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loved New Daughter-In-Law of the Wolf Mansion RAW novel - Chapter (85)
늑대 저택의 사랑받는 새아가 85화(85/187)
“켄드릭 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는 켄드릭을 따라 걸으며 그를 올려다보고 물었다.
“교황 성하를 뵈러.”
“……네에?”
“어어?”
켄드릭의 대답에, 나와 아르센이 동시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누, 누구요?”
“교황 성하께서 약속을 지키시지 않았거든.”
“……약속?”
“그래, 좀 있으면 알게 될 거다.”
그렇게 말하는 켄드릭의 표정은 사뭇 비장해 보여서, 나와 아르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시선을 교환했다.
‘무슨 약속인지 알아?’
아르센이 나한테 눈을 찡긋거리며 입 모양으로 말을 건넸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나도 몰라…….’
교황과 켄드릭 님이 약속을 할 만한 일이 뭐가 있지?
나는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위급 신관으로 보이는 신관 세 명이 나와 켄드릭 그리고 아르센을 어떤 건물까지 안내했다.
역시나 거대한 크누트 신의 석상이 두 개나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켄드릭의 손을 놓칠세라 꼭 잡고서 발걸음을 옮기자, 수많은 신관들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 많네…….’
교황이 머무르는 곳이라 그런가?
성기사들과 신관들이 우리를 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켄드릭 님!”
저 멀리서 대신관이 하얀 신관복을 펄럭거리며 빠르게 다가왔다.
나와 아르센은 자연히 대신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켄드릭 님! 곧 해결해 드린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간 성하의 건강 문제로 신전이 정신이 없어…….”
“저번에 신전으로 서신을 보냈을 때도 같은 답을 받았습니다.”
켄드릭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 전에도, 그 전에도 계속 기다리라고만 하시더니, 마침 이번 축제 때 신전에 방문하니 그때 해결하면 되겠다 말씀하셨지요. 바로 대신관님께서 직접.”
“그것은……, 축제 일로 신전이 바빠…….”
켄드릭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저 없는 목소리가 느릿하게 대신관을 질책했다.
“언제까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실 겁니까. 린시와 아르센의 정략혼을 허가해 주셨던 것은 분명히 대신관님 본인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아.
‘결혼 문제였구나.’
두 일족 간의 정략혼 같은 경우는, 신전에서 혼인 허가서를 써 주어야 혼인이 성사되었다.
그런데.
‘왜 서류를 안 쓰나 했어…….’
혼인이 결정 난 것은 꽤나 한참 전인데, 켄드릭이 별말이 없어서 의아해하던 차였다.
그런데 신전에서 혼인 허가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모양이다.
켄드릭은 독촉하다 안 되어 교황을 보겠다고 찾아온 거고.
켄드릭이 당장 교황 성하를 뵈어야겠다며 몸을 돌리자, 대신관이 황급히 켄드릭을 만류했다.
“성하께서는 몸이 좋지 않아 쉬고 계십니다. 지금 해결해 드릴 테니 이쪽으로 오십시오.”
대신관이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았다. 켄드릭은 나와 아르센의 손을 잡고서 고개를 살짝 기울여 말했다.
“가자.”
“네? 네에!”
나는 황급히 대답한 뒤, 여전히 켄드릭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총총 걸음을 옮겼다.
아르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르센은 가만히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린 뒤, 켄드릭의 손을 잡고서 걸음을 옮겼다.
대신관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대신관 본인이 평소 업무를 보는 자신의 방이었다.
교황이 머무르는 건물을 나와, 만찬실을 지나 한참 걷다 보니 대신관의 집무실이 나왔다.
대신관은 우리에게 소파에 앉으라 권하고는, 수습 신관에게 차와 다과를 좀 내올 것을 부탁했다.
“앉아라, 린시. 아르센 너는 여기 앉고.”
켄드릭이 나와 아르센을 마주 보는 자리에 앉혀 주고, 자신은 아르센의 옆에 앉았다.
대신관은 잠시 기다리라며 방을 나가더니, 이내 서류 한 장을 들고서 돌아왔다.
곧이어 수습 신관이 차를 내왔다.
켄드릭에게는 푸르스름한 꽃잎이 들어간 차를, 우리에게는 분홍 꽃잎이 들어간 차를 내주었다.
처음 보는 것이라 고개를 갸웃거리자, 켄드릭이 이해를 도와주려는 듯 찻잔을 톡, 건드렸다.
“신전에서만 마실 수 있는 차다. 크누트 신의 가호로 키워낸 꽃으로 만들지.”
따뜻하게 한잔 마시라는 말에, 나는 찻잔을 두 손으로 잡고서 꼴깍 마셨다.
은은한 꽃 향이 입 안에서 감돌다가 이내 쑥 내려갔다.
“나쁘지 않지.”
“나빠.”
나를 따라 꽃차를 한 모금 마신 아르센이, 인상을 와락 구기며 말했다.
그때, 대신관이 서류를 들고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대신관이 내민 서류에는, 새 일족의 린시 라니에로와 늑대 일족의 아르센 예크하르트가 크누트 신의 가호 아래 혼인한다는 내용이 단정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그 밑에는 교황 성하의 인장을 찍는 자리가 있었고.
더 밑에는.
‘칸이 두 개씩이네?’
내가 서명할 칸이 두 칸, 아르센이 서명할 칸이 두 칸 있었다.
“도련님은 한 칸만 하셔도 됩니다.”
대신관이 푸른색의 인주를 아르센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르센은 대신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이리 와라, 아르센.”
켄드릭이 아르센의 소매를 살짝 걷어 주곤, 조그만 엄지손가락에 푸른 인주를 가득 묻혔다.
그리고.
“우와…….”
아르센이 서류에 지장을 찍자, 일순 서류가 푸른빛으로 확 타올랐다.
‘이게 크누트 신의 맹세구나.’
일전에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신전을 통해 크누트 신의 가호를 빌려 계약을 맺는 것을 크누트 신의 맹세라고 한다는 얘기를.
그리고…….
‘특별한 이유 없이는 효력이 다할 때까지 절대 깰 수 없다고 했지.’
그러나 우리는 정략혼이고, 어린 나이에 하는 조혼인 탓에 서류에 기간이 명시되어 있었다.
성년이 될 때까지 효력이 유지되며, 성년이 된 후에는 당사자들이 계약 유지에 대해 결정한다는 내용 말이다.
켄드릭이 내게도 푸른 인주를 내밀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대신관이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내내 앉아 있다가, 이내 내 손을 살짝 잡았다.
나는 대신관의 도움으로 푸른 인주를 가득 묻힌 뒤, 서류에 지장을 찍었다.
그러자.
“……!!”
서류가 다시 한번 푸른색으로 확 타올랐다.
“린시 님은 수인화가 가능하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대신관이 서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수인화가 가능해요.”
“그럼 수인화 상태로도 찍어주셔야 합니다. 아르센 님은 후에 수인화가 가능해지게 되면 찍으시면 되고요.”
나는 대신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이내 발을 가볍게 콩, 굴렀다.
그러자.
펑-!
연둣빛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대신관과 아르센, 그리고 켄드릭의 시야를 가렸다.
나는 금세 조그만 새로 변해 소파 위에 털썩 떨어졌다.
“삐잇!”
나는 힘차게 삣! 한번 울어 보인 뒤, 포르르 날아올라 책상에 착지했다.
그런데.
“……삐이.”
수인화하면 손가락이 없는데 어떻게 찍어야 하지?
날개 깃털에 찍어야 하나?
나는 잠시 진지한 표정으로 날개를 접고서 고민했다.
그러자.
“발바닥으로 찍으면 돼. 도와주마.”
켄드릭이 나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삐이!”
나는 고맙단 뜻으로 한 번 울어 보이고는, 다리를 쭉 펴고 발가락을 빳빳하게 펼쳤다.
켄드릭은 내 몸통을 잡고서 내 발을 인주에 진득하게 눌렀다.
‘으으, 기분 나빠.’
손가락으로 할 때는 별 감각이 없었는데, 발바닥에 닿는 척척한 감촉이 생각보다 별로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신전에서 사용하는 이 인주,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금방 사라져 자국이 남지 않았다.
내 발바닥에 푸른 인주가 골고루 묻자, 켄드릭이 나를 그대로 들어 올려 서류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삐잇?”
“자, 찍어라.”
내가 다리를 쭉 펼쳐 인주를 찍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나는 켄드릭의 손에 잡힌 채로, 발바닥을 서류에 꾹 눌렀다.
그러자.
“……!!!”
서류가 다시 한번 화르륵 타올랐다. 이번에는 붉은색이었다.
그 모습에 대신관과 켄드릭이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이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대신관은 주머니에서 외알 안경을 꺼내 쓰곤 서류를 면밀하게 다시 살폈다.
켄드릭은 나를 책상에 내려놓아 주었다.
‘아까까진 푸른색이었는데…….’
왜 내가 수인화한 상태로 지장을 찍으니까 갑자기 붉은색으로 타오르지?
원래 그런 것인가 싶어 대신관과 켄드릭의 낯을 살폈다. 두 사람의 표정이 몹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린시, 이리 와.”
아르센이 자연히 내게 팔을 벌렸다. 나는 수인화를 풀려다가, 이내 아르센에게 달려가 아르센의 무릎에 착 앉았다.
발바닥에 묻은 인주는 어느새 사라져, 아르센의 옷을 더럽힐 일은 없었다.
“이상하다……. 제가 한번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일단 서명 끝내고 알아보십시오.”
켄드릭은 처음 서류가 붉게 타올랐을 때는 의아해하는 듯 낯을 굳히더니, 이내 서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류에 이상이 있다고 가져가서 또 한동안 서류를 안 내주실지 어떻게 압니까.”
“하지만 켄드릭 님……!”
그러나 켄드릭은 대신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서류에 서명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남은 것은 라니에로의 자리였는데, 라니에로의 자리에는 대신관이 직접 서명했다.
먼젓번 신전에서 이루어진 조율의 결과로, 라니에로의 권한이 신전에 양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성하의 인장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예. 다만 성하께서는 지금 몸이 좋지 않으셔…….”
“그럼 제가 직접 뵙고 성하의 인장을 받아 오겠습니다.”
켄드릭의 말에, 대신관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결국 교황의 방에 홀로 들어가 인장을 받아다 찍어 주었다.
그러자 서류가 은은한 황금빛으로 변했다.
크누트 신의 맹세로 이루어진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내가 비로소 예크하르트의 성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