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loved New Daughter-In-Law of the Wolf Mansion RAW novel - Chapter (33)
늑대 저택의 사랑받는 새아가 33화(33/187)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 진짜 많다.’
가운데에 대신관과 켄드릭, 그리고 아서 라니에로가 둥글게 앉아 있었고 그 뒤로 신관들이 자리했다.
나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헙, 숨을 들이쉬었다.
‘수, 숨이…….’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니 전생의 끔찍한 기억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를 경멸하듯 쳐다보던 눈빛.
나는 속이 메스꺼워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아르센이 내 손을 꼭 붙잡은 채 고개를 약간 숙여 물었다.
“……괜찮아?”
“으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올렸다.
“린시!”
나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눈을 크게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대신관이 벌떡 일어선 아버지를 제지했다.
“정숙하세요, 이곳은 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분란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신관의 말에 아버지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다시 용기 내어 세 사람이 앉아 있는 중앙 원탁까지 걸음을 옮겼다.
“린시.”
켄드릭은 내가 긴장한 것을 알아차렸는지, 나를 보고 느리게 웃어 주었다. 근사한 입매가 살짝 올라갔다.
나와 아르센이 쭈뼛쭈뼛 서자, 켄드릭이 다시 입을 열었다.
“늑대 일족과 새 일족의 정략혼은 새 일족의 수장 아서 라니에로와의 협의 끝에 결정된 사항이므로 신전은 이 사항에 한해서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대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정략혼은 가능합니다! 논지는 저치가 라니에로의 아이를 납치해 갔다는 점입니다!”
아버지가 핏대를 세우며 반박했다.
켄드릭이 화난 어린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진정해, 아서. 지금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으니까.”
“……크흠.”
아버지는 자리에 앉아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 따가운 시선에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시선을 떨어트렸다.
“신전에서 분쟁 조정에 나섰고, 두 일족의 수장이 이 자리에 출석하였으니 이 문제는 신전으로 이관된 것이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대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을 통한 분쟁 조정은, 두 일족 모두 출석하면 그 문제 자체를 신전에 이관하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반하는 일족은 연맹에서 제명 처리한다.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나와 아르센을 제외하고- 알고 있는 사실을 한 번 더 짚어 준 켄드릭이 입을 열었다.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 보지, 아서.”
켄드릭이 내게 손짓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 후, 아버지를 한 번, 대신관을 한 번, 그리고 켄드릭을 한 번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느리게 입을 열었다.
“저는, 돌아가구 싶지 않아요.”
“뭐?”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원탁을 치며 핏대를 세우고 되물었다.
나는 그 흉흉한 시선에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저는……, 예크하르트에서 아르센과 결혼하구 싶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당장 이리 와, 린시!”
아버지가 몹시 화난 듯 눈을 부릅뜨고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는 내가 정말로 ‘강제로 납치’ 당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니 분쟁 조정을 요청했겠지.
보통은 신전에 분쟁 조정을 요청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리도 신전으로 이관될 뿐 아니라, 신전이 끼어든 이상 두 일족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전에 도움을 청한 아버지의 속내가 투명하게 보였다.
‘내가 납치당했다구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늑대 영토에서 꺼내오기 위해 요청한 거야.’
늑대 일족의 영토를 함부로 침범할 수도, 예크하르트에 정식으로 항의할 수도 없으니까.
그런데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아마 자신을 만나면 내가 곧장 라니에로로 돌아가고 싶다며 울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어림도 없어.
나는 절대 라니에로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납치당한 아이입니다. 저 아이가 정신이 멀쩡할 리가 없습니다. 저 애는 겨우 일곱 살입니다.”
아버지가 신관들과 대신관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호소하듯 말했다.
“일곱 살이지만 똑똑하고 영리하지.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할 아이가 아니란 건 자네가 더 잘 알 텐데.”
켄드릭이 웃었다.
“저 어린아이를 납치해서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 정숙하세요.”
대신관이 금종을 울렸다.
인자한 시선이 잠시 아르센에게 닿았다 이내 내게 향했다.
“린시 님, 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나는 한 손을 가슴에 올리고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대신관이 허허, 웃었다.
“린시 님의 도움이 필요하겠군요. 라니에로의 주장대로 납치당하신 건지, 아니면 예크하르트의 주장대로 직접 따라가신 건지.”
“제가 데려가 달라구 졸랐어요. 예크하르트에 가고 싶어서요.”
켄드릭이 원탁의 중앙에 쪽지 하나를 슥 밀어놓았다.
내가 처음 켄드릭을 만났을 때 그에게 건넸던 쪽지였다.
‘저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구나.’
“이 쪽지는 린시가 처음 저를 만났을 때 전해 주었던 쪽지입니다. 쪽지의 종이는 새 일족의 영토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만들어진 고급 종이로, 린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직접 썼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물론 신전에서 필체 검증도 완료했으니, 예크하르트는 아이를 납치했다는 오명을 벗어도 될 것 같군요.”
켄드릭이 여유롭게 말했다.
나는 그제야 저번 주, 내게 글씨를 써 보라며 내밀었던 것이 필체 검증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아차렸다.
대신관이 쪽지를 받아 들어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심히 살폈다.
켄드릭과 아서가 살기를 감추지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신관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대신관이, 이내 돌아와 앉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대신관이 무언가를 적은 종이를 외알 안경을 통해 보며 말했다.
“우선 예크하르트 측에서 고의로 납치했다는 물증이 없고, 린시 님의 자의였다는 정황이 보이니 유괴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린시 님이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고, 아직은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라고 사료됩니다.”
“…….”
“아직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을 만큼 나이가 어리다는 라니에로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린시 님의 송환을…….”
나는 대신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가만히 듣다가 입을 작게 벌려 탄식했다.
‘안 돼.’
안 돼, 라니에로로 돌아갈 수는 없어.
아버지는 벌써 자신이 이긴 양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드물게 켄드릭의 표정이 약간 구겨져 있었다.
나는 아르센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대신관을 또렷하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린시 라니에로구요. 일곱 살이에요. 라니에로 저택에 있을 때 벨린 부인이 저를 학대해서 라니에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제가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알구 있어요, 그리구…….”
아르센이 잔뜩 긴장했는지 표정을 굳힌 채 내 손을 맞잡았다.
“아르센을 너무 좋아해서 아르센과 결혼하구 싶어요.”
나는 아르센을 힐끔 쳐다보았다.
‘준비됐지?’
입을 벙긋거리며 속삭이자, 아르센이 제법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르센의 양 볼을 두 손으로 챱 잡았다.
대신관과 켄드릭, 그리고 아버지와 다른 신관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쪽.
나는 아르센과 입술을 부딪쳤다.
정말 짧았지만, 신전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우리가 뽀뽀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됐나……?’
나는 짧고 강렬한 뽀뽀가 끝난 뒤 슬쩍 다른 이들을 돌아보았다.
‘원래대로라면 벨린 부인이 나를 학대했다는 것만 얘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면 벨린 부인만 저택에서 잘리는 것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버지가 나를 학대한 것은 열 살 이후부터였으므로, 일곱 살의 몸에 학대의 흔적이 남아 있을 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트리스탄이 알려준 ‘비장의 무기’를 사용했다.
뽀뽀.
“…….”
“…….”
다들 말문이 막힌 듯 멍하니 우리 둘을 바라보았다.
적막을 깬 것은 아니나 다를까, 켄드릭이었다.
“봐, 저렇게 좋다는데. 어차피 정략혼은 기정사실화되었으니 결혼시키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대신관님. 안 그래, 아서?”
“……도대체 저 애에게 무슨 짓을……!”
아버지는 잔뜩 진노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켄드릭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수고했다, 린시. 이만 나가 있어.”
“무슨 소리냐! 여기 있어!”
아서가 원탁을 쾅 쳤다.
켄드릭이 미간을 좁혔다.
“방금 린시가 한 말 못 들었나? 라니에로에서 학대당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군. 대신관님, 아이들을 내보내도 되겠습니까?”
“허락합니다.”
신관 두 명이 우리에게 다가와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나와 아르센은 신관들의 손을 꼭 붙잡은 채 홀을 나왔다.
나는 바깥에 나오자마자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센과 꼭 붙잡고 있던 손이 땀으로 미끌거렸다.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신관들은 우리를 바깥까지 안내해 준 뒤, 곧장 다시 돌아갔다.
나와 아르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잘 말한 거 맞겠지?”
“응. 근데 왜 나한텐 안 물어봤던 걸까?”
아르센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한테도 물어볼 줄 알고 준비 열심히 했는데.”
“그러게 말이야, 다들 정신이 없었나 봐.”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정말로 신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관이 제발 마음을 바꾸게 해 달라고.
그때였다.
“……린시?”
나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이 목소리는 설마……?’
아르센 역시 나를 따라 자연히 고개가 돌아갔다.
내 앞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나는 내 앞에 불쑥 나타난 소년의 얼굴을 확인하고 낯을 구겼다.
“……게일?”
게일 라니에로.
그는 라니에로 가문의 차기 가주 후보이자 나의 이복오빠였다.
올해로 열두 살이 되는 게일은 나와 아르센보다 키가 훨씬 컸다. 덩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게일은 일방적으로 나를 싫어했다.
그건 내가 강한 이능을 가진 탓이었다.
나 때문에 자기가 후계자로서 인정받지 못할까 봐 겁이 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나를 자주 괴롭혔다.
‘진짜 싫다.’
게일까지 만나야 한다니.
나는 아휴,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아버지를 따라 신전에 온 듯했다.
“너, 납치당했다며.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게일이 이죽거렸다.
비소가 담긴 시선이 아르센에게로 흘렀다.
“그것도……, 이렇게 냄새나는 개를 옆에 끼고서.”
“뭐?”
아르센이 벌떡 일어섰다.
나는 잽싸게 아르센을 잡아 앉혔다.
이 상황에 게일과 싸워서 좋을 것이 없다.
안 그래도 저 안에서 켄드릭과 라니에로가 나를 두고 협의 중일 텐데.
라니에로에게 빌미를 줄 수는 없다.
그때, 게일이 내 손목을 덥석 잡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