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아탈라의 심판 (6)
정규전의 경기는 크게 예선과 본선, 결승전으로 나뉜다.
모든 참가자들이 ‘예선’을 치르고, 예선 통과자들끼리 ‘본선’에서 맞서 우승자를 가린 후, 본선의 우승자가 이전 대회 우승자인 챔피언과 ‘결승전’을 치르는 식.
일단 예선을 통과하려면 2번의 경기에서 승리해야 했다.
첫 번째 경기 종목은 ‘사투전’. 아군 없이 모두가 모두의 적인 상태에서, 정해진 인원이 남을 때까지 서로 혈투를 벌여야 하는 종목이었다.
카딤이 참여한 조에는 19명의 검투사가 있었다. 정해진 통과 인원은 8명. 경기가 끝나려면 총 11명이 죽거나 제압돼야만 했다.
쩌 – 걱!
“어헉, 어어어어…….”
“…….”
카딤은, 홀로 11명을 다 죽여 버렸다.
발치에 시체들이 널브러졌고, 검신에 덜 마른 핏물이 흘러내렸고, 검은 머리칼에 피딱지가 엉겨 붙었다. 흡사 선혈을 뒤집어쓴 악귀와 같은 모습.
“흐어, 억, 어억…….”
“어, 어어어어…….”
살아남은 검투사들은 위액이 거꾸로 치솟을 듯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 정해진 인원 안에 들어 승리했다는 것도 잊고 침음을 흘리며 경기장의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반면 관중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
“와아아아아아악!!! 악마 학살자아아아아아!!!”
“악마 학살자!! 악마 학살자!! 악마 학살자!!”
‘사투전’은 흉흉한 이름과는 달리 매우 정적인 종목이다.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공공의 적이 되어 집중 공격을 받기에, 대부분의 검투사들이 가까운 한두 명만 제압하고 몸을 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마 학살자는 그러한 상식을 뒤엎고 경기장을 종횡무진하며 대부분의 검투사들을 썰어 넘겼다. 전례 없이 화끈하고 잔혹한 ‘사투전’이 벌어졌으니 구경꾼들이 미친 듯이 열광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정작 카딤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
홀로 11명을 죽인 이유는 그저 이 짓거리를 한시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관중들을 우쭐하게 바라보며 호응하지도, 시체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탄식하지도 않았다. 저번처럼 바로 쇠창살을 열고 자리를 떠났을 뿐.
기기기기긱…….
그 모습이 되려 더 열화와 같은 성원을 이끌어 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악!!!””
압도적인 강함은 강렬한 동경을 낳는다. 사람들은 쇠창살을 스스로 여는 검투사의 괴력에 또 한 번 감탄했다. 누군가는 들끓는 감정을 못 이겨, 누군가는 경악의 여운에 젖어, 누군가는 더 보고 싶은 아쉬움에 끝없이 선망에 찬 고함을 내질러댔다.
“악마 학살자! 악마 학살자! 악마 학살자!”
“악마 학살자!! 악마 학살자아아아아!!”
휘 – 익! 휘 – 익! 휘 – 익!
그러나 경기를 본 모두가 열광에 젖은 건 아니었다.
귀빈석에 앉아 있던 몇몇 용병단주들.
그들은 싸늘한 눈으로 쇠창살 너머를 바라보다, 저들끼리 몇 마디 밀담을 속삭이고는 한번에 자리를 떠났다.
*
밀폐된 비밀 공간이니 누군가 엿들을 걱정은 없었다. 한 용병단주가 과감하게 의견을 토로했다.
“유빅 대단주가 장난질을…… 좀 심하게 치는 것 같소.”
머뭇대던 다른 단주들도 결국 그 의견에 동조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대뜸 24명이랑 싸우게 했을 때부터 느낌이 싸했는데, 오늘 경기까지 보고 나니 이거 원…….”
“원래부터 마냥 물퉁배기는 아닌 것 같다만, 암만 그래도 말이 되질 않소. 이러다가 악마 학살자가 1 대 100으로 싸우는 꼴까지 보는 게 아닐지 모르겠군…….”
투기장의 제왕은 실질적인 투기장의 소유주다. 그는 투기장이 흥행하기만 한다면, 어느 정도 부정행위가 일어나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용병단주들은 휘하의 검투사들이 승리하고 인기를 끌어야만 큰돈을 만질 수 있다. 당연히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과 부정행위에 관해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앞에 단신으로 수십 명을 썰어 버리는 검투사가 떡하니 등장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짜고 치는 조작을 의심했다. 이전 경기에 나온 24명의 검투사들은 죄다 유빅 대단주 휘하의 검투사들이었으니. 그 의심은 오해로 밝혀졌다. 오늘 경기에서 죽은 검투사들 중 8명은 그들 휘하의 검투사들이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맨몸으로 저만한 무력을 발휘한다는 건,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는 일.
결국 용병단주들은 부정행위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뭔가 보이지 않는 유물을 사용한 것 아니오? 장착하면 초인적인 힘을 주는…….”
“마탑에서 특수한 물약을 받은 걸지도 모르오. 대단주쯤 되는 위인이면 마탑과 손을 잡았다 해도 놀랍지 않지.”
“아니면 ‘불굴의 군세’에 속한 야만인 전사들처럼, 저들의 신께 빌어서 기이한 힘을 얻는 것 아니오?”
“아니, 근데 그치들은 그 힘을 투기장 경기에선 절대 사용 안 하던데…….”
이런저런 추측들이 나왔으나 대응할 만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상대가 뒷배 없는 군소 용병단의 검투사라면 모를까, 악마 학살자는 등짝에 무려 투기장의 제왕을 업고 있었으니.
그건 즉, 마음껏 부정행위를 저질러도 좋다고 묵인받은 거나 다름없는 일.
이대로라면 물 흐리는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투기장 전체가 진흙탕이 되게 생겼다.
“항의의 표시로 참가한 모든 검투사들을 기권시키는 건 어떻겠소? 그러면 대단주도 우리 말을 무시하지 못할 텐데?”
“미쳤소? 이번 정규전에서 수익을 한 푼도 못 내면 다음 대회까지 어떻게 버티려고…….”
“오히려 그게 대단주의 노림수일 수도 있소. 우리가 대전료를 지불하지 못 하는 틈을 타, 검투사들을 제 밑으로 빼돌릴 수 있을 테니…….”
갈팡질팡하던 용병단주들 사이에서 누군가 그럴듯한 제안을 내놓았다.
“예선 두 번째 경기에, 악마 학살자의 상대로 ‘북부의 창’을 출전시키는 건 어떻소?”
““……!””
용병단주들은 일제히 흠칫, 눈매를 떨었다.
‘북부의 창’, 루마크.
어느 날, 창 한 자루만 들고 홀연히 나타난 그 북부인은 신들린 창술로 순식간에 투기장의 최강자 반열에 올랐다. 사람들은 그가 검투사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거라 했고, 그의 추종자들은 아곤의 성난 뿔을 잇는 명실상부한 2인자라고 자신 있게 떠들어댔다.
지난 정규전에선 부상을 입어 아쉽게 결승전에 도전하지 못했다. 다시 챔피언의 자리에 도전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길 어언 1년. 본래 이번 정규전은 도전자 ‘북부의 창’과 챔피언 ‘아곤의 성난 뿔’의 경쟁 구도로 짜여졌어야 했다.
그러나 ‘악마 학살자’의 등장으로 그 그림이 다 망가졌다.
사람들의 이목은 오롯이 24명을 혼자 쓰러뜨린 도전자에게만 집중되었다.
‘북부의 창’ 개인에게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를 후원하는 용병단주는 훨씬 더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관중들이 죄다 악마 학살자의 경기에만 몰린 탓에 예선 수익이 반 토막이 난 것이었다.
그러나 ‘북부의 창’이 예선에서 그를 쓰러뜨린다면, 다시 관심을 이쪽으로 돌리고 본선 수익은 태산처럼 긁어모을 수 있을 터.
단주들은 일제히 ‘북부의 창’의 후원자를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희망을 담아. 그러나 적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듯하고, 패배하면 가장 뛰어난 검투사를 잃게 될 테니 출전을 강요할 순 없었다.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 무거운 침묵이 흐른 끝에.
이윽고 ‘북부의 창’을 후원하는 용병단주가 입을 열었다.
“북부의 매서운 한파로 벼려진 창이, 고작 황야의 모래바람 따위에 꺾일 리가 없지.”
그늘진 눈매 속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악마 학살자의 상대로 루마크를 출전시키도록 하겠소.”
*
경기 시작을 앞두고, 카딤은 대기 구역에 앉아 있었다.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퍽 기이한 일이었다. 잇따른 경기에서 수십 명을 죽인 이후, 그 어느 검투사도 카딤의 곁에 오려고 하지 않았으니.
퍽 – !
심지어 접근한 자는 겁도 없이 발치에 창을 꽂아 넣기까지 했다.
“그런 식으로 환호성을 들으니까 기분이 좋던가, 악마 학살자?”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와 시퍼런 홍채, 틀어 올려 묶은 회색 머리칼이 보였다. 그리고 날카롭게 벼려진 장창도. 아마도 오늘 일 대 일로 맞붙게 될 북부인인 모양이었다.
사내의 눈빛은 차가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냉소 어린 입술이 샐쭉하게 비틀렸다.
“북부의 혹한은 이곳의 겨울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지. 입을 벌리면 혓바닥이 얼어붙고, 잘 때 모포 밖으로 손이 나가면 손가락이 까맣게 죽을 정도였어. 그런 곳에서도, 나는 사시사철 냉골 같은 창자루를 놓지 않고 죽어라 창술을 연마했다. 왜냐고? 언젠가 대륙의 수많은 강자들이 모인다는 이곳에 이르러, 정당하게 내 힘을 입증하고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길 바랐으니까!”
“…….”
“나만 이렇게 죽어라 노력한 것도 아닐 테지. 장담컨대, 네가 죽인 검투사들 중 네놈보다 덜 노력한 자는 없을 거다. 그런데 네놈은 뻔뻔히 부정을 저지르고 부당한 승리를 취해, 이 투쟁의 성소와 피땀 어린 노력들을 모욕했다! 그것도 명색이 투쟁의 신을 섬긴다는 아탈라인이 말이야!”
“…….”
“어디, 변명할 말이라도 있는가, 악마 학살자? 할 테면 얼마든지 해 보아라!”
카딤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초면부터 일장 헛소리라,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군.
어차피 경기가 시작되면 곧 죽을 놈이다. 헛소리를 지껄이건 말건 무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워낙 황당함이 크다 보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부정을 저질렀다는 거지.”
“시치지 떼지 마라! 앞선 경기들을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거늘! 그건 결코 인간의 육신만으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네놈은, 네놈보다 강한 자를 보면 무조건 부정을 저질렀다고 보는 건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말하는 건, 네놈이 상식을 훌쩍 벗어난 무력을 선보였으니까…….”
“그러면 왜 아곤의 성난 뿔에겐 가서 따지지 않는 거지. 혹여 놈은 상식 내의 무력을 지녔는가.”
“…….”
사내의 입이 턱 막혔다.
혀에 기름칠을 한 듯 떠들어대던 이전과는 달리 어물어물 중얼댔다.
“그자는, 그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위대한 챔피언이다……. 한낱 용병 나부랭이로 살다 막 투기장에 들어선 네놈과 비교 선상에 둘 순…….”
“내가 어떤 삶을 살아온 줄 알고 네 멋대로 재단하는 거냐. 북부인들은 초면에 만상을 통찰할 수 있는 혜안이라도 갖고 있는가?”
“…….”
유구무언. 사내는 부르튼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카딤은 미세한 한탄이 섞인 어조로 덧붙였다.
“……그리고 이곳은 투쟁의 성소가 아니다. 어릿광대들이 투쟁을 팔고 구경꾼들이 싸구려 열락을 취하는 타락의 전당일 뿐이지. 진정 네 힘을 입증하고 싶거든, 당장 이곳을 떠나 악마와 마물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거라. 그쪽이 훨씬 더 뜻깊은 전장일 터이니.”
사내에겐 인생 전체를 모독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부릅 눈을 치켜뜨고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닥쳐라, 악마 학살자! 네놈도 돈과 명예를 탐내 이곳에 들어선 주제에, 어디서 같잖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
“나는 ‘북부의 창’ 루마크, 감히 이 투기장과 검투사들을 모욕한 죗값을 치르게 해 주겠다! 지금 바로 경기장으로 나오거라, 악마 학살자! 다른 모든 검투사들을 대표해, 네놈의 추악한 부정을 정정당당한 방식으로 꺾어 주마!”
북부인은 그렇게 말하곤 창을 뽑아 들고 반대편 대기 구역으로 떠났다. 카딤은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해 보니 역시 쓸데없는 말을 했다 싶었다. 그래, 제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귀머거리에겐 아무리 떠들어 봤자 시간 낭비지.
대 – 앵!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렸다. 카딤은 쇠창살을 넘어 흙바닥으로 나섰다.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와아아아아아아!!”
“악마 학살자! 악마 학살자! 악마 학살자!!”
“와아아아아아악, 북부의 창! 북부의 창!”
“북부의 창! 북부의 창! 북부의 창!!”
귀청이 떨어질 듯 요란한 함성에는 두 이명이 팽팽하게 혼재되어 있었다.
최근 악마 학살자가 화제성을 독점하긴 했으나, 북부의 창 또한 만만치 않은 위명을 지닌 검투사. 수천 명에 이르는 추종자들이 벽안의 북부인을 향해 열렬한 성원을 보내고 있었다.
“저 기고만장한 야만인에게 본때를 보여 주시오, 북부의 창!!!”
“악마 학살자의 모가지를 꿰어 오늘 저녁 안줏거리로 삼자고!!”
“당신한테 전재산을 걸었어!!! 꼭 이겨야 해!!!”
루마크는 추종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다들 걱정 마시오! 나를 응원하러 온 자들, 나에게 돈을 건 자들, 모두가 오늘 하루를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하게 될 것이니!”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반면 카딤은 곁눈질조차 하지 않고 초연히 무기를 쥐었다. 관중들이 여기 좀 봐달라고 아무리 악을 써도 꿈쩍 않았다. 썩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 북부인과 아탈라인이 각각 경기장의 좌측과 우측에 대치하고 섰다.
그래도 관중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흥분하고 있었다. 아직도 본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만큼 커다란 경기가 성사되었기에. 그리고 기대하고 있었다. 두 강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피 말리는 명승부가 펼쳐질지.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이번 시합의 종목은 ‘일반전’. 칼이든, 창이든, 도끼든, 철퇴든, 주어진 기본 무기 중 원하는 병종을 하나 골라 일 대 일로 맞서는 종목이었다. 루마크는 당연히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장창을 선택했다.
그리고 카딤은 연어와 가장 비슷한 무게를 지닌 ‘투척도끼’를 선택했다.
루마크도 카딤이 투척도끼를 들고 있는 걸 보았다. 그렇지만 2백 미터 가까이 떨어진 거리에서 도끼를 던지는 건 상식 밖의 일. 당연히 거리를 좁히고 던질 줄 알고 경계심을 늦추고 있었다.
허나 그 예상을 비웃듯, 카딤의 손에서 즉각 파멸의 선풍이 몰아치고……
쐐액! 패래래래래래래 –
……드넓은 경기장을 가로질러, 루마크의 얼굴 정중앙에 정확히 내꽂혔다.
쩌 – 걱!
“억.”
기우뚱,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 쓰러져 흙바닥에 면상을 처박는 북부의 창.
“……어?”
“음?”
“뭐야……?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
관중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술렁거림이 수면의 파문처럼 번져나갔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의문에 찬 탄성을 터뜨리고, 끝내 몸이 달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관중들.
“뭐, 뭐 하는 거요! 어서 일어나시오, 북부의 창!”
“경기가 시작됐소! 악마 학살자가 당신의 목을 노리고 있단 말이오!!”
“제기랄, 장난은 거기까지만 해!! 너한테 전 재산을 걸었다고!!”
그러나 곧 루마크의 얼굴 밑으로, 핏물이 줄줄 흘러 시뻘건 웅덩이를 이루는 걸 보곤.
모두가 입을 쩍 벌린 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
장중하게 내리깔리는 침묵. 사늘하게 치밀어오르는 소름. 혹독한 북부 한가운데 떨어진 듯, 충격과 공포의 한파에 꽝꽝 얼어붙은 공기.
기기기기긱…….
소음이 말살당한 경기장엔, 카딤이 강제로 쇠창살을 열어젖히고 퇴장하는 소리만이 을씨년스럽게 울려 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