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loved New Daughter-In-Law of the Wolf Mansion RAW novel - Chapter (110)
늑대 저택의 사랑받는 새아가 110화(110/187)
헤른 선생님이 허둥지둥 내게 다가왔다.
“아, 아니, 그게 왜 열렸지? 아가씨, 만지지 마세…….”
순간 연구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아르센과 레오나, 그리고 카인은 서로 힐긋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 묘한 기류를 눈치챈 헤른이, 절망적인 낯으로 말했다.
“……설마, 만지셨어요?”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에 상자가 들려 있고, 흙들의 색이 전부 변해 버렸기 때문에 변명할 수도 없었다.
“마, 만졌는데…….”
“아가씨, 몸은 괜찮으세요? 아니, 아니 이걸 어떻게 해야, 일단 흙부터……, 어라?”
내게서 상자를 받아든 헤른이, 특수한 털로 만든 붓처럼 보이는 것을 들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이게 무슨.”
“제,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구요. 갑자기……, 이능이.”
나는 거의 울먹거리며 말했다.
헤른의 소중한 연구 샘플을 망쳐버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그냥 도와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그러나 울진 않고, 헤른을 가만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헤른이 멍하니 다가와 내 손이 닿아 색이 변해버린 흙에 손가락을 톡 가져다 댔다.
그리고.
“……!”
소스라치게 놀라며, 흙을 손가락으로 쥐어 만져보았다. 헤른의 손 안에서 흙이 부스러져 떨어졌다.
“아가씨께서 만지셨다고요?”
“네? 네에.”
“이능을 사용하셨습니까?”
나는 헤른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사용한 건 아니고……, 그냥 갑자기 이능이 사용됐어요. 반응한 것처럼…….”
“이게, 이게 어떻게.”
헤른 선생님은 흙의 색이 변한 것이 충격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러게 레온이 여기 온다고 할 때 말렸어야 했는데…….’
레오나가 사고를 안 칠 거라고 생각하다니, 이건 명백히 우리의 실수였다.
헤른 선생님은 상자를 받아들더니, 이내 상자를 꼼꼼하게 살폈다.
“이게 열려 있었을 리 없는데……, 제가 분명히 잠긴 걸 확인했단 말입니다. 억지로 여셨습니까?”
“아니, 내가 떨어트렸어. 미안.”
아르센이 나섰다.
“떨어트린다고 열릴 리가……, 설마?”
그는 이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조그맣게 입을 벌리고 탄식했다.
“제 실수입니다. 이것도 치워 놨어야 하는 건데, 아니 근데…….”
“그으, 죄송해요.”
“아니, 아니 죄송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히려 기쁜 일인걸요. 일단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우선 가주님께 보고해야겠습니다.”
헤른 선생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데리고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헤른 선생님의 손에는 조금 전, 바닥에 떨어져서 뚜껑이 열린 상자가 들려 있었다.
***
“반성해.”
켄드릭이 서류를 팔락팔락 넘기며 여상하게 말했다.
켄드릭의 맞은편에는 헤제스 가문의 가주이자 카인의 아버지인 크레이튼 헤제스가 앉아 있었다.
나와 아르센, 카인과 레오나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팻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힐긋.
카인을 바라보자, 카인은 억울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손에 팻말을 하나씩 들고 서 있었다.
내가 든 팻말에는
[친구를 말리지 않음.]이라고 쓰여 있었고,
레오나의 팻말에는
[하루에 세 번씩 사고를 침]이라고 쓰여 있었고,
아르센과 카인의 팻말에는 각각
[마찬가지로 친구를 말리지 않음] [친구가 사고 치는 걸 옆에서 구경만 함]이라고 쓰여 있었다. 켄드릭이 우리를 위해 직접, 손수 쓴 팻말이었다.
헤른 선생님은 우리가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사고를 쳤다는 것을 곧바로 켄드릭에게 알렸다.
그는 우리가 사고를 쳤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우리를 불러들여 벌을 세웠다.
‘가만히 있으란 말은 죽어도 안 듣는군.’
그러나 그렇게 얘기하는 켄드릭은 그렇게 많이 화가 나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런 장난스러운 팻말을 손에 쥐여 준 것부터가 그랬다.
‘다행이야.’
헤른 선생님은 그 흙이 왜 색이 변했는지는 알려주시지 않았지만, 샘플이 많이 망가지지는 않은 듯했다.
헤른 선생님과 켄드릭의 얼굴이 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낑낑대며 팻말을 들었다.
나와 레오나는 겸허히 잘못을 받아들이고 팻말을 높이 들었으나.
카인과 아르센은 여전히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 이렇게 벌을 서고 있으니 카인이 불만을 가질 법도 했다.
“똑바로 들어, 카인. 말리지 못한 네 잘못도 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말대꾸는 허락한 적 없는데, 아들.”
크레이튼이 말하자, 카인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켄드릭이 웃으며 말했다.
“아르센, 불만 있는 눈친데.”
“난 말렸다고, 그런데 쟤가…….”
아르센이 씩씩대며 레오나를 노려보았다. 레오나 역시 지지 않고 아르센을 마주 노려보았다.
“떨어트린 건 너거든? 난 옆에서 구경만 하려고 했단 말이야.”
“네가 서성이지 않았으면 내가 떨어트릴 일도 없었잖아.”
“……둘 다 제발 조용히 해.”
처음 말한 게 레오나, 그 다음에 아르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탈한 듯한 목소리로 말한 것이 카인이었다.
나는 지은 죄가 있어 입을 꾹 다물고 눈짓으로 세 아이를 말렸다.
‘그만 떠들어, 얘들아!’
“아직 덜 반성한 모양인데…….”
켄드릭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잽싸게 고개를 내저었다.
“반성했나?”
“네!”
입을 모아 대답하자, 켄드릭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더 들고 있어라. 그래야 다신 그런 사고를 못 치지. 너희 큰일 날 뻔했어.”
“……큰일이요?”
“그래, 연구실에 위험한 게 얼마나 많은데.”
켄드릭은 앞에 크레이튼이 있는 탓인지, 그 흙이 왜 위험했는지는 아직 설명해 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크레이튼은 우리가 연구실에서 연구 샘플을 망쳤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연구실에 데려가 달라고 떼쓰지 말아라.”
“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르센과 레오나를 바라보았다.
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인은 대답할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파에 앉아서 철저히 방관만 했으니까.
게다가 연구실에 가고 싶다고 한 적도 없었다. 오자마자 레오나에게 끌려갔을 뿐.
그래서 여전히 제법 억울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뭘 망쳤길래 그래.”
크레이튼이 찻잔을 기울이며 켄드릭에게 말을 붙였다.
켄드릭은 대답하기 싫은 모양인지 대충 넘어갔다.
“연구 샘플. 애들이 건드리면 큰일 나는 거. 그나저나 카인은 오늘 데리고 갈 텐가?”
“글쎄, 나야 데리고 가고 싶지만 더 있고 싶어 하는 눈치라. 좀 맡아 주면 고맙겠는데.”
크레이튼이 오늘따라 그답지 않은 말을 꺼냈다. 카인을 예크하르트에 보내는 것을 조심했지만, 막상 또래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수인 사회 분위기가 안 좋아. 알잖아. 레오나도 와 있는데 카인까지 와 있는 걸 알면.”
“모르게 하면 되지 않나. 카인이 여기 따라왔다는 걸 아는 사람은 헤제스 저택의 사용인들뿐이다.”
새어나갈 일은 없다고, 크레이튼이 장담하며 찻잔을 기울였다.
“……그럼 두고 가든지. 젠장, 예크하르트 저택이 애들 보육원이 되고 있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켄드릭은 별로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우리는 두 남자가 찻잔을 기울이고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팻말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팻말을 내리는 걸 허락받은 건, 크레이튼이 이만 돌아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그럼 카인을 잘 부탁한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켄드릭이 대충 크레이튼을 배웅했다. 예크하르트 저택의 사용인들이 모두 나와 뱀 일족의 수장인 크레이튼 헤제스가 돌아가는 길을 배웅했다.
“카인, 말 잘 듣고 있어라. 아들.”
“……알았대도.”
카인이 툴툴대며 대답했다. 크레이튼 헤제스는 그렇게 저택을 떠났다.
켄드릭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이제 그만 가서 놀아라, 사고 그만 치고.”
켄드릭이 아르센과 카인의 머리를 잔뜩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우리는 혹여 켄드릭의 마음이 변할까 싶어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켄드릭이 어서 가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
조금 전.
크레이튼 헤제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켄드릭의 집무실 문을 두드린 사람이 있었다.
“들어와라.”
켄드릭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리고 헤른이 들어왔다.
바깥에는 아이들이 서 있는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헤른을 부른 적이 없는데, 갑자기 찾아온 헤른에 켄드릭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나?”
“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말씀드리기가 좀.”
켄드릭은 헤른의 손에 들려 있는 상자를 보고 곧장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크레이튼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잠시 헤른과 함께 집무실 옆의 서재로 향했다.
물론 아이들은 따라 들어올 수 없도록 복도에 얌전히 서 있으라고 한 채였다.
서재의 문을 닫고, 이능을 사용하여 얇은 막까지 친 켄드릭이 입을 열었다.
“연구 성과 보고인가?”
“아니, 아닙니다……. 그것이 사실.”
헤른은 곤란하다는 듯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내 주춤거리며 입을 열었다.
“다말 땅의 흙이 정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