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4)
제국 경비대의 망나니 소드마스터-4화(4/105)
귀왕(鬼王)
겐트와 진짜 친구가 된 다음 날.
나는 유리를 따라 부지 안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라엘 씨. 겐트 씨의 추천이 있긴 했지만··· 정말 괜찮겠어요? 아직 적응기가 일주일 정도 남았거든요. 정신이 괜찮아도 몸은 적응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괜찮습니다.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이미 충분히 적응한 것 같습니다.”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유리 앞에서 양팔을 이리저리 돌리며 몸을 풀었다.
겐트도 그렇고 유리도 그렇고 이 지역의 마력이 일그러져있다는 말을 반복해 왔다.
‘영혼을 갉아먹는 알헤임 같은 곳이라고 했지.’
이런 지역에 온 건 처음이지만, 나는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 체질 덕분이야.’
저주를 받지 않지만, 축복도 받지 못하는 멍청한 체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혼이 없기에 영혼을 갉아먹는 마기(魔氣)에도 저항할 수 있었다.
‘이걸 진작 알았으면 알헤임 지역의 경비대가 되는 건데.’
거긴 생명 수당까지 받으니, 봉급이 훨씬 셀거다.
적어도 박봉에 시달리는 수도 경비대보단 낫겠지.
심지어 거기서 사고 친다고 특별 경비대로 끌려오지도 않을 것이고.
‘하지만··· 이건 위기이자 기회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고, 특별 경비대 전출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차기 황제인 유리와 친분을 쌓아서 안 좋을 건 없다.
굳이 출세하지 않아도 사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
“라엘 님도 그렇게까지 말하시니 오늘부터 업무에 들어갈게요.”
“예. 이제는 업무에 대해 알려주시는 겁니까?”
지금까지 슬쩍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줬으니 나도 답답했다.
“가면서 천천히 설명해 드릴게요.”
유리는 방긋 웃으며 앞장서서 걸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유리, 겐트, 레이나.
셋은 특별 경비대의 창설 인원이다.
3주간 그들을 관찰한 결과, 일정 주기대로 한 명씩 모습을 감추는 걸 알 수 있었다.
‘특별 경비대니까···.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건가?’
수많은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려고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까지 가본 적 없는 길로 걸어가며 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국 특별 경비대는 창설된 지 10년도 되지 않았어요.”
“예. 알고 있습니다. 대전쟁이 멈추고 마족과 공식적인 평화협정을 맺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겼죠.
알헤임에 있는 마족들과 체결한 평화협정.
물론 소설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잘 알고 계시네요. 제국 특별 경비대는 대전쟁 때 제국으로 흘러들어온 괴물들을 감시하는 조직이에요.”
“··· 괴물?”
“지금까지 그녀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못한 이유는··· 그녀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영혼에 손상이 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다행히 라엘 씨는 괜찮아 보이지만요.”
항상 옅은 미소를 짓는 유리의 표정이 굳었다.
앞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 전에 궁금한 걸 물었다.
“유리 씨. 중요한 말을 듣기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얼마든지요.”
“뒤에 저것들은 왜 따라오는 겁니까?”
내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본 유리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나무 뒤에 어설프게 숨은 둘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이나 씨? 아니, 겐트 씨까지?! 언제 여기까지 따라오신 거죠?”
“깊은 곳까지 왔는데도 감각이 살아있다니, 확실히 감각은 날카롭네.”
“그래. 라엘은 특별하다고 말하지않았나.”
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무에서 몸을 드러낸 엘프와 거인족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대놓고 따라와 놓고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제국 특별 경비대가 아니라 개그맨 공채를 준비하는 건가?
“라엘 씨. 저분들을 눈치채다니, 당신은 대체···.”
옆에서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유리를 보니 내가 더 황당했지만, 금방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력의 일그러짐이 원인이겠지.
저 둘은 마력에 몸을 숨긴 거고, 유리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눈치챈 거다.
“일단 하던 말부터 마저 해주세요. 그래서 그 괴물이란 게 누군데요?”
“··· 저희가 감시하는 괴물은 귀왕 야차(鬼王 夜叉)예요.”
“귀왕?”
나는 귀왕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눈가를 좁혔다.
원작 소설에서 들어봤던 이름이다.
제국과 인류의 재앙.
평화로운 제국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최강의 흉수.
최종 보스보다도 많은 희생자를 만든 최악의 악당.
제국의 성녀와 동급인 중요도 1등급의 악역이다.
‘··· 7년은 지나야 나오는 놈이 왜 벌써 나와?’
아직 성녀도 임명되지 않은 시점이다.
원작의 스토리는 아직도 중반부였고, 진짜 위기는 시작도 안 했다.
그런데 내 주변에 꼬이는 사람들은 평범하지가 않았다.
‘미래 제국 황제와 그 측근 두 명. 그리고 귀왕까지 있다고?’
대체 이 특별 경비대라는 곳이 뭐길래 중요도 1등급 들이 모여있는 거지?
원작의 주인공들은 아카데미에서 놀고 있을 텐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내리는 것인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특별 경비대의 업무가 귀왕을 감시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그녀는 며칠에 한 번씩 지성체를 마주해야 하거든요.”
“얼추 이해는 했는데···. 그런 괴물을 왜 평범한 경비대에게 맡기는 겁니까? 그냥 죽여버리지.”
“··· 귀왕은 죽일 수 없어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인간의 악의니까요. 다른 말로 하면 그녀를 죽이는 순간 세상에 인간의 악의가 풀려나오는 거죠.”
귀왕은 판도라의 상자다.
상자를 여는 순간 악의가 터져 나온다.
“그럼 악의를 정화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 건 교단 사제들의 전문이잖아요.”
“아니요. 교단이라고 해도 귀왕을 정화할 수는 없어요. 전설 속 성녀님이나 용사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힘들어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원작 소설에서는 용사와 성녀가 둘 다 튀어나온다.
쓰레기 소설인 줄 알았는데 나름 개연성이라는 게 있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네요. 그 정도로 강한 놈이라면 성직자나 기사가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일개 경비대한테 일을 맡기다니.”
“··· 저도 거기까지는 몰라요. 저도 라엘 씨처럼 일개 경비대니까요. 제가 아는 것은 우리가 정해진 시간만큼 그녀와 마주 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뿐이에요.”
“흐음. 하긴, 그렇겠죠.”
유리가 황녀라는 걸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에 어이없는 거짓말이지만, 그녀의 입꼬리가 일그러지는 걸 보면 그녀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뒤를 살피며 유리의 뒤를 따라갔다.
다행히 겐트와 레이나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이쪽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특별 경비대 부지에서도 외진 곳에 도착했다.
우거진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는 숲 가운데에 땅속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의 입구는 숲과 대비되듯 강철이 덮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계단과 연결된 지하의 벽 전체가 강철로 뒤덮여있었다.
탕탕-
나는 흙과 다른 감촉을 밟으며 입을 열었다.
“··· 너무 불길한 계단인데요.”
“예. 귀신을 봉인한 곳이니까요.”
나는 유리의 인도를 따라 불길한 계단을 내려갔다.
약한 조명에 의지해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음침한 기운이 점점 강해지고, 괜히 몸이 으슬으슬해진다.
‘아니, 단순히 기분이 아니라 진짜 추워진 거 같은데.’
햇빛을 받지 못하는 지하는 원래 기온이 낮지만, 이곳은 그 이상으로 춥다.
게다가 이 벽도 평범한 강철이 아니었다.
벽에 손을 대자, 차가운 한기가 몸에 스며들었다. 세상에 이런 신비한 금속은 단 하나밖에 없다.
“··· 이거 만년한철 맞죠?”
“만년한철과 아다만티움의 합금이에요. 단언컨대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항마금속이죠. 귀왕과 접촉하면서 그 음기를 흡수했으니 더욱 차가울 거예요.”
만 년간 음기를 흡수한 강철인 만년한철.
그리고 부르는 게 값이라는 지상 최강의 금속인 아다만티움.
나 같은 경비대는 평생 한 번을 보기도 힘든 전설 속의 금속이다.
‘그 비싼 것들을 이딴 구석에 처박아놨다고?’
귀왕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괴물인걸까.
계단을 한칸 한칸 내려갈 수록 압박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몸이 으슬으슬하다 못해 아려왔다.
앞에서 걷는 유리는 더욱 힘들어 보였다.
“라엘 씨. 이 밑으로는 혼자 들어가셔야 해요. 둘 이상의 인간이 들어왔다가는 그녀의 악의가 폭주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유리 씨. 고마워요.”
“예. 그럼 8시간 뒤에 오겠습니다. ··· 버티기 힘들면 곧바로 나오셔도 돼요.”
나는 유리의 걱정스러운 말을 들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의 끝에는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철문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어둡고 축축한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나는 몸을 덮는 싸한 기운을 무시한 채 발을 내디뎠다.
‘저건··· 감옥이잖아?’
몇 걸음 걸어가자, 감옥 같은 구조물이 보였다.
만년한철과 아다만티움으로 이루어진 합금은 감옥까지 에워싸고 있었고, 벽에는 교단의 기도문이 새겨져 있었다.
“···.”
덜컥-
온 몸의 감각이 위험하다고 울부짖었다.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매어져 있는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나는 목을 조여오는 것 같은 살기를 느끼며 정면을 바라봤다.
단순한 감옥이라기엔 이질적인 공간.
그 안에 소녀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소녀라고 할 순 없겠네.’
붉은 머리카락과 불꽃처럼 반짝이는 눈은 아름다웠지만, 머리에 솟아있는 작은 뿔이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전신을 덮은 검은 옷과 그 작은 몸에서 새어 나오는 불길한 기운은 어떠한지.
영혼이 없는 나도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소녀의 몸에는 수많은 구속구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감옥 내부의 흐릿한 빛이 구속구들에 반사되었다.
나는 그제서야 구속구에 새겨져 있는 기도문을 읽을 수 있었다. 감옥의 벽에 새겨진 것과 똑같았다.
어떤 영물이든 붙잡을 수 있을 만한 항마의 사슬 수 십개가 모여 단 하나의 존재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다.
스릉-
인기척을 느낀 괴물은 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괴물과 눈을 마주친 나는 이내 눈을 부릅떴다.
– 심장을 물어뜯고 싶어.
– 네 입을 찢어버리고 싶어.
– 손가락을 하나하나 뜯어내고 싶어.
머릿속을 울리는 불길한 목소리.
경험해 봤기에 알 수 있다.
–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이것은 저주였다.
그것도 내 체질을 무시할 정도로 강대한 저주.
‘제국 이 개새끼들아··· 저런 괴물은 좀 죽이라고.’
근육이 저릴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 심장을 옥죄어왔다.
짙은 살기가 온몸을 뒤덮고, 저항할 수 없는 폭거가 어깨를 짓누른다.
이 정도로 강한 저주가 느껴진다는 것은, 저주가 언제든지 실체화해 현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까드득-
본능적으로 강하게 씹은 입술에서 피 맛이 느껴진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검을 꽉 쥐며 현실 감각을 되찾았다.
머리를 채우는 저주와 폭언을 의지로 지워냈다.
‘위험할 뻔했어. 설마 이런 괴물을 숨겨놓고 있을 줄이야.’
저딴 구속구는 몇백 개가 있어도 소용없다.
눈앞의 존재는 언제든지 날 죽일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인간의 몸으로 귀왕을 마주친 순간 공포를 참을 수 없었다.
‘이러니까 사람이 미치지.’
영혼이 없는 내가 이 정도인데.
과연 이 세계 인간이 놈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압박감은 어떨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
감옥의 옆에는 교도관이 사용하는 듯한 의자와 책상도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귀왕의 존재감에 긴장한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조용한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귀왕이었다.
“정신을 차리는 게 빠르군. 기사단장인가?”
“···.”
살짝이나마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사라졌다.
나는 천천히 귀왕과 눈을 마주쳤다.
몸을 붙잡는 구속구는 그녀의 눈빛을 전혀 죽이지 못했고, 그녀는 그 나이대의 소녀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행동은 순수한 궁금증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제국의 기사단장 정도 되는 남자가 어째서 이런 곳에 좌천된 거지? 귀족을 암살하기라도 했나?”
“···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던 백작가의 망나니를 좀 팼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몸을 채우던 불길함이 조금은 줄었다.
이 상황에 적응해서 그런 것인지, 귀왕이 힘을 자제하고 있는 것인지.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
이 대화를 더 이어가야 한다.
나의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기사단장이 좌천될 정도로 제국이 부패했다고? 신기한 일이로구나.”
“··· 저는 기사단장이 아닙니다.”
“뭐? 그럼 왕족의 호위인가?”
“아니요. 수도의 경비대장입니다. 제3경비대를 맡고 있었죠.”
귀왕은 내 상식에서 벗어난 존재다.
그런 존재가 날 오해했다가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사실을 정정해 줬는데, 그녀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시선만으로 공포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
빤히 날 바라보던 귀왕은, 잠시 후 질린다는 듯 몸을 돌렸다.
나는 그제서야 내 몸에 흐르는 식은 땀을 인지했다.
‘···.’
온 몸의 근육이 긴장하고 있다.
마주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정신력과 체력의 소모가 너무 심했다.
나는 등을 돌린 귀왕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귀왕 야차.
인간의 희망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종교라면, 인간의 악의가 형상화된 것은 귀신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은 희망이라고 하지만, 악의도 그에 지지 않는다.
특히 지금처럼 악의가 강한 세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을 품은 인간의 영혼이 짙은 악의와 만나 만들어진 귀(鬼).
귀왕은 그렇게 탄생했다.
수많은 인간이 죽어 나갔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고 저항할 수도 없는 공포였다.
수많은 인간의 피를 마신 귀왕의 힘은 하늘에 도달해 신조차 비웃을 만큼 강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야차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참 쓸데없는 정보들이네.’
나는 소설의 배경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나라 하나는 쉽게 멸망시킬 만한 괴물.
제국은 대체 왜 이 괴물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런 곳에 끌고 오냐. 나만큼 제국을 생각하는 경비대가 어디 있다고···.’
자신처럼 제국에 충성한 경비대가 얼마나 있다고 이런 시련을 내리는 것인가.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자기가 겪은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한다.
‘아까처럼 무슨 말이라도 하던가. 불안해 죽겠네.’
기사단장 어쩌고 하던 귀왕은 몇 시간째 아무 말도 없었다.
유리가 말하길 8시간을 버텨야 한다고 했는데, 아직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기분 나쁜 감옥의 분위기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는 것이다.
만년한철은 만년의 음기가 담겨있는 금속이다.
사방이 그런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온 몸이 으슬으슬할 수밖에에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오히려 몸이 편해졌다.
‘쟤는 왜 계속 날 보고 있는 거야?’
문제는 귀왕의 시선이다.
귀왕은 조금 전부터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말을 걸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직도 불길함은 여전했다.
그 시선을 느끼고 있자니 괜히 더 추운 거 같아서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큭큭. 캬하학.”
“···?”
경박한 웃음소리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자 약속이라도 한 듯 귀왕의 입이 열렸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인간. 너는 참 신기하구나.”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붉은 안광을 내뿜었다.
겉모습이 순수한 아이 같아도 그녀에게서 새어 나오는 살기는 진짜였다.
그 기괴한 조화가 귀왕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저 미친 요괴는 내가 뭘 했다고 재미있다는 거야.’
감옥 너머로 새어 나오는 살기에 몸이 움찔거렸다.
지금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가야 하나?
‘··· 아니야. 침착하자.’
3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저 봉인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리 귀왕이라해도 지금 당장 봉인을 풀고 나를 죽일 순 없다.
내 감각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아도 두려움이 느껴진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할 정도의 강한 살기는 내 감각마저 혼란스럽게 했다.
“하아···.”
온몸이 수렁에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서서히 육체를 잠식하는 공포는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생의 군가라도 불러보는데, 지금 내가 있는 나라는 제국이다.
나를 특별 경비대에 박아놓은 제국을 지킨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결국 전생의 신들에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귀왕의 눈을 피해 열심히 기도문을 외웠다.
그래도 신은 끗발이 있는지,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
기도문을 달달 외우고, 교단의 가르침 몇 구절을 간신히 떠올리자 조금이나마 가슴이 편해졌다.
‘그래도 이제 버틸 만해졌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숨도 쉬기 힘들었지만, 이제 호흡은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감옥의 귀기에 익숙해지던 와중, 테이블에 있던 시계가 드디어 8시간이 지났다고 알렸다.
다행히 귀왕은 낄낄대며 웃은 뒤로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의자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동방예의지국 출신답게 인사는 했다.
고개 꾸벅 숙이고 몸을 돌렸는데, 뒤늦게 귀왕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다음에 올 때는.”
“···?”
깜짝 놀란 나는 몸을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감옥 안에 있었다.
“단 거라도 가져오렴. 이 좁은 곳에 갇혀있다 보니 입이 심심하니까.”
“아, 예. 꼭 기억할게요.”
무슨 개소리냐고 묻고 싶지만, 라엘은 조용히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이 감옥 주변에 있기 싫었다.
감옥에서 멀어지고 문을 열 때까지 심장의 두근거림은 진정하지 않았다.
끼익- 쿵.
감옥의 문이 닫힌 뒤.
라엘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 뒤질 뻔했네.”
귀왕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확실히 몸이 진정되는 느낌이다.
영혼이 없다해도 그녀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살기와 귀기는 생생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피며 현실 감각을 되찾았다.
‘감각이 살아있는 걸 보면 죽을 일은 없는 것 같단 말이지···.’
여러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가는데, 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특별 경비대 3명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도 내 걱정을 해주고 있었구나.’
지금까지 저들이 업무를 나가는 동안 단체로 자리를 비우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그 말은 즉 첫경험인 나를 걱정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조금이나마 동료애라는 게 느껴질 것 같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건 뭐야?’
그리고, 겐트와 레이나가 앞뒤로 들고 있는 들것을 바라보았다.
들것은 성인 남성 하나를 옮길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