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93)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93화(93/400)
마운드에 오른 도진은 모자를 매만졌다.
어깨도 한번 빙빙 돌려봤다.
70구가 넘어가는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힘이 넘쳤다.
그 때문에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미국에서는 처음 기록하는 완봉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상대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급 팀이라는 사실이 더욱 뿌듯했다.
‘나도 발전하긴 했구나. 물론 우승을 위해서는 더 발전해야겠지만.’
그 전에 일단 오늘 경기를 깔끔히 마무리해야겠지.
도진은 글러브 공을 만지작거리며 사인을 기다렸다.
마이크의 사인이 나오자 지체없이 와인드업했다.
2번부터 시작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자랑들이 연달아 나오는 타선이었음에도 망설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손을 떠난 공은 굉음을 내지르며 한복판으로 향했다.
타자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우측 하단으로 꺾이는 무브먼트에 제대로 된 타격이 되지 않았다.
틱.
타구는 투수 앞 땅볼.
도진은 여유롭게 타구를 처리해 1루로 던졌다.
“아웃!”
‘70구 넘어서도 투심의 무브먼트가 그리 나쁘지는 않네.’
물론 나쁘지 않은 것뿐.
여전히 원하던 마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렵다 어려워.’
누군가 도진의 생각을 읽는다면 기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상대는 정타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1차 목표인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까지 고작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NY나 뷰포드를 만나서도 이기려면 지금보다 발전된 기량이 필요했다.
도진의 투심에 다음 타자 역시 대응하지 못하고 땅볼 타구밖에 생성하지 못했다.
알렉산더는 타구를 가볍게 처리해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7회 말. 2아웃. 타석엔 카일리.
도진은 이번만큼 표정에 비장함을 갖췄다.
카일리는 1라운더급 선수.
다른 타자들에 비해서 월등한 기량을 갖췄으니까.
점수는 3:0.
아웃카운트 하나만 올리면 경기는 마무리된다.
그리고 FS가 오늘 패배할 확률은 단 1%도 되지 않았다.
마이크의 사인이 나왔다.
‘그거 말고.’
도진은 포심 패스트볼에 고개를 저었다.
두 가지의 커브 사인에도 고개를 저었다.
마이크는 한숨을 내뱉더니 투심 사인을 냈다.
도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드업 후 던진 공은 타자의 몸쪽으로 향했다.
끝에서 무브먼트가 생겨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갔다.
카일리는 지체없이 배트를 냈다.
따-악!
경쾌한 소리가 그라운드를 가득 메웠다.
이미 패색이 짙은 관중들도 이번만큼은 입을 모아 희망을 담았다.
타구는 쭉쭉 뻗어나갔지만, 폴대 밖을 벗어났다.
“파울!”
도진은 묵묵히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마이크는 심판에게서 공을 건네받고 도진에게 던졌다.
공을 건네받은 도진은 글러브 안에서 다양한 그립들을 만지작거렸다.
사인이 나왔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고개를 저을 필요 없는 원하던 공이었기 때문이다.
손을 떠난 공은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투심.
2구째 투구는 카일리의 배트 윗부분을 때려 공이 뒤로 흘렀다.
공이 뒤로 흘렀다는 건 타이밍 자체는 맞았다는 것.
‘확실히 강타자들은 금세 감을 잡네. 투심에 뒷받침될만한 무언가가 필요해.’
투심은 확실히 위력적인 구종.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마치 앙금 없는 팥빵이랄까?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급 선수들은 자신의 투심을 노리기만 한다면 이렇게나 잘 쳐냈다.
이 경기가 끝나면 이제 겨울방학이다.
‘3주 동안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다.’
도진은 곧장 와인드업했다.
마지막 공은 한복판으로 향하는 포심 패스트볼.
타자의 배트를 외면한 투구는 곧장 미트에 꽂혀버렸고.
80구 가까이 된 시점에서도 전광판에 기록된 숫자는 99마일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 * *
<킴! 샌프란시스코 전에서 완봉승을 거두다!>
└누가 의심했냐!
└피안타율 높다고 난리 치던 놈들 다 숨음.
└근데 진짜 대단하긴 하더라.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완봉해 버리던데?
└킴은 선발이 맞아! 킴은 선발이 맞아!
└근데 FS 유일 완봉승 아님?
└애당초 요즘 아마추어 경기에 완봉 자체가 없어. 작년, 재작년도 완봉은 없었음.
└18승 0패! 겨울방학 이후에 산타모니카만 잡으면 된다!
완봉승으로 떠들썩했지만, 도진만큼은 어떠한 감정도 표출하지 않았다.
훌륭한 기록을 세웠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었으니까.
이제는 겨울방학을 맞이한 FS.
마이크는 오전부터 피곤하다며 기지개를 켜더니 도진의 옆구리를 툭 쳤다.
“있어 보이는 척하지 마라.”
“있어 보이긴. 걱정이다.”
“완봉한 애가 걱정? 너 다른 사람한테 이러면 욕먹는다.”
“그래도 너는 알잖냐.”
마이크는 고개를 끄덕했다.
“확실히. 투심을 선보인 지 고작 3달밖에 안 됐는데 카일리는 뻥뻥 쳐대더라.”
그만큼 미국 수준은 높았다.
“어. 이대로 가다간 우승 못 한다.”
마이크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진은 정말로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을 우승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15,000 학교 중 16학교만 뽑혔으니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평가였다.
그런데 도진은 만족하지 못해 그 안에서도 1위를 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목표이며 꿈인 줄 알았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꾸는 것만큼은 자유였으니까.
마이크는 표정에서 장난기를 지웠다.
“그래서 어쩌려고. 너 변화구도 늘릴 생각 없잖아.”
마이크의 말마따나 도진은 변화구를 늘릴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슬라이더 같은 위력적인 변화구를 장착하면 훨씬 뛰어난 투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위력적인 변화구엔 대가가 따르는 법.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신체에 무리가 와 선수 생명에 변수가 생길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도진은 지금까지 패스트볼 위주의 승부만을 해왔다.
물론 커브는 장착했지만, 커브는 부상 위험이 그나마 훨씬 적다고 알려져 있었다.
도진은 회심의 입꼬리를 올렸다.
“일단 이번 3주간 도움을 좀 받아 보려고.”
“도움? 무슨 도움?”
“그런 게 다 있다.”
마이크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또 무슨 꿍꿍이냐. 난 가끔 네가 무서워. 발전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니까.”
“이건 나뿐만이 아니야. 우리 학교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우승을 위한 것이니 기대해.”
“그러니까. 그게 뭔데.”
그러자 때마침 제니퍼가 도진에게 다가왔다.
“킴! 일단 감독님 승낙은 떨어졌어요!”
도진은 마이크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나 감독님께 좀 다녀온다.”
“말은 해주고 가라고!”
“그런 게 있어! 나중에 고맙다고 할 거다.”
도진은 몸을 일으켜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들어오라는 목소리에 문고리를 살포시 돌렸다.
“와서 앉지.”
도진은 자리에 앉았다.
도널드 감독도 맞은 편에 자리했다.
“그래. 제니퍼를 통해 얘기는 들었다.”
“허락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나 말고도 학교 측에서도 허락이 떨어졌지. 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말이야. 그래서 연락은 돌려 봤나?”
“아직요. 말 나온 김에 지금 연락 좀 돌려봐도 될까요?”
도널드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진은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나: 상우야.] [상우: 오! 김도진! 웬일?] [나: 뭐하냐?] [상우: 뭐 하긴. 그냥 개인 훈련이나 하고 있지.] [나: 혼자서 재밌냐?] [상우: 재밌겠냐? 개 같아! 훈련 시설도 마련 안 해주는 데 이거 맞냐? 나 30억 유망주라고!] [나: 원래 오프 시즌은 휴식 기간이자 개인 훈련 기간이지. 네가 스스로 해야 하는 게 맞아. 물론 난 시설 좋은 곳에서 지원받으며 훈련 중.] [상우: 놀리냐? 염장 지르려고 연락했냐?] [나: 그럴 리가. 좋은 소식 가져왔다.] [상우: 지금 매우 기분이 언짢거든? 진짜 좋은 소식이어야 한다.] [나: 우리 학교로 와라. 여기서 같이 훈련하자.] [상우: 진짜? 리얼? 트루? 거짓말 아니지? 나 진짜가? 당장 가? 택시 불렀다? 출발했어?] [나: 학교에서도 허락했다. 일단 와라.] [상우: 이번엔 진짜 부르겠음. 잠깐 기다려. 1시간이면 감.]“일단 제 친구는 온다고 합니다.”
“그 한국 대표팀 포수를 맡았던 그 친구지? 고맙군. 같이 훈련하다 보면 우리 선수들도 느끼는 바가 많겠지.”
“네. 저도 그러리라 믿습니다. 마이크와도 시너지가 잘 날 것 같아요.”
상우는 누가 뭐래도 훌륭한 포수이자 타자다.
더욱이 에인절스와 30억 계약 하지 않았던가?
FS 선수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그럼 마저 연락 좀 돌려도 될까요?”
도널드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진은 곧장 다음 연락을 돌렸다.
[나: 선배.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답장은 빠르게 왔다.
[페드로: FS의 주장.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지?] [나: 겨울방학이잖아요. 대학도 그렇지 않나요? 훈련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페드로: 그야 학교에서 하고 있지. 무슨 일 있어?] [나: 혹시 방학 동안 FS에서 훈련하실 생각 없으세요?] [페드로: 오! 나쁘지 않은데? 오랜만에 귀여운 후배들도 볼 수 있고. 또 편하기도 하고. 나도 여기서는 새내기라 불편하거든.] [나: 오세요! 학교 허락도 떨어졌어요. 당연하지만.]페드로가 연습하러 온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리고 그가 연습하러 와준다면 투수진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페드로 선배도 온다고 하시네요.”
도널드 감독은 미소를 띠었다.
제자를 오랜만에 만나서 기쁜 모습이었다.
“연락을 마저 돌리겠습니다.”
[나: SOS를 요청합니다. 오프 시즌이잖아요? 부탁드립니다.]* * *
페드로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도진과 마이크 그리고 알렉산더는 그를 환영했다.
“오랜만입니다!”
“이야! 선배! 정말 오랜만이에요! 신수 좋아 보이네요?”
“먼 길 오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페드로는 양쪽 입꼬리를 올렸다.
“7개월 만인가? 소식은 잘 듣고 있다. 잘하고 있다며.”
이제부터는 도진이 대표로 대답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우승할 생각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너희라면 충분히 잘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불러줘서 고맙다.”
“아뇨. 와주셔서 감사해요. 선배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팀에 도움이 됩니다.”
비록 페드로는 구단과의 계약을 미루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는 엄연히 드래프트 1라운더급에 속하는 선수였다.
“그래. 방학 동안 잘 부탁한다.”
도진은 입구 근처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주변을 서성이더니 이내 얼굴만 빼꼼 내민 짧은 흑색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상우였다.
“전 잠시만요.”
도진은 페드로를 지나쳐 상우에게 다가갔다.
“왔냐.”
“어…….”
자신감 없는 그의 목소리에 헛웃음이 입 틈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허. 내가 알던 상우가 아닌데? 자신감 어디 갔어?”
“말도 마라. 나 미국인 노이로제 있어.”
“왜?”
“몰라. 그냥 무서워 다!”
“그러니까. 이유가 뭔데?”
상우는 한숨을 내쉬더니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애리조나 가을 리그 알지?”
“나름 잘했다며?”
“성적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 근데 감독과 마찰이 있었어.”
“마찰? 왜? 너 대드는 성격 아니잖아.”
“절대 아니지!”
상우는 입술을 삐쭉 내밀더니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야구 한다는 게 쉽지는 않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서 하루 얼 탄 적이 있거든?”
“경기 도중에?”
“어. 어쨌거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내 잘못이었으니까.”
“잘못을 인정하면 별말 안 할 텐데?”
한국도 다르지 않겠지만, 잘못을 뉘우치면 용서해주는 건 어디나 똑같았다.
상우는 눈을 희번덕였다.
“그렇지? 그럼 나 인종차별 당한 건가?”
“뭐가 문젠데?”
“아니. 그날 혼났거든? 물론 영어라서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혼났어.”
“그래서?”
“일단 경기 도중 얼 탄 내 잘못이지. 너무 죄송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거든? 그랬는데 목소리가 격양되더니 더 뭐라 했다니까? 분명 욕도 들렸어! 내가 예의를 안 갖춘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는데!”
아하?
도진의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네가 잘못했네.”
“뭐? 내가 왜? 도대체 뭘?”
“미국은 한국과 달라. 너는 죄송한 마음에 눈을 피했지만, 여기선 그걸 무시라고 생각하거든.”
상우의 턱이 벌어졌다.
“지, 진짜?”
“어. 혼날 때도 무조건 눈을 마주치고 있어야 해.”
“한국에서 그러면 귀싸대기인데?”
“여기가 한국이냐?”
상우의 눈에 담긴 감정은 허탈.
하지만 목에 막힌 고구마가 드디어 소화됐다는 듯 금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네. 고맙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다 젖히고 신세 한탄부터 했을까?
도진은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하긴. 미국 문화는 한국과 반대되는 게 몇 개 있지. 빨리 적응하는 편이 좋아.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면서 문화에도 익숙해져라.”
“고맙다. 정말 고맙다. 너밖에 없다.”
이내 상우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건 그렇고. 진짜 이 학교도 연습 시설 미쳤네? 넌 늘 이 환경에서 야구 했던 거냐?”
도진은 상우가 쳐다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훌륭한 시설은 익숙해져 있어 감흥은 없었다.
“응. 뭐 그렇지?”
“나 말고 누가 또 온 거야?”
“응. 우리 학교 선배. 그리고 한 명 더 올 수도?”
상우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인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았나 보다.
도진은 상우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은 상우의 뒤편이었다.
“너 안 왔으면 후회했을 거다.”
도진이 얘기했던 주인공은 상우의 뒤에서 나타났다.
“SOS 요청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여유가 있네?”
조엘 오스틴.
그가 이곳에 모습을 내비쳤다는 건 도진의 요청을 흔쾌히 허락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