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loved New Daughter-In-Law of the Wolf Mansion RAW novel - Chapter (27)
늑대 저택의 사랑받는 새아가 27화(27/187)
나는 켄드릭의 방에서 나와 곧장 방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아르센을 잘 구슬려 볼 생각뿐이었다.
‘켄드릭 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르센이 신전에 가서 나와 결혼하기 싫다고 울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창문에 슬쩍 비친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그러니 아르센을 잘 어르고 달래서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시선을 땅바닥에 떨어트린 채 고민하며 걸었다.
문제는 시선을 땅바닥에 고정한 탓에 성큼성큼 걸어오는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콰당!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과 크게 부딪히고 말았다.
“아, 아야야…….”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가주님께서는 지금 중요한……, 아가씨!”
저 멀리서 에단이 황급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에단은 재빨리 다가와 내 겨드랑이 사이에 불쑥 손을 넣어 나를 일으켜 주었다.
“괜찮으세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응? 으응, 나는 괜찮아. 그런데…….”
힐끔.
나는 방금 나와 크게 부딪힌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나와 부딪힌 노인은, 내게 사과 한 마디 건넬 생각 없다는 듯 나를 흉흉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순간 오금이 저렸다.
본능적으로 더듬더듬 에단의 품을 찾자, 에단이 나를 번쩍 안아들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나는 두 팔을 벌려 에단의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왜 저렇게 노려보지?’
아무리 내가 실수로 부딪쳤다지만, 저쪽도 분명히 책임이 있지 않나.
그런데 노인은 여전히 내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흉흉한 두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나는 노인을 알아보았다.
‘아!’
아홉 명의 대원로 중, 유일하게 내 호의를 거절한 사람.
에스테르.
에스테르 역시 같은 방법으로 회유하러 다가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도망치듯 황급히 자리를 뜨는 탓에 회유하는 데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회의 때도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
아무래도 그는 나를 몹시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때.
‘어?’
나는 혹여 내가 잘못 본 걸까 싶어 두 눈을 비볐다.
그러나 내 눈은 정확했다.
‘저게 뭐지?’
에스테르의 등 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붉은 기류가 넘실거렸다.
마치 금방이라도 노인을 집어삼킬 것처럼 불길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문제의 검붉은 기류가 내게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뭐, 뭐야……?’
에스테르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그가 저 기류를 조종하는 건 아닌 듯하고,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를 집어삼킬 것처럼 넘실거리던 기류가 이젠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물러나려고 했으나, 에단에게 안겨있는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애꿎은 에단의 목만 조른 것이 되어 버렸다.
“아가씨, 아가씨?”
에단이 내게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나를 불렀다.
그러나 에단에게 대답해 줄 여력이 없어,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고개만 도리질 쳤다.
‘저게 뭐야? 싫어…….’
설상가상,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목에 무언가가 턱 걸려 막힌 듯한 기분이다.
에스테르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검붉은 기류가 내 머리 위로 짙게 드리운 순간,
파아앗-!
어디선가 눈부시게 밝은 빛이 뻗어 나와 검붉은 기류를 집어삼켰다.
일순, 몸에서 힘이 줄줄 새어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뭐, 뭐지……?’
나를 쏘아보던 에스테르가 일순 창백하게 굳은 낯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에 따라 불길한 기류도 한발 물러나는 듯하더니, 이내 세차게 타올랐다.
그러나 무슨 힘에 억눌린 듯, 다시 꾸물꾸물 에스테르의 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에스테르의 얼굴도 조금 전처럼 사나운 낯빛으로 돌아왔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덜덜 떨자, 에단이 나를 살짝 흔들며 불렀다.
“아가씨, 아가씨! 어서 헤른 선생님을…….”
“……쯧.”
에스테르가 혀를 찼다.
에단은 에스테르의 태도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와락 구겼다.
“무례하십니다, 에스테르 님! 이분은 곧 예크하르트의 작은 마님이 되실 분…….”
“그래 봤자 아직은 적대 가문의 일족일 뿐 아닌가.”
에스테르가 싸늘하게 맞받아쳤다.
그러나 나는 방금 보았던 이상한 기류에 놀라, 에스테르와 에단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정신이 없었다.
조금 전, 그 환한 빛을 본 사람은 나밖에 없는 모양이다.
불길한 기류 역시.
‘도대체, 저게 뭐야……?’
나는 겁먹은 채 에스테르의 등 뒤를 힐끔 보았다가, 아까보다 더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했다.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갔던 검붉은 기류가 도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더니, 이내 여러 갈래로 조각나 저택 전체로 흩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게 식는 기분.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위층이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에단의 품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내, 내릴래, 에단! 내려 줘!”
“예? 아니, 아가씨께선 헤른 선생님의 진찰을 받아야…….”
에단은 곤란하다는 듯 대답하면서도, 내가 다칠까 싶어 세게 잡지 않았다.
내가 계속해서 발버둥치고 내리겠노라 말하자, 에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나는 에스테르를 신경 쓸 새도 없이, 곧장 위층을 향해 달렸다.
“도, 도련님! 안 돼…….”
“아가씨, 아가씨를 모셔와야 해요!”
“하지만 아가씨께선……, 도련님을 치료하실 여력이…….”
“맙소사, 도련님!”
하녀들이 아르센의 방 앞을 분주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나는 곧장 하녀들을 헤치고 아르센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때, 나를 가로막는 손길이 있었다.
“아, 아가씨……!”
클로이였다.
하녀들은 곤란하다는 낯으로 일단 나를 막아섰다.
내 이능이 불안정하다는 얘기를 전달받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르센이 위급한 상황에 나를 마냥 막을 수도 없어서, 곤란해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비켜, 비켜 줘! 나, 아르센한테 가야 해.”
살짝 열린 문 틈으로 꺽꺽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제야 하녀들은 길을 터 주었다.
나는 재빨리 아르센의 침대로 다가갔다.
“아르센, 아르센. 내 목소리 들려?”
“아, 아악!”
아르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고여 툭 흘러내렸다.
고통으로 소년의 낯이 와락 일그러졌다.
헐렁한 잠옷 소매 사이로, 검붉은 반점들이 돋아나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조금 전 에스테르에게서 흘러나와 저택으로 퍼진 불길한 기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더 생각할 틈은 없었다.
아르센이 곧장 또 발작을 일으킨 탓이었다.
나는 재빨리 아르센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아르센, 정신 차려. 응? 내가 안 아프게 해 줄 테니까…….”
나는 아르센의 손을 행여 놓칠세라 꼭 잡은 채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이능을 사용하려고 했다.
“…….”
“…….”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 왜 이러지?’
당황해서 그런가?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나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아르센의 손에 이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언제나 물처럼 막힘없이 흘러나오던 이능은, 무언가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사용되지 않았다.
“왜, 도대체…….”
도대체 왜?
나는 이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르센을 치료해 주겠다며 예크하르트에 왔는데, 아르센이 아파해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울던 아르센은, 이제 지친 듯 울지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예크하르트에 온 이후, 처음으로 본 아르센의 병세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당연히 아르센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한심해질 만큼.
“아르센, 아르센! 정신 차려. 응? 아르센…….”
무리해서 이능을 사용하려고 한 탓일까, 연두색 연기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수인화는 안 돼!’
아직 치료도 못 했는데, 수인화될 수는 없다.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땀에 젖은 아르센의 얼굴을 더듬었다.
‘제발…….’
아르센의 안색이 창백했다.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창백하여 덜컥 겁이 난다.
그때, 희미한 연둣빛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펑!
익숙한 느낌에,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익숙한 남자가 방에 발을 들였다.
온통 흐트러진 낯을 하고.
켄드릭과 헤른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인사할 정신 같은 건 없었다.
내 몸의 상태가 불안정한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니까.
‘수인화는 안 되는데…….’
그러면 아르센을 제대로 치료해 줄 수 없다.
그런데, 맞잡은 아르센의 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분명히 수인화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내 몸은 인간 상태 그대로였다.
‘그럼…….’
나는 느리게 내 몸을 살펴보았다.
등 뒤에, 조그만 밀색 날개 한 쌍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일순 낯이 창백하게 질렸다.
신체 일부만 수인화되는 것은, 덜떨어진 수인이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라니에로에서는 신체 일부만 수인화되는 것을 엄청난 수치로 여겼다.
그러나 그런 것을 신경 쓸 새도 없이, 누군가가 내 손목을 덥석 잡아챘다.
“……미쳤군, 아무도 안 말리고 뭐 했어. 하, 이러다 너까지…….”
“켄드릭 님……, 이, 이상해요. 이능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요. 아르센을 치료해 줘야 하는데…….”
더듬더듬 말을 잇다가, 볼을 타고 눈물이 툭, 떨어졌다.
켄드릭이 한숨을 내뱉으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불쑥 튀어나온 날개가 켄드릭의 허벅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린시, 진정해. 아르센은 헤른 선생이 볼 거다. 그러니까…….”
그러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르센을 치료해 주겠다고 예크하르트에 왔는데,
이러면 밥을 축내는 식충이가 된 것만 같았다. 게다가…….
‘아르센은 내 첫 친구니까.’
이 애를 꼭 치료해 주고 싶었다.
맞잡은 손을 놓치지 않도록 꼭 힘을 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그 순간.
내 기도에 신이 응답했다.
턱 막혀 있던 이능이 뚫리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맞닿은 손 사이에서 선명한 연두색 빛이 갈라져 나와 방 안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