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49)
제국 경비대의 망나니 소드마스터-49화(49/105)
< 천살검 >
유리의 업무실에 들어온 라엘은, 두 명의 여자를 보고 잠깐 멈춰섰다.
한 명은 의자에 앉아있는 유리였고 한 명은 파티장에서 봤던 시녀였다.
그녀는 유리의 옆에서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서있었다.
‘시녀까지 데리고 왔다는 건 제대로 이야기하겠다는 뜻이네.’
유리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까 고민했는데, 시녀가 있는 걸 보니 유리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한 모양이다.
이러면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겠지.
라엘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라엘 님. 제 이름은 이자벨이라고 합니다. 제2황녀 유리엘 님의 전속 시녀를 맡고 있습니다.”
먼저 입을 연 건 이자벨이었다.
그녀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라엘에게 인사했다.
“반가워. 이자벨.”
“···.”
이자벨은 순간 멈칫하며 라엘을 바라봤다.
황실의 전속 시녀는 그만큼의 예절과 격식이 필요하기에 고위 귀족만 맡을 수 있다.
평민에게 하대받을 위치는 아니었다.
‘··· 평민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지. 내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기도 하니까.’
이자벨은 라엘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 라엘 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겠습니다. 라엘 님이 아니었다면··· 그때 황녀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별 거 아니야.”
“··· 크흠. 예. 그러나 아직 저희는 라엘 님을···.”
이자벨은 하대하는 라엘을 계속 신경쓰며 말을 이었다.
“이자벨. 내가 말할게.”
“··· 알겠습니다.”
이자벨은 유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그녀의 뒤에 섰다.
라엘에게 하대받는 상황이 끝나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라엘 씨. 그때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말하지 못했네요. 다시 한 번 제 입으로 감사드리고싶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리는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했다.
라엘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으니, 몇 번이나 감사해도 모자랐다.
“아닙니다. 유리 씨.”
“라엘 씨는 제가 황녀인 걸 알아도 말투가 변하지않는군요.”
“··· 죄송합니다. 제가 길바닥 출신이라서요.”
“괜찮아요. 그게 오히려 라엘 씨 다워서 좋네요.”
유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황족이라는 이름에 목매지않았다.
진짜 제국을 이끌어가기 위해선 황족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유리라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차기 황제야. 마음이 넓어.’
한편 라엘은 유리의 마음가짐에 감탄했다.
중세 판타지에 이런 황족이 있다는 게 믿기지않을 정도였다.
역시 황금 동아줄이었다.
“제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예의겠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라엘 씨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어요. 파티장에는 어떻게 찾아오신 건가요?”
“천천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라엘은 레인에게 했던 말을 유리에게 그대로 전했다.
배거스에 대한 걸 떠벌리고 다니는 게 신경쓰이긴했지만, 레인과 2황녀 정도면 알려져도 큰 상관은 없을거다.
“···그렇게 해서 파티장에 도착한 거고, 레인 기사단과 푸른 마탑을 부른 건 보험이었습니다. 제가 1시간 이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절 따라오라고 말해놨거든요.”
“그런 정보를 파악하다니, 라엘 씨는 독자적인 정보 길드를 가지고 있다는 건가요? 당신은 대체···?”
자신이 배거스를 조종하는 건 사실이지만, 저렇게 말하니까 무슨 세계의 흑막 같다.
라엘은 손을 저으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게 대단한 곳은 아닙니다. 거지들이 모인 배거스라는 곳인데, 이제 막 커지고 있는 정보길드에요.”
“배, 배거스?!”
그때, 유리의 뒤에 서있던 이자벨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수도의 하위 구역을 중심으로 규모를 키우고 있는 정보길드 배거스 말인가요?”
“··· 아마 그게 맞을겁니다. 배거스는 하나 밖에 없을테니까요.”
“이, 이럴수가. 배거스의 주인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할 뻔 한 거지···.”
이자벨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아까 라엘의 반말을 듣고도 넘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생명의 은인이었으니 이 정도는 참자는 생각이었는데, 덕분에 실수를 하지 않았다.
‘배거스가 생각보다 유명하네?’
이자벨의 반응을 보니 거지들이 생각보다 일을 잘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앞으로 좀 더 잘해줘야 할 것 같다.
“대화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유리엘 님, 제가 라엘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응. 그렇게 해.”
“라엘 님. 레인 기사단과 푸른 마탑에 대한 설명도 듣고싶습니다. 그들의 일부도 아니고 레인 단장과 푸른 마탑주가 움직였다는 건··· 당신의 뒤에 거물이 있다는 뜻일까요?”
이자벨은 라엘에게 감사하고 있었지만, 그를 완전히 믿지않고 있었다.
그의 인품을 의심하는 게 아니었다.
라엘의 뒤에 누군가가 있고, 라엘은 꼭두각시가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그녀는 2황녀를 위해 모든 걸 의심해야했다.
“··· 이자벨. 라엘 씨에 대한 걸 너무 캐물으면 안돼.”
“아니요. 유리엘 님은 황족입니다. 설령 창피를 당하거나 나중에 사과하는 일이 있어도 이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제국의 황족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되니까요.”
그리고 이 질문은 유리가 아니라 이자벨이 해야했다.
만약 상대방이 질문에 불쾌함을 느낀다면, 책임은 이자벨이 져야했으니까.
‘머리가 좋네.’
라엘은 이자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약간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황궁 시녀답게 의외로 똑부러지는 면이 있었다.
“게다가, 라엘 님에게는 유리엘 님을 구할만한 동기가 없습니다. 2황녀님이 위험하다고 해서 목숨을 걸고 카멘 기사단과 싸울 이유는 없어요.”
그건 카멘 기사단이 냅다 덤벼서 그런 거 긴 한데···.
아무튼, 라엘은 이자벨의 말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푸른 마탑주님과 친해진 건 천상제의 행사 때문이었어. 그 분이 내기를 좋아하는 건 알지? 내기에서 이기고 푸른 마탑의 친구가 되었거든.”
“···.”
푸른 마탑주의 이상한 성격은 그녀도 알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다.
이게 사실인 지는 푸른 마탑에 확인해보면 된다.
이자벨은 라엘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레인 단장님도 비슷해. 내 재능을 처음 알아본 게 레인 단장님이었어.”
“그럼 라엘 님은 레인 기사단 소속인겁니까?”
“아니, 레인 단장님과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야. 난 굳이 따지자면 배거스 소속이지.”
“배거스···.”
라엘이 배거스의 소속이라는 말은 일리가 있었다.
저 정도의 강자가 있다면 배거스가 그렇게 빨리 자리를 잡은 것도 이해가 간다.
‘배거스가 푸른 마탑과 친하다는 소문이 있긴하지만, 라엘 씨는 검사야. 푸른 마탑 소속일리가 없어.’
마탑은 기본적으로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을 배척한다.
그가 푸른 마탑 소속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레인 기사단도 가능성은 적어.’
저렇게 강한 검사가 레인 기사단이었다면 레인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그의 성격상 다음 시대의 소드마스터가 레인 기사단 소속이라며 난리를 쳤을 게 분명하다.
이자벨은 그제서야 라엘의 뒤에 아무도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렇다면 2황녀님이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파티장으로 온 이유는 뭔가요?”
“난 2황녀님을 지지하고 싶으니까.”
“···!”
둘의 대화를 듣던 유리는 라엘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저런 말을 들어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라엘 씨. 마음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를 지지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라엘 씨는 저같은 황녀의 도움이 없어도 제국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거에요.”
라엘은 카멘 기사단 셋을 이길 정도로 강한 검사고, 배거스라는 엄청난 정보 길드까지 가지고 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몇 년 안에 제국의 중심에 설 수 있는 남자다.
“황실의 세력 다툼은 지지하는 세력의 힘이 중요해요. 저를 지지하셨다가는 공격받을 일이 많을 거에요.”
라엘이 아무리 강한 검사라도 혼자 이 쪽에 붙는 건 위험하다.
설령 배거스가 함께 붙는다고 해도 똑같다.
유리에게는 귀족들이 알아줄만한 세력이 부족했다.
“··· 대공 전하와 레인 기사단이 저와 함께 2황녀님을 지지할 겁니다.”
라엘은, 자연스럽게 대공과 레인 기사단의 이름을 들먹였다.
‘저와 함께’같은 말을 붙여서 자신의 급을 높이는 것도 잊지않았다.
“네···?”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라엘을 바라봤다.
“대공 전하와 레인 기사단이라니?! 그 말이 정말인가요?”
옆에 서있던 이자벨도 깜짝 놀라 물었다.
“예. 대공 전하께서는··· 평민을 사랑하는 자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라엘은 레인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읊기 시작했다.
평민을 사랑하는 2황녀가 제국의 황제가 되어야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저도 그 말에 동의하고 있어요. 제가 바라는 건 딱 하나. 평민들에게 좋은 세상이 오는 것입니다. 2황녀님이라면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실테니까요.”
물론, 라엘이 말하는 평민은 자신과 보육원 사람들이었다.
라엘은 그들을 위해 제국을 지킬 생각이었다.
“라엘 씨···.”
유리는 라엘의 정보를 떠올렸다.
대부분의 봉급을 보육원에 바치는 그가 하는 말이었으니 신뢰감이 실렸다.
무엇보다, 누구도 공감하지 못했던 자신의 사상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나 기뻤다.
“제 이야기는 끝입니다. 저도 유리 씨에게 듣고싶은 게 있어요.”
“네. 뭐든 지 물어보세요.”
유리는 침을 삼키며 라엘을 바라봤다.
그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황위 경쟁에 큰 파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배거스를 소유하고 있고, 레인 기사단과 친분을 유지하는 라엘은 그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 특별 경비대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제국 특별 경비대는 원작에서 제대로 나온 적이 없다.
대체 이 곳이 뭐길래 차기 황제와 그 측근이 있는 지.
왜 드래곤, 천살검주, 귀왕 같은 괴물이 있는 지.
라엘은 아무것도 몰랐다.
“아···.”
유리는 라엘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 경비대는 황실의 기밀이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라엘이라면 믿을 수 있다.
“특별 경비대는··· 아시다시피 귀왕을 감시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사실 감시라는 건 구실일 뿐이에요.”
“···.”
그 정도는 라엘도 예상하고 있었다.
라엘은 유리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귀왕은 언제 폭주할 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에요. 제국과 교단의 상층부는 그걸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죠.”
“···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라엘은 눈을 찌푸렸다.
제국과 교단이 귀왕의 폭주를 알고 있었다면, 왜 미리 대처하지 않은 거지?
“저도 모든 사실은 몰라요. 아마 자세한 사실을 아는 건··· 제국의 황제와 기사단장. 교단에서는 교황 정도 일거에요. 귀왕과 관련이 있는 자들은 황족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당했으니까요.”
“···.”
라엘은 눈을 찌푸리며 유리의 말을 정리했다.
제국과 교단의 수뇌부는 귀왕이라는 존재를 5구역에 방치해놓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아는 자는 수뇌부 빼고 아무도 없다.
“그럼 천살검주와 티아는요? 그 둘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티아 님은 귀왕의 연구를 위해서고, 천살검주님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분은 바람처럼 돌아다니시는 분이라···.”
“그럼 유리 씨는 왜 오신건데요?”
라엘은 유리에 대해 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알테니까.
“제가 이 곳에 온 건 귀왕의 폭주를 늦추기 위해서에요. 저에게는 귀왕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체질이 있거든요.”
“체질이요?”
“··· 죄송합니다. 그건 말해드릴 수 없어요.”
유리가 타고난 살기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자벨을 제외하고 그 살기를 알게 된 사람은 전부 죽었으니까.
“그럼 잘못을 저지른 경비대원이 특별 경비대로 좌천당하는 이유는 뭡니까?”
“그건, 교단의 요청이었어요. 귀왕을 봉인하는 데에 교단의 인력이 쓰였으니, 유지하는 데에는 제국의 인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이 곳에 오는 것만으로도 한계였죠.”
귀왕은 주기적으로 지성체와 만나야했고, 유리는 자진해서 특별 경비대에 왔다.
황족이 5구역 구석에 있는 경비대에 처박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리는 그때문에 자신을 지지하던 일부 귀족들의 지지마저도 포기해야했다.
“무슨 그런 미친 놈들이···.”
라엘은 유리의 말에 눈을 찌푸렸다.
교리를 추구한다는 놈들이 사람의 목숨을 저울질하고 있다니.
역시 교단은 미친 새끼들이 분명했다.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귀왕의 폭주를 최대한 늦추는 거에요.”
유리는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특별 경비대 건물에서 나온 라엘은 하늘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언제나 보이는 푸른 하늘이 오늘따라 참 멀어보였다.
‘황금 동앗줄을 너무 꽉 잡아버린건가?’
라엘은 유리가 차기 황제라는 것만 알고 있다.
그녀가 황제가 되는 동안 겪는 일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레이나든 겐트든··· 분명 다 엮여있겠지. 어떻게 된 게 이 경비대에는 정상이 없네.’
라엘은 이제 유리가 차기 황제가 될 때까지 함께 해야한다.
그야말로 개고생 스타트였다.
“특별 경비대는··· 쯧. 뭐가 뭔 지 하나도 모르겠고.”
원작에 나오지않은 뒷사정을 알아내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라엘이 읽은 소설에서는 아카데미에서 히로인과 노는 것만 나왔는데, 정작 제국에는 상상도 못할 것들이 암약하고 있었다.
“겐트 이 새끼는 필요할 때마다 안보이네.”
겐트한테 뭐라도 물어볼까 했지만, 정작 보이질 않았다.
뭐, 어차피 물어봐도 겐트도 모를 가능성이 높겠지만.
‘레이나하고 티아 님이나 보러갈까.’
피곤하긴 하지만, 레이나에 대한 것도 궁금하긴 했다.
라엘은 별 생각없이 호수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왔다.
라엘은 본능적으로 멈춰섰다.
“···.”
저벅. 저벅.
어디선가 들어본 가벼우면서도 진중한 발소리.
라엘은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봤다.
“개고생은 이미 끝났는데, 이제야 나타나시네.”
라엘은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천살검주.
그 노인네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르게 자신의 마력을 보란듯이 보여주면서 나타났다.
“라엘, 얼굴이 좋아졌군. 드디어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구나. 더 이상 시대의 흐름을 부정하지 않는 눈이야.”
“··· 예. 천살검주님 말대로, 강해져야할 이유를 찾아버렸거든요.”
“검사를 보는 내 눈은 틀리지않지. 내 말대로 금방 만나게 되었구나.”
“하, 그러게 말입니다.”
천살검주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는 걸 본 라엘은 헛웃음을 지었다.
왜 이렇게 재수없는 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 좆같은 세상.
라엘은 이미 세상의 흐름에 거역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는 강해져야 했다.
“··· 천살검주님.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거라.”
“저는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네가 하기에 달렸지.”
“그런 흔해빠진 대답 말고요.”
“흐음.”
스릉-
라엘의 말에 천살검주는 자신의 검을 뽑았다.
검이라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싸가지 없다고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라엘은 흠칫 놀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지만, 천살검주는 그를 신경쓰지않았다.
“천살검은 하늘을 베기 위해 만든 검이다.”
그는,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검 끝에 담긴 가벼운 마력이 춤을 추듯 나풀거렸다.
“하늘을 베기 위해서는, 하늘을 거역해야한다. 하늘을 거역하려면, 먼저 하늘과 같은 곳에 올라야하지.”
라엘은 넋이 나간 눈으로 천살검주의 검을 지켜보았다.
그의 검은 화려하거나 아름답지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제 1형. 입천(入天).”
천살검주는 조용히 검을 움직였다.
그의 주변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고, 오로지 멈춘 세상에서 검 하나만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제 2형···.”
라엘은 천살검주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검의 흐름에 빠져들었다.
“··· 마지막, 제 5형. 역천(逆天).”
역천(逆天).
그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천살검주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치켜올라갔다.
그리고, 하늘이 갈라졌다.
라엘은 멍하니 두동강난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사이에 한 줄기 검은 줄이 그어진 저 현상은, 그 어떤 과학 기술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저것은 마력과 검술의 극한이었다.
“이건, 미완성인 검이다.”
“··· 저게요?”
라엘은 꾸물거리며 다시 합쳐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베는 검이 미완성이라니, 대체 이 노인네는 얼마나 괴물인 거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냐고 물었지. 라엘. 네가 이걸 완성할 수 있다면, 네 앞에 있는 누구든 벨 수 있다.”
탁-
천살검주의 검이 다시 검집으로 들어갔다.
“설령 그것이 하늘이라도.”
“···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왜 저입니까?”
라엘은 천살검주의 검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사실 이 노인네가 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천살검은 준비된 자에게만 사사할 수 있는 검이다. 그리고 라엘. 넌 준비된 검사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인간의 확신.
라엘은, 그의 말에 홀린 듯 검을 뽑았다.
“천살검··· 참, 근본 없는 세상에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스릉-
단단한 검의 손잡이가 라엘의 손에 딱 맞아들어갔다.
라엘은 잠시나마 갈라졌던 하늘을 떠올리며 검을 들었다.
“마침 잘됐습니다. 강해져야 한다면··· 하늘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라엘은 이 세상의 괴물들을 알고 있다.
이제는, 그들에게 닿아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