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loved New Daughter-In-Law of the Wolf Mansion RAW novel - Chapter (55)
늑대 저택의 사랑받는 새아가 55화(55/187)
“오랜만이군, 라몬트.”
켄드릭이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맞은편에 앉아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는 남자에게 닿았다.
잘 빗어 넘긴 검은색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매와 근사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인상적인 남자.
사자 일족의 수장인 흑사자 라몬트 페르난도였다.
“이게 얼마만이야, 켄드릭? 자네가 사자 영토까지 다 오고.”
라몬트가 의외라는 듯 웃으며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댔다.
“꼬박 일 년 만인가? 곧 축제 기간이니까 말이야.”
“그래, 일 년 만이지.”
켄드릭이 고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다름이 아니라, 자네와 상의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상의하고 싶은 거라니?”
“최근에 금제를 사용하는 집단을 본 적이 있나?”
켄드릭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의 질문에, 라몬트의 낯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켄드릭. 금제를 사용하는 집단이라면 오래전에 절멸하지 않았나.”
“그래, 그랬지……. 그런데 최근에 금제를 쓰는 이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누구한테.”
켄드릭이 손을 내저었다.
“누구한테 들었는지까지는 알 필요 없고.”
“늑대 일족 내부에서 일어난 일인가?”
“내부에서만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큰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자넬 찾은 거야.”
라몬트가 미간을 구겼다.
“아직까진 들은 적 없어, 정보는 확실해? 자네에게 장난을 쳤을 수도 있잖나.”
“뭐…… 장난인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켄드릭이 티스푼을 찻잔에 넣고 휘휘 휘저으며 린시의 낯을 떠올렸다.
린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금제를 사용한다고 이야기가 나온 이가 실종되었어.”
“실종?”
“어, 오늘 그자의 집에 가 봤는데 삼 일 전부터 들어오지 않았다는군.”
“잠시 어디 간 게 아닐까, 켄드릭. 자네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내 추측이 맞는다면, 그자는 죽었을 거다. 라몬트.”
라몬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린시가 그러더군. 어제 갑자기 자신의 금제가 풀렸다고 말이야.”
“린시? 며느리로 들였다는 그 새 일족의 여자애?”
“어, 그 애가 자신의 목에 금제가 걸려 있었다는군.”
라몬트가 허, 헛웃음을 뱉었다.
“켄드릭, 그 애는 고작 일곱 살이라며. 일곱 살 어린애가 뭘 알겠어? 금제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거짓말일 거다. 원래 그 나이 또래 애들은 거짓말하는 걸 좋아하니까.”
“린시는 에스테르가 자신에게 금제를 걸었다고 했어.”
켄드릭이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그리고 에스테르가 실종되었다. 나는 이 모든 일이 연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글쎄, 켄드릭. 나는 자네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나저나 그 애는 대체 어디서 금제에 관한 얘기를 들은 거야? 라니에로에선 어린애들한테 그런 것도 가르치나?”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린시는 똑똑한 아이고.”
“아무리 똑똑해도 일곱 살이면 우리 레오나와 동갑…….”
벌컥.
라몬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재의 문이 벌컥 열렸다.
켄드릭과 라몬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빠!”
활짝 열린 문.
그 앞에는 의기양양하게 허리에 두 손을 척 얹은 여자아이가 우뚝 서 있었다.
곱슬곱슬한 주황색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묶은 아이였다.
페르난도 가문의 막내딸.
레오나 페르난도였다.
“세상에. 아가씨, 손님이 오셨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러시면 안 돼요.”
곧이어 아이의 전담 하녀로 보이는 사용인 한 명이 달려와 아이를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빠! 나 나가서 놀래!”
“……하, 켄드릭. 잠시만 기다려.”
라몬트가 마른세수를 했다.
“레온, 아빠가 손님을 만나고 있을 땐 들어오지 말라고…….”
“나가서 놀고 싶어! 번화가를 구경하고 싶다고!”
“미치겠군, 아빠 말이 안 들리니?”
라몬트가 낯을 구겼다.
레오나는 자신을 말리는 하녀의 손을 뿌리치고 다다다 달려와 라몬트의 무릎에 착석했다.
“나가서 놀고 싶어, 응? 말 잘 들을게…….”
“일곱 살 어린애들은 통제가 안 되는 법이지.”
라몬트가 민망한지 켄드릭에게 눈짓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켄드릭은 이해한다는 뜻으로 픽, 웃어 보이곤 마저 차를 마셨다.
“손님과 얘기가 끝나면 부르마. 그때 다시 얘기하자, 어때? 엔리카! 뭐 해! 이 애를 데려가지 않고!”
“아니, 아니이. 지금 얘기해 줘! 지금……. 근데 아저씨는……, 어어, 켄드릭 아저씨!”
레오나가 그제서야 켄드릭을 알아보곤 반가운 낯을 했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새 많이 컸구나, 레온.”
“응, 나 많이 컸어요. 근데 아저씨 아들은 언제 만나게 해 주실 거예요?”
레오나는 아직 아르센을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켄드릭과 라몬트에게 이야기만 들었을 뿐.
그래서 레오나는 아르센이 몹시 궁금했다.
“레오나, 버릇없는 소리 말고 나가. 어서.”
“아르센? 글쎄다……, 이번 축제 때 만나겠구나.”
“이번 축제요?”
레오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아르센 말고 다른 친구도 있을 거다. 레오나, 네가 잘 놀아 줘야 한다.”
“다른 친구……? 세상에. 아빠, 친구를 두 명이나 만날 수 있대!”
레오나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어 라몬트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드는 바람에 레오나의 머리에 턱을 맞은 라몬트가 침음했다.
“……그래, 친구가 생기니 좋겠네. 그러니까 나가 있어, 레온. 제발.”
“축제가 언제였지요?”
“다음 달 말이지. 금방 보겠군.”
“그만 대답해, 켄드릭. 자네가 자꾸 대답하니까 이 애가 안 나가잖아.”
라몬트는 결국 안하무인인 딸의 뒷덜미를 잡아 하녀에게 인계했다.
레오나는 나가지 않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라몬트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겨우 딸을 내보낸 라몬트가 지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봐, 일곱 살 애들은 통제가 안 돼……. 때때로 거짓말도 하고 떼도 쓰지. 아마 그 애도 거짓말일 거야. 자네도 우습군. 고작 일곱 살 어린아이 말만 믿고 한참 전에 절멸한 집단을 찾고 있다는 게.”
“그래, 마찬가지로 자네도 우습군. 통제 안 되는 딸한테 턱을 얻어맞는 장면은 몹시 인상적이었어. 사자 일족의 수장다워.”
라몬트의 말을 그대로 비꼰 켄드릭이 찻잔을 탁 내려놓았다.
“아는 게 없으면 됐다. 괜히 먼 곳까지 발걸음했군.”
“이왕 온 거 식사라도 같이 하고 가지 그래? 레오나가 좋아할 텐데.”
라몬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음에, 어차피 곧 축제니까.”
“그래……. 이번 축제 때는 아르센을 데리고 온다고?”
켄드릭은 지금까지 그 어떤 공적인 자리에도 아르센과 동행한 적이 없었다.
물론 얼마 전 일족 모두에게 아르센을 소개하기도 하고, 신전에도 데려갔다고 듣기는 했지만 늑대 일족에게만 보여주고, 신전도 공개적으로 떠벌리며 방문한 건 아니었으니까.
라몬트가 호기심에 눈을 빛냈다.
“새 일족을 며느리로 들였다더니, 정말로 차도가 있는 모양이지.”
“라몬트.”
“자네가 그 며느리를 몹시 싫어한다는 소문과 몹시 총애한다는 소문이 같이 들려와서……,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
라몬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예뻐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아이라서 말이지. 이제 충분한 대답이 됐나? 축제 때 봐, 라몬트 페르난도.”
“그래, 사자 일족 내부에서도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연락하지.”
라몬트가 가볍게 인사했다.
켄드릭은 곧바로 라몬트의 서재를 나섰다.
서재 앞,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던 소녀가 다다다 달려와 켄드릭의 허리춤을 덥석 잡았다.
“……레온.”
“친구 이름이 뭐예요? 아르센은 알아요, 많이 들어서……. 다른 친구는? 곧 만날 테니까 미리 이름을 외워 두고 싶어요.”
켄드릭이 설핏 웃으며 레오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안 그래도 이번 연회에서 또래 아이들에게 상처받았을까 봐 걱정이었는데.
‘좋은 친구가 되겠군.’
켄드릭이 눈앞에 있는 말괄량이 사자 소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린시, 새 일족의 린시라고 한다.”
“새 일족?”
레오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제서야 켄드릭이 아, 조그맣게 탄식을 내뱉었다.
사자 일족과 새 일족은 사이가 좋지 않으니, 레오나 역시 린시를 배척하려고 할 텐데.
못 만나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것도 잠시.
“린-시! 감사합니다, 아저씨!”
레오나는 곧바로 꾸벅, 인사한 뒤 라몬트의 서재로 뛰어들어갔다.
켄드릭은 그대로 사자 저택을 벗어났다.
* * *
“그래서 에이든이 너한테 헥터를 줬단 말이야?”
아르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응, 지금 마구간에 있어.”
“헥터 얘긴 들은 적이 있어. 전에 길버트의 정강이뼈를 박살 냈거든.”
아르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나는 그제야 길버트가 왜 헥터를 보고 그렇게 기겁했는지 이해했다.
지난번에는 다쳐서 들어와 괜찮았겠지만, 이번엔 성한 몸으로 마구간을 부수려 드니 전에 당한 일이 생각났을 것이다.
“아하……, 사나운 말이구나.”
“사납기만 해? 에이든이 아니면 다른 사람은 타지도 못해.”
“그런데 이제 에이든까지 물더라구. 에이든 말로는 내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래.”
“신기하다, 나중에 같이 보러 가자.”
“으응, 좋아. 일단 켄드릭 님이 오시면 여쭤봐야지. 헥터를…… 키워도 되냐고.”
“안 될 게 뭐가 있어?”
“바부야, 나는 얹혀사는 처지니까 이런 건 허락을 받아야 해.”
아르센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얘기했다.
“아빠가 그랬는데, 너랑 나랑 겨론할 거라고. 그러면 너는 예크하르트의 일원이 되는 거잖아.”
“겨론이 아니라 결-혼이겠지.”
“자꾸 소소한 거 지적하지 마.”
“사소한 거라고 하는 거야.”
아르센이 결국 눈을 흘겼다.
나는 아르센의 양 볼을 잡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그나저나 켄드릭 님께서 빨리 오셔야 할 텐데…….”
“금방 오겠지. 아빠는 원래……, 어?”
창밖을 내다보던 아르센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누구지?”
“왜? 누군데?”
나는 아르센을 따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씩씩대며 에단과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벨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