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다섯 개의 기둥 (2)
그래도 카딤과 던컨은 마탑 안으로 안내받았다. 책임자를 찾아 시신을 이양하긴 해야 했으니.
내부는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단출한 모습이었다. 하얀 벽돌로 촘촘하게 짜 맞춰진 통로는 깔끔해 보이긴 해도, 장엄한 외관처럼 경이나 신비를 느낄 여지는 없었다.
카딤은 건조하게 풍경을 훑었다. 의외였다. 멜리사라면 좀 더 화려하게 꾸며놓을 줄 알았는데. 앞서가는 하늘색 로브의 마법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겉보기에 비해 평범하군. 다른 마법사 놈들도 안 보이고. 마탑의 내부는 전부 이런 식인가?”
“……죄송하지만, 외부에서 오신 분께 마탑의 구조에 대해 설명드릴 순 없습니다. 그 밖에도 제가 설명드릴 만한 건 아무것도 없고요.”
마법사는 야만인을 존대해야 한다는 게 못내 불편한 기색으로 답했다. 카딤은 시체를 고쳐 매며 같잖다는 듯 픽, 코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가지 않아 막다른 흰 벽이 나타났다.
계단이나 문도 없는 완전한 사로였다. 던컨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카딤은 무덤덤했다. 당연히 뭔가 신비로운 짓거리를 벌이시겠지.
기대에 부응하듯 마법사는 벽의 이런저런 부분을 두들겼다. 푸른빛을 발하는 동심원과 신비 문자들이 나타났다.
“오르고, 알, 마르키네, 르문, 폰. 42층의 접객실로.”
쿠구구구구구…….
막다른 벽이 저편으로 물러나고, 앞선 통로가 꽈배기처럼 비틀리며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마법사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허나 한 가닥 우쭐함이 깃든 얼굴로 눈짓했다.
“이쪽입니다. 따라오시지요.”
“오오…….”
던컨이 어린애처럼 찬탄하며 나직이 속삭였다.
“나으리, 여긴 모든 공간을 저런 식으로 오가는 걸까요? 아니면 뭐, 다른 장소는 더 특별한 출입 방법이 있는 걸까요?”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예, 예! 궁금하다 마다요! 여긴 마법사가 아니면 평생 한 번 구경하기조차 힘든 곳인데…….”
“그렇다면 조만간 더 많이 둘러볼 기회를 주지. 이곳의 구조와 출입하는 방법을 잘 외워 두거라.”
“……예?”
지극히 의미심장한 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의미를 되물어보려 했으나 카딤은 이미 휑하니 앞서가고 있었다.
통로의 중앙에서 문을 지나 접객실에 이르렀다. 그곳도 딱히 신비로운 공간은 아니었다. 하얀 조명이 드리운 단순하고 비좁은 방구석.
“이곳에 편히 앉아 기다려 주십시오. 이 사건을 책임지고 논할 만한 분을…… 곧 찾아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
마법사는 그런 말을 남기고 퇴장했다.
그러자 즉각 시체를 내려놓고, 인벤토리에서 무기들을 꺼내 무장을 갖추는 카딤.
던컨이 그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뭐, 뭣 하시는 겁니까, 나으리? 이, 이, 시신을 전해주는 조건으로 마법사들과 협상하러 온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 그래서 협상 준비를 하고 있잖느냐.”
“…….”
폭력과 공포는 언제나 유용한 협상 수단이다. 더군다나 이번 상대는 다름 아닌 바로 그 탐탁잖은 마법쟁이들. 이번 협상은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굳이 던컨의 무력까지 필요하진 않았다. 분업이 필요한 시점, 행상인에겐 맡길만한 일이 따로 있었다.
“마침 보는 눈도 없군. 던컨, 넌 지금 바로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고 오거라.”
“예엑?!”
헨다르크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기록을 보는 일과 별개로 마탑의 내밀한 기밀들을 염탐할 필요가 있었다. 이 기척을 감추는 데 능한 행상인은 그 일에 더할 나위 없는 적격자. 허나 평범한 장소가 아니니만큼 먼저 가볍게 둘러보는 것부터 시켜볼 생각이었다.
당연히 던컨은 그런 사정을 몰랐다. 아까 꺼낸 말 때문에 저러는 줄로만 오인했다.
“그, 나으리, 저, 노, 농담이었습니다요! 저, 사실 마탑 구경 따윈 관심도 없습니다! 그냥 이 정도만 둘러봐도 되니까 제발…….”
“그랬나. 나는 농담이 아니다. 꼭 필요한 일이니 늦기 전에 출발하도록. 만일 발각되면 내가 나서 도와주겠다.”
“……아, 아니, 그, 그렇지만, 나으리, 여긴 마탑 아닙니까? 다른 적들은 나으리가 힘으로 제압하면 되겠지만, 마법사들이 뭔가 기이한 술수를 부리면…….”
“걱정 말거라. 마법사가 헛수작을 부리면 곧바로 내가 알 수 있고, 확실히 놈들을 무력화할 수단도 있으니.”
“……?”
현대의 마나에는 ‘마기’가 섞여 있어 카딤이 전조를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주문을 외우면 입을 찢어버리면 그만이고, 그 밖의 수단을 쓴다 해도 아크팔라딘에게 받은 ‘확실한 대처법’이 있었다.
카딤은 던컨의 어깨를 붙들고 재차 단호하게 일렀다.
“너무 멀리 나갈 필요는 없다. 당장은 이 층의 복도를 둘러보는 정도로 충분해. 이곳의 구조가 어떤지, 특별한 장치가 없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돌아오거라.”
“…….”
“모자란 길잡이는 지도를 조금만 벗어나도 벌벌 떨지만, 최고의 길잡이는 낯선 길을 둘러보는 걸 두려워 않지. 네놈은 어떤 길잡이더냐, 던컨?”
그 말이 행상인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입술을 한 차례 꾹 깨물더니, 내리깔린 목소리로 답했다.
“……최고의 길잡이, 던컨 휠레드. 그 명 받들겠습니다, 나으리.”
“…….”
결국 던컨은 비장한 표정을 짓곤 밖으로 나섰다. 카딤은 헛웃음을 치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우웅, 얕게 떨리는 도낏자루를 쓸어내리며 협상 상대가 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한 마법사가 접객실로 들어섰다.
붉은 로브를 걸친 평범한 인상의 마법사. 죽은 마법사와 비슷한 급의 인사로 보였다. 그는 카딤을 보고 한 번, 시체를 보고 한 번, 총 두 번 인상을 찌푸리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푸우, 제기랄……. 상급 악마를 잔뜩 잡아서 장로회에 들어갈 거라고 큰소리 뻥뻥 치더니,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랍니까, 부대장님? 나 원 참, 낯부끄러워 죽겠네…….”
“…….”
“아, 그쪽이 부대장님의 시신을 가져온 야만인이라고? 뭐, 유쾌한 일로 만난 건 아니다만 반갑네. 자네 덕에 감감무소식이었던 부대장을 뒤늦게나마 되찾았군. 나는 배틀메이지 부대의 부부대장인 컨저러 등위 마법사, 아실러스 콘체라토르라고 하네. 자네는 이름이?”
“……카딤. 그 마법사, 내가 죽였다고 의심하진 않는 건가?”
“음?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군. 컨저러 등위 마법사를 어떻게 범인이 죽이겠나? 당연히 상급 악마쯤 되는 존재가 죽였겠지.”
“…….”
이미 비슷한 마법사를 몇몇 죽여봤던 카딤으로선 고마워 마지않은 오해였다. 대충 발견한 경위를 꾸며서 설명한 뒤에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컨저러면 위치가 얼마나 높은 거지? 인보커보다 위라는 얘기는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 아실러스의 미간이 꿈틀 경련했다. 평범해 보이던 인상에 지극히 언짢은 기색이 묻어났다.
“……마탑 마법사의 편제는 총 6등위로 나뉘네. 어프렌티스, 시커, 인보커, 컨저러, 세이지, 마스터.”
“…….”
“대부분의 마법사는 인보커를 넘지 못하기에 컨저러부터를 고위 마법사로 치지. 하지만 마스터와 세이지는 탑주님과 장로들에게만 허락된 등위인지라 범인들은 마주할 기회 자체가 없다네. 즉, 나와 같은 컨저러 등위가 사실상 자네가 대면 가능한 최고위 마법사라 할 수 있지.”
거기까지만 하고 끝내면 좋았을 테지만, 마법사는 정색하며 사족을 달았다.
“그러니 알아들었으면 함부로 지껄이지 말고 경어를 사용하거라, 야만인. 나 또한 너를 내쫓지 않고 존중해 주고 있지 않나? 내가 주문 몇 마디만 외워도 네놈은 으스러진 고깃덩이가 될 텐데…… 이렇게 친히 만나 줬다고 나와 맞먹으려 들면 곤란하지.”
“…….”
“쯧, 부대장님 일만 아니었어도 야만인의 상대 따윈 어프렌티스 놈들에게나 맡겼을 텐데…….”
마법사 특유의 오만함이 진하게 배인 말투.
만일 이 자리에 던컨이 있었더라면,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가늠했을 터였다. 그러므로 황급히 카딤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중재하려 들었겠지.
허나 이 자리엔 행상인이 없었다.
―――― 콰 – 앙!!
검은 낙뢰처럼 내려꽂히는 거대한 도끼날.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광대한 상흔이 남았다.
어지간한 마법보다도 훨씬 빠르고 파괴적인 도끼질이었다. 느닷없는 날벼락에 마법사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뜨였다. 아니, 저 판석엔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 웬만한 충격으론 흠집조차 안 날 텐데…….
반면 카딤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태연한 태도였다.
“나 또한 너를 존중해 주고 있는 중인데.”
“뭐, 뭐엇, 이, 이, 이게 무슨…….”
“썩은 내 나는 시체를 날라준 대가로 그딴 헛소리를 듣고도, 네놈을 멀쩡히 살려두지 않았나. 참으로 아름다운 상호 존중이 아닐 수 없지. 혹시 뭔가 더 할 말이 있나?”
“네, 네놈, 이, 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
“만일 주문을 외우면 아가리를 찢어버리겠다. 지원군을 불러도 아가리를 찢어버리겠다. 아니, 그냥 입으로 숨만 쉬어도 아가리를 걸레짝처럼 찢어 주지. 네 혓바닥이 빠를지 내 손바닥이 빠를지, 시험해 보고 싶거든 얼마든지 해보거라, 마법사.”
“…….”
다른 마법사였다면, 아마 이 와중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주문을 외웠을 터.
하지만 아실러스는 방구석에서 마법만 연구한 샌님이 아니었다. 명색이 배틀메이지의 부부대장, 산전수전 다 겪은 관록 있는 전투 마법사. 직감을 흐리던 교만이 걷히자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눈시울이 떨리고 오금이 저리도록 흉험하게 퍼져나가는 살기를.
이 야만인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악마와 괴물보다도 압도적으로 더 위험했다.
아실러스는 주저 없이 입과 눈을 꾹 닫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탁자 밑으로 거친 콧숨 소리가 푹푹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들어도 좋다. 입으로 숨 정돈 쉬어도 되고.”
그 애처로운 꼴을 보곤 카딤도 일단 한발 물러서 주기로 했다.
“나도 갑자기 도끼를 휘두른 건 사과하지, 마법사 나리. 다른 자들에겐 네놈이 내 무례에 진노하여 마법을 휘둘렀고, 내가 꼬리를 만 것으로 알려도 좋다. 그러면 그쪽의 체면이 상할 일은 없겠지?”
굴욕감으로 낯빛을 붉히면서도 선선히 수긍하는 마법사.
“그럼 이제 보상을 논할 차례로군. 시체를 나르는 과정이 워낙 험난했다 보니 약소한 걸론 안 되겠어. 아무래도 마탑이 아끼는 지식 정도는 돼야 적절한 보상이 될 것 같아.”
“…….”
“이를테면 초대 마탑주, 멜리사가 남긴 기록이라던지.”
“……뭐?”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실러스의 낯에 크나큰 의혹이 깃들었다.
카딤으로선 영 불안한 반응이었다. 뭐지, 멜리사가 이 탑을 세운 건 맞을 텐데? 설마 여기까지 왔는데 기록이 없는 건가?
그렇진 않았다.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수수께끼 같은 내용뿐이었다.
“네가 어떻게 초대 마탑주의 기록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설마 네놈…… 오클라무드 장로님 측의 사람인가? 허, 아무리 탑주님이 자리를 비우셨어도 그렇지, 어떻게 마탑 안에서 이리 대놓고 겁박을 할 수가…….”
“……?”
“……아니, 잠깐, 그럴 리가 없잖아. 오클라무드 장로님은 야만인을 끔찍이도 싫어하시는데. 우리 측에 ‘기둥’이 하나도 없다는 걸 모를 리도 없고……. 뭐야, 그럼 네놈은 대체 어디서 온…….”
쿵 – !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으니.”
도낏자루를 바닥에 내려찍자 아실러스의 낯에서 혼란한 기색이 사라졌다. 대신 짙은 낭패감이 드리워졌다.
“……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고?”
“…….”
“제, 제기랄, 그러면 그…… 방금 전 얘기는 못 들은 셈 치면 안 되겠나? 외부인이 절대 알아선 안 될 내용인데……. 내, 다른 보상이라면 얼마든지 내줄 터이니…….”
“…….”
당연히 그럴 순 없었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란 뜻을 담아 준엄하게 응시.
이미 쏟아진 말을 주워 담는 건 불가능했다. 아실러스는 손톱을 물어뜯고, 마른세수를 하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고뇌한 끝에 모종의 결단을 내린 듯 체념한 눈빛을 했다.
“푸우, 제기랄……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고. 자네의 소속과 그 기록을 보려는 이유, 딱 그것들만 솔직하게 말해 주게나. 그래야만 나도 그대에게 협조할지 말지 명확히 정할 수 있을 듯하니…….”
“…….”
카딤은 솔직하게 답했다. 소속은 없음, 이유는 멜리사의 행적에 대한 사적인 호기심.
아실러스는 어안이 벙벙하단 표정이 됐다.
“……진심인가? 고대의 대마법이나 파멸적인 비전, 신비의 극에 닿은 연구 기록이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그녀가 기록한 삶의 행적이 궁금해서?”
“그렇다.”
“…….”
“어차피 그 마법 쪼가리 같은 건 난 봐도 모르겠더군.”
아실러스는 도리질을 치며 실소를 흘렸다.
“흐, 크흐, 크흐흐흐…… 내 마탑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괴짜들을 만나봤지만, 자네만 한 사람은 없는 것 같군……. 어마어마한 금은보화가 쌓인 보물창고를 찾는데, 그 이유가 안에 든 돌멩이를 줍기 위해서라니…….”
“…….”
“뭐, 그래도 거짓말을 하는 눈치는 아니고…… 그런 조건이라면 충분히 협력할 수 있어 보이는군. 좋네, 라마크렌 부대장의 시신을 이양한 공을 인정해 자네도 ‘우리 측’으로 받아주도록 하지. 당분간 최선을 다해 협조한다면, 분명 ‘우리들’이 가장 먼저 그 기록을 열람할 수 있을 걸세.”
대화의 흐름이 영 껄쩍지근했다. 카딤은 마뜩잖다는 얼굴로 팔짱을 꼈다.
“……그 기록, 그냥 고위 마법사 정도면 열람할 수 있는 게 아닌 건가?”
“그렇다네. 앞서 말했듯, 초대 마탑주의 기록은 그냥 평범한 기록이 아냐. 그녀의 삶에 대한 평가는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남긴 지식과 기록만큼은 마탑 내에서 궁극의 성유물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지.”
“…….”
“허나 선대 마탑주들께서 너무 위험하고 악용할 여지가 크단 이유로 그 기록들을 친히 봉인하셨어. 하여 그 기록을 열람할 자격을 가진 건 공식적으론 이 마탑의 주인, ‘탑주님’밖에 없다네.”
카딤의 얼굴에 큰 실망이 어렸다. 아마 그 탑주란 놈과의 협상은 월등히 더 까다롭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아직 실의에 빠지긴 일렀다. 강력한 지식과 더 높은 경지를 향한 마법사들의 욕망은 다른 보편적인 욕망들에 비견할 바가 아니었으니.
마법사들은 어떻게든 그 기록을 열람할 방법을 찾아냈다.
초대 마탑주의 기록이 보관된 장소는 마탑의 최하층. 탑주의 윤허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었으나, 어느 날, 장로회의 한 장로가 마탑의 설계를 샅샅이 훑어본 끝에 그곳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다만, 그 통로를 이용하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했다.
“탑주님께서 마탑에 머물 땐 만사를 주시하시고 계시니, 반드시 탑주님이 자리를 비우셔야 했지. 또한 ‘다섯 개의 기둥’, 통칭 ‘기둥’이라 불리우는 강력한 마도구들이 통로의 열쇠로 필요했고.”
“…….”
“탑주님은 어지간해선 자리를 비우질 않으신다네. 그래서 그동안은 아무도 통로를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 그런데 며칠 전 탑주님께서 외부 시찰을 나가시며, 마침내 모두에게 기회가 찾아온 게야. 마탑의 최하층, 그 위대한 기록이 보관된 ‘초대 마탑주의 무덤’으로 향할 기회가…….”
그 부분에 이르러, 카딤은 급히 말을 끊었다.
“……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지?”
“음? 초대 마탑주의 무덤이라고 했네만.”
사늘하게 흘러내리는 촌각의 고요.
카딤은 이를 꾹 악물었다. 진득하게 치미는 무언가를 욱여넣고, 나락처럼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
“그 말은, 초대 마탑주가…… 확실히 죽었다는 건가?”
“허, 그러면 여태껏 살아 있겠나? 이보게, 그녀는 2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이야. 아무리 천지를 뒤엎는 대마법사라 해도 생명의 순리마저 거스를 순 없는 법이지.”
“…….”
무겁게 내리깔리는 공허한 시선.
이윽고 동료들을 버리고 떠났던 전사의 낯에 가느다란 균열이 번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