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51)
제국 경비대의 망나니 소드마스터-51화(51/105)
< 명예 기사 >
가이아 교단에서는 매달 교단 총회를 진행한다.
명목상 주신 가이아 님을 위해 다 같이 기도를 드리고 교단이 더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시간이지만, 보통은 교황이나 추기경의 말을 듣는 시간이 된다.
교단이라는 조직의 특성상 이익 다툼을 할 필요도 없고, 설령 싸우더라도 그걸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국 황실에 강력하게 항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총회는 달랐다.
추기경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단의 내부에 관심이 없던 남자.
은십자 기사단장 마르코가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마르코 경.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무슨 소리가 아닙니다. 제국 수도에 마족의 침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국민들이 즐겨야 할 천상제 마저 흑마법사들의 반란으로 취소된 지금, 제국의 보안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미 마족이 등장했을 때 항의한 바가 있으니 일단 진정하시지요···.”
“그런 보여주기식 항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가이아 교단의 이름으로 분노를 알려야 합니다. 은십자 기사단에도 피해가 나온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
총회를 주도하던 추기경 베르난도는 마르코의 말에 침음을 삼켰다.
그가 하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정론이었다.
‘저 남자는 갑자기 왜 교단의 일에 나서는 거지?’
하지만, 세상에는 굳이 건드려야 하지 않아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다.
특히 카멘 기사단에게 엄청난 기부를 받는 베르난도에게 제국을 건드는 건 꽤나 불편한 사항이었다.
그나마 상대가 마르코라 다행이었다.
베르난도는 그를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마르코 경. 제국에게는 제가 꼭 항의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더욱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수도 바깥의 르벤 남작가에 마족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린 양들에게 은십자 기사단의 힘이 필요한 때입니다.”
베르난도는 경건하게 성호를 그었다.
마르코를 다루는 건 어렵지 않다.
마족이 있는 곳을 알려주면 그는 달려간다.
너무나 단순한 공식이었다.
“어떤 마족이 나타났습니까?”
“예?”
“어떤 마족이 나타났냐고 질문드렸습니다.”
“···하위 마족이라고 들었습니다.”
베르난도는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평소라면 이미 배틀 엑스를 들고 뛰쳐나갔어야 하는데, 마르코의 반응은 의외로 평범했다.
“르벤 남작가라면 제국에서 네 번째로 큰 지부가 있는 곳이군요. 은십자 기사단이 움직이지 않아도 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예?”
베르난도는 멍한 얼굴로 마르코를 바라봤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배틀 엑스를 번쩍 들어 올렸다.
콰앙-!
마르코의 거대한 배틀 엑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굉음에 총회에 참여한 사제들의 시선이 전부 모였다.
“지금 중요한 건 고작 하위 마족 따위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가이아 교단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베르난도 추기경께서 항의하지 않는다면, 은십자 기사단이 직접 항의하겠습니다.”
“자, 잠시만. 알겠으니 일단 진정을···.”
베르난도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족을 죽이는 것만 생각하던 마르코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사람이 하루아침에 저렇게 변한 거지···?’
베르난도는 일단 총회를 잠시 멈추었다.
다행히 총회가 길어지며 기도 시간과 겹쳤기 때문이다.
“어떤 미친 놈이 마르코를 저렇게 만든거야!!!!”
대주교 몇몇과 함께 추기경실에 들어온 베르난도는, 문을 닫자마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기도 시간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내가 바로 추기경 베르난도다! 가이아 교단의 풍파를 전부 겪은 내 말에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다니···!”
베르난도는 자신의 방에서 대주교들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저 미친 기사단장이 혼자 교단의 이해관계를 전부 박살내려하고 있었다.
카멘 기사단에게 엄청난 기부금을 받는 그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차, 참으십시오. 추기경님!!”
“젠장! 참기는 무슨! 한 번만 더 항의 소리를 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
쿵- 쿵-
그때, 누군가 추기경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 둔탁한 소리는 굳이 누구인지 묻지 않아도 정체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은십자 기사단장 마르코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시게. 마르코 경.”
“···?”
대주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의아한 얼굴을 했다.
방금까지 화를 버럭버럭 내던 추기경은 어느새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르코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사람은 어디 간 지 보이지도 않았다.
“총회 때 말씀드릴 것이 있었는데, 총회가 재개될 시간이 순찰 시간과 겹쳐 지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아,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지금 말하시지요.”
“은십자 기사단에서 명예 기사 한 명을 임명하게 해주십시오.”
“명예 기사···?”
베르난도는 뜬금없는 말에 눈가를 좁혔다.
명예 기사란 말 그대로 명예만 챙기는 직위다.
은십자 기사단의 의무는 하지 않으면서도 권리만 가져갈 수 있는 자리다 보니 귀족들이 많이 원하곤 했다.
‘혹시 갑자기 교단의 일에 참여하는 것도···.’
마르코가 다른 정치적 세력과 연결된 건 아닐까?
베르난도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마르코를 바라봤다.
“설마 귀족가에 명예 기사직을 내릴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상대는 평민입니다. 저번 4구역에서 마족을 처리할 때 큰 도움을 받았던 경비대원입니다.”
“경비대원··· 알겠소.”
베르난도는 마르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이 아니고 평민이라면 명예 기사 따위 얼마든지 줄 수 있다.
“감사합니다. 베르난도 추기경님.”
“괜찮습니다. 총회에 참여하지 못해서 아쉽군요. 마르코 경, 못한 이야기는 다음 총회에서 하시지요.”
“알겠습니다.”
성호를 그은 마르코는 저벅저벅 걸어서 추기경실 밖으로 나갔다.
베르난도는 인자한 미소를 유지하다 그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진 뒤에야 미간을 좁혔다.
“휴우. 이걸로 항의 같은 소리는 안 들어도 되겠군.”
다음 총회는 다음 달에 열린다.
그때는 마족의 침입 사건도 시간이 지나며 항의하기에 애매한 일이 된다.
베르난도는 자신의 계략에 미소를 지었다.
“추기경 전하, 명예 기사 같은 직위를 막 줘도 괜찮은 겁니까···?”
“괜찮다.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평민에게 명예 기사 따위 100개도 줄 수 있지.”
이왕이면 돈 받고 파는 게 더욱 좋겠지만, 적어도 마르코가 제국에게 항의하겠다고 날뛰는 것보단 낫다.
카멘 기사단에게 받는 기부금을 줄일 수는 없었으니까···.
*
라엘은 아치형으로 지어진 교단의 지부 앞에 섰다.
4구역에 있는 교단의 지부였다.
교단은 라엘이 싫어하는 장소 중 하나지만, 포상을 받는 날이라면 말이 달랐다.
오늘만큼은 가이아 교단의 신실한 신도가 될 생각이었다.
‘펠리스가 없으니까 사제들의 얼굴이 좋아 보이네.’
펠리스 주교는 항상 돈을 밝혀대서 사람들에게 평판이 안 좋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이제야 사제들이 어깨를 편 모양이다.
라엘은 지부의 앞을 지키는 사제에게 다가갔다.
“가이아-멘. 사제님. 안녕하십니까. 세실리아 사제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어서 오시지요. 형제님. 세실리아 사제님이라면 안에 계십니다만···. 사제님에게는 무슨 용무로 오셨죠?”
문을 지키던 사제가 라엘은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수상한 놈이라도 보는 눈빛이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사제님에게도 미리 말씀드렸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라엘은 품 안에서 은패를 꺼냈다.
세실리아에게 미리 말했다는 건 구라지만, 중요한 건 은패였다.
‘생각해보니 은패도 구라구나.’
아무튼, 중요한 건 경비대장이라는 이름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라엘은 그제서야 지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종교쟁이들은 왜 자신의 얼굴만 보고 이러는 건 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듣기로는 방탕한 얼굴이라는데, 그게 무슨 개소리인 걸까.
지부의 안에서 세실리아를 찾는 건 쉬웠다.
그녀는 가이아 님의 동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세실리아 사제님.”
라엘은 그녀의 옆에 앉아 기도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말을 건넸다.
“앗, 라엘 님! 지부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세실리아는 빙긋 웃으며 라엘을 바라보았다.
라엘은 그녀가 아는 한 4구역에서 가장 신실한 사람이었다.
“오늘 교단에서 포상이 내려온다고 해서요. 그때, 마족을 잡았던 건이요.”
“아, 정말요?”
“예.”
세실리아가 모르는 것도 정상이다.
원래 중세 새끼들은 약속을 잡지 않고 냅다 들이닥치는 게 상식이니까.
“포상이라니. 마족을 잡은 라엘 님은 대단한 걸 받겠죠?”
“세실리아 사제님.”
“네. 라엘 님.”
“나중에 교단에서 잘나가도 절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아시죠?”
“그럴 리가요! 라엘 님은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말로만 하지 마시고, 자. 약속하세요.”
라엘은 새끼손가락을 들었다.
중세에서도 통하는 유서깊은 약속 방법이다.
“네? 후훗. 라엘 씨는 의외로 귀여운 면이 있네요.”
“귀여운 게 아니고 중요한 겁니다.”
차기 황제 동아줄을 꽉 잡았으니, 차기 성녀도 꽉 잡을 필요가 있다.
라엘은 진지한 표정으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세실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그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단단한 남자의 손에 잠깐 놀라긴 했지만, 라엘이 가만히 있었으니, 그녀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이상했다.
“오케이.”
라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밥이라도 한 번 먹자는 K-약속이 아니라 새끼손가락 걸기라면, 세실리아가 성녀가 된 뒤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저벅- 저벅.
그때, 바깥에서 묵직한 갑옷 소리가 들려왔다.
라엘은 눈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슨이 아닌데?”
끼익-
라엘이 나가기도 전에, 누군가가 지부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번쩍거리는 판금 갑옷과 가슴에 붙어있는 교단의 상징.
그리고 등 뒤에 달려있는 거대한 배틀엑스.
라엘은 익숙한 얼굴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대에게 가이아 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오랜만이군. 라엘. 세실리아 사제.”
그곳에는 거대한 판금 갑옷을 입은 은십자 기사단장, 마르코가 서 있었다.
“가, 가이아 님의 축복이 있기를. 하위 사제 세실리아입니다···.”
세실리아는 어깨를 파르르 떨며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교단의 사제로서 마르코 단장님을 이렇게 자주 보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단장님. 안녕하십니까. 여기까지 무슨 일로···?”
라엘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자세를 바르게 했다.
포상이 내려온다길래 기껏해야 돈이나 조금 쥐여줄 줄 알았는데, 마르코가 직접 내려왔다.
이건 엄청난 포상을 해줄 게 분명했다.
“자네와 세실리아 사제에게 포상을 내리기 위해서 왔다.”
“아, 무슨 포상이길래 단장님이 직접 오신 겁니까?”
라엘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며 마르코를 바라봤다.
‘대단하군.’
마르코는 라엘을 훑으며 신기함을 느꼈다.
중위 마족을 베어낸 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한 달간 이런 성취를···?’
그러나 라엘의 기세가 아예 달라졌다.
그의 성장세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빨랐다.
마르코는 아쉬움을 느꼈다.
검술이나 전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본래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하지만, 4구역이 본단과 먼 탓에 약식으로 진행하도록 하겠다. 먼저, 라엘. 교단을 대표하여 자네에게 은십자 기사단의 명예 기사직을 내리겠다.”
“···명예 기사요?”
라엘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보상에 눈을 크게 떴다.
명예 기사란 은십자 기사단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그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자리다.
‘이건 활용할 수 있겠는데···.’
명예 기사란 은십자 기사단의 이름을 등에 업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 상태로 2황녀님을 지지한다면, 종교를 중요시하는 귀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곳곳에서 불만이 나오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
유리가 차기 황제가 되는 순간 그런 불만은 없어질 테니까.
“받아라. 자네는 오늘부터 은십자 기사단의 명예 기사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라엘은 성호를 그으며 마르코가 주는 증표를 받았다.
은십자 기사단의 판금 갑옷에 붙어있는 교단의 상징과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세실리아 사제에게는··· 내 이름으로 대주교 추천장을 썼다.”
“네, 네?!”
세실리아는 깜짝 놀라며 마르코를 바라봤다.
하위 사제인 세실리아에게 주교도 아니고 대주교 추천장이라니.
“저, 저는 그다지 엄청난 일을 하지 않았는데···. 마족은 라엘 님이 전부 잡으셨어요.”
“내가 사제의 재능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른 시일 내에 교단 본부에서 사람이 올 거다. 그때 제대로 힘을 보이도록.”
“알겠습니다. 가이아-멘···.”
세실리아는 성호를 그으며 주신 가이아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 모든 것은 신의 인도였다.
“좋다. 이것으로 교단의 포상 수여는 끝났는데···.”
마르코는 지부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보여야 할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저벅- 저벅-.
그때, 마르코의 뒤에 엉거주춤한 표정의 기사 한 명이 섰다.
“칼슨? 어디 있었던 거지?”
“아, 잠시 주변 순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장님이 왔다는 소식에 곧바로 복귀했습니다.”
그는 당연히 칼슨이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딱 봐도 주사위 도박을 하다 온 것 같았다.
“그렇군. 4구역에서 생활은 잘하고 있나? 은십자 기사단에 누를 끼친다면 곧바로 복귀해야 할 거야.”
“예? 아하하, 당연히 잘하고 있습니다!”
칼슨은 라엘을 보며 혼신의 눈짓을 보냈다.
도와달라는 신호였다.
라엘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앞으로 한 발짝 나왔다.
“칼슨만큼 열심히 하는 성기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단장님.”
“그렇군. 자네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겠어.”
마르코는 미소를 지으며 라엘의 어깨를 두드렸다.
강한 검사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칼슨. 곧 있을 은십자 기사단의 훈련에는 참여하도록 해라.”
“옙!”
“그럼,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라엘. 세실리아 사제.”
“예. 단장님.”
저벅- 저벅-
마르코는 포상을 수여한 뒤 곧바로 1구역으로 돌아갔다.
원래는 새로 올 주교가 포상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명예 기사직은 단장이 직접 수여한다고 해서 그가 주교보다 먼저 왔다고 한다.
“이야, 형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칼슨은 마르코가 떠난 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까 도박 좀 그만해라. 또 도박하다 온 거지?”
“하하, 근데 단장님도 참 이상하네요. 형님 같은 양아치를 왜 그렇게 잘 믿는 겁니까?”
“···이 미친 새끼가 구해줬더니 뒤늦게 지랄이네.”
“아악!”
라엘은 손을 들어 칼슨의 뒤통수를 때렸다.
손을 들어 머리를 가리던 칼슨은, 라엘의 가슴에 달린 징표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님! 그건 뭡니까?!”
“은십자 기사단 명예 기사의 증표다. 나도 이제 은십자 기사단이나 마찬가지야.”
라엘은 미소를 지으며 가슴을 내밀었다.
오늘만큼은 권위에 빠질 생각이었다.
“···어? 그럼, 형님이 제 후배 아닙니까?”
칼슨은 문득 떠오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지랄하고 있네. 한 대 더 맞을래?”
라엘은 다시 한번 손을 들었고, 칼슨은 그제서야 몸을 움츠렸다.
“두 분은 참 사이좋아 보이시네요.”
세실리아는 둘의 우애를 기원하며 짧은 기도를 올렸다.
“세실리아 사제님. 아까 약속하신 겁니다. 저 잊으면 안 돼요.”
“후후. 걱정하지 마세요. 라엘 님.”
“약속이라니, 역시 형님하고 세실리아 사제랑 그런 사이 맞죠? ···아악!”
라엘은 까부는 칼슨의 머리를 다시 한번 후렸다.
*
중세 판타지에서 귀족 간의 친분을 과시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다가가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기만 하면 된다.
“가까운 시일 내에 황궁에서 파티 같은 거 없습니까?”
라엘은 보육원의 뒤뜰에서 레인을 보며 말했다.
레인 기사단과 같은 길을 걷기로 한 이상, 좋은 생각은 곧바로 공유해야 했다.
“파티? 그게 왜 필요한데?”
“2황녀님을 지지하는 걸 알려야 하잖아요. 파티장에서 귀족들이 보는 곳에서 다가가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금방 퍼지지 않겠습니까?”
물론 특별 경비대에서 라엘이 직접 말하긴 했지만, 특별 경비대는 황실의 기밀이다.
귀왕, 드래곤, 천살검주가 있는 특별 경비대는 레인에게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적어도 유리가 황제에 가까워지면 말할 수 있겠지.
“오··· 확실히, 그편이 관심받기에 좋겠군. 너, 보기보다 그런 쪽에 재능이 있구나.”
“···.”
라엘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관심종자에게 인정받는 게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예정된 파티는 딱히 없다. 최근 정세가 흉흉하거든.”
흑마법사의 반란에 2구역이 씹창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수도의 2구역의 파티장에서는 2황녀를 제외한 모든 귀족이 죽었다.
지금 같은 시기에 파티를 여는 미친놈은 없었다.
“그럼 우리가 열죠.”
“···지금 정세가 안 좋다니까?”
“그게 뭐가 중요해요. 하루라도 빨리 2황녀님의 세력을 늘리는 게 중요하지.”
“어, 그런가?”
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대공 전하의 뜻을 빠르게 알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단장님. 만약 파티를 연다면 꼭 불러야 할 사람이 있어요.”
“누구? 중요한 사람이냐?”
“···루카스. 루카스라는 아카데미 생도가 있어요.”
라엘은 천상제에서 봤던 붉은 머리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루카스···? 아카데미 졸업 기수의 수석 말이냐? 흑마법사의 반란 때 본 적이 있어.”
“예. 그 친구를 부르죠.”
“지금 기수들이 기사단 사이에서 평가가 좋긴 하지만··· 그 정도인가? 아카데미에서 졸업하기도 전에 파티에 초대하는 건 기사단 간의 매너가 아니야. 다른 기사단의 눈치를 보며 다른 졸업생을 전부 포기해야할 수도 있어.”
“매너고 나발이고, 무조건입니다. 무조건. 다른 놈들은 다 버려도 그 놈은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해요.”
라엘은 세상의 흐름에 끼어들었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개같은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갈 생각은 없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루카스다.
그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동안, 라엘은 그의 뒤에서 황금 동아줄만 꽉 잡으면 된다.
그게 라엘이 바라는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