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loved New Daughter-In-Law of the Wolf Mansion RAW novel - Chapter (187)
늑대 저택의 사랑받는 새아가 187화(完)(187/187)
“다말에 좀 다녀오려고 합니다.”
아르센이 켄드릭에게 건조하게 보고했다.
내내 서류를 보고 있던 켄드릭이 느리게 고개를 들어 아르센을 한 번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라.”
정화된 다말 땅은 현재 예크하르트의 아래에 귀속되어 있었다.
물론 다른 일족의 수장들이 정화된 다말 땅을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지만, 예크하르트와 페르난도 그리고 헤제스 가문이 강력히 막아섰다.
다말 땅을 정화한 것은 린시이니 만약 그 애가 다시 나타난다면 린시에게 다말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에 반박할 일족은 없었기에 다말은 임시로 예크하르트에 귀속되어 있었다.
때문에, 아르센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말 땅을 드나들 수 있었다.
이후, 저번 사태로 거처를 잃은 많은 수인들이, 다말을 새로운 터로 삼고 집을 지었다.
까맣게 죽었던 저주받은 땅.
이제는 그곳에서 수인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르센은 그 웃음소리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나무를 떠올렸다.
수인들은 자신들을 구해 준 린시를 기억하고 되새기며, 거대한 나무를 꽃으로 장식했다.
나무는 그날 이후, 가지고 있던 특별한 힘을 잃고 그냥 거대한 나무가 되었지만.
남은 이들에겐 여전히 특별한 곳으로 존재했다.
수인들에게는 자신들을 구해 준 은인을 기억하는 장소로.
아르센에게는 린시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장소로.
아르센은 종종 그 나무 아래에서, 린시와 둘이 낮잠을 자곤 했던 그날들을 떠올렸다.
사무치게 그리운 그 평화를.
아르센이 린시를 그리워하는 만큼 켄드릭 역시 린시를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켄드릭은 아르센이 다말 땅에 자주 간다고 핀잔을 주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잘 다녀오라고 인사할 뿐.
켄드릭 역시 다른 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밤이면, 종종 그 나무에 찾아가서 린시를 추억하곤 했기 때문에 아르센을 나무랄 처지가 못 되었다.
아르센이 가볍게 인사한 뒤 집무실을 나섰다.
예크하르트의 문장이 새겨진 거대한 마차가 아르센을 태우고 예크하르트 저택을 나섰다.
“…….”
선선한 바람이 아르센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아르센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마차 벽에 기대어 바깥을 내다보았다.
마차가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다말 땅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는데.
‘린시가 해냈지.’
아르센이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과 키가 꼭 같았던, 어린 린시가 떠올라서였다.
두 손바닥에 몽글몽글한 녹색 빛을 가득 품고서 커다란 눈을 반짝이던 린시.
그 황폐한 땅이 이렇게 바뀐 것을 본다면 누구보다 더 좋아했을 텐데.
아르센이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린시가 소멸한 지 올해로 꼭 다섯 해째였다.
아르센은 스물다섯의 장성한 청년이 되었고, 아르센의 그림자 늑대들 역시 날이 갈수록 더 성장하여 린시가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몸집이 불어났다.
카인은 헤제스 가문의 가주 작위를 물려받았고, 레오나는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스물다섯의 린시는 어땠을까.
아르센은 마차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수없이 떠올렸던 그 생각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다.
어쩌면 탐스러운 붉은 머리칼을 싹둑 잘랐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잘 땋아 꽃으로 장식하는 일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다말 땅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낮잠 자는 걸 즐겼을 테고…….
그리고…… 예크하르트의 안주인이자 아르센의 부인으로서 예크하르트 가문의 일을 도왔겠지.
그 일만 없었다면.
그날 축제에서 그 일만 없었다면, 아르센과 린시는 아마도 결혼식을 올렸을 터였다.
식을 올리고, 면사포를 쓴 린시를 마주하고 서서, 행복하게 낯을 붉히고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을 중얼거렸겠지.
아르센은 종종 린시를 떠올릴 때면, 놓쳐버린 그 시간들이 아쉽고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자연히 린시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 나무 밑을 찾게 되는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아르센 님.”
마차를 호위하던 기사가 바깥에서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아르센은 린시의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서 마차에서 내렸다.
바로 눈앞에 온갖 꽃과 달콤한 간식들로 장식된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어린아이가 나무 밑동에 감긴 리본에, 수줍게 꽃을 꽂아두고서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을 물릴까요, 아르센 님.”
기사가 나무 앞의 수많은 수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수인들은 예크하르트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와 아르센을 발견하고 조금씩 물러났지만, 여전히 나무 앞에는 수인들이 많았다.
이에 혹 아르센이 린시를 떠올리는 데 방해가 될까 싶었던 기사가 수인들을 물리려던 찰나.
“됐다, 그냥 둬. 어차피 오늘은 그냥 멀리서 보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아르센이 거대한 나무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르센의 말에 기사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거대한 나무.
“금방 올게, 아르센!”
나무 밑동에 고운 손을 살포시 가져다 댄 채, 환하게 웃던 린시의 얼굴이 자연히 떠올랐다.
아르센은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그날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나무 아래서의 입맞춤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 그리고…….
마침내 날아올라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린 그 순간까지.
그 모든 순간이 너무 아프고 그리워서, 아르센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인들이, 하나 둘 천천히 나무 밑에서 물러났다.
아르센은 기사들도 전부 물린 채, 나무 밑에 혼자 우뚝 서서 거대한 나무를 한참 동안이나 올려다보았다.
아르센의 그림자 늑대 역시 어느샌가 튀어나와 아르센의 옆에 엎드리고 앉아 꼬리를 살랑였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이만 가야겠군.”
아르센이 기울어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몇 시간이나 흘렀는진 모르겠지만, 그가 이 자리에 꽤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
그림자 늑대가 고개를 홱 돌리고 꼬리를 미친 듯이 살랑였다.
아르센의 고개가 자연히 그림자 늑대의 시선을 따라 돌아갔다.
그리고 시선이 닿은 자리에는.
사과가 잔뜩 들어 있는 바구니를 든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묶고, 내도록 그리워했던 연둣빛 눈동자를 깜박이며.
“……린시?”
아르센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의심할 수조차 없었다. 린시가 분명했다. 아르센이 린시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을 못 알아볼 리가 있겠는가.
지금 노을을 등지고 걸어가고 있는 이는 분명…….
“린시!”
린시 예크하르트.
아르센의 소중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연인. 하나뿐인 부인이자…….
다시 없을 구원자.
그림자 늑대가 말릴 틈도 없이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아르센은 늑대를 붙들려고 했으나 이미 한 박자 늦은 뒤였다.
그림자 늑대가 순식간에 몸집을 줄이고 린시에게로 달려들어 하얀 얼굴을 마구 핥았다.
“으, 으앗! 깜짝아!”
린시는 깜짝 놀라 사과 바구니를 놓친 채 주저앉아 그림자 늑대를 안아 들었다.
린시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조그마해진 그림자 늑대를 말이다.
아르센은 꿈만 같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이내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옮겼다.
종내에는 걸음을 옮기는 것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아 달음박질쳤다.
그리고 땅에 허물없이 주저앉아 그림자 늑대를 마구 쓰다듬고 있는 린시를 내려다보았다.
린시가 그림자 늑대를 쓰다듬다 말고, 천천히 제 앞에 선 아르센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
“……!”
동그란 연둣빛 눈이 반짝였다.
아르센을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아르센!”
아르센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 크누트 신이 잠시 숨겨 두었던 린시의 모든 기억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라니에로의 불길 속에서 죽어야만 했던 생부터,
반드시 아르센에게 돌아오겠노라고 약속했던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었지.]그리고 익숙한 음성이 다시 한번 두 사람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아르센은 아무 말 없이 린시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품에 익숙한 온기가 가득 찼다. 역시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리고…….
“……아르센.”
꿈에서 그리던 목소리.
린시가 조심스럽게 아르센의 뺨을 감싸 쥐고 나붓하게 웃었다.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해.”
린시가 아르센과 이마를 맞대고 행복하게 웃었다.
연둣빛 두 눈에는 아침 이슬 같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르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린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하얗고 보드라운 뺨, 탐스러운 붉은 머리칼, 그리고…… 익숙한 온기가 가득 고여 있는 손까지.
“……기다렸어, 린시.”
네가 정말로 보고 싶었어.
나는 너를 아주 오래 기다렸어.
아르센이 못다 한 말들은 잠시 뒤로 미뤄둔 채, 린시의 턱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고개를 기울여 입을 맞췄다.
긴 그림자가 내내 엎드려 있던 그림자 늑대의 옆으로 길게 뻗어나갔다.
불그스름한 노을이 두 사람을 휘감고 지나가 생명으로 가득한 다말 땅 위로 쏟아졌다.
린시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아르센의 목을 팔로 단단히 감고서 몸을 가볍게 기댔다.
린시와 아르센의 행복한 웃음소리에 거대한 나무의 나뭇잎들이 부드럽게 물결치듯 흔들렸다.
말했지, 아르센,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나는 반드시 네게 되돌아올 거라고.
린시가 아르센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주받은 땅, 다말에 마침내 완전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