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진실을 꿰뚫는 별 (6)
성기사는 땅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투구와 창자루는 아예 멀찍이 내팽개친 채. 카딤도 이젠 신기를 꺼뜨렸다. 계속 유지하기에는 육신에 걸리는 부하가 너무 컸다.
그러나 여전히 방심하지 않고 도끼날을 적의 목울대에 들이밀었다.
섬뜩한 서슬에도 아랑곳 않고 담담히 입을 여는 성기사.
“자기소개부터 다시 하지. 나는 엘가 교단의 아크팔라딘, 데카그램(Decagram) 제3좌, ‘진실을 꿰뚫는 별’ 헨다르크 엘 베르니에타 엘가루스라고 하오. 그대는…… 황금 가도에서 악마들을 잔뜩 죽였다는 용병, ‘악마 학살자’가 맞소?”
“…….”
“음, 맞는 모양이군. 앞서 이미 말했지만, 나는 그대와 싸우러 온 게 아니오. 대화를 나누러 온 거지. 그러니 괜히 힘들게 계속 그 도끼를 들고 있을 필요는 없소.”
“……엘가의 개가 하는 말을 믿느니, 뒷골목 장사치의 말을 신뢰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흐음, 그렇다면 그대와 대화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엘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소.”
“…….”
카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300년 전, 아직 정의롭던 시절의 엘가 교단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아마 신뢰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아집과 독선에 빠진 현시대의 성기사들에게 몇 차례 호되게 데인 차였으니…….
아크팔라딘, 헨다르크도 이해한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만하구려. 그래, 신의 이름을 우습게 여기는 모리배들 탓에 그 존함도 무게가 많이 가벼워졌지. 그래도 내 말만큼은 믿어도 좋소. 왜냐하면 나는……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 없거든.”
“…….”
“믿을 수 없다면 보여주겠소.”
코라도 늘어나나 싶어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지는 않았다. 헨다르크는 건틀릿을 벗고 손등을 드러냈다. 그 위로도 선명한 십각성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손등을 하늘로 쳐들고 엄숙히 말했다.
“……나는 아탈라인이다.”
그러자 저 머나먼 태양으로부터, 예리한 빛 한 줄기가 쏟아져 손등에 내리꽂혔다.
―――――― 쩌 – 엉!
매캐한 살가죽 탄내, 손등에서 진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인상을 찡그리고 손을 탈탈 터는 헨다르크.
카딤은 눈을 부릅떴다.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의 내용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이와 거의 비슷한 현상을 일전에 목격한 적 있었다.
세상에 밝혀선 안 될 진실을 드러냈을 때, 일레니아가 ‘엘가’가 가짜라는 사실을 누설했을 때.
“어떻게 된 거지. 방금 그건…… 엘가가 내리는 ‘천벌’이 아니었나?”
“으음……? ‘천벌’에 대해서도 아시오? 이거 놀랍군. 교단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정보인데……. 그러면 혹여 ‘태양은 세상을 굽어살피는 엘가의 눈동자’라는 말에 대해서도 알고 있소?”
잠자코 긍정의 눈짓을 보내는 카딤. 헨다르크는 혀를 내두르며 다시 건틀릿을 장착했다.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 하고 중얼거리곤 설명을 이어 나갔다.
“방금 보여준 건 ‘성흔’이라는 것이오. 교단에서 특별히 선별된 10인의 아크팔라딘, 데카그램만이 받게 되는 성스러운 표식이지. 이걸 육신에 새기면 한 가지 초월적인 능력을 얻게 된다오. 허나, 그 대가로 커다란 제약도 생겨나지. 그리고 그 제약을 어기면 방금 전처럼 영원한 광명의 주인께서 친히 천벌을 내리시는 것이외다.”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개념이었다. 주역 캐릭터의 ‘고유 특성’이나 고위 악마의 ‘권능’과 비슷한 것이겠지.
다만 아크팔라딘들에게도 또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딴 것 없이도 이미 충분히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종자들인데…….
“내가 얻은 성흔은 ‘진실을 꿰뚫는 별’. 만상의 진실과 거짓, 그릇된 위장과 부정한 기척을 통찰하는 성흔이오. 아무리 교묘한 속임수와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결코 나를 기망할 순 없지.”
“…….”
“그러나 천지의 모든 빛을 내다보기 위해선, 내 모습 또한 천지에 훤히 드러내야 하는 법. 내가 받은 제약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이라오. 악의 없는 작은 거짓말은 방금 같은 정도로 끝나지만, 큰 거짓말을 일삼으면 분명 천벌을 받고 깡그리 불타 숯덩이가 되고 말겠지.”
상처가 욱씬거리는지 헨다르크는 건틀릿 위로 계속 손을 얹고 있었다. 이마를 도끼에 찍히고도 멀쩡했던 자가 저럴 정도면 확실히 치명적인 제약이긴 했다.
여하튼 여태껏 천벌이 내리지 않은 걸 보아, 자신과 대화하러 왔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닐 터.
물론 그럼에도 의심을 거두진 않았다. 도리어 초면부터 기밀을 누설하고 취약점을 실토한다는 점이 더욱 수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성흔이란 것 자체가 눈속임일 가능성도 없진 않고…….
카딤은 도끼날이 살갗을 먹도록 더 바짝 들이밀었다.
“그것이 네놈의 말을 신뢰할 근거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
“…….”
“하지만 네놈을 죽이지 말아야 할 근거는 되지 않는 것 같군. 네놈도 나를 죽이란 명을 받고 온 것 아닌가? 괜히 살려두고 간 보는 것보단 바로 후환의 싹을 자르는 게 나아 보이는데.”
“……부인하진 않겠소. 확실히 나는 그대를 처단하란 명을 받고 왔지. 하지만 그대로서도 계속 나와 맞서 싸우는 건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닐 거요.”
단언하는 성기사를 노려보며, 사납게 입가를 찢는 카딤.
“설마 힘이 모자라,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
헨다르크는 눈꺼풀을 내리고는 담담하게 부인했다.
“아니오. 솔직히 나는 그대를 상대로 무사히 승리하리란 확신이 없군. 내 말은, 이 주변에 미칠 여파에 대한 얘기였소.”
“…….”
“아마 그대와 내가 전력을 다해 맞선다면, 못 해도 반경 10킬로미터 정도는 초토화될 것이오. 그러면 인근에 있는 마을은 괴멸될 것이고, 수많은 무고한 목숨들이 핏빛 이슬로 스러지겠지. 그리고 또한…… 당신의 동료로 보이는 사내도 무사하지 못할 테고.”
그 말이 나오는 찰나, 카딤의 동공에 광염이 어렸다.
그건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목 근육을 끊어버릴 기세로 도끼날을 힘껏 꾹, 짓눌렀다. 헨다르크는 기함하며 목에 힘을 꾹 주고 급히 말을 덧붙였다.
“크흑, 협박이…… 아니오……. 아마도 당신은…… 성기사에게 주변인이…… 큰 해를 입은…… 경험이 있나 보군……. 이해하오. 그렇지만…… 이쪽도 비슷한 경험이 없진 않소…….”
“…….”
“당신이…… 몇 달 전에 죽인…… 아크팔라딘, 헬리아 뮤넬은…… 내가…… 젖먹이 때부터…… 길러온 제자였소…….”
스르르, 목울대를 짓누르던 도끼날에 찬찬히 힘이 빠졌다.
눈동자에 깃든 감정이 빗줄기를 맞은 모닥불처럼 사그라들었다. 대신 무기질적인 침착함이 그 자리에 깃들었다. 카딤은 성기사를 냉담하게 내려다보며 물었다.
“헬리아 뮤넬이라면, 그 불타는 검을 다루던 아크팔라딘을 말하는 것 맞나.”
“……맞소이다.”
“유감이군. 그 녀석을 안 죽이면 내가 죽었을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네놈은 왜 내게 복수하려 들지 않는 거지.”
“……성흔을 얻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소. 남의 말이나 내면의 감정에 휘둘리기보단, 나 자신이 보고 겪은 진실들을 더 신뢰하게 됐지. 그러잖아도 헬리아, 그 아이에게선 엇나갈 조짐이 보이던 차였는데…… 그대는 혹여 지금까지 죄 없는 성기사를 부당하게 죽인 적이 있소?”
“아니.”
“그러면 그대의 정체는 혹여 잊힌 신의 추종자들과 야합하고, 악마의 힘을 받아들이는 악귀요?”
“……악귀는 아니다만.”
“그걸로 됐소. 그 말은 모두 진실이로군. 나는 그대를 적대하지 않을 것이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한 증명이었다.
귓구멍을 처막고 제 할 말만 하던 적들의 모습이 줄줄이 떠올라 일말의 허무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카딤은 맥 빠진 표정을 짓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낯짝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숙고하기를 잠시, 결국 무언가 초탈한 듯한 이 아크팔라딘을 바로 죽이진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른 한숨을 토하고 입을 여는 카딤.
“말해 보거라.”
“……이렇게까지 그대와 대화하려는 이유 말이오?”
“그래. 제자를 죽인 원수에게 앙갚음도 않고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한 번 들어보기나 하지.”
성기사의 입가에 아주 짧은 찰나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허나 곧 신기루처럼 표정을 지워내고 진중한 눈빛을 했다.
“그대도 모르진 않을 거요. 작금의 엘가 교단에는 무수한 병폐가 있소이다. 그중 하나는 눈앞의 이교도와 불신자, 그리고 악마를 처단하는 데만 급급한 근시안적인 태도지.”
“…….”
“그 강압적인 기조는 교단의 세를 불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인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소. 오히려 교단의 적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반감도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지. 교단이 진정 엘가의 뜻에 합당한 세력이 되기 위해선, 폭력과 억압 대신 자비와 질서를 기치로 삼고, 악마가 창궐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뿌리 뽑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텐데…….”
“……서론이 너무 길군. 건너뛰고 본론만 털어놓거라.”
헨다르크는 기꺼이 그리했다.
“나는 대륙에 악마의 창궐을 일으킨 원흉이 ‘마탑’이라 보고 있소.”
“…….”
정적.
매서웠던 카딤의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다. 건너뛰랬더니 갑자기 너무 많은 내용을 건너뛴 것 같았다. 헨다르크는 카딤이 집중을 되찾길 기다렸다가 차분히 설명했다.
“정확히 말하면, 직접적인 원흉이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큰 연관이 있을 거라 추론하고 있소.”
“……근거는?”
“악마의 창궐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기록은 제국력 28년, 지금으로부터 딱 220년 전에 기록된 것이오. 마탑이 공고히 자리 잡고 한창 본격적으로 세를 불려 나가던 시기지. 그리고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한 가지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 때와 거의 정확히 일치하오.”
“어떤 것 말이지.”
“온 대륙에서 ‘고대 마나’가 사라진 사건 말이오.”
카딤의 눈썹이 슬몃 뒤틀렸다.
고대 마나, 300년 전까진 마법의 근원이었던 초자연적인 기운.
렘타나의 보좌관이었던, 그러나 오우거의 몸뚱이로 숨을 거둔 마법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고대 마나’가 고갈되어 이젠 마법을 쓰려면 ‘마나’를 사용해야만 한다고 했지, 아마.
그렇기에 마나 감응력, 아니, 고대 마나 감응력이 극도로 낮은 카딤도 당대의 마법은 감지할 수 있었다. ‘마나’에 희미하게 마기가 섞여 있었으니까. 허나 역시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멜리사가 대마법을 펑펑 써도 남아돌았던 고대 마나가 어떻게 한순간에 전부 사라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 못 알아낸 의문을 해소할 기회일지도 몰랐다. 카딤은 물었다.
“고대 마나는 왜 고갈된 거지.”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그건 나 역시 모르오. 그리고…… 그에 대해 조사하는 게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일 중 하나고.”
“하.”
싸늘한 헛웃음을 터뜨리는 카딤. 하기야 그에 관한 정보는 오로지 마탑주와 장로회의 마법사들만이 안다고 들었다. 헨다르크는 재차 마른 입술을 뗐다.
“생각해 보시오. 악마의 창궐, 그리고 고대 마나의 고갈. 이 두 개의 대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는 게 우연이라기엔 과하게 적연하지 않소? 게다가 마탑은 그들이 쓰던 기운이 사라지는 위기를 마주하고도 몰락하긴커녕, 예상했다는 듯 그들이 현재 ‘마나’라 일컫는 대체재를 찾아냈지.”
“…….”
“조심스레 추측건대, 내 생각엔 아마 마탑에서 범세계적인 규모의 마법 실험을 진행했다가 실패한 게 아닐까 싶소. 그 부작용으로 고대 마나가 고갈되며 악마들이 창궐하였고, 마탑은 예비책으로 세워둔 계획을 실현해 마나를 만들어 냈고…….”
“그러면 네가 직접 마탑에 가서 진상을 조사하면 될 일 아닌가? 홀몸으로 나서기 부담스러우면 엘가 교단을 등에 업는 방법도 있고.”
헨다르크는 느릿하게 도리질을 쳤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불가능했다고 했다. 지나치게 민감한 추측이다 보니 심증만으로 나설 수가 없다고, ‘데카그램’이 마탑에 접근하면 분명히 전쟁이 터질 거라고, 기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굉장히 큰 위험을 무릅쓴 거란 설명이 뒤따랐다.
카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으나, 헨다르크는 굴하지 않고 계속 꿋꿋이 열변을 토했다.
“교단의 대주교는 또다시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내게 그대라는 악귀 하나만을 처단하란 명을 내렸소. 마침 제자가 그대에게 목숨을 잃기도 했으니 원한이 있는 내가 적임자라 생각했겠지.”
“…….”
“하지만 나는 시야를 넓혀 이를 보다 대국적인 기회, 악마가 창궐한 원인을 파헤칠 기회로 보았소. 그러자 그대가 원수가 아닌 이 막중한 임무를 감당할 적임자로 보이더군. 그대는 딱히 소속이 있지도 않고, 위기에 빠지더라도 능히 마법사들의 소굴에서 빠져나올 무력을 가졌으니…….”
“…….”
“그대 역시 마탑에 볼일이 있어 이곳에 온 것 아니오? 부디, 그곳에서 악마의 창궐과 고대 마나에 관해 조사해 주시오. 만일 그 진상을 밝혀낸다면, 이 지난한 창궐을 종식시킬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그러면 대륙의 만민이 그대의 이름을 길이길이 칭송할 것이며, 필시 엘가 교단도 그대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외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대의를 보는 성기사의 시각은 확실히 고결하다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역할은 이쪽이 맡아야 했고, 대륙을 구한다고 꼭 교단의 추적을 피하며 길이길이 칭송받는 것도 아니었다.
흐릿한 고소를 머금고 생각에 잠기는 카딤.
“…….”
수렁처럼 진득한 장고 끝에, 그래도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고대 마나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선 자신도 신경 쓰였던 차였다. 악마들이 창궐한 연유 역시도 매한가지. 무엇보다 성기사는 심증만을 말했으나 카딤에겐 보다 실질적인 근거들이 있었다.
악마들을 되살려 창궐시킨 자가 동료들 중 하나라는 히드라의 말.
그리고 마탑이 악마의 시체를 모으고 마기로 마법을 쓴다는 사실.
어쩌면…… 멜리사가 이 모든 일에 얽혀있을지도 몰랐다.
또한, 임무를 수락하는 대가로 성기사에게 요구할 만한 정보도 있었고.
“좋다. 그 제안, 받아들이지.”
“정말이오? 고맙소이다! 보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드릴 테니,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시오.”
“……내 조건은 간단하다. 질문을 하나 할 테니, 그에 대해 거짓 없이 아는 걸 전부 말하는 것.”
헨다르크는 성흔을 드러내곤 엄숙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딤은 훅, 느릿하게 심호흡을 하고는 입술을 뗐다.
“고든 엘가로크, 약 300년 전에 엘가 교단에 몸담고 있던 사제다. 신의 계시를 받은 용사와 함께 대악마를 처단했으나, 어째서인지 세상 사람들에겐 그 이름이 완전히 잊혔더군. 혹시 그자에 대해 무언가 아는 게 있는가?”
마탑 이후의 행선지를 결정지을지도 모를 중요한 질문.
그렇지만 큰 기대를 걸고 물어본 건 아니었다. 이자의 제자라던 아크팔라딘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교단에서 작정하고 기록을 말소했다면, 어쩌면 이 세상에 고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안 남았을지도 몰랐다.
한데 헨다르크는 심각하게 중얼중얼 그 이름을 되뇌다가, 어느 순간 고리눈을 뜨고 흠칫 몸서리를 쳤다.
그러곤 조심스레 이렇게 반문했다.
“……고든이라면 혹여, ‘빛을 등진 고든’을 말하는 것이오?”
대답 대신 의혹으로 찌그러진 눈길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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