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224)
짹- 짹짹-
청량한 새 소리가 울려 퍼진다.
라엘은 레이나를 따라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높이 자라있는 세계수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위세를 드러냈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수한 결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레이나. 아까 거인족하고 수인족은 싸우고 있던데, 엘프족은 안 싸우냐?”
“엘프족은 그런 멍청이들하고 달라.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조화의 종족이니까!”
” …. 뭐, 그렇다 치자.”
모든 이종족들을 본 라엘의 경험상 엘프족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레이나에게 말하면 분명 기분 나빠할 거다.
라엘은 눈치가 빨랐으니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후우, 공기는 진짜 좋네.”
“당연하지. 세계수가 뿜어내는 자연의 마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거든.”
숲의 안으로 들어갈수록 신선한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왔다.
레이나의 말대로, 자연의 마력이라는 건 확실히 기분 좋은 힘이었다.
“쟤들은 뭐하는 거야?”
라엘은 근처에 있는 엘프들을 가리켰다.
세계수로 가는 길 곳곳에는 자연의 마력을 내뿜는 엘프들이 보였다.
” …. 어, 음. 세계수를 위해 마법을 쓰고 있는 거야.”
“맞다. 세계수를 점검하러 간다고 했었지? 뭔가 문제가 있는 거야?”
“중요한 일이 있거든. 엘프족에게 있어서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지. 빨리 따라와!”
레이나는 무언가 급한 듯 손짓하며 라엘을 세계수로 인도했다.
라엘은 그 뒤를 따라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엘프족의 전사나 정령사 대부분이 주변에서 마력을 펼치고 있었다.
‘세계수에 진짜 문제가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저런 일을 할 리가 없지않나.
라엘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하아아악-
그때, 레이나의 몸에 붙어있던 버메일 3세가 라엘에게 혀를 내밀고 숲으로 달려갔다.
“저 여우는 뭐냐?”
“으음, 신경쓰지 마. 우린 가자.”
잠시 후,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며 거대한 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거인족도 우스울 정도로 높이 솟아있는 세계수였다.
숲의 중심에 자리 잡은 세계수는 머리를 들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거대한 나무가 근처에 오기 전까지는 안 보이는 것도 신기하네.”
숲 바깥에서는 그냥 조금 큰 나무 같았던 세계수가 눈앞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위험한 야생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까.
“그게 다 세계수의 은혜인 거야.”
“엘프족이 이 숲에 처음 왔을 때 세계수의 씨앗을 가지고 온 거잖아. 그게 이 정도로 커질 줄은 몰랐어.”
“우리가 그만큼 정성을 다했으니까. 자, 너도 기도해. 세계수는 언제나 대답을 주거든.”
레이나는 세계수를 보며 손을 모아 가볍게 기도를 시작했다.
왠지 기도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에, 라엘도 가볍게 손을 모았다.
물론 기도를 하진 않았다.
‘보육원 아이들 데리고 소풍이라도 오면 좋겠네.’
신선한 공기도 좋고, 머리도 시원해진다.
어차피 이종족 연합이니 뭐니 하면서 다들 들어오는 것 같으니, 라엘도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다.
‘그보다 나무가 어떻게 이렇게 큰 걸까.’
라엘이 아는 큰 나무라고 해봤자 바오밥나무 정도다.
눈앞의 세계수는 웬만한 성과 비슷했다. 아마 바오밥나무는 명함도 못 내밀지 않을까?
“라엘, 그거 알아?”
그렇게 잡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가벼운 기도를 끝낸 레이나가 입을 열었다.
“어떤 거?”
“엘프족의 아이는 전부 세계수의 아래에서 태어나. 자연의 종족인 엘프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자연의 마력을 받아야 하거든. 가장 자연의 마력이 강한 세계수 아래에서 생명을 맞이하는 거야.”
“그래? 그건 꽤 신기하네.”
“응. 그날은 엘프족 전체의 행사가 돼. 바솔로드 때문에 최근 몇 년은 그런 일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다시 엘프족이 부흥할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중심에 서겠지!”
“나도 진심으로 응원할게.”
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나에게 엘프족을 이끄는 재능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에렌고르가 있으니 괜찮지않을까.
정 안 되면 그냥 제국의 농사라도 도우면 된다.
지금의 라엘은 일족 전체를 낙하산으로 꽂아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고마워. 아, 그것도 알아? 엘프족은 잉태할 때에도 세계수의 힘을 빌려.”
“잉태?”
“응.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자연의 마력이 필요하니까. 세계수에게 축복을 받아야 하거든.”
“…그래?”
세계수 앞에서 아이를 낳는 것처럼, 세계수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는 건가?
아무리 엘프족이 자연과 친화적인 종족이라지만 그런 광경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라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이었다.
“설마 출산처럼 일족의 축제는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장생종은 원래 임신이 힘든데, 매번 세계수에서 밤을 보낼 순 없잖아. 엘프족은 단 한 사람만 사랑하며 살아가니까… 첫날밤만 이 곳에서 보내는 거야.”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 ”
라엘은 신기한 듯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마지막 선은 지키는 모양이다.
엘프족이라는 종족에게 한 번 더 실망할 뻔했다.
‘여기에서 수많은 엘프들이 사랑을 나누었다는 건가. 느낌이 이상하네.’
아무래도 점검할 것만 확인하고 바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레이나. 점검할 건 뭐야? 그러고보니 다른 엘프는 아무도 없네? 레이네 씨 얼굴도 보고 싶은데.”
“걱정하지마. 아무도 안 올 거니까.”
“안 온다고?”
“라엘. 그거 알아? 세계수의 앞에 설 수 있는 순결한 존재 뿐이야.”
“…그래?”
“응. 세계수는 순결하지 않은 자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든.”
레이나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붉어진 얼굴과 평소답지 않은 분위기에 라엘이 눈을 깜박거렸다.
“라엘, 나 있잖아. 일족이랑 많이 상담했어. 그리고, 한 명의 엘프로서 쟁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
그 순간.
라엘은 무언가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이 세계수에서 …. ”
” …. 아니, 잠시만. 레이나.”
“뭐야. 중요한 타이밍인데. 왜 그래? 인간은 품위가 없네 정말.”
“…더 이상 말하지 마.”
“왜 이제와서 그러는 거야? 항상 눈치 빠른 척 하더니.”
레이나는 뭐가 문제냐는 듯 한 걸음 다가와 라엘의 몸에 달라붙었다.
라엘은 그에 맞춰 손을 뒤로 빼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이런 건 아직 준비가 안 됐잖아. 넌 뭐랄까. 동생 같다고 해야 되나 …. ”
“뭐래. 어이없어. 내가 너보다 100년은 더 살았거든?”
“…”
틀린 말은 아니다.
라엘은 전생을 포함해도 50년 정도 살았으니까.
“크흠, 그렇긴 해도… 나한테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야되나.”
“미안하지만 라엘. 난 시간을 주지 않을 거야. 넌 이제 도망칠 수 없어.”
“어?”
촤아아아악-
그때, 세계수를 주변으로 거대한 자연의 마력이 태동했다.
마치 거대한 그물 같이 변한 마력이 세계수 주변을 촘촘하게 덮었다.
“이건 무슨 …. ”
“이게 바로 정천맹주에게 배운 비기. 천라지망이야!”
“…완전히 돌았네.”
천라지망이 존재한다는 것도 짜증나는데, 대체 왜 엘프족에게 이딴 걸 알려준 거지?
심지어 천라지망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게 뛰어난 마법이었다.
라엘은 쓸데없이 수준 높은 마법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심지어 티아 님이 손봐준 마법이야. 너라도 탈출할 수 없을 거야.”
라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 곳곳에 숨어있는 엘프들이 마력을 열심히 펼치고 있었다.
“이 미친 놈들이 은인한테 …. 잠깐만, 거기 레이네 씨 아니에요? 레이네 씨! 내가 구해준 거 잊었어요 ?! ”
“…죄송해요!”
숲의 구석에서 마력을 짜내던 레이네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라엘에게 감사를 느끼고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레이나의 마음이었다.
안 되면 강제로라도 해내야했다.
“라엘, 얌전히 순결을 버려!”
“…하아. 이러려고 세계수로 유인했구나.”
라엘은 두통을 느끼며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자신에게 마음을 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지금의 라엘은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미안하다. 레이나.”
스릉-
라엘은 조심스럽게 검을 뽑았다.
은십자 기사단에 맡기고 온 성검 대신, 섬광을 들었다.
“너, 너… 날 죽일 생각이야? 그 정도로 내가 싫은 거야 ?! ”
레이나가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을 굳혔다.
라엘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 레이나.”
“그래! 차라리 죽여! 날 죽이기 전까진 안 보낼 거야!”
레이나는 눈을 감고 양 팔을 벌렸다.
차라리 죽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라엘은 조심스럽게 검에 마력을 담았다.
“내가 어떻게 니가 싫겠냐. 레이나. 그냥… 조금만 기다려봐.”
마왕을 죽이고 세계의 위기를 구해도 라엘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안 돼! 은인 님! 저도 죽이십시오!”
“라엘 씨! 안 돼요!”
라엘이 검을 들자 에렌고르와 레이네, 그 외에 엘프들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놈들 뭐지? 설마 진짜 레이나를 벨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천살검 제 3형, 답천.
라엘의 검이 곡선을 그리며 검강을 뽑아냈다.
공간을 뛰어넘은 답천의 검이 천라지망 바깥을 베어냈다.
그 직후. 라엘의 시야가 급변했다.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라엘은 검강을 타고 천라지망 바깥으로 이동했다.
신력을 깨우치고 이미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뛰어넘은 라엘이다.
미안하지만 이 정도 거리 정도는 답천의 검을 타고 뛰어넘을 수 있었다.
“어, 어라. 라엘 ?! 어디갔어!”
“젠장, 은인을 잡아라!”
“천라지망은 무적이라고 했는데! 이럴수가!”
등 뒤로 들려오는 엘프족들의 원망과 함께.
라엘은 숲 밖으로 빠져나왔다.
*
이종족 연합에 방문한 뒤.
라엘은 거진 일주일 정도 보육원에 틀어박혔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긴 했지만, 전부 돌려보냈다.
지금 당장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기사단에 검술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있다.”
그나마 라엘과 접촉할 수 있는 건 배거스의 대장인 제니스 뿐이었다.
라엘이라고 해서 바깥의 일을 하나도 듣지 않을 순 없었다.
“그런 귀찮은 건 다 루카스 시키라니까요.”
“아니, 하지만 네가 직접 가야 배거스 기사단의 면면이 살기도 하고 …. ”
“효율적으로 가자고요. 제니스 아저씨. 검술 재능만 보면 나보다 루카스가 낫다니까요?”
사실 이제와서 확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의 라엘은 재능으로 오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있었으니까.
하지만 뭐… 아마 그렇지않을까?
“…”
제니스는 입을 다물었다.
마왕을 불태운 그 검은 이 대륙의 모든 인간이 보았다.
그런데도 루카스가 더 낫다니.
마음 같아선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윽박을 지르고 싶었다.
“그래. 알겠다 …. ”
하지만 제니스는 말을 더 잇지 않았다.
라엘은 배거스 기사단의 희망인 용사였으니까.
“크흠. 라엘. 교단이나 황궁에 방문할 계획은 없는 거냐?”
“당분간은 없어요.”
“그럼 이종족 연합은 …? ”
“아저씨. 얼마 받았어요? 받은 금화 갯수 만큼 맞을래요?”
“…나는 슬슬 가볼테니 편히 쉬어라. 라엘.”
제니스는 금방 고개를 숙이고 떠났다.
벌써 저런 일도 몇 번째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대체 자신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마음을 드러내는 걸까.
“에휴.”
착- 착-
라엘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에는 열심히 가방을 싸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가 가방에 넣는 것들은 대부분 초콜릿이었다.
“초콜릿은 왜 챙기는 거야?”
“다음 주에 소풍을 간다고 하더구나. 그 준비를 하는 중이다.”
“그래? 잘 적응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라엘은 열심히 가방을 싸는 귀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성녀의 정화에서 깨어난 귀왕은 지금까지 보육원에서 적응중이었다.
‘소풍이라니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하던 일이네.’
세상이 살만하니까 소풍도 가는 구나.
뭐,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건 라엘이 원하던 일이니 불만은 없다.
“귀와, 아니. 야차. 몸 아픈 곳은 없지?”
“괜찮다. 그런데 초콜릿을 많이 먹으니 이가 아프더구나.”
“…그건 사라 선생님한테 이야기해.”
라엘은 귀왕의 몸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이상한 일이 생기진 않을까 몇 번이나 관찰했지만, 귀왕 야차의 몸은 그냥 여자아이와 똑같았다.
인간의 악의에서 탄생한 만큼 육신은 인간과 비슷한 모양이다.
억지로 마기와 귀기를 정화시켰으니, 남은 것은 평범한 육신 뿐이었다.
‘그래도 그 몸에 담을 수 있는 힘은 엄청날테니까… 아마 재능은 대단하지 않을까.’
미래의 기사단장, 혹은 마탑주가 될 거다.
그때 쫌이면 라엘도 힘이 빠질테니, 야차가 보육원을 지켜줄 수 있겠지.
그녀가 엇나가지 않도록 확실하게 잡아줄 필요가 있다.
“라엘. 야차와 놀고 있었구나?”
“아, 사라 선생님.”
그때, 달콤한 향기와 함께 사라가 다가왔다.
그녀는 꿀차를 내밀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일 소풍에 같이 간다고 들었는데, 괜찮겠어? 바깥에 나가기 싫은 거 아니었니?”
“나가기 싫다기 보단 뭐…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요. 그래도 내일은 나가야죠.”
아이들을 지키는 것도 문제지만, 내일 갈 곳은 라엘에게도 중요한 곳이다.
1구역의 중심가, 가장 좋은 자리에 만든 영웅의 무덤이 드디어 완성되었다고 한다.
라엘의 스승, 천살검주가 묻힌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