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tard Swordsman of the Imperial Guard RAW novel - Chapter (96)
제국 경비대의 망나니 소드마스터-96화(96/105)
< 나고르 >
라엘은 어두운 골목 사이사이를 달려갔다.
다들 황명이라는 엄청난 무게감에 짓눌려있을 때, 혼자 그 자리를 빠져나온 것이다.
그는 품 안의 각시탈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드래곤의 마법이 담겨져있는 각시탈이 있다면, 그는 들키지 않을 수 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두근거린다.
무언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라엘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라엘은 황명을 말하던 사이먼과 기디온을 떠올렸다.
그 자리에서는 기디온 가르시아의 존재감과 사이먼 황자가 말한 황명의 무게감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라엘은 뒤늦게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카멘 기사단이 그곳에서 대기하던 이유가 뭐지?’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고 쳐도, 출정 준비를 마친 카멘 기사단 전체가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심지어 2황자 사이먼와 기사단장까지 나타났다는 건, 마치 2황녀 유리엘의 세력을 마주할 걸 예상한 것 같았다.
‘뭘 숨기고 있는 거냐. 기디온 가르시아···.’
라엘은 입술을 씹었다.
카멘 기사단은 어느 순간부터 원작과 달라졌다.
제국에 충성하는 기사단에서 황녀를 노리는 배신자가 나오고, 제국을 방비해야 할 놈들은 계속 자리를 비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더 이상 멍청하게 믿을 수가 없었다.
‘보육원에 있는 사람들을 확인해야 해.’
라엘의 목표는 보육원을 지키는 것이다.
믿을 만한 놈들을 대기시켜놨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다.
나고르든, 흑마법사든, 마족이든.
라엘의 사람을 건드린다면 곱게 살려 보낼 생각은 없었다.
타다다닷-
라엘은 더욱 빠르게 발을 옮겼다.
누군가는 그를 4구역의 영웅이라고 부르지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4구역을 청소한 이유는 오로지 보육원의 안전을 위해서였고, 그가 황명을 무시하고 움직이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말은 하고 올 걸 그랬나.’
지금쯤이면 유리와 에릭도 라엘이 사라진 것을 눈치챘을 거다.
하지만, 라엘은 차라리 이게 마음 편했다.
2황녀 유리엘과 대공 에릭 그레이스.
라엘은 ‘4구역이 공격당한다’는 말을 들은 둘의 반응을 봤을 때 자신도 모르게 안도했다.
유리와 대공은 라엘의 말에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이 다른 귀족과 다르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처리하는 게 낫지.’
유리나 레인 기사단에게 손을 요청하면 분명 일이 편해질 거다.
하지만, 이 일로 유리나 대공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된다.
분명 가만히 있던 다른 놈들이 이득을 보게 될 거다.
‘아무것도 안 하는 새끼들이 올바른 행동을 한 사람한테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만큼 짜증 나는 게 없거든.’
그들이 가짜 귀족들에게 헛소리를 듣는 미래를 생각하면 미치도록 화가 났다.
“내가 언제부터 남 도움을 받았다고. 시발. 난 이게 편해.”
병신같은 세상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보육원에서 혼자 검기를 익혔을 때부터, 경비대에서 꿀 빠는 삶을 기다릴 때도, 각시탈을 쓰고 4구역을 청소할 때도.
라엘의 목표는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며 정해진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피엔딩이 예정된 세상에서 내가 좆같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고등교육을 수료한 라엘이라도 가끔은 중세 판타지식 사고를 하고 싶어진다.
허리에 매어진 검은 여전히 무겁게 다가왔다.
‘한 쪽 뺨을 맞았으면 너는 두 쪽 뺨을 후려라.’
중세 판타지의 길바닥에서 배운 거라곤 그런 것밖에 없었으니, 배운 대로 움직여야겠지.
라엘은 생각을 멈추고 조용한 밤거리를 달렸다.
4구역에 들어서며 그의 발걸음은 점점 급해졌고, 보육원에 가까워지자 이내 다리에 마력이 실렸다.
‘···피 냄새가 나.’
라엘은 긴장한 채 보육원의 정문을 넘었다.
정문 주변에 가득한 전투 흔적을 넘자,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재빨리 보육원의 마당을 살폈다.
움직임 없는 시체들과 피 웅덩이 같은 전투의 잔재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칼슨! 루카스!”
라엘은 보육원 건물 앞에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곧바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그의 맥박을 확인했다.
“야, 야. 칼슨! 괜찮아?!”
라엘은 미약한 신성력을 느끼며 주변을 확인했다.
칼슨, 루카스. 그리고 레인 기사단의 기사 넷.
전부 중상이었지만, 신성력으로 조치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목숨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크흡. 라, 라엘 형님.”
“칼슨! 이런 씹··· 미안하다.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라엘은 천천히 눈을 뜨는 칼슨의 몸을 눕혔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형님 부탁은 듣기가 싫다니까요. 하핫, 신성력 검강이 없었다면 진짜 죽을 뻔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대체 어떤 새끼들이 왔길래 전부···.”
칼슨과 루카스는 완숙한 그래듀에이트급의 검사다.
같이 있던 레인 기사단 넷도 저 둘보다는 약하지만, 검강을 사용하는 강한 기사들이었다.
이렇게 쉽게 쓰러질만한 병력이 아니었단 말이다.
라엘도 그걸 알기에 안심하고 유리와 대공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라엘 경··· 죄송합니다. 흑마법사와 마족들이···.”
뒤늦게 루카스도 눈을 떴다.
그는 몸에 가득한 마기를 몰아내느라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루카스. 무리해서 말하지 마. 흑마법사와 마족한테 당한 거야?”
“예···. 놈들은 저희를 공격하다가 이 곳은 저항이 거칠다며 몸을 뺐습니다.”
“사막 전사들은 없었어?”
“예, 예. 없었습니다. 라엘 경.”
“고마워. 고생했다. 루카스.“
라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육원 곳곳에 흑마법사와 마족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었다.
스릉-
라엘은 검을 꺼냈다.
그리고, 가까이 있던 마족의 목에 검을 꽂았다.
“커, 커어어억. 캬아아악···.”
그와 동시에, 죽은 척하고 있던 하위 마족이 발악하기 시작했다.
목이 베었는데도 운 좋게 살아남은 놈이다.
라엘은 무표정한 눈으로 마족을 보며 손을 움직였다.
“마족은 목을 완전히 자르지 않으면 천천히 재생을 시작하거든. 목이 육체와 조금이라도 이어져 있으면 재생을 시작해.”
“그, 그분들께서 직접 움직일 것이다. 너희들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
서걱-
라엘은 망설임 없이 마족의 목을 베어냈다.
피가 묻은 검을 한 번 털어내고, 검집에 수납한 뒤 보육원 안으로 들어갔다.
“라, 라엘이니···?”
보육원 안에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안아주고 있는 사라 선생님과 레이젤 수녀님이 보였다.
“예. 수녀님.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라엘은 레이젤 수녀에게 가볍게 목례한 뒤 아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며 사라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사라 선생님.”
“라, 라엘. 괜찮은 거야?”
“니아랑 해리는 어디 있어요?”
니아와 해리.
보육원의 큰 누나와 큰 형이고, 이제 막 10살이 된 아이들이다.
라엘은, 그 아이들에게 항상 동생들을 챙기라는 말을 했었다.
“그 아이들은···. 자기들은 괜찮다며 다른 아이들을 먼저 대피시키다가···.”
사라 선생님의 눈빛만 봐도 이어질 말은 알 수 있었다.
라엘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알겠어요. 금방 데려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세요.”
“라엘! 위험해!”
라엘은 대답 없이 보육원 마당으로 나왔다.
그의 뒤에 한 명의 인기척이 달라붙었다.
“클라라.”
“···응.”
라엘은 고개를 돌렸다.
몸 곳곳에 있는 상처를 보니 그녀도 싸움에 참여한 모양이다.
“본거지. 찾았지?”
“찾았어.”
“아직 살아있어?”
클라라는 라엘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에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응. 아이들은 주술의 산제물일거야. 아직 살아있어.”
“안내해. 아, 그 전에.”
라엘은 고개를 돌려 보육원 담장을 바라보았다.
보육원에 도착한 뒤, 루카스와 칼슨이 다친 것을 확인하고, 니아와 해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지금 라엘의 머리는 차가웠고, 감각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그 누구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담장 뒤에 숨어있는 너희 둘. 나와.”
“읏···”
“역시 라엘. 직감이 좋군.”
담장 뒤에서 장생종 둘이 걸어 나왔다.
미친 엘프와 이상한 거인족이었다.
“라엘···?”
레이나는 라엘의 얼굴 보면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가 저렇게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이 보육원은 대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너희들 뭐하냐? 기껏 혼자 빠져나왔는데 따라오면 어떡해.”
“걱정하지 마라. 라엘. 우리가 유리의 편인 걸 아는 사람은 얼마 없으니.”
“아니. 그래도 안 돼. 난 모습을 숨길 수 있지만, 너희들은 아니잖아.”
라엘은 각시탈이 있지만, 레이나와 겐트는 얼굴을 드러내면 안 된다.
저 둘은 나중에 2황녀 유리엘의 측근으로서 활약해야 한다.
“라엘!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수 있어.”
“레이나. 이건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황명이라는 단어는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대공과 레인, 그리고 유리가 황명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4구역으로 향하는 걸 포기하지 않았나.
“라엘. 넌 욕심이 많군. 도움을 원하지 않던 레이나는 억지로 도와줘 놓고, 이제 와서 우리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니.”
그때, 겐트가 라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라엘도 차마 그 말을 무시할 순 없었다.
“···겐트. 레이나는 몰라도 넌 상관없잖아.”
“라엘. 넌 내 동료다. 그리고 거인족이 동료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다.”
라엘이 마음 가는 대로 레이나를 도와준 것처럼, 겐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선한 인간인 라엘을 좋아하기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라엘. 나, 나는 괜찮은 거지? 도와줄게.”
“쯧···. 너희들 알아서 해.”
라엘은 겐트와 레이나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따라와서 도와준다는데 거절하는 것도 이상했다.
게다가, 더 이상 설득할 시간이 아까웠다.
“가자. 클라라.”
좆같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의 안식이 되는 곳을 들쑤신 놈들을, 절대 내버려두지 않겠다.
라엘은 몸을 돌렸다.
*
‘기디온의 말대로군.’
사막 왕국 나고르의 기사단장. 나마하.
그는 주술진에 갇혀있는 아이들과 시체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천년 제국 카멘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이유는, 카멘 기사단장의 협력 때문이었다.
‘평민을 납치해도 신경 쓰지 않는 멍청한 귀족들인가···.’
나마하는 미소를 지었다.
제국을 사랑하는 카멘 기사단장 기디온이 자신들에게 협력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괴물 같은 놈의 의도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가 하루만 시간을 끌어준다면··· 충분하다.’
나마하의 주변으로 흙바람이 몰아쳤다.
메마른 사막의 분노가 그의 몸을 가득 채웠다.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여주마.’
긴 세월이었다.
기름진 땅을 차지한 놈들이 사막 왕국을 무시하고 핍박하던 날은 끝났다.
대륙에게 아직 나고르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기회였다.
또각. 또각.
그때, 그의 옆으로 불길한 기운을 뿜는 남자가 걸어왔다.
흑마법사들의 수장이었다.
그의 뒤로는 이번 주술을 완성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 흑마법사들이 서있었다.
“주술이 완성되었습니다. 나마하 단장님.”
“그런가? 수고했다.”
“하핫, 아닙니다. 나마하 단장님 덕분에 일이 편해졌습니다···. 마족과 연합을 숨겨주신 덕에 나고르의 전사들도 쉽게 협력해 주었고요.”
사막 왕국에서도 마족들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그러나, 나마하가 마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숨겨준 덕분에 일이 편해졌다.
“별말씀을. 그보다 주술은 내 말대로 만들었겠지? 우리도 발동할 수 있도록, 단순히 마력만 있으면 작동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예. 이것은 제물의 생기를 매개로 발동하는 주술입니다. 이제 마력을 주입하기만 하면 됩니다. 약속대로 저희가 반을 가져가고, 나머지 반은 나고르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군.”
나마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촤악-
그리고, 손을 들어 기분 나쁜 흑마법사의 목을 날려버렸다.
“아?”
털썩-
흑마법사의 수장은 짧은 단말마를 남긴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흑마법사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나마하! 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이제 와서 배신이라니!”
“이용 가치 없는 쓰레기를 죽이는 데에 이유가 필요한가?”
나마하는 피식 웃으며 검을 뽑았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터져 나왔다.
“커, 커흡···.”
소드마스터의 마력에 흑마법사들이 무릎을 꿇으며 쓰러져나갔다.
나마하는 쓰레기들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막의 긍지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처음부터 너희들과 손을 잡을 생각 따윈 없었다.”
저벅. 저벅.
사방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사막 전사들이 걸어나왔다.
“전부 처리해라.”
“예!”
나마하의 명령에 사막 전사들이 흑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자신의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가운데에, 흑마법사가 나마하를 보며 소리쳤다.
“머, 멍청하긴. 나마하! 우리의 도움 없이 제국을 공격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제국을 공격하다니, 이상한 말이군. 우리를 도와준 자들을 어째서 공격한단 말이냐. 설마 카멘 기사단이 가만히 있는 이유가 정말 너희들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나마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사이비들은 대하기가 편했다.
조금만 띄워주면 정말 자신들이 대단한 줄 아는 멍청이들이니까.
“서, 설마··· 처음부터···!”
뿌드득-!
나마하는 흑마법사의 머리를 내려쳤다.
‘멍청하긴.’
제국과 손을 잡았을 때부터.
흑마법사들은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기디온 가르시아.
그 자는 철두철미했다.
흑마법사들이 주술을 만들자마자, 나고르에서 그들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니까.
나고르가 제국에 약간의 혼란을 발생시키고, 흑마법사와 마족을 처리하는 동안.
카멘 기사단이 그 뒤를 봐주며 완성된 주술진으로 바네사 왕국과 정천맹에 피해를 입힌다.
마지막으로 쓸모없는 스카리아 공주를 넘기며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운다.
제국도 나고르도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기디온 가르시아. 여기까진 네 계획이었겠지.’
하지만, 나마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대륙에게 사막의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제국도 빠질 수 없었다.
기디온은 주술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카멘 제국, 너희들을 가장 먼저 모래에 파묻혀주마.”
사막의 분노는 시간이 지날 수록 강해진다.
가장 먼저 모래에 파묻힌 흑마법사들은 어쩌면 운이 좋은 것일 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