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아탈라의 심판 (10)
창연한 빛줄기가 찰나의 시간을 쪼개 허공을 가로질렀다. 관중들의 시야에 찬란한 분할선이 그어졌다. 흉폭하게 날뛰는 뇌격이 외팔이 전사의 면전에 수렴한 순간.
번쩍 – !
눈부신 청색 섬광이 먼저 번뜩였다. 페룬은 갈고리로 맞받아쳤으나, 벽력의 충격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갈래갈래 폭발하는 뇌전의 불꽃, 전사의 신영이 멀찍이 나가떨어지고 나서야 거칠게 포효하는 우렛소리가 뒤따랐다.
――――――――― 콰과과, 콰과과광 – !!!
뒤울림이 잦아들 무렵, 흙바닥에 널브러진 페룬이 침음을 흘렸다.
“허억, 끄윽…….”
파지지직 –
피부가 군데군데 탔고, 혈관이 터져 잎맥과 같은 붉은 자국이 뚜렷하게 번졌다. 까맣게 그을린 갈고리 손 위로 방전의 불꽃이 일었다. 그야말로 벼락이 현현한 듯한 무기의 위용에 관중들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페룬은 이를 꽉 악물고, 떨리는 무릎을 짚고 간신히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 또…… 새로운 무기를 벼리셨군요……. 대단히, 인상적인 위력입니다……. 그 신성한 무기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지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뇌격’.”
강력한 전기 속성 공격을 가하는 ‘뇌전’ 특수효과를 부여하는 이름. 카딤은 어제 ‘이름을 벼리는 자’로 연어에 그런 이름을 덧씌웠다. 그리하여 투척도끼는 사실상 던질 수 있는 벼락으로 거듭났다.
게다가 새 이름을 줬다고 ‘귀환’ 효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카딤은 손을 뻗어 도끼를 거두고 곧바로 다시 내던졌다.
――――――――― 파지지지지직 – !
번쩍 – !
명멸하는 섬찟한 섬광. 페룬은 간신히 또 받아치는 데 성공했으나, 방어한 게 무색하게 격리벽까지 나가떨어졌다. 방출된 전류가 스러지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지고 나서야 성난 벼락의 울음이 뒤따랐다.
――――――――― 콰과과, 콰과과광 – !!!
되돌이뇌격, 벼락은 반드시 두 번 친다.
전율과 공포에 찬 탄성이 퍼져나갔다.
“마, 맙소사…….”
“허어억, 레밀리온이시여…….”
마법사도 아닌 자가 어떻게 이런 신비를 부리는 건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관중들은 한 가지만은 확신했다. 저렇게 무식한 벼락에 연달아 맞았으니, ‘불굴의 투사’는 필시 숯덩이처럼 불타 쓰러졌을 거라고.
그 확신은 빗나갔다.
격리벽에 무참히 처박히고 살갗이 온통 새까맣게 그을렸으나, 전사는 쓰러지지 않았다. 도리어 잇새로 흐릿한 연기를 내뿜으며 전보다 형형히 눈길을 빛냈다.
“후욱…….”
파지직, 피지직 – !
이미 서 있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진작에 근육이 불타고 오그라들어 쓰러졌어야 했다. 그럼에도 페룬은 굴하지 않았다. 인간을 초월한 정신력을 끌어내, 굳건히 두 발로 서서 걸음을 내디뎠다.
검투사로 싸울 적 붙은 그 이명에 걸맞게. ‘불굴의 투사’답게.
“훌륭한, 연격이었습…… 대전사님……. 막았는…… 도무지…… 막은…… 같지가 않……. 그렇지만, 아직…… 더 싸울…… 있습니…….”
카딤의 눈엔 그저 미련한 아집으로 보일 따름이었다. 싸늘한 눈길로 만신창이가 된 전사를 노려보았다.
“만용을 부리는군. 이미 무기도 다 잃었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놈이 어떻게 더 싸우겠다는 거냐. 쓸데없는 발악은 그만두고 항복하거라.”
“그럴 순…… 없습……. 제가…… 투쟁…… 포기할…… 팔 한쪽 잃었…… 이미…… 포기했을…… 겁니……. 목숨을 잃더…… 절대…… 항복…… 생각은…… 없습니…… 다.”
페룬이 반쯤 부러진 갈고리손을 덜덜 떨며 들어 올렸다. 카딤은 문득 떠오른 의혹으로 미간을 좁혔다.
“왜 진작 ‘아탈라의 신기’를 사용하지 않은 거지? 뒷감당은 쉽지 않아도, 당장은 무사할 수 있었을 텐데.”
“그 기운, 투신께서…… 부정한 존재…… 맞서라………… 기운……. 어떻게…… 그분의 대전사와…… 맞서…… 쓰겠……? 그러면…… 아탈라를 뵐…… 면목이…… 없을 겁…….”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아탈라에게 부끄럽게 죽진 않겠다, 라…….
참으로 대단하신 신앙이었다. 신앙은 종잇장만큼도 없는 이쪽이 ‘대전사’라는 게 미안해질 정도로. 그렇지만 그 정도로 감격하여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었다. 제 입으로 끝까지 가짜 대전사를 섬기겠다고 선언한 놈 아니던가?
후 – 웅, 후 – 웅, 훙, 훙, 턱!
카딤은 ‘뇌격’을 손에 들고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네놈이 한 번만 더 이 도끼의 벼락에 맞으면,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다.”
“…….”
“정녕 이 싸구려 싸움터에서 개죽음을 당하고 싶거든, 피하지 말고 도끼에 응수하거라. 허나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거든, 재주껏 몸을 던져 피하거라.”
말뿐인 위협이 아니었다. 도끼를 휘어잡은 근육이 당장이라도 쏘아질 듯 묵직하게 당겨졌다.
그러나 페룬은 두려움에 떨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실낱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싸구려 싸움…… 한들…… 후회는 없습……. 제 생애…… 최고의 상대…… 겨루었으니…….”
“…….”
“저…… 필부가…… 감히 대전사님…… 크나큰…… 영광이었습……. 전력을…… 부딪혔…… 부디…… 자비를 베풀지…… 마십시오…….”
죽음을 각오한 전사의 눈이 황야의 별처럼 빛났다.
투신을 대행하는 대전사가 그 의지를 담담히 마주하고.
심판을 선고하듯 어기차게 도끼를 내던졌다.
쐐 – 액!
벼락은 폭발하지 않았다.
도끼는 오롯이 서늘한 날만을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패래래래래래래랙, 째 – 앵!
그 정도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었으나, 페룬은 그 최후의 일격까지 기어코 막아냈다. 두꺼운 갈고리가 부러지고, 튕겨 오른 도끼날에 이마를 깊이 베이고, 중심을 잃어 거하게 나동그라지긴 했으나 어쨌든 막긴 막은 것이었다.
후 – 웅, 후 – 웅, 훙, 훙, 턱!
카딤은 도끼를 되찾고 쓰러진 전사에게 다가갔다. 그는 피를 줄줄 흘리며 멍하게 누워 있었다. 자신이 왜 살아 있는지 의문이란 눈빛.
“……‘뇌격’에 벼락을 담을 수 있는 회수는 딱 두 번뿐이다. 연달아 공격하면 반나절 가량 재충전이 필요하지.”
그건 전사가 바라는 답변이 아니었다. 페룬은 가느다란 육성으로 물었다.
“왜, 절…… 살려 주신…… 겁…….”
카딤은 눈길을 저 머나먼 창공으로 쳐들고는 느릿하게 답했다.
“그릇된 대전사를 섬긴 네 선택은 틀렸다. 그러나…… 이곳은 죽음에도 굴하지 않은 전사가 죽기엔 너무나 형편없는 전장이구나.”
“…….”
카딤은 생각했다.
이자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으니, 본래는 여기서 죽어 마땅하다고.
그럼에도 결코, 그 과오만으로 이자를 재단할 순 없다고.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팔을 자른 것, 팔을 잃고도 투쟁을 포기하지 않은 것, 죽음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뜻을 관철한 것. 이자가 남긴 삶의 족적은 대전사의 경의를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만한 전사가 묻히기에 이 타락의 전당은 지나치게 격이 떨어지는 장소였다.
그러므로 카딤은 마음을 바꿨다. 이자를 일단 살려 주기로.
초주검이 된 던컨을 살렸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써 – 걱, 써 – 걱, 써 – 걱!
카딤은 혈귀의 칼자루를 내어 주고 자신의 팔뚝을 연거푸 베어 냈다. 무한히 갈라지는 살갗, 히드라의 문신이 끊어진 진피층과 팔 근육을 거듭 재생시켰다. 붉은 칼이 주인의 피를 삼켜 자루를 쥔 자에게 바쳤다.
물론 카딤이 조건 없이 자비를 베푸는 건 아니었다. 이자에겐 맡길 사명이 있었다.
“……공으로 살려 주는 게 아니다.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을 왔다고 했던가? 허나 이미 먼 길을 걸어본 자는, 다시 긴 여정을 떠나도 버틸 수 있는 강단을 얻기 마련이지.”
“…….”
“또다시 먼 길을 떠나라. 너에게 걸맞은 전장을 찾아가라. 악마와 마물을 베어내고 투쟁을 계속해라. 반드시, 시산혈해의 위에서 투혼을 불사르며 죽거라. 그리고 저 천상에 이르러 아탈라를 만나거든…… 아주 따끔하게, 놈에게 칼침을 먹여 주거라”
“…….”
“이것이, 새 목숨을 대가로 내가 너에게 맡기는 사명이다.”
이만한 놈이 더 성장하면, 아탈라에게도 한 방쯤 먹일 수 있겠지.
벼락에 탄 육신이 완치되었다. 페룬은 얼떨떨하게 눈초리를 떨었다. 그러다 카딤이 크나큰 자비를 베풀었음을 깨닫곤, 퍼뜩 일어나 무릎 꿇고 가슴을 쿵쿵 두들겼다.
“제 몸은 당신의 칼이며, 제 혼은 당신의 도끼입니다. 맡기신 그 사명, 존엄한 아탈라의 이름에 맹세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대전사님…….”
“…….”
아니, 칼침을 먹여 주라 했는데 그놈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다니.
헛웃음을 속으로 삼키곤 카딤은 대충 고개를 까딱였다. 페룬은 흘러넘치는 감격을 못 이겨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태양의 빛줄기가 산산이 뻗치고, 황야의 바람을 닮은 누런 선풍이 두 전사 사이로 천연하게 흘러들었다.
한편 관중석에는 쥐 죽은 듯 정적이 흘렀다.
““…….””
관중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흙바닥 위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를. 그저 연이어 나타나는 기적과도 같은 광경을 멍청하니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자들이 불만을 토해냈다.
“뭐 하는 거야, 씨팔! 왜 다 죽여 놓고 살려 놓는 건데!”
누군가의 퉁명스런 외침을 시발점으로, 잔혹한 살육전을 고대하며 온 구경꾼들, 한잔 걸치고 온 주정뱅이들, 그리고 악마 학살자 때문에 큰돈을 잃고 트집거리를 찾던 노름꾼들이 앞다투어 야유와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 맞다! 이겼으면 죽여야지! 뭐 하는 거냐, 악마 학살자!”
“같은 야만인이라고 봐주는 거냐! 이제 와서 같잖게 자비로운 척하지 마라!”
“악마의 힘이다! 악마 학살자가 악마의 사술을 써서 죽은 자를 되살렸다!”
“역시 다 짜고 치는 거였어! 조작이다! 이 경기는 조작이야! 내 돈 돌려줘!”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
아무리 화려한 볼거리가 많았다 해도, 이런 결말은 그들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투기장에서의 ‘1패’는 반드시 치욕과 죽음으로 마무리되어야만 한다. 진탕과도 같은 토로들이 한 줄기로 흘러들어 하나의 외침으로 합치되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멀뚱멀뚱 앉아 있던 자들도 금세 분위기에 휩쓸렸다. 반대파의 외침은 집요한 소음에 파묻혀 묵살되었다. 피를 바라는 수만 개의 눈동자들이 악의로 가득 차 번들거렸다.
“저자는 부정한 힘으로 되살아났다! 절대 살려 둬선 안 돼!”
“천상의 신들이 저주를 내릴 거다! 어서 다시 죽여라, 악마 학살자!!”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거대한 함성이 투기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어쭙잖게 대응했다간 폭동이라도 일어날 듯한 분위기. 이 세상 그 누구도, 설사 투기장의 제왕이라 하더라도 피를 보지 않고 이 상황을 무마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카딤은 피를 보지 않고 불만들을 일축시켰다.
패래래래래래래래랙 –
바로 관중석에 도끼를 내던지는 방식으로.
“……허업!”
“으허억!”
“으아어악!!”
쇄도하는 선풍, 관중들은 식겁하여 몸을 움츠렸다. 허나 도끼는 그 누구의 머리도 쪼개지 않고 날아가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징 쪽으로 향했다.
――――― 까 – 앙!!!
징이 깨지고, 고막이 아리도록 쟁쟁한 파열음이 터졌다. 모두가 급히 귀를 틀어막고 침음을 흘렸다. 불식간에 관중석의 소란이 가라앉았다.
카딤은 뇌격을 당겨 회수하고 혈귀를 흙바닥에 내려찍었다.
퍽 – !
“처사에 불만이 있는 자는, 누구든 앞으로 나와 이 칼을 뽑아라. 나를 꺾고 저 전사를 죽일 기회를 줄 터이니.”
““…….””
다시금 쥐 죽은 듯 내깔리는 정적.
더 이상 그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모래알만큼 많은 관중들 중, 단 한 명도.
죽을 각오를 하지 않는 자가 누군가를 죽이려 드는 건, 황야의 계율이 결단코 허락 않는 언어도단. 수만 명에 이르는 관중들의 용기와 담력을 모두 합쳐 봤자, 고작 저 아탈라인 전사 한 명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카딤은 비겁자들에게 경멸에 찬 시선을 흩뿌리고는 등을 돌렸다.
피를 바라던 눈동자들이 초점 잃은 동태눈깔이 되어 데굴데굴 흙바닥을 굴러다녔다.
*
‘그러나…… 이곳은 죽음에도 굴하지 않은 전사가 죽기엔 너무나 형편없는 전장이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페룬은 보았다.
팔을 잃었을 때 본 환상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광경을.
황야 위에서 카딤은 태양을 등지고 우뚝 서 있었다. 싯누런 흙바람이 어깨 위에서 망토처럼 휘날렸고, 드문드문 새겨진 문신이 갓 벼린 칼날처럼 빛났다. 벼락을 품은 도끼와 피를 머금은 칼이, 전사의 손에 들려 적을 도륙 내길 갈망하고 있었다.
그때 느낀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카딤의 정체가 다시금 쐐기처럼 뇌리에 박혔다.
아탈라, 그 투신의 의지를 지상에 실천하는 위대한 대행자. 창궐한 악을 멸하고 우리들을 전쟁과 연회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인도할 구원자.
나는, 이 위대한 전사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노라.
심장이 터질 듯한 고양감, 온몸의 근육이 떨리는 희열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숨 막히는 불안이 가슴을 옥죄었다. 페룬은 이 환상이 어떻게 끝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환상대로 전사의 살갗이 갈라지고 시뻘건 생살이 드러났다.
써 – 걱, 써 – 걱!
페룬의 낯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 안에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만큼 불길한 무언가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저 생살은 그저 카딤이 스스로의 팔뚝을 베어 드러난 것에 불과했다.
‘……?’
어리둥절해하던 페룬은, 이윽고 카딤이 피를 바쳐 자신을 되살렸다는 걸 깨달았다.
환상은 그저 환상이었을 뿐이었다. 대전사는 재앙의 근원이 아닌, 자신을 저버린 전사에게도 한 번 더 기회를 줄 도량을 지닌 구원자였다.
‘반드시, 시산혈해의 위에서 투혼을 불사르며 죽거라.’
대전사의 피와 살로 새 생명을 얻었다. 치욕스레 죽을죄를 짓고도 영광스럽게 죽을 기회를 얻었다.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이 벅차올랐다. 이 은덕을 반드시 갚아야만 했다. 세상이 두 쪽 나도 주어진 사명을 이행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페룬은 주저 없이 ‘불굴의 군세’의 군영을 찾아가 고했다.
“저는 이만,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날붙이를 들고 사열한 아탈라인 전사들, 그리고 그 중앙에 앉아 있는 부리부리한 눈매의 거한.
아곤의 성난 뿔은 험상궂게 미간을 좁혔다.
“……무슨 소리냐, 페룬. 악마 학살자와의 경기는 어떻게 되었고, 빌려 준 무기들은 어디다 두었지?”
“면목 없습니다. 경기에선 패배하였고 축복받은 무기들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허나, 그릇된 자의 손에 들어갔다 벼려 낸 자의 손에 거두어졌으니…… 이 또한 황야의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섭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골타란 님.”
꿈틀, 골타란의 이마 위로 굵은 핏줄이 불거졌다.
날카로운 뼈가 담겨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페룬은 그를 ‘대전사’라 부르지조차 않았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페룬.”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골타란 님께서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
“……그동안 많이 감사했습니다. 허나, 더는 그릇된 분께 충성을 바칠 순 없을 듯하군요. 저는 이만 ‘대전사님’께서 맡긴 사명을 이행하러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떠나는 페룬.
그렇게 가장 믿음직했던 부하 중 하나가 떠났다.
칼날처럼 스산하게 내려앉는 정적. 모두가 당황하여 붙잡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탈라인 전사들은 뒤늦게 수장의 눈치를 살폈다.
“…….”
아곤의 성난 뿔은, 핏발 선 눈으로 외팔이 전사가 떠난 자리를 노려보다가……
쾅 – !
……이내 투구를 바닥에 집어 던지곤, 한 손으로 얼굴을 덮고 관자놀이를 으스러져라 짓눌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