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54)
제국 경비대의 망나니 소드마스터-54화(54/105)
< 명예 기사 >
아이들의 낮잠 시간.
페터 주교는 익숙한 듯 잠에 든 아이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육원에서 아이들 낮잠 시간을 보장하다니···.’
아이들에게 동냥을 시키는 건 봤어도 낮잠을 재우는 건 처음 봤다.
이 보육원은 정체가 뭐길래 이런 복지를 실행하고 있는 걸까.
“페터 주교님.”
“아, 칼슨 경. 여기 계셨군요. 아이들과 성법을 나누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 옆에 계신 분은 설마···!?”
페터는 라엘의 가슴에 있는 징표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몇십 년 만에 나왔다는 교단 명예 기사의 징표였다.
“예. 이쪽은 제가 말했던 라엘 형님입니다. 은십자 기사단의 명예 기사죠.”
“안녕하십니까. 페터 주교님.”
“가이아 님의 축복이 있기를. 처음 뵙겠습니다. 라엘 경.”
“···.”
라엘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눌렀다.
뭐랄까.
‘라엘 경’이라는 단어의 울림이 꽤 좋다.
4구역의 인간들은 대부분 명예 기사 징표를 못 알아봤고, 특별 경비대의 장생종 카르텔은 라엘을 무시했다.
그나마 상식이 있는 레인은 자신을 여전히 라엘이라고 불렀기에, ‘라엘 경’이라는 호칭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명예 기사 자리의 대단함을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아직 4구역이 익숙하지도 않으실 텐데 벌써부터 가이아 님의 가르침을 전파하시는 모습이 만인의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아, 라엘 경. 정말 감사드립니다. 은십자 기사단의 명예 기사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얼굴이 뜨겁습니다.”
“교단의 가르침 10장 2절, 신도는 도움이 필요한 양을 외면하지 말라는 말이 떠오르는군요.”
“교단의 가르침까지 외우고 계시다니, 정말 신실한 분이셨군요.”
라엘은 페터의 반응에 미소를 지었다.
이건 세실리아에게 사용하려고 외워놨던 구절인데, 언제 말해도 좋은 구절이다 보니 교단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효과가 참 좋았다.
“그동안 계시던 주교님은 가이아 님에 대한 믿음보다 세속에 관심을 더 가지셨는데, 페터 주교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전 돈 같은 물질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교단의 가르침을 더 널리 퍼트릴 수 있을까. 그것만이 제가 할 일이니까요.”
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처음부터 냄새가 났다.
호구의 냄새였다.
안 그래도 라엘은 새로운 주교가 오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기부금 받기. 진짜 내가 잘할 수 있는데.’
펠리스가 4구역의 지부를 맡던 시절, 라엘은 교단을 보며 감탄한 적이 있었다.
펠리스는 숨 쉬는 것처럼 기부금을 뜯어냈는데, 알고 보니 교단의 주교는 기부금의 일부를 수당처럼 받아갈 수 있었다.
그 대머리가 기부금을 뜯어내려고 개고생을 한 이유가 있었다.
“페터 주교님. 4구역에 오신 느낌은 어떻습니까.”
“으음, 아무래도 평민 신도들이 대부분인 만큼 2구역과는 다른 분위기이긴 합니다.”
4구역에 처음 온 페터는 신도들과 만나며 평민과 귀족의 차이를 실감했다.
일단 기본적인 생활 수준이 달랐고, 생각과 행동의 기준도 달랐다.
그 중에서도 생활 수준이 다른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기부금도 많이 적죠?”
“아무래도 귀족 신도분들은 기부금을 내는 규모가 다르시니까요.”
그래서 2구역 위의 지부는 대주교가 관리하곤 한다.
기부금이 많아서 대주교에게 떨어지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페터 주교님. 제가 기부금을 획기적으로 늘릴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기부금 말입니까?”
“그렇죠. 교단을 향한 기부금이 늘어나면 그만큼 고통받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고, 가이아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아아, 그렇습니다. 신도분들의 기부금이 많아진다면 힘든 신도분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겠죠.”
페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부를 더 받는다면 4구역의 힘든 신도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 또한 주교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주교는 지부가 받는 기부금 중 일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라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그의 표정을 본 칼슨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어허, 라엘 형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페터 주교님이 돈을 삥땅치기라도 한다는 소리입니까?”
“난 페터 주교님을 처음 보기도 했고··· 저번에 있던 주교님의 일도 있으니···.”
“라엘 형님! 페터 주교님은 돈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교님. 그렇지요?”
하늘같은 은십자 기사단 둘의 말에 페터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전혀 그럴 생각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교단의 발전을 위할 뿐입니다. 그, 정 신경쓰이신다면 라엘 경으로 인해 늘어난 제 수당은 라엘 경이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저는 정말 교단의 발전만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바로 전 주교가 돈을 밝히다가 제대로 된 인재를 발견하지 못해서 쫒겨났다.
그런 주교를 만났으니, 둘이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페터는 자신의 신실함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 정도라면 믿을 수 있겠군요. 페터 주교님.”
“전 처음부터 믿고 있었습니다.”
라엘과 칼슨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둘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페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은십자 기사단 둘의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영혼 정화부란 무엇인가.
교단에서 파는 면죄부같은 존재다.
보통 일정 이상의 기부금을 내면 기부 징표와 함께 영혼 정화부를 받아간다.
‘영혼 정화부는 한 부만 있으면 된다고 했으니··· 기부 징표를 신경써야지.’
라엘이 집중한 건 기부 징표였다.
분명 이 징표에는 돈을 뜯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제가 새로운 주교님이 오면 꼭 하고 싶었던 사업, 아니 기부 징표에 대한 겁니다.”
“아, 네. 라엘 경.”
페터는 지부에 앉아 라엘의 말에 집중했다.
초보 주교인 그는 명예 기사라는 직함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니 일단 라엘에게 협력할 생각이었다.
“먼저, 기부금에 따라 다른 디자인으로 주면 안되는겁니까?”
“본단에서 정해진 디자인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가이아 님의 가르침에도 나와있습니다.”
주신 가이아는 언제나 평등을 말하셨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기부를 했다면 같은 징표를 받는다.
교단 지부의 디자인이 전부 같은 것도 그런 의도였다.
“···지랄. 가이아가 그런 말을 했으면 손에 장을 지진다.”
“예? 뭐라고 하셨죠? 라엘 경?”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교단의 방식대로 가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라엘은 자신이 싫어하는 교단의 방식을 잘 알고 있다.
“기부 징표의 크기를 늘립시다.”
2구역의 교단 새끼들은 지부 크기도 늘리던데, 징표라고 안 될 거 있나.
라엘은 곧바로 징표를 제작하는 사제들에게 크기를 늘릴 것을 지시했다.
기부금이 금화 10개를 넘어가는 순간부터 점점 커지기 시작하고, 가장 큰 건 마차에 달 수 있도록 특수 제작까지 할 생각이었다.
“라, 라엘 경. 정말 이래도 되는겁니까?”
“당연히 되죠. 저 명예 기사입니다.”
중세 판타지 전문가 라엘은 자신했다.
이건 분명히 든든한 수입이 될 거다.
“역시 라엘 형님. 언제나 제 생각을 뛰어넘으십니다.”
라엘의 옆에 있던 칼슨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칼슨. 네가 보기에도 잘될 거 같지?”
“으음, ···일단 마르코 단장님이 오면 저랑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해주십시오.”
“미친 놈.”
라엘은 고개를 저었다.
주사위 도박이나 하는 놈이 돈 버는 법을 알 리가 없지.
‘드디어 박봉 경비대 탈출이구나.’
라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자신의 징표가 제국을 뒤흔들거라고 믿어 의심치않았다.
*
그렇게 삼일이 지났다.
라엘의 자신작이었던 특대사이즈 기부 징표는 단 하나도 나가지않았다.
아니, 애초에 커다란 징표의 존재가 알려지지도 않고 있었다.
‘··· 혹시 얼추 천 년 정도 앞서는 내 미적 감각을 따라오지 못하는 건가?’
분명 돈방석에 앉을 줄 알았는데, 라엘의 예상대로 되지가 않았다.
배거스를 이용해 홍보라도 해야하는 걸까?
‘돈 많은 사람들을 타겟으로 해야하는데··· 4구역의 지부에서 한 게 패착이었나?’
라엘은 한숨을 쉬며 4구역을 걸었다.
뭐, 사실 손해본 건 교단의 사제들 뿐이었으니 자신은 큰 상관없었다.
다만 기대하던 돈줄이 사라진 건 아쉬운 일이었다.
“그나저나 칼슨 빼고 둘이 술을 마시자니, 무슨 일 있으십니까?”
라엘은 고민을 멈추고 옆을 바라봤다.
그의 옆에는 훤칠한 얼굴의 레인이 서있었다.
“준비하고 있는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말이야. 칼슨은 은십자 기사단이라 이런 파티에 참여하지 못하거든.”
“아하··· 그렇긴하죠.”
“이번 파티는 대공 전하의 복귀를 알리며 큰 규모로 열릴 거다. 2황녀님과 그 전에 접촉하면 좋겠지만··· 최근 분위기가 흉흉해서 쉽지 않더군. 대공 전하의 이름이 없었다면 파티를 여는 것도 힘들었을 거야.
“음···.”
최근 늘어난 마족의 침입으로 인해 황족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말은 들었다.
다만, 2황녀 유리는 만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데···.
‘일단 내버려 둘까.’
그녀가 지금 특별 경비대에 있다는 건 비밀이었으니, 라엘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유리에게 의견을 구하면 될 거다.
“그리고 가끔은 사나이끼리 이런 날도 있어야지. 널 보니 내 젊을 때가 생각나거든. 널 위해 재미있는 선물을 준비했으니 기대해라.”
레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라엘의 등을 두드렸다.
“···.”
왠지 몸이 오싹해진 라엘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검집을 확인했다.
교단에서 동성애를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으니 이상한 일은 없겠지만··· 워낙 미친 세상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딸랑-
레인과 라엘이 향한 곳은 에릭 아저씨의 술집이었다.
저번에 칼슨과 셋이 좋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술자리가 끝나자마자 칼을 맞긴했지만··· 결국 좋은 시간이었지.’
라엘은 술집에 들어가며 에릭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에릭 아저씨. 잘 지내셨어요?”
“라엘이냐. 오랜만이구나.”
“네. 근데 왜 거기 앉아있으세요?”
에릭은 평소처럼 바테이블 안 쪽에 있는 게 아니라, 손님이 앉는 곳에 앉아있었다.
“라엘. 일단 앉거라. 레인 너도.”
“예. ···네? 뭐라고요? 레인?”
라엘은 깜짝 놀라며 레인을 돌아봤다.
저 미친 아저씨가 노망이 났나? 지금이 21세기 대한민국도 아니고, 계급 제도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레인 기사단장한테 레인이라니?
“어서 앉아라. 라엘.”
그러나 더 이상한 건 레인의 반응이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황은 대체 뭐예요?”
“라엘. 너에게 대공 전하를 소개드릴 생각이다.”
레인은 그 말과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가슴에 올리는 예를 표했다.
그 진심이 담긴 모습에 라엘이 눈을 크게 떴다.
“제국의 대공을 뵙습니다.”
레인은 에릭 아저씨를 향해 경례하고 있었다.
“아, 지랄. 구라치지마세요.”
라엘은 자신도 모르게 막말을 뱉었다.
도저히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라엘. 대공 전하 앞이다. 입조심해라.”
“아니···.”
라엘은 레인의 말을 믿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인자한 미소를 짓던 에릭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에릭 아저씨 맞아?’
분명 평소와 같은 얼굴이었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평범한 술집 아저씨와 전혀 달랐다.
강한 마력이나 압력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혈통과 자신감에서 나오는 타고난 카리스마다.
‘황족과 비슷한 느낌이야.’
라엘의 감각은 거짓말을 하지않는다.
그가 알던 에릭은 가짜고, 이게 진짜였다.
“···진짜예요? 에릭 아저씨?”
“속일 생각은 없었다. 4구역에 자리잡은 너와 알게 된 것도 우연이었지. 이렇게 엮인 이상 진실을 밝혀야한다고 생각했다.”
“와, 어쩐지 이상하더라···.”
그래.
사실 이상하다 싶었다.
4구역의 술집 아저씨가 세계수의 가지를 턱턱 내놓겠어.
워낙 세상이 근본 없길래 대충 넘겼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에릭은 4구역의 술집 아저씨 치고 너무 많은 일을 해냈다.
“라엘. 대공 전하에게 예를 취하도록.”
“괜찮아. 레인. 까다롭게 굴지마라.”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레인은 그제서야 가슴에 올렸던 손을 내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라엘을 바라봤다.
“어떠냐. 라엘. 내 선물이 꽤 재미있지?”
“···예. 참 재미있네요. 단장님.”
라엘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에릭 아저씨가 지병치료를 위해 은거한 제국의 대공이었다니,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레인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라엘. 의도치 않게 널 속인 게 되어버려 미안하구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도 좋다.”
“···.”
라엘은 에릭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에게 묻고 싶은 건 너무나 많았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에릭, 아니. 대공 전하. 아는 귀족들 많으시죠?”
“모르는 귀족은 거의 없다만··· 그건 무슨 의미의 질문이냐?”
에릭은 라엘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머쓱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이것 좀 홍보해주시면 안됩니까?”
라엘은 주섬주섬 특대 사이즈 교단의 징표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