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loved New Daughter-In-Law of the Wolf Mansion RAW novel - Chapter (129)
늑대 저택의 사랑받는 새아가 129화(129/187)
“아버님!”
나는 고개를 반짝 들었다.
켄드릭이 저 멀리서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9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곳이 거의 없었다.
깔끔하게 넘긴 잿빛 머리 군데군데 흰머리가 약간 생겼다는 것 정도.
그러나 원래 머리칼 색이 잿빛이라, 흰머리가 눈에 띄지 않았다.
켄드릭은 지난 9년 동안 일이 있다며 저택을 자주 비웠다.
어쩌다 저택에 오래 머무는 날이면, 집무실에 틀어박혀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켄드릭이 그나마 여유로워 보일 때는 우리를 데리고서 다말 땅에 갈 때뿐이었다.
‘바쁘신가 봐.’
나와 아르센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자일스 꽃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시에는 잘 해결되고 있다고 하셨는데.
아니었던 걸까?
자세히 얘기해 주시려고 하지 않으니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켄드릭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잘 해결되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레오나와 카인에게도 슬쩍 자일스 꽃 관련한 이야기를 물어 보았지만.
‘응? 자일스 꽃?’
레오나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듯한 눈치였고.
‘……꽃이 뭐?’
카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검은 후드는 더 이상 안 나타나니까…….’
내가 어릴 때, 내 눈앞에 두 번 나타났던 그 사람 말이다.
일곱 살 때는 멀리서 위협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열 살 때는 극장에 갔다가 다칠 뻔했지…….’
켄드릭은 그 사건 이후로 나를 보호하는 것에 힘썼는데, 이상하게도 지난 9년 동안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목적을 달성한 건가?’
어찌 됐든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지난 9년 동안, 예크하르트 저택은 몹시 평화로웠다.
아르센이 크게 아팠던 적도, 무언가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났던 적도 없었으며, 라니에로에서 나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굳이 이상한 일을 하나 꼽자면…….
‘창가에 둔 꽃.’
글레네가 떠나기 전에 주고 간 그 꽃은, 이상하게도 12년 동안 시들지도, 썩지도 않았다.
그것이 이상해서 한 번은 물을 주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수분이 부족한 탓인지 잠시 이파리를 접었지만, 물을 채워주니 곧바로 다시 살아났다.
12년 동안 시들지 않는 꽃이라니,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신기한데.
한 달 전, 꽃잎이 하나 떨어졌다.
오래 살았으니, 이제 시들 때가 되어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
뭔가 불길했다.
딱 꽃잎 한 장만이 떨어져 보란 듯이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여 이능을 사용해 보았지만, 떨어진 자리에서 새로 꽃잎이 나지는 않았다.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아무튼 그런 일을 제외하면.
‘꽤 평화로웠지.’
사용인들은 여전히 상냥했고, 늑대 일족은 여전히 나를 완전히 신뢰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눈치인 듯했다.
어차피 이제 곧 아르센과…….
‘이혼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어 눈을 깜빡였다.
아르센과 이혼이라니.
지금껏 거의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는데,
‘한 달 뒤엔 내가 성년이 돼.’
그건 곧, 나와 켄드릭이 한 계약이 종료됨을 의미했다. 동시에,
신전에서 주는 단 한 번의 기회.
조혼을 한 아이들이 이혼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에서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문득 기분이 이상해서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깜빡이자, 켄드릭이 한발 성큼 다가와 나와 아르센을 바라보며 물었다.
“준비는 다 했나 보군.”
“준비할 게 따로 있나요.”
아르센이 무뚝뚝한 투로 대답했다.
그가 그림자 늑대의 콧등을 톡 치자, 늑대가 순식간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나는 아쉬운 듯 늑대가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꽃씨를 좀 챙겼어요.”
나는 켄드릭에게 꽃씨와 모종삽이 담긴 가방을 보여주며 말했다.
물뿌리개는 필요하지 않았다.
켄드릭이 내 가방을 보더니, 웃으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
켄드릭은 다말 땅 입구에서부터 이능을 사용하여 마차를 완전히 가렸다.
그리고 나와 아르센 역시 이능으로 가려 우리가 다말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다른 이들이 볼 수 없도록 했다.
“다녀와라.”
켄드릭은 언제나 그랬듯이, 마차에서 우리 둘을 배웅했다.
다말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일단 지금은 나와 아르센뿐이었으니까.
“가자.”
아르센이 앞장서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아르센의 커다란 손 위에 내 손을 살포시 올렸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하고.”
켄드릭은 조심하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나는 켄드릭의 그림자 속에 숨어 다말 땅으로 향하는 내내, 아르센의 손을 힐긋 바라보았다.
‘손이 엄청 커졌네. 예전에는 나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이제 손가락도 제법 두툼했다.
“아르센.”
“왜.”
“그림자 늑대 불러주라.”
아르센의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하자, 아르센이 나를 힐긋 쳐다보았다.
그리곤.
파아앗-!
공중에서 손을 휘젓자, 그림자들이 스멀스멀 모여 거대한 늑대가 나타났다.
……아니, 나타나려다 말았다.
그림자 늑대는 잠시 눈치를 살핀 뒤, 덩치를 줄여 다시 나타났다.
“늑대, 으앗!”
그림자 늑대는 냅다 내 뒷덜미를 문 뒤, 나를 자신의 등에 태웠다.
덕분에 나와 손을 꼭 잡고 있었던 아르센이 잠시 휘청였다.
“뭐 하는 짓이야?”
아르센이 신경질적으로 물었지만, 개의치 않는 듯한 모양새였다.
“좋아서 그런 거 아닐까? 여기만 오면 좋아하잖아.”
나는 그림자 늑대의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아르센에게 말했다.
그림자 늑대는 이 다말 땅의 정화된 공간을 정말 좋아했다.
잔디밭에 등을 문지르고, 거대한 나무 밑에서 우리와 함께 낮잠을 자곤 했으니까.
아르센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다말 땅의 중심부에 도착하자, 늑대는 나를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아 주었다.
“고마워.”
웃음 띤 목소리로 인사하며 거대한 머리를 쓰다듬자, 늑대의 눈꼬리가 가늘게 휘어졌다.
다말 땅의 중심부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나무가 어찌나 큰지, 늑대 일족, 아니 새 일족의 영토까지 다 합쳐도 이보다 큰 나무는 없을 것 같았다.
“또 꽃 심으려고?”
아르센이 푸른 잔디와 잡초가 섞여 자라난 땅을 보며 말했다.
나는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꽃은 왜 자꾸 심는 거야? 귀찮을 텐데…….”
“야아, 내가 작년에 부지런히 꽃을 심어 뒀으니까 네가 올해 이렇게 예쁜 꽃들을 보는 거라구.”
나는 아르센을 타박하며 말했다.
“나는 꽃이 좋아. 꽃을 심구 꽃이 피어나는 걸 보면 정말로 여기가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든단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도와줘야 돼?”
“응, 여기 좀 파. 나 꽃씨 넣을 거거든. 근데 나는 힘드니까 네가 좀 파 줘.”
당당하게 말하자, 아르센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이내 그림자 늑대를 시켜 땅을 파 주었다.
나는 파인 자리마다 꽃씨를 쏙쏙 넣고, 다시 덮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이능만 적당히 사용하면 끝이었다.
공중에 연둣빛의 조그만 물뿌리개가 나타나 땅에 이능을 뿌렸다.
‘붉은색이 아니라 다행이야.’
나는 땅에 촉촉하게 스며드는 연둣빛 이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붉은 빛은 그날, 아르센을 치료하려고 이능을 썼을 때를 제외하고서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일이었다.
켄드릭 역시 갑자기 이능의 색이 바뀌는 것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다고 했는데,
‘……계속 그런 이능이 나왔다면 어쩔 뻔했어.’
그러면 정말로, 장난이 아니고 정말로 저주받은 새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끔찍한 상상에 고개를 부르르 털었다. 꽃 심기는 어느덧 끝이 났다.
사실 땅을 파고 흙을 덮는 건 전부 아르센과 그림자 늑대가 하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가져온 꽃씨를 탈탈 털어 전부 심은 뒤, 아르센과 함께 얇은 천을 펴고 거대한 나무그늘 밑에 주저앉았다.
“으아, 좀 쉬자!”
“네가 뭘 했다고?”
“내가 꽃씨 심었잖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심는 건 내가 했고 넌 뿌리기만 했지.”
아르센이 얄밉게 말했다. 나는 아르센을 향해 눈을 흘겼다.
“어떻게 이렇게 일곱 살 때랑 똑같지? 달라진 게 하나두 없네…….”
“너야말로, 이렇게까지 똑같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넌 서른 살에도, 마흔 살에도 똑같을 것 같아.”
“서른 살?”
나는 아르센의 입에서 나온 미래를 상상하는 말에 눈을 깜빡였다.
“서른 살……, 으응, 그럴지도 모르지. 아르센, 있잖아.”
“말해.”
“너는 나랑 이혼하면 어떨 것 같아?”
“……이혼?”
아르센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응, 당장 하자는 건 아닌데……, 나 이제 곧 성년이구.”
아르센 역시 내가 성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
아니 모르나?
표정이 왜 이렇게 험악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