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18)
제국 경비대의 망나니 소드마스터-18화(18/105)
대륙 최후의 드래곤
귀왕을 감시하는 업무가 끝난 뒤.
특별 경비대에 돌아온 라엘은 쉬지도 못하고 엘프에게 붙잡혔다.
“라엘···! 흑, 정말 나 다 주는 거야? 진짜로?”
세계수의 가지를 5개나 품에 안은 레이나의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글썽거리는 것도 아니고 진짜 우는 거다.
“미안한데, 공짜로 주는 거 아니야. 어제 준 것까지 다 더해서 암시장 정가대로 다 받을 거야.”
에릭 아저씨가 마탑에서 받은 1개.
그리고 베네트의 집에서 주워 온 4개.
세계수의 가지 5개면 엄청나게 비쌀 테니, 아마 레이나는 당분간 현상금 사냥꾼을 그만둘 수 없을 거다.
“저, 정가라니···. 고마워! 사랑해!”
물론 레이나의 입장에서는 감지덕지였다.
그녀가 세계수의 가지를 구하려면 암시장 정가의 몇 배나 줘야 했기 때문이다.
“··· 정가가 아니라 암시장의 정가라고. 하아··· 겐트. 얘 좀 데려가면 안 되냐?”
“미안하군. 할 일이 있어서.”
겐트는 과일을 하나씩 따서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마치 선물 바구니처럼 보기 좋고 가지런했다.
“그건 뭐냐. 갖다 팔기라도 하게?”
“음, 비슷하지.”
“야 이 새끼야. 그럼 별로 안 중요하잖아! 그것보다 이 엘프를 데려가라고!”
“라엘! 고마워! 고마워어어어!”
“미친 엘프가···! 저리 안 가? 암시장 가격대로 받을 거라니까?”
거의 10분 정도 밀어내자 레이나도 결국 포기하고 제 자리에 돌아갔다.
그녀는 세계수의 가지를 품에 안고 행복한 표정으로 해먹에 누웠다.
미친 엘프 같으니라고.
“라엘. 받아라.”
“응?”
기껏 레이나를 제압했더니 이번에는 겐트가 다가왔다.
겐트는 내게 형형색색의 과일이 담긴 바구니를 건넸다.
레이나랑 한창 다투고 있을 때 주섬주섬 만든 작품이다.
“나 먹으라고?”
“아니. 심부름이다. 라엘, 티아님에게 다녀와라.”
“···?”
겐트의 진중한 목소리와 표정에 라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아? 그게 누구야?
“겐트.”
“음. 궁금한 게 있다면 지금 물어보도록 해라. 티아 님은 기본적으로 선하시지만 첫 만남에서는···.”
“돈이라도 주고 심부름을 시켜야지. 대뜸 물건부터 내미는 놈이 어딨냐?”
“······.”
“레이나를 떼는 것도 힘들어 죽을 뻔했는데, 과일 배달까지 가라고? 그리고 티아는 또 누구야?”
라엘의 말에 눈을 깜박거리던 겐트는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라엘. 불쾌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드래곤 님과 만나고 싶다고 말한 건 너 아니었나?”
“어?”
겐트의 말에 라엘이 뒤늦게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천살검주와 드래곤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드래곤 이름이 티아였어?’
겐트는 자신을 생각해서 약속을 잡아줬는데, 라엘의 길바닥 자존심이 무의식적으로 막말을 뱉어버렸다.
라엘은 뒤늦게 바구니를 받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미리 말하지 그랬냐. 미안하다. 겐트.”
“···.”
미리 말하지 그랬냐니.
겐트는 기가 차서 입을 다물었다.
지금 막 설명하려고 했는데 냅다 면박을 준 놈이 누구지?
“크흠, 분명 귀왕의 반대편 호수였지? 걱정하지 마. 내 친구 겐트. 이 과일은 티아님한테 확실하게 전달할 테니까.”
라엘은 겐트의 어깨를 툭툭 치고 빠르게 저편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라엘이라도 잘못 없는 사람에게 막말을 한 건 조금 미안했다.
타다닷-
라엘이 호수로 달려간 뒤, 해먹에 누워 세계수의 가지와 신목합일(身木合一)을 시도하던 레이나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라엘이 달려간 방향을 빤히 보더니 겐트에게 의문을 표했다.
“겐트. 쟤한테 축복 안 걸어줘도 돼? 티아 님은 인간의 냄새를 싫어하잖아.”
자연의 종족인 엘프는 괜찮지만, 거인족인 겐트나 인간인 유리는 티아를 만나기 전에 몸에 축복을 걸어야 했다.
드래곤은 마력의 냄새에 민감한 종족이니까.
“음, 그게 궁금했다면 미리 말했어야지.”
겐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막말을 들었으니, 이 정도 가벼운 복수는 해도 될 거다.
“와. 너 덩치에 비해 속이 좁구나. 몰랐어.”
“······.”
진심으로 실망하는 것 같은 레이나의 말투에 겐트의 표정이 굳었다.
이게 정말 자신의 잘못인 건가?
챙겨달라고 해놓고 욕을 한 건 라엘 아니었나?
가만히 있는데 원투펀치에 라이트 훅까지 맞고, 잽 한 방을 날린 게 그렇게 큰 잘못이란 말인가?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겐트는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헉. 화난 건 아니겠지···? 무서워.’
그리고 겐트의 덩치에 흠칫 놀란 레이나는 겐트에게서 두 발짝 떨어졌다.
*
한때 빈민가에서 마도구 공장을 운영하는 게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값이 싼 부지와 노동력이 원인이었는데, 싼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수많은 사고와 범죄에 노출된 4구역의 폐공장은 결국 버려진 채 방치되었다.
“쯧. 이것도 다 돈인데 말이야.”
폐공장에 들어온 제논은 눈을 찌푸리며 내부를 둘러봤다.
수 많은 조사원들이 폐공장 곳곳을 조사하고 있었다.
“제논 님. 오셨습니까.”
“인사는 됐고, 결과는 나왔나?”
“놈이 나타났던 현장의 검기와 99% 일치합니다.”
“··· 내가 생각하는 그놈이 틀림없겠지?”
“예. 각시탈(Gaksital)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젠장.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떨리는군.”
4구역의 암흑가를 지배하는 제논은 표정을 구기며 바닥에 있는 검기의 흔적을 살폈다.
각시탈은 4구역의 암흑가에게 공포의 상징이었다.
돈, 여자, 권력, 심지어 남자까지 보내봤지만 어떤 걸로 회유해도 통하지 않는 괴물이 각시탈이었다.
‘덕분에 죽을 뻔했지.’
4구역에서 활동할 수 없던 제논은 도망치듯 3구역으로 향했고, 세력 싸움에서 상처를 입고 금지 알헤임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연히 얻은 마기가 제논에게 두 번째 기회를 안겨줬다.
놀랍게도 마기는 그의 몸에 딱 맞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제논은 압도적인 마기의 힘을 바탕으로 3구역을 점령했고, 훨씬 더 강한 세력을 만들어냈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 각시탈.’
각시탈이 자취를 감춘 동안, 제논은 순식간에 4구역을 다시 집어삼켰다.
제국의 3구역과 4구역을 동시에 지배하는 암흑가의 대부가 할 일은 각시탈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
그의 저주는,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라엘은 처음 보는 나무들을 보며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귀왕 반대편에 있는 호수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쪽은 처음 와보는데, 귀왕이 있는 곳하고는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다짜고짜 공격하는 돌아이 드래곤은 아니면 좋겠는데··· 레이나랑 친하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드래곤은 이름만으로도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문화와 설화에서 등장하는 드래곤이지만, 판타지에서는 보통 존경받는 존재다.
그런 드래곤을 만난다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판타지의 드래곤이라면 역시 마법의 종주잖아.’
심지어 대전쟁에서 살아남은 대륙 최후의 드래곤이다.
적어도 천살검주만큼은 강하다고 봐야 한다.
‘드래곤 하면 마법인데, 나도 드디어 파이어볼을 쓸 수 있는 건가?’
이 세상의 마법은 귀족의 전유물이다.
라엘도 전생에서 천재적인 재능으로 밑바닥부터 성장하는 마법사 소설을 읽곤 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귀족이 아니면 마탑 근처에 갈 수도 없고, 마탑의 허가를 받지 않은 마법사는 수배범이 된다.
‘하여튼 개새끼들밖에 없다니까···.’
라엘은 조금 기대하며 걸음 속도를 높였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마법의 재능이 있어서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거 아닐까?
가까워지는 호수를 보며 그런 생각도 했다.
“이야. 갑자기 진짜 판타지가 됐네?”
호수를 본 라엘은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가까이서 본 호수는 대지에 박혀있는 거대한 사파이어 같았다.
잔잔하면서도 투명하게 빛나는 물은 신비한 매력을 품고 있었고, 다양한 야생화와 우아한 나무들이 늘어진 아름다운 광경이 한 번에 들어왔다.
‘이런 곳에 있는 드래곤이라면 나쁜 놈은 아니겠네.’
호수에 수영하는 물고기들이 보이고, 일렁거리는 해초들도 보였다.
드래곤이 수영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였다.
“분명 이 근처에··· 어?”
호수 외곽을 따라 걷던 라엘은,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보글보글-
호수 위에는 여자 한 명이 머리를 박고 물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팔과 다리를 추욱 늘어뜨린 게 저그의 오버로드같은 자세였다.
거품이 올라오는 걸 보면 숨은 쉬고 있는 거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곳에 사람이 있는 건 너무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설마 저게 드래곤인가?’
라엘은 바구니를 잠시 내려놓고 천천히 호수로 다가갔다.
꿈틀-
그때, 머리를 박고 있던 여자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푸하아아아!”
“…!”
깜짝 놀란 라엘은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몸을 일으킨 그녀는 호수의 얕은 곳까지 걸어오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후우. 미안해! 과일을 달라고 해놓고 잠깐 잠들어버렸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과일은 거기 놓고 가도 돼. 고마워. 레이나.”
“어···. 예.”
라엘은 멍한 표정의 여자를 보며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레이나?
아니, 겐트도 아니고 레이나랑 헷갈릴 수 있는 건가?
‘내 얼굴을 제대로 안 보는 거 같은데?’
여자는 대화를 하면서도 라엘과 눈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피한다기보다는, 그냥 귀찮아 보였다.
‘아무리 봐도 저 여자가 티아인 거 같은데.’
이대로 과일 바구니만 넘기고 도망쳐도 되겠지만, 그럼 드래곤과 대화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진 천살검주와 다르게 이쪽 드래곤은 말이 통할 것 같았으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다.
혹시나 귀왕이나 이 세계의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 인간 하나를 소개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 왜 네가 직접 온 거야?”
“··· 제가 그 인간인데요.”
“응?”
“처음 뵙겠습니다. 라엘이라고 합니다.”
“···.”
티아는 그제서야 라엘과 눈을 마주쳤다.
그곳에는 엘프가 아니라 처음 보는 인간 남자가 서 있었다.
“어···? 어?”
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인간의 몸을 훑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호수에서 튀어나와 인간을 붙잡았다.
“뭐야?! 인간? 어떻게 인간에게 이런 향기가···! 너 잠깐 가만히 있어봐!”
“예? 잠깐, 잠깐만요!”
티아는 라엘의 어깨를 꽉 붙잡고 목덜미에 얼굴을 들이댔다.
화들짝 놀란 라엘이 몸을 빼려고 했지만, 이 미친 여자는 손으로 마력을 뿜고 있었다.
“오오, 내 마력에서 벗어나려고 한 거야?! 말도 안 돼! 역시 용족의 피구나!”
티아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실실 웃으며 라엘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다 보니 수치심도 들지 않았다.
‘이런 씨발···. 이딴 게 마법의 종주라고? 여긴 정상이 아무도 없는 건가?’
미친 엘프와 미친 거인족, 미친 노인네와 미친 드래곤까지.
라엘같은 일반인이 살아남기에 너무 고달픈 곳이었다.
“라엘. 혹시 부모 둘 중 하나가 용족이었니?”
잠시 후, 라엘에게서 떨어진 티아는 라엘을 보며 물었다.
“… 고아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고아라고? 그럼 어릴 때 울다가 브레스가 나온 적 있어?”
“그런 적 없는데요.”
“눈에서 눈물 대신 용암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이상하네··· 분명 용족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데. 너는 인간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나질 않거든.”
티아는 라엘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무의식적인 호감이 느껴져.‘
수천 년을 살아온 티아도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장생종인 엘프와 비슷하지만··· 엘프처럼 싱그러운 숲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이 정체 모를 호감은, 동족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했다.
“제가 유독 잘 씻는 편이긴 하죠. 하루에 한 번은 씻으니까요.”
중세 판타지에서 하루에 한 번 씻는 놈은 자신밖에 없을 거다.
이 새끼들은 위생 관념이 없다.
“그런 문제가 아니야. 마력을 다루는 생명체는 영혼에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어. 특히 너같이 강한 인간이라면 무조건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마력에 민감한 드래곤, 티아는 생명체의 영혼에 깃든 마력을 느낄 수 있다.
본래 어떤 생명체든 마력을 익히다 보면 영혼에도 어느 정도 마력이 깃드는 법이다.
고등한 생명체일수록 그 흔적이 깔끔해지지만, 인간족은 그 정도로 영혼의 격이 높지 않다.
그나마 숲의 축복을 받는 엘프는 냄새가 나지 않지만, 다른 종족들은 그 과정에서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마력의 잔여물에서 나는 냄새다.
그러나 눈앞의 인간은 달랐다.
“너는 영혼에 깃든 마력이 아예 보이지 않아. 오히려··· 영혼이 아니라 근육과 핏줄에 마력이 새겨져 있어. 이건 드래곤의 방식이야.”
인간들은 마력 연공법을 사용해 몸에 억지로 마력를 축적한다.
하지만 라엘은 그런 잡기술 없이도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이미 인간이라는 종을 뛰어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마력 패턴도 굉장히 신기해. 몸이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마력을 때려 박은 것 같은데··· 남이 주입한 게 아니라 직접 마력을 움직인 것 같아. 몸 자체가 그에 맞게 변화했어.”
마법의 종주이자 마력의 주인인 드래곤은 온몸이 마법의 매개체다.
눈앞의 인간은 인간족의 몸으로 드래곤이 되어가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티아는 흥미로운 눈으로 라엘을 바라봤다.
“인간족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드래곤 같은 존재라니···. 인간. 아니, 라엘. 넌 정체가 뭐야?”
“···.”
저도 모르겠는데요···.
과일을 주러 온 라엘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깜박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