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88)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88화(88/400)
RS전 원정 경기 당일.
도진은 선발투수와 주장으로서의 데뷔전이었다.
그는 솔선수범한 모습을 보이겠다며 첫 번째로 버스에 탑승해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버스에 탑승한 마이크는 도진 옆에 앉은 불청객에 미간을 와락 구겼다.
“비켜라. 거기 내 자리다.”
도진 옆자리의 주인공 제니퍼는 혀를 삐쭉 내밀었다.
“이젠 내 자리.”
“배터리는 한 몸인 거 몰라?”
“응! 주장이랑 스튜던트 매니저도 한 몸이야.”
제니퍼는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도진의 옆자리에 앉지는 않았다.
그녀는 앞선 두 경기에서 선수들의 타석과 마운드에서의 활약을 직접 기록한 장본인.
따라서 U-18 때문에 잠깐 팀을 떠난 도진에게 그간의 일을 브리핑해주기 위함이었다.
도진은 이제 주장으로서 선수들까지 전부 파악하고 신경 써야 하는 위치였으니까.
마이크는 한숨을 내쉬더니 빈자리를 찾았다.
음흉한 미소를 띠던 제니퍼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웃음을 쳤다.
“그럼 시작할까요?”
그녀는 백팩에서 파일 하나를 꺼냈다.
“부탁할게.”
“이번에 1군에 합류한 선수들로 브리핑할게요. 캘리포니아 타자 부문 MVP 출신 크리스가 제일 앞장에 있네요.”
그녀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크리스는 이번 두 번의 경기에서 2번 타자로 출전해 8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했어요. 중견수 수비에서는 안정적인 수비를 선보이더라고요.”
“좌타자였지?”
“네. FS에 부족한 좌타자를 책임져 줄 수 있게 됐어요. 물론 단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어요. 중학교 때는 치면 장타였지만, 지금까지는 1개의 홈런만 장타였어요.”
도진은 있을 법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레벨이 또 다르니까. 그래도 홈런을 친 것 자체만으로도 잘했네.”
“킴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그리고 훈련도 열심히 참여하더라고요! 고등학교는 타구의 질이 다르다며 2주 만에 6파운드나(3kg) 감량했어요. 더 안정적인 중견수 수비를 위해서래요.”
제니퍼는 브리핑을 이어 나갔다.
“다음은 캘리포니아 투수 MVP 출신 자말이에요. 앞선 두 경기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채택됐어요. 감독님 말씀으로는 리그 내내 마무리 투수 경험을 쌓게 할 거라고 하시네요.”
FS는 도진과 디에고라는 훌륭한 선발진을 갖추게 되었다.
문제가 불펜이었는데 새로운 선수들이 그 자리를 메워야 했다.
그리고 자말은 마무리투수로 등판하긴 했지만, 전 시즌 자신이 맡았던 전천후 불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였다.
“점수가 크게 앞선 상황에서 등판한 거라 부담 없이 던졌겠지만, 2이닝 간 2탈삼진에 무실점이었어요.”
도진은 만족스럽다며 미소를 띠었다.
“확실히 MVP 출신들이 다르긴 하네. 고등학교 리그는 처음일 텐데 긴장 안 하고 다들 잘해주다니.”
제니퍼는 도진의 미소를 확인하더니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가 진짜입니다. 디에고부터 갈게요.”
“나도 기대되네.”
“산타모니카전에서 등판한 디에고는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어요. 스위치 투수라니! 신기하더라고요.”
“신입생 테스트 때 한 번 봤는데 확실히 신기하긴 하더라.”
“생소해서 그런가? 아무리 홈 경기이며 데이브 오빠가 빠진 산타모니카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더라고요.”
데이브는 알렉산더 그리고 마이크와 중학교 동기.
도진은 제니퍼가 데이브와도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친근한 표현을 썼던 것이었다.
‘주장이자 핵심이 없는 산타모니카지만, 그래도 산타모니카는 산타모니카다.’
디에고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팀을 상대로도 멋진 활약을 펼쳤다.
‘과연 메이저리거의 아들.’
도진은 메이저리거의 피가 흐르는 유망주들의 위세를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2경기 연속 상대를 박살 내버린 페르난도에요. 8타수 8안타 3홈런 6타점. 스위치 히터고요. 양 타석 모두 완벽했어요.”
제니퍼는 미간을 살포시 구겼다.
도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그런데 너무 신을 내는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세레모니도 과하고요. 물론 페르난도는 뉴욕에서부터 그랬다고 해요.”
“그럼 딱히 상관없지 않을까?”
“그래도 혹시 저희 FS 야구부 이미지가 깎일까 걱정이에요.”
도진은 왼손으로 이마를 비볐다.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도대체 어떻길래 미국인이 걱정할 정도야?’
물론 도진도 페르난도가 통통 튄다는 것을 알았다.
도널드 감독의 입에서 산타모니카 얘기가 나오자 욕설을 섞으며 쉬운 상대라고 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자신보고는 늙은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미국은 본래 자신감이 과한 선수들을 좋아한다.
‘실력이 뒷받침되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페르난도는 실력이 뒷받침되어 있다.
도진은 알렉산더나 데이브 그리고 마이크가 중학교 때 어떤 성격을 지녔고 어떤 퍼포먼스를 펼쳤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그들을 넘어설 만한 포텐셜을 갖추고 있을 거야.’
흡사…….
도진은 최근에 만난 한 선수가 떠올랐다.
‘놀란 카브레라.’
물론 아직 페르난도가 놀란 급의 선수는 아니다.
아무리 메이저리거의 피가 흘러도 고등학교 1학년이 4학년 급의 퍼포먼스를 펼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의 아버지가 메이저리거다.
경험이 쌓이면 성장도 가속이 붙겠지.
‘그런데……. 너무 신을 낸다고?’
“과할 정도로 상대를 도발하면 통제가 필요하겠어.”
“감독님 말도 안 듣더라고요.”
“그, 그래?”
“네. 그래도 괜찮아요!”
응? 괜찮다니?
감독님 말도 안 들으면 큰 문제인데?
도진은 이어지는 제니퍼의 말에 피식 웃었다.
“제 말은 잘 듣더라고요.”
* * *
RS 구장에 도착한 선수들은 몸을 풀었다.
하지만 도진의 신경은 온통 페르난도에게 향했다.
‘딱히 아직은 과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
디에고와 함께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은 다른 이들과 똑같았다.
마이크가 물었다.
“왜. 초신성이 걱정되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내버려 둬라.”
“그래도 되려나?”
“솔직히 저런 성격은 처음 보긴 해. 알렉산더와 데이브를 합쳐 놓은 것도 모자라 더 통통 튄다고나 할까?”
“그래서 걱정이지.”
“하긴. 대체로 저런 부류가 벽을 느꼈을 때 겸손해지기 마련. 그런데 쟤는 꺾일 일이 있을까 모르겠네. 이미 완성형 타자니까.”
“그건 인정.”
“그래도 우리 야구부에도 저런 활기찬 선수가 필요하긴 해. 죄다 진지만 빨잖아?”
마이크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도진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도진은 혀를 날름거리며 멋쩍어했다.
‘나랑 알렉산더가 좀 그런 과긴 하지.’
도진은 주제를 돌렸다.
“RS 원정은 오랜만이네. 윌이 누구한테 가려나?”
윌. RS의 4번 타자.
그는 저번 시즌에 도진에게 트래쉬 토크를 내뱉은 장본인이었다.
인종차별도 스스럼없이 내뱉는 그 주인공이 오늘은 누구를 먹잇감으로 선택했을지.
“누구겠냐. 어차피 너와 알렉산더는 너무 컸어. 나도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을 경험했고. 더는 우리를 깔 수 없어.”
윌은 강자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신입생 중 한 명에게 가겠네?”
“그렇겠지. 그리고 신입생 중에서도 제일 잘하는 애한테 가겠지.”
둘의 시선은 페르난도에게 향했다.
그는 여전히 해맑은 표정이었다.
‘충격 좀 받겠는데?’
도진은 윌의 칭챙총이란 인종차별 발언에도 전혀 타격이 없었지만, 그건 도진이라 그랬던 것뿐.
윌의 트래쉬 토크는 악명 높기로 유명했다.
과연 이제 갓 고등학교에 올라온 새내기가 윌의 트래쉬 토크를 제대로 버틸 수나 있을까?
‘내가 주장으로서 위로해줄 준비나 해야겠다.’
물론 큰 충격에 휩싸여 페르난도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도 그럴 것이 흥분된 상태에서 야구를 한다면 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대망의 악수 시간이 다가왔다.
페르난도는 도진의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윌은 예상대로 페르난도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도진은 움찔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왜 이렇게 사악해 보이지?’
이제는 미국 야구판 2년 차라서 그런가?
오로지 승리만을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다른 것들을 살펴볼 여유가 더해져서?
‘일전의 트래쉬 토크가 내게 향한다면 발끈할 수도 있겠는걸?’
하지만 이번에 윌이 고른 타겟은 자신이 아닌 페르난도.
쓸데없는 생각 대신 도진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위로를 건네지?’
신경 쓰지 마. 원래 저런 놈이야.
네가 실력에서도 우위에 있어.
이런 위로가 좋겠다며 도진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둘의 트래쉬 토크에 도진은 벌어지는 턱을 통제하지 못했다.
윌이 먼저 손을 내밀더니 페르난도에게 읊조렸다.
“What’s up! My Ni****”
페르난도 역시 그의 손을 붙잡았다.
“Yo. Bro. 오늘 경기 즐겁게 해보자고.”
윌은 걸려들었다는 표정으로 곧장 트래쉬 토크를 내뱉었다.
“야 이 X만한 새끼야. 친한 척해주니까 좋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기어들어 와?”
페르난도는 순간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누구도 윌이 이런 선수인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가 놀란 건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그의 입에선 현직 래퍼를 능가할만한 입담이 뿜어져 나왔다.
“F***ing Ni****. 실력 X도 없으면서 이빨만 터는 나부랭이 새끼가 트래쉬 토크를 내뱉어? 자고로 트래쉬 토크는 실력 있는 애들만의 권리야. 이 비곗덩어리 새끼야.”
페르난도는 분이 덜 풀린 모양이었다.
“Yo. Ni****. 이빨 갈고 닦을 시간에 가서 스윙이나 처하라고.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흑인 인권이 바닥이라고! 알아?”
도진은 윌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슬금슬금 페르난도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여전히 멈출 생각이 없었다.
“패배자 새끼. 남을 깔고 뭉개야지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새끼. 나이를 as*hole에 쑤셔 박으셨어? 내가 꺼내서 다시 처박아줘?”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왔다.
RS 선수들이 내는 소리였다.
더욱이 당사자 윌의 눈가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저 덩치 큰 악당이 울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도진은 서둘러 페르난도를 뒤에서 안고 깍지를 낀 채 더그아웃으로 질질 끌고 갔다.
주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페르난도는 도진에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풀어달라며 아등바등했다.
“올드맨! 놓으라고요! 저 새끼가 먼저 시비 털었잖아요! 놔! 놓으라고! 나 아직 안 끝났다고!”
도진은 깍지 낀 손을 더욱더 강하게 조였다.
절대 놓을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직 안 끝났다니. 그게 더 신기하네.’
그래도 천만다행이라면 심판도 분명히 페르난도의 욕설을 들었을 텐데 제지가 없었다.
‘윌의 악명이 이제는 사람들의 귀에 들어갔다는 거겠지.’
도진은 페르난도를 더그아웃 의자에 앉혀놓고는 땀을 닦았다.
그는 여전히 씩씩대고 있었다.
도진은 주장의 임무를 다하고자 노력했다.
“페르난도. 너무 마음 쓰지 마. 난 저놈한테서 인종차별 발언도 당했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고요? 하. 올드맨! 이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러면 안 된다고요!”
“어. 어. 그렇지?”
“감히 우리 주장한테 깝쳐?”
하면서 다시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한편으로는 고맙긴 한데…….’
그냥 네가 열받은 거 풀러 가려는 거잖아!
도진은 페르난도를 자제시키겠다며 양팔을 펼쳐 그의 경로를 막았다.
진짜로 더그아웃을 벗어날 기세였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상대측 더그아웃과 벤치 클리어링도 일어나겠는데?’
도진은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자 서둘러 마이크와 알렉산더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서 하라며 자신의 시선을 외면했다.
‘이러다 벤치 클리어링 일어난다고!’
흥분을 절대 가라앉히지 못할 것만 같던 페르난도.
하지만 그는 제니퍼의 말 한마디에 꼬리를 힘차게 흔드는 한 마리의 순한 강아지가 되었다.
“페르난도. 시합 준비나 해.”
“응! 알았엉!”
도진은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맑은 눈을 보유한 광인의 눈에서 광기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아…… 제니퍼에게 주장 넘길까?’
경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피곤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