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loved New Daughter-In-Law of the Wolf Mansion RAW novel - Chapter (21)
늑대 저택의 사랑받는 새아가 21화(21/187)
나는 고개를 돌려 아르센을 바라보았다.
아르센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몸을 흠칫했다.
그러나 소년은 금세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나 때문이라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아픈 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아르센이 제법 씩씩하게 말했다.
내가 자신을 치료해주지 못해 걱정하는 게 퍽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나는 감동받은 눈으로 아르센을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약 먹는 거 싫어하잖아.”
내 말에 아르센이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을 했다.
“그건……, 맞지만…….”
“아픈 것도 싫어하구…….”
물론 아픈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없지만, 아르센은 유독 엄살이 심한 축에 속했다.
손에 작은 상처 하나만 나도 울먹거리곤 했으니까.
물론 내가 치료해주면 뚝 그치지만.
“……그치만 이제 적응해서 괜찮아.”
아르센이 꿋꿋하게 말했다.
베티와 헤른 선생님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아르센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르센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내내 입술을 달싹이던 아르센이,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나를 치료해 줄 때마다 네가 아픈 건 싫으니까.”
“나 아프지는 않은데?”
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곧장 대꾸했다.
이능을 무리해서 사용하면 나중에 몸이 망가질까 걱정하는 것뿐이지, 아픈 건 없었다.
내 말을 들은 아르센이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 무리하면 안 된다며……. 그러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아르센이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갑자기 새가 되어 버리잖아. 그러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돼.”
“그치만 아-르센, 너는 내가 수인화한 게 더 좋다며?”
나는 엉덩이를 움직여 아르센 옆에 다가가 앉았다.
아르센이 내 걱정을 하며 꾸물꾸물 이야기하는 게 제법 귀여웠던 탓이다.
낯간지러운 소리를 잘도 말하던 소년이 이내 볼을 붉힌 채 미간을 찌푸렸다.
“내, 내가 언제!”
“방금.”
베티가 들어오기 바로 전에.
“수인화가 풀린 건 못생겼다고 했잖아.”
정확하게 콕 짚어 이야기하자, 아르센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아르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듯 말했다.
“수인화한 게 물론 더 좋아! 하지만……, 하지만 이것도 좋은 것 같고……. 에이, 몰라. 아무튼 그런 걱정 하지 말란 말이야, 바보야! 알겠어?”
아르센은 와르르 쏘아붙인 뒤, 번개처럼 방 안을 빠져나갔다.
나는 눈을 멀뚱멀뚱 뜬 채 아르센이 나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풋.”
정적을 깬 것은 헤른 선생님이었다.
내가 눈을 깜빡이는 동안, 헤른 선생님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터진 작은 웃음을 시작으로, 헤른 선생님은 아르센이 나간 자리를 쳐다보며 폭소했다.
“으하하하!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정말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나는 헤른을 올려다보았다.
“으응?”
“도련님께서 저런 말씀을 하시다니……, 세상에서 약 먹기를 제일 싫어하시는 분이 말이에요.”
그는 도련님이 저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내내 웃었다.
아가씨께서 무리하시는 게 정말로 싫은 모양이라고.
헤른 선생님이 웃음을 터트리는 걸 가만 바라보던 베티가, 내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조그만 손 위로 커다란 온기가 지붕처럼 덮였다.
“도련님 말대로예요, 아가씨. 아가씨께서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하지만…….”
내가 온 이유는 아르센을 치료해주기 위해서인걸.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꺼내고 머뭇거리자, 베티가 다 이해한다는 듯 따스하게 웃었다.
오후의 햇살처럼 마냥 따뜻한 웃음이었다.
“아가씨도 어린아이이신걸요. 아가씨께서 너무 부담 가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도련님은 아가씨께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힘드실 거예요.”
“……응.”
“그리고 도련님도 요즘 정말 건강하신걸요! 전부 아가씨 덕분이에요, 그러니까.”
베티가 이어 말했다.
“아가씨는 걱정하지 마시고 당분간 잘 드시구, 잘 주무시구, 잘 놀면 되어요. 그게 어린아이의 역할이니까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헤른 선생님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아가씨. 도련님의 상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좋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도감에 볼이 붉어졌다.
“네에, 그럴게요.”
“자, 그럼 이제 좀 쉬세요, 아가씨. 우리는 이만 나가보지.”
헤른 선생님이 왕진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베티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가씨, 조금 주무시고 계세요. 이따가 간식 시간에 깨워 드릴게요.”
“응, 베티. 그리구…….”
나는 고개를 들어 베티의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고마워, 베티. 정말로.”
진심이었다.
좋은 말을 한가득 들었더니, 꼭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다.
베티가 내 말을 듣곤 싱긋 웃었다.
“저도요, 아가씨. 푹 쉬고 계세요.”
헤른과 베티는 내 침대를 정돈해 준 뒤 금세 방을 빠져나갔다.
* * *
눈을 떴을 때는 저녁이었다.
‘언제 잠들었지.’
베티랑 헤른, 그리고 아르센이 있을 때는 환한 낮이었는데, 일어나 보니 창밖이 캄캄했다.
‘엄청 오래 잤나 봐.’
베티가 간식 시간에 깨워 준다고 했는데, 내가 너무 곤히 잠들어 있어서 그냥 놔둔 모양이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오래 자지 않는데…….
수인화가 풀리면서 몸 상태가 돌아오고 있어서 그런 걸까?
나는 끙차끙차 솜이불을 걷었다.
이불 안은 내 체온 때문에 난로처럼 따끈따끈했다.
‘더워…….’
이마를 짚어 보았지만, 다행히 열이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비척비척 걸어가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내 상태를 살폈다.
오랫동안 잔 탓인지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볼은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더워서 깬 걸까…….’
두 손을 볼에 착 가져다 대자, 후끈후끈한 볼이 만져졌다.
손부채질로 얼굴을 식히자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창틀 가까이 다가가 창문을 조금 열었다.
끼이익-.
창문이 열리면서 시원한 밤바람이 머리카락을 살랑 스치고 지나갔다.
“으아, 살 것 같다.”
나는 창틀에 앉은 채, 다리를 달랑거리며 낮의 일을 떠올렸다.
어린아이는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달래 주던 베티.
아픈 것쯤은 참을 수 있다며 나를 달래 주려고 했던 아르센.
언제나 정성껏 치료해 주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던 헤른까지.
정말로 상냥한 사람들이야.
나는 두 사람을 생각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들을 두고 라니에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예크하르트의 이름을 걸고 늑대들의 약속을 받아냈으니, 켄드릭은 최대한 나를 보호하려고 들겠지만.
문제는 예크하르트 가문을 이끌어가는 게 켄드릭 혼자가 아니라는 거다.
‘예크하르트에도 라니에로처럼 원로원이 있을 텐데,’
원로원은 나 때문에 신전과 부딪쳐야 한다고 하면, 분명히 나를 돌려보내려고 할 터였다.
에효효, 한숨만 계속해서 나왔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른 뒤, 두 손을 모으고 이능을 사용해보았다.
연두색 빛무리가 손바닥 위에서 연기처럼 일렁거렸다.
투명한 연두색 숄 같기도, 숲에 사는 산들바람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형상은 이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오르더니, 내게서 탈출하려는 듯 형체를 일그러트렸다.
나는 지레 겁먹은 채 이능 사용을 그만두었다.
‘왜 이러는 거지?’
지금 내 이능의 상태는, 처음 이능을 각성했을 때와 똑같았다.
이능을 제어하고 활용하는 법을 배우기 전.
아니, 오히려 이능이 그때보다 더 크고 난폭해진 것 같았다.
“큰일 났네…….”
나는 불안하게 일렁거리는 이능의 형태를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보아도 정상은 아니었다.
털갈이를 일찍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안 되겠어.”
나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창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불안정한 이능을 해결해야 아르센을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라니에로로 돌려 보내지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해.
“……켄드릭 님한테 도와달라구 하자.”
원래 이럴 때는 어른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최고다.
켄드릭은 내 이능이 왜 이렇게 불안정한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신관과 켄드릭이 대화하는 것을 엿들은 이상, 어차피 켄드릭과 한 번은 대화를 해야 했다.
켄드릭은 나를 보호하기로 약속했으니 날 도와줄 터였다.
‘그런데 지금 가도 괜찮을까?’
나는 협탁 위에 있던 시계를 달빛에 비춰 보았다.
다행히 아직 오후 여덟 시.
많이 늦은 시간은 아니다.
‘좋아. 결정 났어.’
나는 곧장 방문을 벌컥 열었다.
* * *
‘휴우, 떨려.’
켄드릭의 집무실 앞.
나는 먼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무언가를 부탁하러 오는 것은 처음이라서 자꾸만 심장이 뛰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집무실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안에서 켄드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거대한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나는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했다.
“켄드릭 님……, 들어가도 될까요?”
“린시?”
켄드릭이 나를 보고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집무실 안의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일단 들어와서 앉아.”
“네에, 감사합니다.”
나는 켄드릭이 말을 무르기 전에 후다닥 소파 위에 앉았다.
그는 보던 서류를 정리한 뒤, 내 맞은편의 소파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린시.”
“그게 사실……, 부탁드릴 것도 있구, 말씀드릴 것도 있어서요.”
“부탁?”
켄드릭이 눈썹을 치켜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