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아탈라의 심판 (13)
아곤의 투기장에 지옥을 한 폭 도려내 기워 붙인 듯한 참상이 도래했다.
쾅! 콰르르르르르…….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격리벽이 무너지고 관중석이 붕괴했다. 소도시의 인구에 비길 만한 막대한 인파가 출구로 집중되었다. 십여 명이 동시에 오가기도 넉넉지 않은 출구에 수백, 수천, 수만 명이 몰려들어 짓밟히고 깔려 죽는 자들이 속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출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자들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목숨을 건사했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누가 이 참사를 일으킨 건지도 깨닫게 되었다.
“아니, 저거…… 아곤의 성난 뿔이잖아?”
“뭐야? 그럼 이 난리를 일으킨 원흉이…….”
“아곤의 성난 뿔이 미쳤다! 챔피언이 사람들을 죽였어!!”
모두가 목 빠지게 기다리던 챔피언, 아곤의 성난 뿔.
구경꾼들은 벙찐 얼굴로 경기장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단순히 난동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건물의 붕괴는 부수적인 피해였을 뿐, 챔피언은 처음부터 집요하게 한 표적만을 노리고 있었다.
새로운 챔피언의 자리를 노리는 도전자, 악마 학살자.
쐐 – 액, 후 – 욱! 콰과과광, 쾅 – !
챔피언과 도전자가 격렬하게 합을 주고받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시작된 전투였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들의 눈앞에 결승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
“…….”
피에 절여진 몇몇 구경꾼들이 도로 자리에 앉았다. 뇌가 맛이 간 노름꾼들은 애초에 엉덩이를 떼지도 않았다. 곳곳에서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으나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자신이나 타인의 목숨보다 두고두고 전설로 남을 경기를 관람하는 일이 훨씬 더 중했다.
“좋아, 잘하고 있다! 어서 죽여버려, 아곤의 성난 뿔!!”
“이제 그만 좀 달아나라, 악마 학살자!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도망만 다닐 거냐!!”
광분한 챔피언 쪽이 우위를 점했지만, 도전자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두 괴력난신의 싸움은 점차 격화일로를 걸었다. 양측이 간발의 차로 정체불명의 수통을 들이키는 걸 본 순간, 구경꾼들은 전투가 이제 절정으로 치닫을 거란 사실을 직감했다.
그러나, 투쟁과 황야의 신께서 보우하사.
안타깝게도, 더는 아무도 전사들의 투쟁을 눈요깃거리로 삼을 수 없었다.
―――――― 콰 – 앙! 콰 – 앙! 콰 – 앙!
쩌저적, 쩌저저적…….
연이은 충격에 격리벽은 이미 전부 무너졌고, 이젠 균열이 관중석의 밑으로까지 번졌다. 터럭만큼이나마 이성이 남은 자들은 황급히 자리를 떴으나, 그것마저도 없는 자들은 조마조마해하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 콰르르르르르 – !
결국 바닥이 무너져내리며, 관중석에 남아있던 모든 사람들이 싸그리 지하로 추락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아, 안 돼애애애!! 제발 조금만 더…….”
타락의 전당에 뼈를 묻는 와중에도, 구경꾼과 노름꾼들은 죽음이 아니라 이 경기의 끝을 보지 못했단 사실만을 한탄했다.
*
전투도끼를 쳐들고 투레질을 하는 아곤의 성난 뿔.
“쿠훅, 쿠후우우우…….”
“…….”
카딤은 뭔가 어색한 기분을 느꼈다.
본디 그는 광분한 적을 상대하는 것보단, 자기 자신이 광분하여 날뛰는 쪽에 훨씬 익숙했다. 그런데 이렇게 반전된 처지로 싸우자니 어색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장만 그렇다 뿐이지,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1회차의 힘’은 ‘1회차의 광증’ 또한 수반하니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몸에 심어 두었으니 택할 수 있는 전략은 하나밖에 없었다.
속전속결, 최대한 빨리 놈의 숨통을 끊고 ‘아탈라의 심판’을 되찾는다.
굳은 발꿈치가 아음속으로 흙바닥을 밀어냈다.
콰 – 앙!
찰나를 꿰뚫고 거리를 좁히는 신영, 검은자위로 가득 찬 눈에 당혹이 어렸다. 반격할 여유는 주지 않았다. 카딤은 바로 적의 골통에 도끼를 박고, 목을 칼로 찌르고, 복부를 걷어찼다.
――――― 뻐 – 억!
“……쿠헉!”
아곤의 성난 뿔, 골타란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터졌다. 석재 더미에 처박혀 한바탕 분진을 피워올리곤 가까스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콰르르르…….
“쿠훅, 쿠후우우…….”
“…….”
이마와 목에서 흘러내리는 핏줄기, 낯짝에 먼지와 고통이 덧씌워졌다. 그럼에도 생명엔 아무런 지장이 없어 보였다.
카딤은 개의치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다. ‘아탈라의 신기’는 단순히 힘만 늘려주는 기운이 아니니까.
그 효과는 모든 디버프에 면역을 부여하고, 모든 전투 관련 스탯을 증폭시켜 주는 것. 피해를 막는 ‘저항’ 또한 월등히 높아진다. 지금 녀석의 외피는 드워프제 철갑을 수 겹이나 덧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봤자 육신의 붕괴는 막을 수 없겠지만.’
어쨌건 피해가 경감되는 거지 무적인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타개책은 간단했다.
피해가 누적되어 박살 날 때까지 계속 공격하는 것.
콰 – 앙!
카딤은 땅을 박차고 재도약했다. 골타란도 전투도끼를 쳐들고 반격할 준비를 갖췄다.
공격 범위에 들어온 순간, 칠흑의 도끼가 광풍처럼 휘둘러졌다.
――――――――― 후우우우웅 – !
쇄도하는 싯누런 궤적, 등골을 전율케 만드는 압박감. 허나 카딤은 침착하게 중심을 틀어 피하고 도끼머리의 측면을 걷어찼다. 휘두른 힘에 격렬한 반동이 더해져 골타란은 균형을 잃고 앞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쿠후우……?”
검은 동공이 흔들렸다.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곡예였기에 보고도 믿질 못하는 눈치였다. 카딤은 적이 무방비해진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혈귀를 휘어잡고 내달려 맹점을 찌르는 검로를 그렸다.
――――――― 푸욱 – !
괴력이 칼자루에서 검신으로, 검신에서 첨예한 검두로 집중되었다. 아무리 저항이 높아도 배겨낼 수 있을 만한 공격이 아니었다. 누렇게 뜬 신기가 갈라지고 골타란의 팔뚝에 얕은 흠집이 남았다.
“쿠욱!”
――――――― 후 – 웅!
카딤은 격노한 도끼질을 피하고, 다시금 칼날을 내질렀다. 연격은 잇따라 성공하고 얄팍했던 상처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그런데 그즈음, 카딤은 곧 공격을 관두고 슬쩍 거리를 벌렸다.
웅, 웅, 웅, 웅…….
혈귀가 극히 불안정한 울림을 발하고 있었다. 내구성이 강한 무기는 아니다 보니, 이 칼로 1회차의 완력을 감당하긴 무리였던 모양.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은 맨주먹만으로도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일단 뇌격으로 무기를 바꿔 들고, 재차 손을 뻗으면 맞닿을 정도로 거리를 좁혔다.
뒤이어 거칠게 계속되는 난투.
――――――― 쐐 – 액! 후우웅, 콰 – 앙!!
골타란의 공격은 여전히 지형을 바꿀 정도로 파괴적이었으나, 실속이 없었다. 맹렬한 도끼질은 애꿎은 건물과 지면만 박살 내기 일수였다. 반면 카딤의 공격은 무기 탓에 파괴력은 떨어져도, 거의 항상 유효했다. 단단히 방어하는 신기를 뚫고 꾸준히 적에게 피해를 누적시켰다.
사실 종합적인 전투 능력만 놓고 보자면, 오히려 골타란 쪽이 우세였다. 신기를 두르고 ‘광폭화’ 버프까지 걸린 덕에 신체 능력도 1회차의 카딤과 엇비슷했고, 무기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것이었으니.
그럼에도 그가 밀리는 원인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성을 잃고 본능에만 의존하여 싸우고 있다는 것.
같은 무력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이성이 있는 편이 낫다. 광전사는 판단력의 결여를 압도적인 기백과 힘의 우위로 찍어눌러야 하거늘, 신체 능력이 비슷하다 보니 순간순간의 수싸움에서 매번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비단 순간에서만 밀린 것도 아니었다. 골타란은 전투의 형세를 가로 짓는 전체적인 수싸움에서조차 패배했다.
슬슬 육신이 무너질 기미가 보여 허리춤을 더듬대던 중, 돌연 낯짝을 일그러뜨리는 골타란.
“쿠후욱……?”
네 병이나 남았던 철 수통이 다 엉망진창 터져 있었다. 합을 주고받는 동안, 카딤이 교묘하게 그쪽을 공격하여 파괴한 것. 여분의 영약을 전부 잃었으니 이제부턴 부작용을 방지할 수가 없었다.
꾸드득, 꾸득…….
관절이 녹아내려 왼팔이 늘어졌다. 오른팔은 맥없이 덜렁거렸고, 양다리도 뼈가 없는 것처럼 휘청였다. 전신의 피부까지 흐물흐물 벗겨지고 있었다.
“쿠훅, 쿠후우우!”
골타란은 굴하지 않고 남은 신기를 끌어모아 필사적으로 분투했다. 허나 전투의 승패는 이미 판가름이 난 거나 다름없었다. 카딤은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마무리에 돌입했다.
파형 무늬 도끼날이 목울대를 가차 없이 베어냈다.
――――― 쩌 – 걱!
신기가 타점에 몰려들었으나 이미 한발 늦었다. 진흙을 갈라 버린 듯 표면이 뭉그러졌다. 낭자한 선혈이 물컹해진 살점과 뒤죽박죽 섞이고, 골타란은 침음을 흘리며 털썩 무릎 꿇었다.
“쿠허어어어…….”
카딤은 그대로 뒤통수를 짓밟아 결정타를 날렸다.
――――――― 콰 – 앙!!
육중하게 퍼져 나가는 땅울림.
낯짝이 흙바닥 깊숙이 처박히고, 일대가 움푹 가라앉았다. 후두부가 허물어진 골타란은 결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카딤은 얼굴에 묻은 피를 훔치고 도끼날에 엉긴 살점을 닦았다.
“…….”
전투는 끝났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과정은 이제부터였다. 황야의 계율 아래 전리품을 취하는 건 승자의 정당한 권리일지어니, 카딤은 쓰러진 패자에게로 다가갔다.
골타란은 신병을 쉬이 내어주지 않았다.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듯, 면상을 땅속에 처박은 와중에도 도낏자루만큼은 단단히 붙들고 놓질 않았다.
뿌득, 뿌득, 뿌득 –
……하지만 모든 손가락이 일일이 다 꺾이고 나서도 그 고집을 유지하진 못했다.
카딤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되찾았다. 거한의 몸뚱이에서 떨어져 칠흑의 도끼를 엄숙하게 들어 올렸다.
‘아탈라의 심판’.
1회차에 대악마의 목을 내려쳤던, 죽음과 파멸을 부르는 전투도끼.
주인의 손에 내버려졌다 300년 만에 되돌아온, 그 비운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신병.
물 밀듯이 안도감과 성취감이 밀려들었다. 칠흑의 바탕에 새하얀 고대 문자가 새겨진 도끼머리, 길게 내뻗은 검은 자루, 손바닥 마디에 묵직하게 감기는 무게감…… 모든 게 1회차의 기억과 똑같았다. 이번이 두 번째로 얻는 것이지만, 쟁취하는 순간의 기쁨은 전혀 빛바래지 않았다.
그래도 감상에 젖기엔 너무 일렀다. 단연히 정신을 일깨웠다. 신병을 되찾았으니, 이젠 ‘신기’를 불러내고 심판을 마쳐야 할 차례.
카딤은 기억을 헤집어 기도문을 송독했다.
“[영원한 전쟁의 주관자, 아탈라시여. 당신의 대전사를 굽어살피소서, 횃불을 들어 전장으로 인도하소서…….]”
읊조림에 공명하는 대지. 곧장 바람이 불어 사토가 흩날리고, 칠흑의 도끼에서 싯누런 기운이 흘러나와 어깨와 팔뚝을 에워싸……
후우우우웅 –
……지 않았다.
기도를 마칠 때까지, 한 줄기 미풍이 부는 것 말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기도문을 다시 외워보았다.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억이 틀렸나 싶어 다르게도 외워 보았다. 결과는 똑같았다. 도끼를 이리저리 매만지며 갖은 수를 써보았으나, 무슨 짓을 해도 ‘아탈라의 신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리어 소리에 반응한 건지, 빈사 상태가 되었던 적이 꿈틀대는 일만 벌어졌다.
‘쿠욱…….’
“…….”
카딤의 낯에 당혹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원인이 무엇인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무기가 힘을 잃은 걸 리는 없었다. 방금 전까지도 저놈이 멀쩡하게 신기를 쓰지 않았는가? 설마 1회차에 내버렸던 걸 괘씸하게 여겨 신병이 힘을 내어주지 않는 건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망상마저 들 정도였다.
‘쿠후욱, 쿠후우…….’
거친 숨소리가 계속 귀에 거슬렸다. 아곤의 성난 뿔이 땅속에서 얼굴을 뽑고 있었다.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건만, 참으로 지독하게 질긴 생명력이었다.
동시에 시야 한 편에 엷게 적조가 밀려들었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이대로 ‘신기’를 불러내지 못한다면, 조만간 광증에 미쳐 날뛸 게 분명한데…….
“…….”
혹여 실마리는 이쪽이 아니라 저쪽에 있을지도 몰랐다. 내친김에, 아곤의 성난 뿔의 숨통을 끊고 다시 기도문을 외워 보기로 했다.
한데 발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 찰나.
끄저적 –
불현듯 귓전으로 파고드는 파찰음.
그리고 격변하는 세상의 질감.
끄적, 끄저적, 끄저적, 끄저저저저적…….
벽지를 뜯어내듯, 폐허가 된 투기장의 풍경이 거칠게 벗겨지기 시작했다.
먼 배경이 입체감을 잃고 납작해졌다. 탈피된 조각 너머로 밀폐된 공간의 그림자들이 비쳐 보였다. 마치 도배로 붙인 투기장을 일부 뜯어내고, 그 뒤에 맨벽처럼 자리해 있던 유적을 드러낸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괴이한 방식으로 중첩된 투기장과 유적의 광경.
깨진 무쇠 종처럼 섬찟한 육성이 내면에 메아리쳤다.
[세상을 파멸시킬 ‘재앙의 근원’이여……. 그 후안무치한 패악질도 거기까지다! 당장 신병을 버리고 대전사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면, 지엄한 아탈라의 심판을 받게 될지어니…….]카딤은 공허한 눈길을 쳐들고 인상을 구겼 ̴͈̞͊̏͐̎̎̀ ̶̡̡̬̟͔͎̦͋̉ ̵̢͍͉͈̺̞̹̰̓̃̇̃̆̊̀̾…̷̡̨̥̮͓̟̱͎̿…̴̩̘̃͑̍͆… 돌연 환하게 입가를 찢었다.
아, 즐겁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