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139)
잠시 시간을 거슬러, 용봉지회의 4강이 끝난 시점.
벨렌은 카멘 기사단의 치료소에서 눈을 떴다.
“…”
벨렌은 움직이지 않는 몸의 근육을 느끼며 눈을 찌푸렸다.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 육체를 짓눌렀다.
병상에 누운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라엘과 벨렌 사이에는 그 정도로 큰 격차가 있었다.
“젠장… ”
하지만, 육신의 고통보다 괴로운 것은 그의 정신이었다.
카멘 기사단장 1번대 대장이 용봉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고, 기사로서 가지고 있던 자존심을 뭉개버렸다.
‘내게 부족했던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벨렌은 귀족으로서 엘리트라고 불릴만한 노선을 탔다.
그 과정에 있어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그의 꿈이었던 기사도였지만, 때로는 제국을 위해 기사도를 포기할 때도 있었다.
모든 것은 카멘 기사단과 제국을 위한 일이었다.
‘용봉지회는 끝났지만… 아직 괜찮다. 바뀐 건 없어.’
벨렌은 용봉지회에서 패배한 그날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가까스로 지울 수 있었다.
그는 자랑스러운 카멘 제국 최고의 기사단인 카멘기사단의 1번대 대장이었다.
실패를 겪었다고 해서 꺾일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카멘 기사단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행보를 보이면 된다.’
벨렌은 그렇게 다짐하며 치료소에서 일어났다.
용봉지회가 끝난 뒤, 근 한 달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벨렌에게 다음 기회는 없었다.
그는 용봉지회가 끝난 뒤, 카멘 기사단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 사람 평소에 너무 까불고 다니긴 했어.”
“자기가 뭐라도 된 것처럼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다니더니, 고작 평민 기사 하나를 못 이겨? 어이가 없지.”
카멘 기사단원들이 자신을 씹어댔지만, 벨렌은 신경쓰지 않았다.
결과로 보여주면 저들도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벨렌.”
“예. 단장님.”
“오늘부터 넌 4번대의 대장을 맡아라.”
” …… 제가 4번대를 말입니까?”
카멘 기사단의 4번대.
분명 높은 자리였지만, 1번대 대장이었던 자가 4번대를 맡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의견은 받지 않겠다. 카멘 기사단을 위한 선택이니 따르도록 해라.”
하지만 기디온마저 그를 외면했을 때.
벨렌의 마음은 다시 한 번 꺽였다.
‘이것이 내가 바라던 기사도란 말인가.’
벨렌은 실소를 지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모든 시간을 카멘 기사단에 바쳤다.
그가 바라던 것은 단 하나.
어릴 적 꿈꾸던 기사가 되는 것이었다.
천년 제국 카멘의 이름을 등에 짊어진 명예로운 자가 되고 싶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정의로운 기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벨렌은 그제서야 자신의 머리에 가득 차 있던 잘못된 생각을 벗겨낼 수 있었다.
자신이 지키려 하던 기사도는 애초에 틀린 것이었다.
제국에 벨렌이 생각하던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의 명예와 성공을 추구한다.
그 흐름에서 틀린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오늘 훈련은 자율로 시행해라.”
용봉지회가 끝난 지도 몇 달이 지났다.
4번대에 자율 훈련을 명령한 벨렌은 거리로 나섰다.
최근 제국의 분위기는 꽤 복잡했다.
가이아 교단의 성녀와 용사가 나타나며 마족과의 전쟁이 코 앞으로 다가왔고, 카멘 기사단은 연합군의 대표로 훈련을 주도해야 했다.
‘어차피 나와 상관없는 일이군.’
한때는 자신이 제국의 주인공인 줄 알았지만, 벨렌은 일개 기사에 불과했다.
그의 삶은 패배감에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 만세만세만만세(萬歲萬歲萬萬歲)!
대륙에서 날뛰고 있는 마교들이 제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테러인가 …?! ‘
벨렌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뽑았다.
그의 눈에는 이미 총기가 사라졌지만, 마음속에 있는 일말의 기사도가 본능적으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젠장. 이럴 때 카멘 기사단은 어디에 있지?’
벨렌은 입술을 짓이겼다.
제국의 수도를 지켜야 할 카멘 기사단은 연합군의 훈련을 위해 수도를 비우고 있었다.
훈련에서 배제된 벨렌이 제국민을 지켜야했다.
‘어쩔 수 없다. 나 혼자라도 …. ‘
벨렌은 검을 꽉 쥐었다.
저 마교도들을 자신이 혼자 이길 수 있을까?
지금 도망친다면 자신의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게 잘못된 생각일까?
벨렌이 고민하던 그 순간.
화아악-
압도적인 신성력이 거리를 뒤덮었다.
” …! ”
가이아 교단의 용사, 라엘.
그는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일체의 망설임 없이 마교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라엘 경.”
벨렌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마교도와 맞서는 가이아 교단의 용사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용봉지회 이후로 그가 생각하던 기사도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린 것은 기사도가 아니었다.
벨렌은 자신의 부족함을 변명했을 뿐이었다.
‘저것이 진정한 기사도 …. ‘
벨렌은 그제서야 올바른 신념을 가질 수 있었다.
세상이 틀렸다면, 자신이 앞장서야 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다.
벨렌은 그를 보며 자신이 추구하던 기사도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다.
어느새 도착한 성기사들이 마교도를 휩쓴 뒤.
벨렌은 숙소에서 거리의 광경을 떠올렸다.
“라엘 경 …. ”
벨렌의 마음 속에 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정녕 자신의 기사도가 틀리지 않았다면, 옳은 길을 걸어가는 그의 뒤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찾아가자.”
벨렌은 숙소에서 뛰쳐나왔다.
몇 달간 패배감에 휩쌓여 있던 기사의 얼굴에는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
“부디, 제가 라엘 경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벨렌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 민폐라는 건 알고 있다.
벨렌은 라엘의 목숨을 노렸던 카멘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라엘이 문전박대해도 할 말이 없었다.
“…마음이 참 아픈 스토리이긴 한데, 그래서 네가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냐?”
“예?”
“네 마음가짐은 잘 알겠는데, 그래서 나한테 뭘 해줄 수 있냐고.”
라엘은 벨렌을 빤히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복수전이라도 하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와서는 자신의 기사도를 설명하고 있으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딱히 이 놈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이제와서 굳이 적대하기도 귀찮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라엘은 벨렌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한때 자신의 커리어를 훔쳐 갔던 놈이긴 하지만, 라엘이 용사가 된 지금 바솔로드를 누가 죽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벨렌의 이야기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
“…”
라엘을 찾아온 것은 벨렌의 입장에서도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라엘을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라엘 경이 용사로 임명받기 전, 기사단장님이 대련 도중 라엘 경에게 실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었지.”
라엘은 조용히 벨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라엘 경. 저는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요.”
벨렌은 침을 삼키며 품에 있던 검 한 자루를 꺼냈다.
용봉지회에서 벨렌이 사용했던 검.
그 날의 패배를 잊기 위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
즉, 검에는 그 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벨렌이 사용한 사룡의 고독은 죽은 용의 시체를 파먹은 벌레들이 만드는 극독이다.
겨우 몇달 정도 방치되었다고 사라질 리가 없었다.
철두철미한 기디온이 벌인 수많은 일 중에서 유일하게 증거가 남아있는 것이었다.
“이건 …? 라엘 경. 불길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루카스는 검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의 감각으로 보기에도 평범한 검은 아닌 것 같았다.
“사룡의 고독. 멸종된 드래곤의 시체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극독으로, 일개 기사가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용봉지회에서 라엘 경과 승부했던 그 날… 단장님께서 주신 물건입니다.”
벨렌은 고개를 푹 숙였다.
기사로서 자신이 독을 사용했다는 걸 직접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사룡의 고독… 그래. 어쩐지 검이 수상하더라. 그날 무기를 검사하는 것도 카멘 기사단이었지?”
“예. 맞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아는 기사단원은 없을 겁니다.”
무기 검사 같은 것은 벨렌의 권위로 찍어 누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검만이 유일한 증거였다.
“죄송합니다. 라엘 경. 이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도움입니다.”
벨렌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라엘은, 그가 건넨 검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데?’
이 검과 배거스에서 준비한 자료라면, 기디온을 끌어내릴 수 있을 거다.
부족한 증거는 가이아 님의 계시로 떼우면 그만이었으니까.
“야. 벨렌.”
“예. 라엘 경.”
“기사도를 알고 싶다고 말했지? 넌 이제부터 계시받은 용사의 증인이 되는 거다.”
“예?”
벨렌이 눈을 끔벅거렸다.
*
제국 수도에 나타난 마교.
그리고 바네사 왕국 사절단 일부의 실종.
준비가 거의 끝난 대륙 연합군.
여러가지 일로 인해 다시 한 번 회담이 열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라엘은 며칠 전에 있던 벨렌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회장에 들어섰다.
‘증거는 충분해.’
배거스에서 수집한 자료와 벨렌의 증언이 있다면, 계시에도 힘이 실릴 것이다.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계획을 말 할 시간이다.
“라엘. 축하한다. 자, 받아라.”
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라엘을 반겼다.
레인은 이제 막 도착한 라엘에게 냅다 신문 같은 걸 넘겼다.
“단장님. 이게 뭡니까?”
“제국에서 가장 큰 신문사인 밤까마귀에서 낸 신문이야. 확인해봐.”
“밤까마귀? 걔들 정보길드잖아요.”
라엘은 꽤나 기억력이 좋았다.
밤까마귀는 분명 배거스와 싸우던 하오문 놈들이 아닌가?
“제국 내부에서는 배거스를 이기질 못하니 언론사로 길을 틀었잖아. 몰라? 신문 좀 보고 살아. 라엘.”
“…그딴 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라엘은 헛웃음을 지으며 신문을 확인했다.
신문을 펼치기도 전에 대문짝만한 기사 제목이 보였다.
“대륙 7강? 이게 뭐에요?”
“대륙에서 가장 강한 전사 7명이지. 라엘. 기대되지 않냐?”
“…저한테 이걸 보여주는 걸 보니 대충 예상은 가네요.”
라엘은 신문을 펼쳐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제국 7강. 그 이름에 걸맞는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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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마귀 선정 대륙 7강.
1. 대륙제일검. [천살검주]
2. 카멘 기사단장. [기디온 가르시아]
3. 바네사 왕국 제일검. [검룡]
4. 정천맹주. [무천]
5. 레인 기사단장. [레인]
6. 은십자 기사단장. [마르코]
7. 파마의 용사. [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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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엘은 헛웃음을 지으며 신문을 내렸다.
그의 앞에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레인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신나셨습니까. 단장님.”
“라엘. 드디어 대륙도 나를 인정한 거다. 물론 제국의 7강도 절대 낮은 등수는 아니지. 더욱 더 정진하거라.”
레인은 라엘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라엘 정도의 재능이라면 언제든지 순위를 올릴 수 있을 거다.
물론! 5강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자신을 앞서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참나… 그러고보니 파마의 용사는 또 뭐예요?”
라엘은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를 보며 눈을 찡그렸다.
가이아 교단의 용사가 되며 제국의 삼걸로 불리는 일이 적어져서 좋았는데, 또 개같은 칭호가 생겼다.
“네가 테러를 막은 곳이 가장 마교의 세력이 많은 곳이었잖아. 단신으로 수백 마교도의 마기를 제압하는 장면을 본 기사들이 다들 감명을 받았다고 하더군. 아, 참고로 소마협에서 네 강함을 보증해준 덕에 7위에 오른 거다. 감사하도록 해라. 라엘.”
“그게 무슨… 하아. 됐다. 예. 고맙습니다.”
라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의 강함이 어느정도인지는 라엘도 감이 오질 않았다.
라엘은 제국 2강의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기디온 가르시아의 이름을 확인했다.
‘회천을 다룰 수 있는 지금이라면 …. 꽤 좋은 싸움이 가능할텐데.’
회천은 단순히 주변의 힘이 강할 때만 효과적인 영역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에게 비수를 꼽아넣을 때도 충분히 강한 영역이다.
“단장님.”
라엘은 신문을 덮었다.
“후후. 아, 나 말인가? 제국 5강 레인이라고 한다네.”
“이상한 소리 하지마시고 들어가시죠. 제가 오늘 중요한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랬지. 무슨 일때문에 그런 거냐?”
“들어오시면 압니다.”
라엘은 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가이아 교단 측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제국의 귀족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갔다.
끼익-
귀족들이 사용하는 응접실 중 하나의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라엘 씨. 오셨군요.”
“예. 유리엘 전하.”
“제국 7강에 선정된 거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대륙 7강인지 뭔지를 2황녀도 알 정도라니.
밤까마귀가 그렇게 영향력 있는 곳이었나?
라엘과 레인은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유리엘의 옆에는 에릭 대공도 앉아있었다.
“라엘.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에릭은 라엘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부름으로 모였으니, 분명 중요한 말을 꺼낼 거라고 생각했다.
“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라엘은 자리에 앉은 채 주변을 살폈다.
마력의 흔적이나 도청의 흔적은 없었다.
“오늘, 기디온 가르시아를 끌어내릴 겁니다.”
라엘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