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225)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대전쟁이 끝난 후, 신년 겸 승전 기념으로 열린 축제의 열기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제국민들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생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원래의 카멘 제국으로 돌아가던 평범한 날.
수도 1구역의 중심에 아이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선생님, 빨리 가요!”
“너무 빠르다. 니아.”
“야차, 늦으면 안 돼. 빨리 와!”
한 손에는 도시락, 한 손에는 야차의 손을 잡은 니아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뒤로 따라오는 아이들의 표정에도 설렘이 가득했다.
오늘은 보육원에 이례없던 소풍을 가는 날이었으니까.
“얘들아. 뛰면 안 된다 -? ”
사라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공원으로 인도했다.
1구역의 중심, 꽃이 만발한 공원으로 아이들이 하나둘씩 들어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선생님. 배고파요!”
“나비다! 나비!”
아이들이 공원을 뛰어다니며 지나가던 귀족들이 눈가를 좁혔지만, 이내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
보육원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따라온 레인 기사단들이 눈을 부라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 사이에는 익숙한 얼굴마저 보였다.
“라엘. 초콜릿이 먹고 싶다면 말하거라.”
“괜찮으니까 너 많이 먹어. 대신 이는 잘 닦아야 해.”
“이를 닦는건 어렵구나. 라엘.”
아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용사 라엘이었다.
“형아. 이거 내가 만든 거야.”
“이야, 해리는 손재주가 좋네. 나중에 꽃집 사장님 되는 거 아니야?”
라엘은 해리가 꽃으로 만들어준 화관을 머리에 얹었다.
지금 라엘은 풀밭에서 뛰어놀며 나비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직접 관리하고 있었다.
1구역에 있는 공원에 평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이유도 그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귀족도 용사에게 불만을 표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용사인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어느 정도는 폭거에 가까운 일이지만… 라엘은 평소에 그 어떤 갑질도 하지 않으니 이 정도는 허용될 거다.
물론 라엘의 독단적인 생각이었다.
“자, 얘들아. 이게 전쟁영웅이신 천살검주 님의 동상이야.”
“우와아아아- 대단하다.”
“엄청 크다아!”
몇몇 아이들은 사라 선생님의 뒤에서 천살검주 동상을 보고 있었다.
그렇다. 이 공원이 바로 영웅의 무덤, 천살검주가 묻힌 곳이다.
천살검주의 무덤을 만드는 데에는 제국의 도움이 컸다.
처음에는 천살검주를 교단이나 황궁에 안치하려 했지만, 라엘이 반대했다.
라엘은 천살검주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 스승님은 죽어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할 거다.
그러니, 1구역의 가장 노른자 땅에 거대한 공원을 만들었다.
그 공원이 오늘에서야 완공된 것이다.
“자자, 해리랑 야차. 사라 선생님한테 가 있어.”
라엘은 사라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혼자 공원을 떠돌았다.
“이 즈음이었는데.”
거대한 천살검주의 동상 뒷편, 얕게 솟은 동산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라엘이 천살검주를 묻은 곳이다.
아마 아직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는 않았을 거다.
지금은 비석 하나만 세워져 있을 뿐이지만, 나중에는 마치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건물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볼 수 있게 만들 생각이다.
라엘이 무덤으로 다가가자, 마법사 중 하나가 라엘에게 다가왔다.
“잠시만요. 이 뒤는… 아, 용사님!”
“지금 들어갈 수 없나? 잠시 스승님을 뵙고 오려는데.”
“무덤의 감시 마법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용사님이라면 들어가셔도 괜찮습니다!”
“그래. 고생해.”
라엘은 무덤에 마법을 설치하는 마법사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안으로 들어갔다.
얕은 동산 위로 올라가자, 깔끔한 비석 하나가 보였다.
“너무 늦게 찾아왔나? 그래도 동상은 멋있지 않습니까?”
라엘은 천살검주의 묘비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천살검주의 동상은 뒤에서 봐도 엄청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천살검주가 역천의 검을 펼치는 모습이다.
무려 라엘이 직접 검수했으니, 그 디테일은 엄청날 거다.
저 동상 하나를 만든다고 마법사 수백 명이 갈려 나갔다.
이 공원 자체가 1구역의 노른자 땅이고, 황궁에서도 보이는 자리였으니 아마 제국의 명물이 되기는 충분할 거다.
“제국에서 제일 좋은 술입니다. 스승님.”
조르르륵-
라엘은 챙겨온 술병을 들고 무덤에 그대로 따르기 시작했다.
천살검주가 술을 좋아했었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검술 수련에 몰두하느라 제대로 즐겨본 적도 없을 거다.
그럼 죽어서라도 많이 마시게 해드려야지.
“천살검주. 참 강한 인간이었지.”
문득,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라엘의 뒤에 섰다.
이 익숙한 마력은 티아였다.
“티아 님? 여긴 웬 일이십니까.”
“마탑의 마법사들이 네가 방문했다는 말을 하길래, 찾아왔어.”
“소식 참 빠르시네.”
천살검주의 무덤에 들어온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찾아오다니.
요즘 마탑에서 놀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역시 드래곤은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한 모양이다.
“무례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티아는 미소를 지으며 라엘을 바라보았다.
“제가 무례한 게 하루이틀입니까. 그러고보니 티아 님은 천살검주 님하고 잘 알던 사이에요?”
“잘 알던 사이라고 해야 할까. 특별 경비대에서 지낼 때 가끔 대화를 한 적은 있지. 그때도 검밖에 모르던 인간이긴 했지. 나는 라엘 네가 훨씬 더 재밌었어.”
“스승님이 재미있는 편은 아니니까요. 맞아. 요즘 마탑에 간다는 말이 있던데, 인간 사이에서 잘 지내시네요? 전에 인간한테는 안 좋은 냄새가 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신력을 보며 새로운 마법을 개발했거든. 격이 낮은 존재와 있어도 불편하지 않게 해주는 대단한 마법이야.”
“아하 …. ”
“인간의 마법도 보다 보면 꽤 재미있거든. 시간을 떼울 겸 들리고 있어. 요즈음 푸른 마탑주가 너한테 시간이 나면 마탑에 들르라고 독촉하던데, 배거스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
“…그 사람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데.”
푸른 마탑주의 오해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페르마는 이제 라엘을 거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제와서 라엘이 드래곤이 아니라는 걸 밝히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랬다가는 그가 가진 마법사로서의 꿈이 완전히 박살나 버릴 것이다.
“인간은 참 재미있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아.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네.”
“티아 님은 드래곤이니까요.”
라엘은 적당히 대답하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수도를 둘러보다 보니, 이런 여유로운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라엘은 이런 삶을 위해 싸워온 것이다.
“이 공원 경치 참 좋지 않습니까? 저기서 느껴지는 자연의 마력도… 음?”
그때, 라엘의 시야 한 편에 이상한 얼굴들이 보였다.
보육원의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는 엘프였다.
티아와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이에, 어느새 엘프족이 공원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맛있어! 엘프 누나 고마워!”
“아아, 용사님이 엘프족과 가족이 된다면 좋을 텐데!”
“용사 님? 형아 말이야?”
“응응. 맞아요. 라엘 님께서 엘프족과 가족이 되면 이런 과일을 매일 먹을 수 있답니다?”
엘프들은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달콤한 과일을 건네고 있었다.
누가 보면 사이비 포교라도 하는 줄 알 것 같다.
“…저거 레이네 씨 아니야?”
갑작스럽게 나타난 엘프족들을 보며 라엘이 헛웃음을 지었다.
저들이 대체 왜 여기 있는가. 그 답은 간단했다.
“…어쩐지 갑자기 티아 님이 왜 나타나나 했는데. 티아 님 짓이죠?”
오늘 라엘이 여기 있는 것을 아는 건 사라 선생님과 제니스, 그리고 여기서 만난 티아 뿐이다.
사라 선생님은 당연히 아닐 거고, 제니스도 정보를 유출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으니 아닐 거다.
남은 것은 단 하나.
이 미친 드래곤 뿐이다.
“드래곤의 적은 권태라고 말했잖아. 이종족 연합이라니, 하는 짓이 재미있지 않아?”
“허, 이번엔 그 천라지망인가 뭔가는 안 쓰네요. 티아 님이 마법을 손봐줬다고 들었는데.”
“그 마법으로 널 잡을 생각일 줄은 몰랐지. 어차피 쓸모없을 텐데 뭐하러 고생을 해? 차라리 보육원 아이들에게 잘 보이라고 했어. 좋은 작전이지?”
” ….. 예. 참 쓸데없이 좋네요.”
라엘은 엘프족 사이에서 손을 흔드는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꽤나 거리가 있었지만, 라엘의 감각은 그녀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라엘! 언제든지 마음 바뀌면 이야기해! 꼭!”
“힘내라. 라엘.”
그녀의 뒤에는 거대한 덩치의 겐트도 보였다.
라엘이 고개를 젓고 있을 때.
공원의 입구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어머, 라엘 씨. 우연이네요. 천살검주 님의 공원에 들렀는데 때마침 이곳에 라엘 씨가 있다니. 후횻.”
“이 모든 것이 운명입니다. 유리엘 폐하. 하루 빨리 국서 자리를 확정짓는 판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유리와 이자벨.
마치 연기라도 하는 것처럼 공원으로 들어온 둘은 라엘과 눈을 마주쳤다.
“아니, 유리 씨?”
황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야?
라엘이 어이가 없는 눈으로 유리를 바라보자, 그녀도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공원 안으로 끗끗이 걸음을 옮겼다.
“아침 댓바람부터 갑자기 웬 공원을… 으. 졸려.”
그녀의 뒤에는 카멘 기사단 자리를 차지한 레인 기사단이 보였다.
선두에 있는 레인이 하품하는 걸 보니, 일정이 굉장히 갑작스러웠던 모양이다.
“라-멘. 신의 인도가 있기를. 어라? 오늘 기도를 드릴 곳에 신도분들이 굉장히 많네요.”
그 직후, 세실리아와 은십자 기사단도 공원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걸어오며 두 손을 모았다.
“마르코 단장님이 왔어야 되는데, 왜 내가 …. ”
“칼슨 경. 저도 있지않습니까. 라엘 경의 얼굴을 봐서라도 참으십시오.”
은십자 기사단의 선두에는 칼슨과 루카스가 보였는데, 칼슨의 표정이 참 안 좋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도박판에서 지낼 거라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소집이라도 된 모양이다.
피하던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에 마주한 라엘은 두통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다 티아 님 작품입니까?”
“재미있지 않나? 아니라면 아쉽게 됐어.”
“재밌긴 개뿔 …. ”
“라엘. 인간은 겨우 100년 정도밖에 살지 못해. 물론 너나 저 사람들은 조금 더 오래 살 수도 있겠지만 …. 즐길 수 있는 건 즐겨야지.”
라엘이 불평에 티아가 싱긋 웃음을 지었다.
드래곤의 시선에서 보는 인간들의 삶은 너무나 짧았다.
저런 별 거 아닌 문제들은 곧바로 해결해버려야 한다.
“허, 참 고맙습니다.”
라엘은 피식 웃으면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뒤로 거대한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호수도 있고, 울창한 숲도 있다.
따스한 햇빛이 얼굴을 비추고 주변에는 라엘이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즐길 수 있는 건 즐겨야 되는 건가.’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삶.
생각해보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라엘이 평생 추구한 삶이다.
“뭐… 그러게요. 고민할 필요 없을지도.”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건 라엘과 맞지 않는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기 위해 개 같이 노력했으니까.
이제 마음 가는 대로 살면서, 정승처럼 즐겨도 되지 않을까.
“스승님. 다음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라엘은 술병에 남아있는 술을 전부 털어내고, 무덤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사라지지 않은 봄의 시작.
라엘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친구들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