위기에 힘입어 방망이가 힘차게 돌아갔다.
하지만 안타 수에 비례해 점수는 나지 않았다.
미국은 위기 때마다 불펜을 올렸고, 도진 역시 출루를 허용했음에도 완벽히 틀어막았다.
8회 초.
9번부터 시작하는 한국의 타선.
미국은 아웃 카운트를 올리며 기분 좋게 이닝을 시작했지만, 대한민국도 잠자코 있지 않았다.
1번 타자 김민준은 우전 안타를 기록했다.
1아웃 주자 1루.
한국의 작전은 희생번트였다.
토옥.
안전하게 번트를 댄 2번 타자는 주자를 2루로 보냈다.
2아웃 2루.
도진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러자 미국도 다급히 산타모니카 소속 마무리 투수 조세프를 올렸다.
도진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상우의 목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김도진.”
“왜.”
“마지막 이닝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역전 못 하면 끝이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지금은 8회다.
9회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남은 1이닝에서 1점의 리드를 좁히지 못한다면?
‘이대로 경기는 굳어진다.’
단기 토너먼트같이 뒤가 없는 대회에서는 앞서나가는 쪽이 우위에 있었다.
경험이 적은 선수들에게는 뒤처지는 측이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직 1이닝이라는 여유를 앞둔 지금이 역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최선을 다해볼게.”
도진은 다소 모호한 말을 남기고 타석으로 이동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충분히 역전할 수 있어.’
타석에 들어선 도진은 곧장 타격 자세를 잡았다.
‘절대 나에게 좋은 공을 주지 않을 거야.’
미국도 자신들처럼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에 볼넷으로 거르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좋은 공을 줄 리가 없다.
도진은 마이크를 힐끗 쳐다봤다.
마이크는 도진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리드. 무조건 지킨다.’
너에게 또 당할 수 없다.
이번 이닝만 지키면 자신들의 승리였다.
초구.
마이크는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일단은 볼 한 개를 빼서 타자의 반응을 볼 생각이었다.
운이 좋다면 헛스윙을 유도할 수도 있었다.
‘너라면. 동점 타점을 올리고 싶겠지.’
그리고 그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투수가 세트포지션으로 공을 던졌다.
도진은 그 즉시 오른손을 배트 손잡이에서 떼어 번트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다소 멀어 보이는 공에도 번트를 갖다 대자 마이크의 눈이 번뜩였다.
‘세이프티 번트라고?’
8회 2아웃이다.
도진의 행동은 마이크의 예상을 벗어났다.
아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번트는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황은 마이크의 발목을 비틀었다.
그 바람에 반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는 뒤늦게 공을 쫓아 포구 후 1루에 뿌려봤지만.
결과를 맞이한 그는 허탈감이 섞인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이프! 세이프!”
8회 2사.
주자는 1, 3루.
도진은 1루에 안착 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승부의 끝은 상우 네게 달려있다.’
물론 그에게 짐을 떠넘기려는 것은 아니었다.
야구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다고 이길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주자로 나가야 배터리가 흔들린다.’
이제는 단타 하나면 주자가 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자신이 주자로 나간 순간.
미국은 2루타 하나로도 역전까지도 생각해야 했다.
‘상황은 뒤바뀌었어. 분위기는 우리한테 넘어왔다.’
대신 이 분위기를 살리지 못한다면 뒤는 없었다.
도진은 상우가 타석에 들어서자 입 모양을 뻐끔거렸다.
그의 입 모양은 이랬다.
약속의 8회.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
한때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문장이었다.
상우는 입꼬리를 힘껏 올리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었다.
“와라!”
도진은 상우의 도발에 입꼬리를 올렸다.
‘잘했다.’
덕분에 미국 투수의 미세한 떨림이 포착됐다.
긴장되겠지.
‘이 상황은 메이저리거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거든.’
위축된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은 바깥쪽을 향했다.
하지만 상우의 스윙에는 거침이 없었다.
따-악!
의도적으로 밀어친 타구는 1루수 키를 훌쩍 넘었다.
공은 라인 안쪽으로 들어와 페어 볼이 되었다.
그리고 우익수 방면으로 계속해서 굴러갔다.
최소 동점을 만들 수 있는 타구.
3루 주가 홈을 밟아 스코어는 4:4.
하지만 도진은 동점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대로 경기가 길어지면 우리가 진다.’
연장전으로 가게 된다면 뎁스가 탄탄한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도진이 2루를 돌아 3루를 향해 내달리자 3루 코치는 양팔로 X를 그리며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더욱이 그는 도진이 진로까지 방해하겠다는 위치에 서 있었다.
하지만 도진은 코치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비키세요!”
도진의 외침에 3루 코치는 결국 진로에서 벗어나겠다며 옆으로 몸을 던졌다.
이제는 어떠한 장애물도 없다.
3루를 밟는 순간 속도를 덧붙여 곧장 홈으로 내달렸다.
미국의 중계 플레이는 어느덧 우익수에서 2루수에게 향했고.
2루수는 공을 잡자마자 포수에게 던졌다.
공을 잡은 마이크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몸을 날리는 도진을 향해 공이 담긴 미트를 뻗었다.
하지만 도진은 이미 마이크의 행동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는 기술적으로 마이크에게서 최대한 멀어진 채로 머리부터 슬라이딩을 들어갔다.
결국 마이크의 미트는 도진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고.
도진의 왼쪽 중지는 홈 베이스를 살짝 긁었다.
그 과정에서 모래바람이 폭풍처럼 휘날렸다.
관중들, 더그아웃의 일원들 그리고 그라운드 내 나가 있는 모든 인원이 심판을 쳐다봤다.
모든 부담을 떠안은 심판은 X자로 모은 양팔을 활짝 펼쳤다.
“세이프! 세이프!”
8회 초. 스코어는 5:4.
대한민국이 역전했다.
그리고 이 득점은 결승 득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