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88)
제국 경비대의 망나니 소드마스터-88화(88/105)
< 용봉지회(龍鳳支會) >
“칼슨. 오늘은 술 먹겠다고 까불지 마라.”
“예? 제가 어제 뭐 실수했습니까?”
“기억 안 나면 그냥 조용히 있어.”
라엘은 오늘도 칼슨과 루카스를 데리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2구역에서 열리는 용봉지회 예선을 구경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나저나 귀족이 좋긴 좋군요. 예선도 프리패스라니.”
“라엘 경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됐어. 어차피 네 실력이면 예선이 시간낭비야. 그리고 본선도 100명이 넘는데 언제 예선까지 하고 있냐.”
본선은 총 12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절반이 미리 내정되있는 자리고, 나머지 절반이 예선을 뚫은 자들에게 제공된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라엘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미친 새끼들. 절반이나 내정해놓는 게 말이 되냐?”
21세기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다만, 라엘이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굳이 따질 생각은 없었다.
“루카스. 대공 전하의 이름을 달고 있는 이상 절대 허투루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엘 경!”
“그래. 웬만하면 우승까지 노려봐.”
“아··· 우승 말입니까?”
우승이라는 말에 루카스의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카데미에서 매일같이 천재 소리를 듣던 루카스기에 자신은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용봉지회에서 우승할 수는 없었다.
“라엘 형님.”
“응?”
“형님이 있는데 우승을 어떻게 합니까.”
“···나 그 정도로 강하지 않다니까. 결승은 무슨, 그 전에 떨어질 수도 있어.”
라엘은 자신을 바라보는 칼슨의 시선을 피했다.
루카스나 칼슨이나 자신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형으로서 참 부담이었다.
물론 라엘은 자신이 꽤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원래 결투라는 건 강하다고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상대가 대륙 곳곳에서 오는 기재들이라면 방심할 수 없었다.
‘이러다가 128강에서 광탈하면 개쪽인데.’
설마 그러진 않겠지.
라엘은 괜히 불안감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삼걸···! 제국의 삼걸을 봐야 하오! 제발 부탁입니다!”
잠시 후,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정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중앙 경비대입니다. 그분들을 찾으셔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경비대인데 왜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겁니까?!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삼걸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깔끔한 무복을 입은 남자가 경비대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비슷한 무복을 입은 자들이 퀭한 표정을 한 채로 서 있었다.
꼴을 보니 제국민은 아닌 것 같고, 제국까지 오는 길에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다.
“라엘 형님. 삼걸이라는데요. 저거 저희 얘기 아닙니까?”
“···무시해.”
딱 봐도 이상한 놈들이다.
중세 판타지에서 저런 무복을 입고 있다니··· 저런 등신들과 엮여서 득 될게 없다.
라엘은 곧바로 몸을 돌려 예선장으로 향했다.
“나는 정천맹의 남궁진이오! 일단 삼걸을 만나게 해준다면 무엇이든 할 테니···!”
“···남궁이라고?”
하지만, 흘려넘길 수 없는 단어가 들려왔다.
라엘은 어디선가 들어본 성씨에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근본있는 놈들이 튀어나왔다.
*
남궁가가 지내는 여관 안에서, 라엘은 눈을 찌푸렸다.
“무가(武家)가 아니라 상인 집안이라고?”
“그렇습니다. 저희 집안은 대륙 동부에서 5대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남궁이 아니었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구파일방이 뭐지요?”
남궁진은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눈을 깜박거렸다.
구파일방 오대세가? 그런 단어는 처음 들어보았다.
“···근데 왜 남궁진이야.”
“우리 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인데··· 제국에서는 그런 성을 쓰면 안되는 겁니까?”
“···.”
그렇게 말하면 뭐 어쩌라는 거야.
라엘은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크흠, 귀인들 께서는 저희를 도와주실 생각입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뭐··· 얘기는 해봐.”
상인 집안이라는 말에 흥미가 떨어지긴 했지만, 이야기를 듣는 건 어렵지 않다.
칼슨과 루카스도 같은 생각인 지 라엘의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우리 남궁가는 사막 왕국 나고르와 척을 지고 있습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나고르가 그들을 쫓고 있으니 도와달란 이야기였다.
“그런 딱한 사연이···.”
“가, 감사합니다. 루카스 님. 역시 제국의 삼걸이시군요. 여러분들이라면 저희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남궁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사막왕국 나고르에게 쫓기는 동안 수많은 곳에 도움을 청했지만, 받아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결국 제국에 있다는 ‘정의를 추구하는 삼걸’을 마지막 동아줄이라 생각해 무작정 찾은 것이다.
“그 정천맹인지 뭔지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정천맹은 사소한 다툼에 끼어들지 않습니다. 정도를 걷는 자들이 짊어져야할 짐이지요.”
“···뭔 개소리야.”
라엘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형님.”
칼슨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야기에 집중하지도 않았지만, 애초에 이 자들을 도울 필요성을 못 느꼈다.
가이아 교단의 사람이면 모를까.
칼슨도 아예 초면인 사람들을 도울 정도로 착해빠지진 않았다.
“제가 꼭 도와드리겠습니다. 남궁진 씨.”
그러나, 제국의 삼걸 중에는 그런 놈이 하나 있었다.
라엘은 헛소리를 하는 루카스에게 한 마디 하려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이거 원작에서 봤던 이야기인가?’
기억났다.
사막 왕국의 돼지들을 패다가 나고르의 공주를 꼬시는 에피소드였다.
그때는 사막 왕국에서 시작한 이야기지만, 지금 보니 그 에피소드와 똑같은 흐름이었다.
‘그럼 루카스한테 맡기면 되겠네.’
안 그래도 귀찮았다.
루카스한테 다 시키면 원작대로 알아서 하겠지.
“루카스.”
“예. 라엘 경.”
“이번 일은 너 혼자 처리해봐.”
“저 혼자 말입니까?”
“이런 것도 다 경험이거든. 아, 너무 위험하면 말해. 우리가 도와줄테니까.”
루카스는 라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또한 성장의 기회다.
언제나 라엘 경의 뒤에 있으면 강해질 수가 없다.
‘라엘 경이 나에게 기회를 주시는 구나.’
꼭 이번 일을 제대로 끝내고 칼슨 경과 라엘 경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것이다.
루카스는 각오를 다졌다.
“알겠습니다. 라엘 경.”
“그래. 힘내라.”
라엘은 귀찮은 일을 떠넘겼다는 사실에 미소를 지었다.
루카스가 남궁진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라엘은 칼슨과 함께 술집에서 빠져나왔다.
“형님. 루카스를 혼자 보내도 되는 겁니까?”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마.”
사막왕국 나고르는 이미지와 다르게 강한 전사를 대우해주는 곳이다.
아마 루카스가 힘을 보이면 금방 일이 해결될 거다.
‘더 강해져라. 루카스.’
그때가 되면 자신도 뒤에 빠져서 쉴 수 있겠지.
라엘은 그 날을 기대하며 미소를 지었다.
“라엘 님!”
그때, 저 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응?”
다시 보니 사람이 아니었다.
엘프족이었다.
‘쟤들은 뭐하는 거야?’
라엘은 다가오는 엘프족들을 보며 눈가를 좁혔다.
다들 활을 들거나 마력을 풀풀 일으키는 게 전투를 준비한 모습이었다.
“에렌고르. 뭐하는 거야?”
라엘은 선두에 있는 에렌고르에게 물었다.
“아, 라엘 님. 인간 중에 자신이 바솔로드를 잡았다고 헛소문을 퍼트리는 놈이 있길래 저희가 직접 처리하러 왔습니다.”
“···.”
라엘은 에렌고르의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상황을 이해한 뒤 입을 열었다.
“설마 전쟁이라도 하러 온거야?”
“그쪽에서 라엘 님을 계속 무시한다면··· 전쟁도 굴하지 않겠습니다.
에렌고르는 눈을 불태웠다.
엘프족의 은인을 무시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엘프족은 은인이 무시당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습니다!”
다른 엘프족도 마찬가지였다.
동족을 사랑하는 엘프족은 은인이 무시당하는 것도 참지 않는 종족이었다.
“···에렌고르.”
라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예. 라엘 님!”
“당장 숲으로 꺼져! 이 개새끼들아!”
“네?”
에렌고르는 눈을 크게 떴다.
*
잠시 후.
눈을 감은 레이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라엘 씨. 죄송해요. 제가 말리긴 했는데, 다들 말을 안들어서···.”
“됐습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안 일어났으니까요.”
라엘은 곳곳으로 흩어져 축제를 즐기는 엘프족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라엘이 해산을 명령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축제에 합류했다.
숲으로 꺼지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무시당했다.
‘저렇게 내 편을 들어주는 게 든든하긴 한데···. 완전 폭탄같은 놈들이네.’
자신을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태도는 참 고마웠지만, 만약 여기서 라엘과 만나지 않았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라엘 형님···.”
“응?”
“···이렇게 예쁜 엘프랑은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칼슨은 레이네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루카스가 여자친구들과 노는 걸 봤을 때보다 더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믿었던 라엘 형님까지 여자와 어울리고 있었다.
“아··· 그냥 뭐. 어쩌다보니.”
엘프족의 얘기를 하면 바솔로드의 얘기도 해야한다.
라엘은 어쩔 수 없이 말끝을 흐렸다.
“역시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저도 꼭 배우겠습니다.”
라엘 형님은 역시 배울 게 많았다.
칼슨은 라엘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라도 배워서 자신도 이번 축제를 즐기고 싶었다.
“라엘 씨. 레이나랑은 잘 지내고 있으세요?”
“네. 비슷하죠. 그러고보니 저를 좀 피하는 것 같긴 한데··· 금방 돌아오지 않을까요?”
어느 날부턴가 레이나는 라엘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힘든 건 아니다.
친구나 동료같은 사람이 갑자기 일족의 은인이 되었으니까.
아마 부담스럽긴 하겠지.
“후후··· 그렇군요. 다음에 레이나를 만날 때 라엘 씨도 부를게요. 같이 식사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야 좋죠.”
한편, 라엘과 레이네의 대화를 지켜보던 칼슨은 내면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루카스와 라엘 형님에게만 여자가 꼬이는 거지?’
칼슨이 여자에 미친 놈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자신만 여자가 꼬이지 않는 건 억울했다.
라엘과 루카스. 그 둘이 잘생긴 건 인정한다.
하지만, 칼슨은 자신의 얼굴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다.
교단의 사제님들도 항상 자신을 보며 칭찬해주셨기 때문이다.
‘분명 라엘 형님과 루카스에게만 있는 무언가가 있다.’
문제는 얼굴이 아니다.
자신이 모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잠깐만, 설마···.’
어릴 적 보육원에서 라엘 형님과 같이 지내던 시절.
칼슨은 욕실에서 봤던 그의 이무기를 떠올렸다.
‘이런 젠장···.’
가이아 님의 축복이 있다해도 그 괴물은 흉내낼 수 없다.
칼슨은 그제서야 라엘 형님의 인기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몸 관리 잘하세요. 레이네 씨.”
“고마워요. 라엘 씨. 전 엘프족에게 가볼게요. 레이나를 잘 챙겨주세요.”
레이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엘프족을 향해 총총 걸어갔다.
그녀도 엘프족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 다행이었다.
“미안해. 칼슨. 갑자기 엘프족들이 찾아와서 시간이 촉박하네. 빨리 예선을 보러··· 응?”
라엘은 자신을 보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 칼슨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그의 시선이 불쾌했다.
“칼슨. 너 뭔가 나한테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젠장···! 형님.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저 칼슨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예선이나 보러가자니까?”
“저도 금방 짝을 찾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칼슨은 곧바로 레이네의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이번 용봉지회가 끝나기 전에 자신도 한 발자국 더 어른이 될 생각이었다.
“···상식이 있는 여자면 성기사한테 꼬리치겠냐? 저 새끼도 참 이상하다니까.”
칼슨이 성기사로 이름을 알리면 알릴 수록 여자와는 멀어질 거다.
순수하다고 해야할까 멍청하다고 해야할까.
‘저건 분명 멍청한 거지.’
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
바네사 왕국의 전사, 카일.
그는 육중한 몸으로 수도를 두리번거렸다.
카일은 바네사 왕국에서 가장 강한 전사 중 한 명이었다.
20대의 나이에 바네사 왕국 삼십육검 중 이십사검이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오른 그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보고 싶구나. 제국의 삼걸이 가진 힘을···!”
카일이 제국까지 온 이유가 무엇인가.
용봉지회도 중요했지만, 그는 목표가 있었다.
카일은 경쟁을 원했다.
바네사 왕국에서 카일과 검을 맞댈 수 있는 건 자신보다 훨씬 선배들 뿐이었다.
카일의 또래는 물론이거 다섯 살 위까진 이미 적수가 없었다.
“제발 삼걸의 소문이 거짓말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자신과 같은 세대와 검을 나눌 수 있다니.
카일은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최강의 남자가 될 것이다. 나와 경쟁할 수 있는 놈이 있으면 좋겠군···!’
또래 중 가장 강했던 카일은 언제나 나이 많은 전사들과 싸워야 했다.
그는 그게 너무나 싫었다.
자신도 비슷한 세대와 경쟁하며 성장하고 싶었다.
“그 셋의 용모를 듣긴 했지만··· 용모만으론 알 수 없겠어.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구나.”
카일은 거리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대륙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 때문에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쯧, 할 것도 없는데 보육원으로 돌아갈까?”
그때, 카일의 앞을 지나가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만 봐도 여자나 후리는 기생오라비같은 게 질문을 하면 곧바로 대답해줄 것 같았다.
“이봐. 네 녀석. 뭐 좀 물어봐도 되겠나?”
“설마 나한테 한 말이냐?”
“그래. 내가 제국이 처음이라 물어볼 게 있다.”
“···.”
라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다가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키는 자신과 비슷하지만 덩치가 큰 녀석이었는데, 첫만남부터 말하는 걸 보니 이 새끼도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모양이다.
‘제국 출신은 아닌 거 같은데··· 그냥 미개한 나라 출신인가?’
대륙에는 여러 나라가 있으니, 이놈도 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라엘은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기로 했다.
그도 한 때는 제국의 경비대 출신이었으니까.
“뭐가 궁금한데?”
“제국의 삼걸에 대해 찾고 있다.”
“하아···.”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삼걸이라는 말을 들으니 한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궁 놈들도 그렇고, 대체 왜 제국 바깥까지 그 병신같은 칭호가 퍼져있는 거지?
라엘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삼걸은 왜 찾는 거냐? 응? 걔들 사실 별 거 아니야.”
“놈들을 판단하는 건 내가 직접 한다. 나와 같은 세대에서 정말 나와 경쟁할 수 있는 자가 있는 지 알아야한다.”
“쯧쯧.”
라엘은 혀를 찼다.
삼걸을 눈앞에 두고도 저러고 있는 걸 보니 힘은 몰라도 머리가 좋은 놈은 아닌 것 같다.
무슨 얘기를 하는 지 들어보기나 할까.
“내가 라엘이다.”
“라엘? 네가 삼걸 중 최강이라는 라엘이라고?”
“그래.”
“으음···.”
카일은 라엘의 몸을 위 아래로 훑었다.
약하다.
근육이 탄탄하지도 않은 걸 보면 육체 훈련에 몰두하지 않은 것 같고, 느껴지는 마력이나 기세도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즉, 이 놈은 약한 전사다.
카일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놈이다.
“이봐. 난 네가 라엘이 아니길 바라고 있다. 너같은 약골이 삼걸이라고 불린다면, 제국에게 실망할 것 같으니까. 기회를 줄테니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
천년 제국 카멘.
최근 대륙에서는 그 이름이 가지는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제국의 힘을 키운 마족과의 대전쟁이 끝나기도 했고, 최근 카멘 제국은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그 뒤를 쫒고있는 바네사 왕국에게 역전당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 이 약해빠진 놈이 삼걸이라고 불린다면, 정말 그 날이 눈 앞까지 온 것이겠지.
“···남궁인지 뭔지 짜증났는데. 마침 잘됐다. 맞고 싶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안 그래도 이 세상에 대한 혐오가 다시 올라오던 시점이었다.
라엘의 길바닥 DNA를 자극하는 놈은 한 번쯤 교육해줄 필요가 있었다.
스릉-
라엘은 검을 뽑았다.
카일은 그때까지도 라엘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흠. 검을 들었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탁.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카일은 자신의 목덜미에 닿은 검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야. 돼지. 너 한 번 뒤진거야.”
라엘은 그의 목을 살짝 건드린 후, 검을 회수했다.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카일이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 정말이란 말인가···!”
카일은 방금까지 자신의 목에 닿았던 차가운 예기를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굉장히 빠르고··· 요사스러운 검이다.’
카일은 그의 검이 움직이는 걸 전혀 보지 못했다.
그 말은 즉, 라엘은 자신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자신과 경쟁할 수 있는 같은 세대의 전사다!
“네가 삼걸 중 최고라는 라엘이구나! 그 힘은 확실히 알았다!”
쿠웅-!
거대한 양손 대검이 그의 등에 있는 검집에서 나왔다.
마르코의 배틀 엑스만큼은 크진 않지만, 통짜 강철이라 굉장히 무거워보였다.
“내 이름은 카일! 바네사 왕국의 이십사검이다!”
“···덤벼도 존나 애매한 새끼가 덤비네.”
일검이나 이검도 아니고 이십사검은 또 뭐야?
자신감을 가지기엔 애매하게 강한 놈이었다.
“라엘! 나와 결투해다오!”
“내가 너랑 왜 싸워야하는데?”
“아아아! 정천맹의 후지기수도, 나고르의 사막전사들도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호적수를 만나다니! 이것이야말로 축복이구나!”
“···.”
아무래도 이 놈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모양이다.
라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일이 소리를 꽥꽥 질러댄 탓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빼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
길바닥 DNA가 흐르는 라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뭐, 안 그래도 바네사 왕국이 궁금하긴 했어.”
바네사 왕국은 제국 다음으로 큰 왕국이다.
그리고, 원작에서 인류를 배신해 마왕과 손을 잡는 곳이다.
‘마왕을 믿는 이교도 새끼들.’
라엘은 자신의 검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려면 일단 몇 대 패고 이야기하는 게 빠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