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아탈라의 심판 (15)
던컨은 뭐가 뭔지, 이 요절복통 결승전이 당최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으악!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뚜렷이 기억나는 건,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격리벽을 뚫고 난입하는 것까지였다. 그 뒤로는 비명 소리와 인파에 휩쓸려 혼이 쏙 빠져나갔다. 종이 인형처럼 떠밀려 다니던 던컨은 관중석을 탈출하기 직전에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 나으리! 나으리께선 무사하신가?’
허우적허우적 사람의 물결을 거슬렀다. 짓밟혀 죽을 위기를 수차례나 넘긴 끝에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비극적이게도, 그즈음 관중석이 통째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 콰르르르르르 – !
“으헉, 으하아아아아악!!”
생존 본능이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일깨웠다. 던컨은 쏜살같이 앞으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무너지는 계단과 판석을 짓밟고, 추락하는 구경꾼과 도박꾼들을 뒤로하고, 홀로 살아남아 경기장 내부로 장렬하게 몸을 던졌다.
우연찮게도, 그 순간 허공이 벗겨지고 유적의 풍경 조각이 나타났다.
끄저저저저적…….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이는 건 어둑한 통로.
“허억, 허억, 허억…….”
여긴 어디지? 설마 내가 죽었나?
묵직한 가방의 무게와 쿵쾅대는 심장 박동이 느껴지니 죽은 건 아니었다. 저 멀리 통로의 끝에서 희미한 금색 불빛이 반짝였다.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던컨은 머뭇거리다 광원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빛이 새어 나오는 입구에 이르러, 기이한 꼬락서니를 보게 되었다.
“[……‘대지의 수호자’가 너를 먼지보다 작은 티끌로 되돌릴 것이다! 시신의 형체라도 남기고 싶거든, 지금이라도 자멸을 택해야 할지어니…….]”
금빛 꽃망울을 틔운 수풀이 우거진 방. 귀신 들린 것처럼 고래고래 혼잣말을 하는 노파, 그리고 빛나는 웅덩이에서 반신욕을 하고 있는 아곤의 성난 뿔.
이건 무슨 요지경인가 싶어 정신머리가 멍해졌다. 처음엔 노파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볼까 했으나 곧 관두었다.
“[같잖구나! 시련을 통과하지 않은 자는, 결코 유적에 발을 들일 수 없을지어니!]”
투 – 웅!
‘저분은…… 심신이 온전한 할머니 같지가 않다…….’
던컨은 하릴없이 목표물을 바꿨다. 몰래 아곤의 성난 뿔에게 가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자고. 그가 ‘광폭화’에 걸린 채 뻗었다는 걸 모르는 던컨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설마, 지난번에 싸웠던 일로 날 해코지하진 않겠지?’
유사시를 대비해 단검자루를 꾹 쥐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진작 들켰겠지만, 다행히 던컨은 기척을 감추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전혀 낌새를 들키지 않고 웅덩이 바로 뒤까지 접근했다.
허나 우연히, 아주 우연히……
“[……네놈이 파멸에 이르는 그 순간!! 그 순간까지 시련은 결단코 끝나지 않을 것이니!!!]”
……무녀가 악을 쓰다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결국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부풀어 오르는 혼탁한 동공. 무녀는 망령이라도 본 것처럼 혼비백산했다.
“[아, 아니? 무, 무엇이냐, 네놈은! 어떻게 감히, 유적에 몰래 발을 들인…….]”
던컨도 덩달아 당황했다. 반사적으로 단검을 뽑아 골타란의 모가지에 들이밀었다.
“흐어어억! 가, 가만히 계십쇼, 할머님! 아, 안 그러면 좋지 않은, 유감스러운 일이 벌어질 겁니다요!”
화르르르르륵 –
지옥불이 골타란의 수염을 슬쩍 살라 먹었다. 협박한 인질범은 얼빠진 표정을 지은 반면, 협박당한 노파는 악귀처럼 낯짝을 일그러뜨리며 일갈을 내뱉었다.
“[무엄하다!! 당장 그 곁에서 떨어지거라!! 그러지 않으면, 네놈을 뼛조각 하나! 진토 한 티끌 남지 않게! 저 메마른 황무지 속에 영영 파묻어버릴 것이니!!]”
“으어, 흐어어어억…….”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대치. 무녀는 가까스로 침착함을 되찾았다. 쌕쌕 날숨을 몰아쉬곤, 신속히 등 뒤로 몰래 주술진을 그렸다.
“[후우, 노구가 어리석었군……. 대전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침입자를 쫓아낼 수단이 있었거늘…….]”
투 – 웅!
“……어업!”
추방 주술이 던컨의 몸을 밀쳤다. 왜소한 신영이 삽시간에 유적 밖으로 사라졌다.
팅, 팅, 화르륵 –
그러나 주인이 사라지고도 지옥불 단검만은 남아, 수풀 사이로 떨어져 불길을 붙였다.
“[음……?]”
화르르르르르르륵 –
찰나의 시간에 퍼져나가는 지옥의 겁화.
꽃과 수풀은 습기가 없어 잘도 타올랐다. 혼신을 기울여 재배한 영약의 원료들이 눈 깜짝할 사이 땔감으로 연소되었다.
“[……아, 안 돼!! 안 된다아아아아아아!!]”
무녀의 절규가 처절하게 메아리쳤다. 그럼에도 불꽃의 이빨은 자비 없이 땔감을 곱씹고, 칼칼한 유황 연기를 공간이 꽉꽉 들어차도록 토해냈다. 잔기침을 내뱉는 무녀의 눈에 한낱 영약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들어왔다.
“[쿠훌럭! 쿠훌럭, 켈룩, 켁, 켁! 대, 대전사여! 정신을 차려라, 대전사여!]”
골타란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무녀는 결국 수백 년 만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쩌적, 쩌저적 –
앙상한 허벅다리 밑으로 끊어진 잔뿌리들이 늘어졌다. ‘황야의 뿌리’가 망가졌으니 주술이 중지되고 신통력을 대거 잃겠지만, 지금은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무녀는 비틀대며 걷다 균형을 잃고 성대하게 넘어졌다. 그러고도 필사적으로 불꽃 사이를 기어 웅덩이로 향했다. 골타란의 팔뚝을 붙들고 급히 허공에 획을 그렸다.
이윽고 주술진에 손을 얹자, 흙먼지처럼 바스스 흩어지는 두 사람의 윤곽.
“[쿠훌럭, 쿠훌럭, 켈룩, 켁…….]”
예기치 못한 불청객의 방문 탓에, 무녀는 결국 유적 밖으로 마지막 외출을 떠나게 되었다.
*
투기장과 유적, 두 풍경이 여전히 기묘하게 중첩된 공간.
아탈라의 대전사는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다. 자신을 능멸하고 가짜 대전사를 만들어 낸 황야의 무녀를.
파스스스스스…….
“[쿨럭, 쿨럭, 쿠훌럭, 후우우…….].”
“…….”
멈춰선 바위 거인들이 드리운 그늘 아래, 무녀는 흙먼지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유적을 일부 덧씌웠다 하나 결국 이 공간의 본질은 외부. 무녀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대전사와 무녀, 그중 먼저 입을 연 건 대전사였다.
“왜 갑자기 기어 나온 거지. 쥐새끼처럼 쫑알대며…… 그 빌어먹을 골방에만 처박혀 있더니.”
“[쿠훌럭, 쿨럭…… 정말로 쥐새끼 같은 놈은 네 옆에 붙어 있는 그놈이지……. 감히 신성한 유적에 몰래 발을 들이고, 그곳을 불태우다니…….]”
무녀는 던컨을 씹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던컨은 움찔, 몸을 떨고는 카딤의 뒤로 숨었다. 카딤은 전후사정은 나중에 묻기로 하고 눈짓했다.
“수고했다, 던컨. 이제 여기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거라.”
“예? 그, 그렇지만…… 나으리 곁에 있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지금 제일 위험한 건 나다.”
공허한 시선이 던컨을 향했다. 검붉은 눈동자가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던컨은 식겁하여 벌벌 떨다가, 이렇게 외치고는 허둥지둥 줄행랑을 쳤다.
“모, 몸조심하십쇼, 나으리! 꼭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
카딤은 대답 없이 모든 손가락이 부러진 왼손을 버르적거렸다.
광증을 억누르는 게 한계에 임박했다. 붉게 물든 세상에서 먼지처럼 흩어지는 무녀는 마치 사람을 본뜬 피 안개처럼 보였다. 그는 이빨을 빠드득빠드득빠드득빠드득빠드득 갈며 광기의 충동을 억누르고 겨우 마른 입술을 뗐다.
“피차……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군. 정신을 잃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도록 하지.”
“[…….]”
“어째서인지…… 나는 신기를 불러낼 수가 없더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저놈은 잘만 써먹던데…… 혹여 네가 ‘아탈라의 심판’에 무언가 금제를 걸었나?”
무녀는 느릿하게 도리질했다. 메마른 회한을 입가에 머금고.
“[아니. 그 이유는, 네놈이…… 투쟁의 사명을 버리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카딤은 처음엔 헛소리를 한다 생각하여 투척도끼를 던지려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손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왜 우릴 버리고 떠났던 게냐?]”
“……!”
“[어디로 갔다가 이제야 돌아온 게냐? 무슨 심경의 기복이 이 세계를 등지게 만든 게냐? 대악마를 무찌른단 사명을 다해서……? 투쟁의 나날이 이젠 지긋지긋해져서……?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곳엔 아직…… 그대만을 믿고 의지하던 맹안의 무녀님과 우리들이 남아 있지 않았더냐……?]”
“…….”
“[그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삶의 달콤한 과실들을 등지고, 너무나 오래, 죽음보다 쓰디쓴 고독의 뿌리를 짓씹었다……. 그러나 수백 일, 수천 일, 수만 일…… 홀로 그대의 이름을 부르짖고, 통곡하고, 오열하고, 토혈하고, 이맛살이 다 터지도록 바닥에 머리를 찧어 봐도! 그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대가 떠나지 않았다면! 아니, 차라리 죽었더라면! 그런, 그런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내 손으로 가짜 대전사 따윌 만들진 않았을 텐데…….]”
닳고 닳아 산산이 부서진 한이 깃든 성토.
그러나 무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두텁게 쌓인 통탄을 지워냈다. 대신 표독스럽게 안광을 빛내며 주술진을 그렸다.
“[네놈은…… ‘아탈라의 대전사’가 아니다. 아니, 네놈은…… ‘아탈라의 대전사’여선 안 된다. 그건 투쟁을 등진 도망자에겐 허락되지 않는 칭호다. 이제 나는, 네놈의 발목을 붙잡고 패배와 굴종뿐인 지옥으로 떨어져, 사명을 이을 새로운 대전사를 탄생케 할 터이니…….]”
주술의 제어를 따라 쓰러졌던 바위 거인들이 다시 거체를 일으키는 순간.
쿠구구구구구, 쿠구구구구구 –
카딤의 의식이 뚝 끊겼다.
그리고 창백한 마경의 대지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주변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손에는 삽자루가 쥐여져 있었다.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몸이 절로 움직였다. 마기를 머금은 땅에 삽날을 꽂고, 발로 꾹 밟아 깊숙이 박아넣고, 푹푹 퍼내서 구덩이를 파헤쳤다.
시체를 묻을 구덩이라도 파는 건가. 난데없이 또 왜 이런 환상이 나타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히 깨달았다.
자신이 ‘아탈라의 신기’를 불러낼 수 없었던 이유.
그는, 아탈라의 대전사가 아니었기에.
그는, 카딤이 아니었기에.
남자는 현대인의 자아와 전사의 자아를 분리시켜 놓았다. 카딤이 한 일을 자신이 한 게 아니라 부정했다. 마음이 무너지는 걸 막고, 피로 얼룩진 현실을 버텨내기 위한 얄팍한 방어기제였다.
허나 그것이 대전사의 정체성까지 부정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1회차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아탈라의 심판’을 얻었을 무렵엔 현실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대악마를 처치한 직후가 문제였다.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이젠 다시 만날 수 없는 녀석들이니까.]전사의 삶, 그리고 현대인의 삶. 그는 결정적인 기로에서 모든 걸 버리고 후자를 택했다. 2회차를 시작하며 부랴부랴 다시 현대인의 자아를 파묻었지만, 이미 한번 파헤쳐졌던 구덩이는 밑바닥까지 그 본의를 드러낸 뒤였다.
신기는, 신이 그 추종자들에게 내리는 축복의 기운. 모든 걸 버리고 달아난 도망자는 결코 그 축복을 취할 수 없을지어니…….
‘고작 그까짓 일 때문에…… 신기를 못 쓰게 되었다고……?’
한편으론, 들끓는 분노가 치밀었다.
어차피 이 세계에 남는 건 광증 탓에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죽을 고생을 하며 대악마를 물리쳤더니, 제멋대로 2회차를 시작시켜 놓고 그나마 있던 축복까지 앗아가다니? 그 원흉을 뼈 한 조각 살점 한 톨 남지 않게 도끼로 잘근잘근 찍어 버려도 시원찮을 극렬한 분노가 밀려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숙엄한 참회도 있었다.
자신이 버린 건 비단 동료들과 황야의 무녀들만이 아니었다. 그가 버린 건, 그 모든 걸 포괄한 끝없는 투쟁을 선사하는 이 세계, 그 자체. 주저 없이 세계를 등졌으면서 다시 돌아와 당당히 대전사를 자처하는 태도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턱 – !
돌연 삽 끝에 무언가 닿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이번에도 그 정체 모를 시뻘건 윤곽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었다. 삽 끝에 닿은 건 또 다른 삽. 구덩이 밑을 굽어보자, 건너편의 세계에서 삽질을 하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보여 줄 게 있다는 듯 강직하게 삽질을 계속했다. 야틈한 시간이 흘러 구덩이를 광활하게 넓히고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드러냈다.
그곳에는 시체 더미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악마가 사멸함으로써 구원받은 대륙의 모든 이들. 그가 손수 쌓아 올린 시체들보다도 아득히 많은, 그가 투쟁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남자와 카딤은 동시에 실소를 터뜨렸다.
그랬다. 모든 건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애초에 떼어낼 수가 없었다. 남자가 있으니 카딤이 있고, 죄업이 있으니 위업이 있고, 심판받은 자들이 있으니 구원받은 자들도 있는 법이었다.
그리하여 남자는 비로소 카딤을 긍정했다.
더 이상의 부정은 없었다. 현실 도피도 없었다. 그는 카딤이 짊어진 죄업과 위업과 사명을 온전히 감내하기로 했다. 그 모든 건, 자신의 손으로 행한 일이며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숙연히 인정하기로 했다.
두 자아가 합쳐졌으니 나아갈 길은 하나뿐이었다. 이 끝이 궁극적으로는 자신과 모두를 구원할 거라 믿는 길. 제 뜻이 곧 투신의 뜻임을 의심치 않는, 투쟁의 길.
카딤은 무릎 꿇고 결연히 기도문을 읊었다.
“[투쟁과 황야의 신, 아탈라시여…….]”
더는, 등 돌리지 않으리라.
“[당신의 대전사를 굽어살피소서, 횃불을 들어 전장으로 인도하소서…….]”
더는, 아무것도 버리고 달아나지 않으리라.
“[부정한 적들에 대적할 힘을 주소서, 광풍이 몰아쳐도 꺾이지 않을 심지를 주소서…….]”
더는,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부정하지 않으리라.
“[내 영과 육이 피투성이가 되어 황야의 먼지로 돌아갈지라도…….]”
그 피를 뒤집어쓰고 끝 모를 황야를 걷는 게 나의 사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
“[……절대로 굴복하지 않고 영원토록 투쟁할 것을 맹세하노니.]”
나는, 현실에서 추방당한 이방인이며.
카딤.
그리고 아탈라의 대전사다.
끄저저저저저저적…….
마경의 환상이 장막처럼 걷혔다. 붉게 물든 시야 너머로 장엄한 윤곽들이 드러났다. 아무래도 지금은 광증에 미쳐 바위 거인들과 맞서는 중인 듯했다.
―――― 콰과과, 콰과과과과광 – !!
“그으, 크하아아아아아아악!!!”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구나! 역시 네놈은, 온 세상을 파멸로 이끌 재앙의 근원…….]”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
카딤은 폭주하던 육신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도낏자루를 꾹 움켜쥐었다. 칠흑의 도끼에서 싯누런 기운이 새어 나오더니, 어느새 커다란 돌풍을 이루고, 마침내 모래 폭풍처럼 광대하게 불어나 폐허가 된 투기장 전체를 휘감았다.
휘오오오오오오오 – !!
이미 육신의 절반을 상실한 무녀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아, 아니, 어떻게 ‘아탈라의 신기’를…….]”
황색 잔영이 깃들어 광증에 잠식당한 육신을 진정시켰다. 카딤은 오염된 찌꺼기를 내뱉듯 날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아탈라의 신기. 그 효과는 모든 전투 관련 스탯을 증폭시켜 주고, 모든 디버프에 면역을 부여하는 것.
최악의 디버프, ‘광증’도 예외는 아니었다.
쿠호오오오오오오 – !!!
지리멸렬한 광기 따윈 이제 대전사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황야의 소용돌이가 태양의 눈동자를 뒤덮었다. 하늘이 선회하는 금빛으로 물들어 휘황한 잔광을 산란했다.
“[그, 그럴 순 없다! 그럴 리가 없다! 네놈은, 네놈은 투쟁을 등졌는데…… 우리를 버렸는데…… 어째서, 어째서…….]”
신기의 격류가 점점 더 거세게 몰아쳤다. 마음이 꺾인 무녀가 광풍에 휩쓸려 무너졌다. 천지가 노호한 거수처럼 뇌동하여, 저 커다란 바위 거인들조차도 맥을 추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가운데.
– 쿠구구구…….
– 쿠구구구구…….
카딤만이.
“지금, 이곳, 투쟁을 모욕하는 타락의 전당…….”
아탈라의 대전사만이.
“……구원자를 참칭하는 가짜 대전사, 대전사를 능멸한 황야의 무녀 앞에…….”
오직, 영원토록 투쟁의 길을 걷기로 맹세한 자만이.
“……지엄한 ‘아탈라의 심판’이 당도하였노라.”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굳건하게 서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