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77)
제국 경비대의 망나니 소드마스터-77화(77/105)
< 푸른 마탑주 >
저벅. 저벅.
레이나는 어둑어둑한 숲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처음엔 숲의 생기가 그녀의 몸을 채웠지만, 깊이 들어갈 수록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연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
내딛는 발걸음마다 불안감이 커져갔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레이나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스르륵-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주변의 나무들이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레이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저벅. 저벅.
“늦지 않았군. 엘프.”
잠시 후, 엘프족의 냄새를 맡은 악마가 찾아왔다.
레이나는 자신의 몸을 찌르는 사멸의 마력에 눈을 찡그리며 바솔로드의 앞에 섰다.
“바, 바솔로드.”
레이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엘프족의 천적인 괴물. 바솔로드.
그와 마주치는 건 그녀에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어서 정령계의 문을 열어라. 다른 엘프들이 죽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
“여전히 엘프들을 아끼는 눈빛이군. 걱정하지 마라. 엘프족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킬 테니까.”
바솔로드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직접 몸을 투신하며 엘프족을 지키려는 엘프의 가련한 마음은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그래. 다른 엘프족은 신경 쓰지 마.”
화아악-
레이나는 마력을 짜내며 정령계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엘프에게 치명적인 사멸의 마력이 정령계로 파고들었다.
“크읍···.”
바솔로드의 식사였다.
그의 마력은 순수한 정령을 잡아먹으며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그 마력의 여파는 정령계의 문을 연 레이나에게도 전해졌다.
‘버텨야 해. 조금만 더···.’
온몸이 찢겨 나갈 것 같은 고통이 레이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 고통을 버티지 못하면, 이놈은 다시 엘프족에게 눈독을 들일 것이다.
레이나는 더 이상 동족이 죽게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이 엘프도 약해졌나.’
그리고 바솔로드는, 레이나를 바라보며 눈가를 좁혔다.
정령계를 유지하는 힘이 이전보다 약해졌다.
이 엘프도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마족들도 슬슬 모였으니 움직여야겠군.’
결국 엘프는 소모품에 불과한 것.
한 마리의 엘프에게만 의존하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다.
바솔로드는 무표정하게 정령들을 집어삼켰다.
*
특별 경비대의 아침.
라엘은 오늘도 특별 경비대로 출근했다.
귀왕의 봉인이 약해질 염려가 있어 귀왕 감시 업무는 쉬고 있지만, 여기가 아니면 딱히 갈 곳도 없었다.
‘교단은 가봤자 머리만 아프고···. 보육원의 레인 기사단도 요즘 바빠 보이니까.’
라엘이 매일 같이 대련을 신청하긴 하지만, 그들도 그들만의 업무가 있을 거다.
한때 경비대였던 라엘도 그 고충을 알고 있으니 계속 방해하는 건 미안한 일이다.
“으으···.”
“가만히 있어.”
라엘은 레이나에게 손을 건네곤 그녀의 옆을 지켰다.
“고, 고마워. 라엘.”
레이나는 라엘의 손을 신줏단지 모시듯 꼭 끌어안았다.
몸에 잔류한 사멸의 마력이 조금씩 라엘에게 흘러 들어가며 레이나의 고통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라엘이 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라엘.”
그 모습을 보던 겐트도 신기한 듯 다가왔다.
“왜?”
“실제로 보니 참 기이한 일이군. 레이나의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해가 안 되긴 해.”
라엘은 고개를 돌려 나무 아래에 누운 레이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면서 라엘의 손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한달에 한번, 정체불명의 원인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날이다.
‘이것도 바솔로드랑 관련이 있는 건가?’
레이네에게 엘프족의 사정을 들은 뒤로 레이나에 대한 게 쓸데없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저렇게 아파하는데 말할 수 없는 일이라면, 바솔로드에 대한 것밖에 없다.
‘바솔로드가 가진 사멸의 마력···. 잠시만, 그럼 그 마력을 내가 다 먹고 있는 거야?’
이거 나중에 내가 아파지는 건 아닌가.
라엘은 괜히 걱정하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흐음.”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니까 모종삽 내려라. 겐트.”
“그런 게 아니다. 유리도 그렇고 레이나도 그렇고. 라엘. 넌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남자군. 네 몸이 인기가 정말 많아.”
“제발 개소리 좀 하지 마. 유리 씨랑 레이나가 들으면 기분 나빠한다. 그리고 남녀는 또 뭐야? 남자는 관심 없어.”
“아니, 나도 라엘 네가 좋다. 너 같은 전사는 얼마 없으니까 말이야.”
“···삽 말고 도끼 들어라. 오늘 그냥 죽여줄 테니까.”
“농담이다.”
“쯧.”
라엘은 혀를 찼다.
장생종 놈들은 왜 저런 쓸데없는 농담만 하는 건 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다른 힘을 흡수하는 몸이라니··· 정말 신기하군. 라엘. 넌 인간이 아닌 건가?”
“인간 맞아.”
“확신할 수 있나? 넌 고아라고 들었다.”
“···겐트, 너 또라이냐? 너 레이나 보다 나이 많다며. 그 나이 먹고 패드립을 쳐?”
중세 판타지 새끼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이종족도 싸가지가 없다.
동방예의지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발언이다.
“널 모욕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너의 부모님이 인간이 아닐 가능성도 있지 않나.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쓸데없는 소리하지마라. 괜히 신경쓰이니까.”
라엘은 겐트의 말에 대답하지않고 고개를 돌렸다.
“으으으.”
레이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는 세계수의 가지가 꼬옥 안겨있었다.
라엘이 가져다준 세계수의 가지였다.
“레이나. 살아있냐?”
“응. 괜찮아···.”
“안 괜찮은 거 같은데.”
어제까지만 해도 체스를 한다고 까불던 엘프가 사경을 헤매는 걸 보니 괜히 기분이 찝찝해진다.
“레이나. 내가 죽이라도 해줄 테니 기다려라. 라엘. 잠시 날 도와다오. 나와 같이 레이나에게 줄 당근을 캐자.”
“···북부의 당근인가. 그거 말하는 거냐?”
“그래. 음과 양의 조화로 몸의 열을 식혀주지.”
“하아.”
그놈의 음과 양의 조화.
들을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잠시 기다리고 있어.”
끄덕끄덕.
라엘은 아파하는 레이나를 두고 겐트의 텃밭으로 향했다.
텃밭에서는 이미 겐트가 당근과 감자를 뽑고 있었다.
“뭘 도와주면 되는데?”
“라엘.”
“응?”
“마족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밭일을 도와달라더니 중요한 얘기를 시작했다.
라엘은 겐트의 옆에 쪼그려 앉아 귀를 기울였다.
“수도 주변으로 마족들이 모이고 있어. 푸른 마탑도 훈련 중에 대량의 마족과 마주쳤다고 한다.”
“겐트,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게 말이 되는 거야? 지금 제국은 마족과 휴전중이잖아. 어떻게 제국 수도 주변으로 마족들이 오는 건데?”
“이번 일은 지금까지의 침입과 달라. 백작 바솔로드가 제국에 정식으로 방문을 요청한 일이다. 휴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지.”
마족이 침입한 건 개개인의 일탈이고, 이번은 공식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말도 안 되는 핑계에 라엘이 헛웃음을 지었다.
“지랄 났네. 마족이 정식으로 요청은 무슨. 이 병신같은 제국은 그걸 또 허락한 거야?”
제국 수도에 마족이 침입하는 게 일상인 세상이다.
대체 윗대가리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라엘. 네 생각보다 인간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마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걸 알고도 딱히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거다. 가만히 있으면 전쟁이 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미안한데 너 거인족 아니지? 어떻게 인간 귀족보다 상황 파악이 빠른 거야?”
거인족은 본래 멍청하고 본성에 충실한 종족이다.
대체 이런 돌연변이는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난 거인족의 전사다. 다만 자연과 인간을 사랑할 뿐이다.”
“그러니까 그게 존나 이상하다고.”
라엘은 한숨을 쉬며 당근과 감자를 뽑아 옆에 던졌다.
이 정도면 죽을 만들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음, 그런가. 난 죽을 해올 테니 힘내라. 라엘.”
“근데 레이나를 돕진 않을 거라면서? 이런 걸 말해주면 돕는 거 아니야?”
분명 겐트는 동료를 존중한다고 했고, 레이나가 원하지 않는다면 돕지 않겠다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라엘. 난 내 동료인 네게 필요한 정보를 줬을 뿐이다.”
“···그래. 고맙긴 하네.”
거인족 주제에 나름 이쪽을 도우려고 정보를 얻으러 다닌 건가?
고맙긴 한데, 저거 사실 덩치만 큰 인간 아니야?
‘푸른 마탑···. 그래. 어차피 한 번 들리긴 했어야지.’
라엘은 겐트에게 당근과 감자를 넘기고 다시 레이나에게로 돌아갔다.
“라엘··· 나 죽을 거 같아. 콜록, 콜록.”
“손 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조금 있으면 죽도 올 거다.”
“고, 고마워.”
레이나는 라엘의 손을 안은 채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라엘은,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던졌다.
“레이나. 괜찮은 거 맞냐?”
“응. 정말 괜찮아. 그러니까 신경쓰지마.”
레이나는 자신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에휴.”
라엘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돌렸다.
*
푸른 마탑의 최상위층.
마탑주 페르마는 고단한 얼굴로 서류를 넘겼다.
“최근 마족의 움직임이 심상치않습니다. 전투를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대체 카멘 기사단 놈들은 뭐 하는 거지?”
탁- 탁-
한 손으로 주사위를 던지던 페르마는 눈가를 좁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족의 귀족이 요청한다고 문을 열어주는 제국의 황실이나, 무슨 짓을 하는 지 신경도 안 쓰는 카멘 기사단이나.
누가 보면 제국을 망치려고 고사라도 지내는 것 같았다.
‘정말 그 남자의 생각인가···?’
제국의 단결을 위해서 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
카멘 기사단장. 기디온 가르시아.
‘하지만 이상하군. 지금의 제국은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어.’
그 중심은 교단이었다.
성녀가 나타났다고 공표한 그들은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황실도 교단의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었다.
곧 용사까지 선출한다면 그것이 전쟁 준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기디온은 왜 이상행동을 멈추지 않는 거지?
“마탑주 님.”
“···그래. 카이론. 어떤 마족이었지?”
페르마는 카이론의 말에 다시 보고에 집중했다.
“알헤임의 백작인 바솔로드 입니다. 그가 부하들을 이끌고 움직이는 경로가 푸른 마탑 상위 마법사들의 훈련지와 겹치고 있습니다.”
“훈련지?”
“수도 외곽 가까이에 있는 버려진 숲입니다.”
“아, 그 곳인가. 흐음··· 뭐, 제국에서 허락한 일이라면 우리가 물러나야겠지.”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굳이 긁어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푸른 마탑은 결국 제국의 소속이다.
황실이 허락한 일이라면 그들이 막을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쯧. 마족 놈들에게 밀려나야 한다니. 어이가 없군.’
자존심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버려진 숲에 곧 엘프들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예. 알음알음 퍼지는 이야기지만··· 배거스에서도 거의 확실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변 토지까지 매입했더군요.”
“배거스가 그렇다면 확실한 정보인 모양이군.”
페르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족 이주라면 그와 더더욱 상관이 없었다.
‘2황녀가 주도하는 일이었지.’
제국의 마탑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특정한 황족을 지지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마탑은 고고한 존재인 것이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훈련지를 바꾸는 것으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예. 마탑주 님.”
페르마의 비서인 카이론은 고개를 숙였다.
최근 그는 일이 너무나 즐거웠다.
‘천상제 때는 조금 이상하긴했지만··· 드디어 내가 기억하는 마탑주 님의 근엄있는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아무래도 그 당시 깨달음을 얻으며 무언가 성장하신 게 아닐까.
카이론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똑똑.
그때, 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마탑주 님. 손님입니다.”
“손님? 누구지?”
바깥의 소리에 대답한 건 카이론이었다.
그는 보고 중에 방해받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라엘 경이라고 합니다.”
“라엘 경···? 그 분께서 마탑에는 무슨 일이지?”
그러나 라엘이라는 이름에 카이론도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라엘.
푸른 마탑의 친구이자 은십자 기사단의 명예 기사.
그리고 2황녀의 전속 기사를 맡은 떠오르는 샛별같은 기사다.
‘천상제 때 푸른 마탑의 인정을 받긴했지만··· 그 이후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셨는데.’
카이론은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25살의 젊은 패기를 가지고 있던 그는 어느새 제국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마탑주 님도 대단하시군.’
겨우 평민 검사 하나의 재능을 보고 마탑의 친구라는 칭호를 내리다니.
그 인연으로 라엘도 찾아온 것이겠지.
오늘도 카이론은 마탑주 님의 안목에 감탄했다.
“마탑주님은 미리 약속을 잡지 않으면 만날 수 없지만··· 라엘 경은 일단 대기하고 있으시라고 알려라. 내 보고가 끝나면 곧바로···.”
“그분을 당장 들여보내라!”
“···예?”
카이론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있는 페르마를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의 머리카락은 피어오르는 마력 때문에 위로 치솟아 있었다.
“카이론! 보고는 끝이다! 당장 나가서 그분을 데려와!”
“마, 마탑주 님.”
카이론은 당황하며 마탑주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침착한 마탑주가 흥분하며 마력을 분출하다니···.
“아니다, 내가 가야지! 내가 가야할 일이야!”
페르마는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 생각해 보니 마탑주 님이 이상해지셨던 게···.’
카이론은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꼈지만, 페르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휑한 방 마탑주의 사무실 안에서, 카이론은 문득 서글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