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9)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9화(9/400)
집으로 돌아갈 차량이 준비된 도진은 부모님을 배웅했다.
침묵만이 흐를 것 같던 분위기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도진의 아버지였다.
“도진아. 미안하구나. 우리가 너에게 짐이 되었구나.”
도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이 허락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미국에 온 이유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진심을 알지 않았던가.
“네가 재밌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구나. 돈이 부족하면 말하거라. 이번만큼은 돈 때문에 네 앞길을 막고 싶지는 않구나.”
도진은 아버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따뜻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검은색 세단의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에 올라타는 순간에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말 그대로 안면 근육이 마비되어 어색한 미소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늘 웃는 일만 가득할 테니 지금이라도 연습해야겠지.’
부모님 역시 도진을 바라보며 마주 웃어주었다.
그 웃음을 본 도진은 마음 한쪽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정말 응원받고 있구나.’
자신과 부모님 사이의 잔뜩 꼬여버린 실타래 같은 관계도 이제 더는 옛말이었으며.
자신을 위해 부모님께서 교장과 감독에게 숙인 고개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무조건. 무조건 성공하겠다.’
이제는 눈치를 보지 않고 야구에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조건이 마련된 이상 도진은 어설프게 야구를 하다 포기할 생각을 저버리기로 했다.
부모님께서 믿어주고 응원하는 만큼, 닿을 수 있는 데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당연히 도진의 목표는 메이저리거였다.
* * *
배웅을 끝낸 도진은 다시 교장실로 이동했다.
이제는 목표를 위해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
늘 꿈꾸던 메이저리그를 위해 도진은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도진이 지금 당장 메이저리거를 도전하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그래서 도진은 차츰차츰 메이저리거를 향한 발걸음을 밟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자신이 속한 FS 야구부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감독님도 아시겠지만 지금 FS 야구부는 리그 내에서도 중위권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도진은 2년 후 졸업이다.
정확히는 2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재차 묻겠습니다. 정말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전부 지원해주시는 겁니까?”
교장은 계속 말을 해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다가오는 시즌에서 우승이 필요합니다. 내년 3월에 있을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에 초청받으려면 말이죠.”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1학기가 9월에 시작하며 여름 방학인 6월에 한 학년이 끝난다.
그렇기에 3월 토너먼트는 1년의 결산을 뜻했으며.
도진은 리그에서 뛰어난 성적. 즉 우승을 거둬 기필코 최고의 토너먼트에 초청받고 싶었다.
물론 F.S 야구부는 고작 중위권 정도밖에 되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그저 꿈이었다.
‘하지만 꿈도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는 법.’
야구는 혼자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므로 지금 전력 보강이 필요했다.
우승을 위해선 학교도 뭐든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수준 높은 선수들이 몇몇 더 필요합니다. 전원 최고의 멤버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같이 경기를 뛴 선수들만으로는 2년 내로 우승은 불가능합니다.”
감독은 도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금세 입꼬리를 올렸다.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이번에 연습 경기를 함께 뛴 선수들이 우리의 베스트 멤버라고는 보기 어렵네. 경기에 참여하지 않은 선수들도 있었으니까.”
“참여하지 않은 선수요?”
“캘리포니아 내에서도 손꼽히는 타자와 투수들이 참여하지 않았네.”
‘캘리포니아에서도 손꼽힐 정도라고?’
도진은 미간을 구겼다.
‘그 정도라면 여간내기는 아닐 텐데?’
물론 감독이 말하는 선수들의 실력이 정확히 어떨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도진은 더 캐묻지 않았다.
지금 꼬치꼬치 묻지 않아도 어차피 곧 만나게 될 터.
그때가 돼서 천천히 실력을 파악해봐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기숙사를 이용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잠시 보류하기로 한 도진은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자신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었다.
도진은 집을 나와 기숙사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2시간이 넘는 통학 시간을 줄여 훈련과 컨디션 관리에 더욱 신경 쓰기 위함이었다.
도진은 1년 반이나 야구에서 멀어졌다.
그 긴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꾸려면 남들보다 더욱 노력해야 했다.
“당장 오늘부터 기숙사를 이용해도 괜찮다네.”
“금요일에 짐을 싸서 기숙사로 들어가겠습니다.”
교장과 감독은 의욕 넘치는 도진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저 허풍으로 가득 찬 가짜가 아니었다.
진짜 재능을 가진 천재였으며,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그 누구보다도 엄격한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앞으로 더더욱 빛날 수 있는 원석이었다.
* * *
금요일 오후.
학교 수업이 끝난 직후 도진은 캐리어 2개를 끌고 배정된 기숙사에 입장했다.
방 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좋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1인실의 기숙사는 퀸사이즈 침대 하나와 하나의 책상 의자로 이루어진 방으로 자신이 지내던 방보다 훨씬 컸다.
별개로 화장실에는 샤워부스까지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
짐을 하나씩 풀던 도진은 문뜩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혜택이 제대로 체감되네.’
이제는 평소보다 잠도 2시간은 더 잘 수 있겠지.
오가는 시간을 줄여 공부와 야구 훈련도 병행할 수 있다.
‘그럼. 연습장부터 가볼까?’
도진은 곧장 실내 연습장으로 이동했다.
연습 시설을 눈으로 직접 보고 필요한 장비들을 요청할 생각이었지만.
‘와. 미쳤네.’
실내 연습장에 들어서자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연습 장비들이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구단이라고 해도 믿겠어. 하긴. 한때 우리 학교도 야구 명문이라고 했지.’
미국은 시설 면에서 돈을 잘 아끼지 않는다.
특히나 스포츠 쪽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교라면 그랬다.
학교 내 야구장이 3개가 있는 것도 모자라. 농구장, 미식축구 필드 그리고 수영장까지 없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대충 시설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체감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러니 학비가 비싸지.’
잡생각을 이어나가는 도중 익숙한 목소리가 도진을 깨웠다.
“기숙사는 마음에 드는가?”
도진은 미소를 머금고 감독에게 서둘러 뛰어갔다.
감독은 여태껏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던 도진의 이런 모습을 처음 접했다.
“드디어 학생처럼 보이는군.”
민망했던 도진은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지금 당장 느끼는 이 기분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학교 시설에 대해서는 큰 불만은 없을 것 같은데.”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서 무언가를 더 요청할 수는 없겠죠. 정말 야구 할 맛 나게 해주는 연습 시설이에요.”
“후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 자네도 보면 알다시피 오늘은 훈련이 없는 날이네.”
도진은 주위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 훈련은 다음 주부터 시작이라 이번 주까지는 자유가 주어졌다.
“그런데도 이곳에 나온 이유는 훈련하기 위함이겠지?”
“그렇습니다.”
“그럼 자유롭게 훈련 시설을 이용하면 된다네. 나도 심심하니 자네 훈련하는 거나 지켜봐야겠어.”
도진은 솟아오르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제어했다.
원래는 글러브와 공만 챙겨서 따로 훈련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야구부 소속이라도 학생이 학교 훈련 시설을 사용하기 위해선 관리자가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감독님이 같이 있어 준다면 얼마든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감독님의 깊은 뜻을 거절할 수는 없지.’
“그럼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 전에 잠깐.”
감독은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금세 다시 모습을 내비쳤다.
“자네에게 약속한 혜택이라네.”
그가 양손 가득 품고 나온 건 다름 아닌 글러브.
글러브 1개가 아닌 총 4개였다.
“이 2개는 야수용. 그리고 이 2개는 투수용이라네. 물론 보면 알겠지만.”
도진의 동공이 팽창했다.
특히나 글러브 브랜드는 프로들이 사용하는 고가의 브랜드였다.
‘와. 이게 다 얼마냐.’
하나에 800달러가 넘는 글러브를 4개씩이나?
도진은 사정없이 뛰어대는 심장을 가라앉히고는 허리와 고개를 연달아 굽혔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러브는 하루라도 빨리 받는 편이 좋다.
자신의 손에 맞춰 글러브의 모양새를 잡아야 한다.
이 작업을 길들이기라고 불렀으며 필수 요소였기 때문이다.
글러브 하나로 선수의 능력 자체가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도 있는 중요한 작업이다.
오죽했으면 길들이기만 전문적으로 해주는 업체까지 있었으니까.
‘일단 길들이기는 훈련 끝나고 차차 하는 걸로 진행하고.’
도진은 곧장 글러브를 손에 낀 채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실내 마운드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게 얼마 만이냐.’
이전 2경기까지는 마운드에 서도 드라마틱한 심경 변화를 느낄 수는 없었다.
다만 지금은 하루라도 마운드에 서지 않는다면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던 예전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와인드업 후 공을 던졌고.
퍼억.
목표로 하던 벽에 정확히 꽂혔다.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야구를 1년 반이나 쉬었다.
그런데도 한창 대회를 휩쓸고 다녔을 때보다 구속이 증가한 것 같았다.
물론 마운드에 오랫동안 서지 않았기에 착각일 수도 있다.
자신의 공을 늘 잡아주던 친구라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지금 그 친구가 이곳에 존재하지는 않았다.
“고민이 있나 보지?”
도진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고는 끄덕였다.
“네. 좀 이질적인 느낌이긴 한데 나쁜 건 아니에요. 오히려 공이 좀 더 좋아진 느낌이 들어요.”
감독은 피식 웃었다.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도진에게 준비된 서프라이즈 선물이 올 때까지 참기로 했다.
도진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음 놓고 공을 던지는 게 얼마 만이던가.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야구를 즐길 수 있다.
그렇게 30구 정도 던졌을까.
누군가 실내 야구장 안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틀었다.
‘어?’
새하얀 야구 유니폼을 입은 남성이 터벅터벅 다가왔다.
도진은 자신이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미간을 잔뜩 구겨 눈초리를 가늘게 찢었고.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놀라움은 거대해졌다.
‘이, 이게 무슨…….’
감독은 그 남성에게 다가가더니 어깨에 손을 얹고는 도진을 가리켰다.
“조엘. 내가 말한 아이가 이 아이라네.”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남성은 그런 도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감독님이 입이 닳도록 칭찬한 아시아인이 이 학생이군요.”
조엘은 도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LA 다저스 선발 투수 조엘 오스틴이다. 그리고 네 학교 선배지.”
도진도 그를 알았다.
어떻게 현역 메이저리그 투수를 모를 수 있겠는가.
입부 시 약속된 혜택에도 나와 있듯이 언젠가 과외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9월이다.
메이저리그는 시즌 막바지로 지금 한창 바쁠 때였다.
‘아무리 다저스 구장이 이곳에서 가까워도 지금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도진은 눈을 살짝 치켜뜨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조엘은 도진과 눈이 마주치자 내민 손을 향해 고갯짓했다.
도진도 서둘러 글러브를 바닥에 내려놓고 흥건히 젖은 손바닥을 옷에 싹싹 비빈 후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반갑다. 조엘 오스틴이다. 내가 시즌 중에도 이곳에 있는 게 궁금하겠지?”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이 부르셨으니까. 그는 나를 메이저리그로 보낸 은인이시다. 은인이 부르는데 당장 뛰쳐나와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도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정식 훈련이나 시합이 없었던지라 감독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거가 전화 한 통에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엔 다 이유가 있겠지.
조엘은 그런 도진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더니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오늘 선발 등판하는 날이 아니지만 그래도 자리를 막 비울 수는 없으니 시간이 많지는 않거든? 그러니 네가 가진 능력부터 좀 보도록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