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다섯 개의 기둥 (10)
경매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 과정을 보였다.
경매품 ‘물의 기둥’에 대한 간략한 소개 이후, 카딤이 주최자인 의장에게 질문하는 발단으로 시작해…….
“낙금은 꼭 루덴화로만 지불해야 하는가?”
“보석이나 환금성이 높은 귀중품으로도 지불은 가능은 합니다만……. 으흠, 그전에 일단 이쪽의 보좌관에게 감정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걸 본 오클라무드와 몇몇 장로들이 비웃는 전개를 거쳐…….
“하, 입고 있던 속옷이라도 내어놓으려는 건가……. 이보게, 콜트란. 자네가 기르는 짐승이 상식이 좀 모자라 보이는데, 중요한 자리에선 얌전히 있도록 잘 가르쳐 둬야겠어.”
“……크흡.”
“푸훕…… 험험.”
야만인의 무모한 응찰에 최고 응찰액이 순식간에 몇십 배로 뛰어오르는 위기를 지나…….
“850만 루덴.”
“850만 루덴 나왔습니다! 호가액 50만 루덴으로 올리겠습니다! 응찰하실 분은 손가락을 위로 올려주십시오!”
“9, 900….”
“950만.”
“950만, 950만 루덴 나왔습니다! 호가액 50만 루덴 유지하겠습니다! 응찰하실 분은 손가락을 위로…….”
“제, 제기랄, 1000…….”
“1050만 루덴.”
기어코 가용 예산이 초과된 오클라무드가 폭발하며 절정을 맞이하고…….
“이런, 우라질! 이게 대체 뭐 하자는 짓거리야!?”
“…….”
“너, 너, 너, 뭐야? 뭐 하는 새끼야, 씨팔? 이게 무슨 야만인들 개싸움 도박장인 줄 알아? 낙찰되면 지불할 돈도 없는 주제에, 왜, 왜 자꾸 똥오줌도 못 가리고 자꾸 끼어드는 건데? 어?!”
“누가 지불할 돈이 없다는 거냐, 거렁뱅이 새끼야.”
쩔그렁 – !
……끝내 카딤이 인벤토리에서 어마어마한 재화를 꺼내 재력을 인증하는 결말을 맞이했다.
그렇게 ‘물의 기둥’은 1050만 루덴에 낙찰되었다.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야만인에게.
낙찰 금액의 지불은 감정가 720만 루덴 상당의 보석, 그리고 330만 루덴 어치의 금화로 즉시 이루어졌다.
“이런, 우라질! 지랄 염병 떨지 말라 그래!! 저거 다 가짜야, 가짜라고!! 저 거지새끼처럼 생긴 야만인이 어떻게 저렇게 많은 금화와 보석을…….”
상대적 거렁뱅이, 오클라무드의 격렬한 항의가 있었으나 가뿐히 묵살되었다. 이미 감정 마도구를 통해 금화와 보석들은 전부 진품이라 판별이 끝난 참이었다.
그럼에도 격분한 오클라무드의 억지 성토는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주문을 외워 낙찰자를 위협하려 들자, 주최자인 콘라드 의장이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
“저, 그…… 오클라무드 장로님……? 진정하시지요. 이번 경매는 아쉽게 되었지만,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테니까…….”
“닥쳐라, 이 비계덩어리 돼지 새끼야!! 네놈도 저 쩐내 나는 야만인과 함께 숯덩이로 만들어 주마!!! [케루나!! 그룬!! 아그리파…….]”
“……그만, 거기까지만 하시지요. 정말 마법을 사용하신다면 저도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
목소리를 깔고는, 투실한 목에 메인 목걸이를 들어 올리는 의장.
확실한 상호확증파괴를 보증하는 마도구, ‘마탑주’를 소환하는 목걸이였다. 이성을 잃고 날뛰던 장로마저도 일순간 입을 다물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오클라무드는 다시 주문을 외우진 못했다. 바락바락 악쓰며 난동 부리는 걸 멈추진 않았지만. 나중엔 결국 다른 장로와 부하들에게 팔다리를 붙잡혀 질질 끌려 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네놈!!! 다시 만나면 죽여 버릴 거다!!! 진짜로 죽여버릴 거야!!! 살고 싶으면 마탑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마라, 이 개만도 못한 야만인 자식아!!!”
“…….”
물 흐리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퇴장한 후, 경매장은 이렇게까지 조용했나 싶을 정도로 고즈넉해졌다.
이윽고 그 고요 속에서 의미심장한 눈길들이 오갔다. 남은 장로들, 특히나 콜트란은 카딤에게 당장이라도 그 많은 자금의 출처를 묻고 싶어 안달이 난 눈치였다.
허나 가장 먼저 선수를 친 건 콘라드 의장 쪽이었다.
“그…… 선생님? 잠깐 이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낙찰품을 정식으로 인계해 드리려면 남은 과정이 있어서 말이지요.”
야만인에서 선생님이라, 잠깐 사이 출세했군. 카딤은 헛웃음을 흘리곤 의장을 따라나섰다.
기실 인계 과정은 딱히 크게 할 것도 없었다. 몇 군데 지장만 찍고 난 후, 나머지는 보좌관이 전부 알아서 처리했으니. 의장이 그를 이렇게 뒤편의 밀실로 불러낸 진짜 의도는 필시 따로 있을 터.
아니나 다를까, 가벼운 한담 끝에 본론이 튀어나왔다.
“그, 선생님…….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선생님이 아탈라인이라서가 아니라, 워낙에 금액이 크다 보니 여쭙는 겁니다. 혹시 저 보석과 금화의 출처가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카딤은 솔직하게 답했다. 아곤의 투기장에서 검투사로 뛴 삯으로 받은 거라고. 기실 저 돈도 벌어들인 총수익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워낙 대전료치곤 액수가 크다 보니, 뜬금없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서, 설마, 그렇다면 혹시 선생님께서…… 그 저명한 투기장의 챔피언, ‘아곤의 성난 뿔’이십니까?”
“…….”
저 소릴 듣는 것도 오랜만이군.
카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아곤의 성난 뿔’이란 자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했다. 그 말에 의장은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라 자빠졌다.
“예?! 아, ‘아곤의 성난 뿔’이 죽었다는 겁니까?! 대, 대체 누구의 손에 말입니까?”
“…….”
카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적막하게 감도는 불편한 공기. 의장은 못내 그 답이 궁금한 기색이었지만, 무언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화제를 틀었다. 잡담으로 처진 분위기를 무마하고는 또 다른 질문을 꺼냈다.
“이건 그, 조금 예민한 질문이니, 답하기 곤란하다면 안 하셔도 됩니다만……. 혹시 저만한 거금까지 들여 ‘물의 기둥’을 매입하신 의도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흘끗 턱짓을 보내는 카딤.
“네놈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마탑의 최하층에 들어서기 위해서다.”
“아, 하하, 역시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혹시 선생님께서는 ‘얼어붙은 심장’…… 콜트란 장로님을 새로운 마탑주로 지지하시는 쪽이신 겁니까?”
“아니, 저 장로와는 목적이 같아 협력하고 있을 뿐. 내가 최하층에 가려는 이유는 개인적인 용무 때문이다.”
“…….”
바쁘게 굴러다니는 눈동자, 의장은 불안한 듯이 손가락을 꼼질대고 있었다. 카딤은 날카롭게 눈매를 좁히고 슬쩍 거리를 좁혔다.
“질문들에 친절히 답해줬으니 나도 한 가지만 묻지.”
“…….”
“네놈은 마탑주와 협력 관계에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이 ‘기둥’을 장로들에게 넘기려 한 거지? 장로들은 누군가 최하층에 이르러 고대의 대마법을 익히면, 현대 탑주의 자리도 위협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던데.”
그 물음이 속내를 건드리는 방아쇠가 되었다. 의장은 반쯤은 충동적으로 속에 담긴 말을 토해냈다.
“선생님, 그, 혹시 선생님도…… 현대 탑주를 숙청하는 데 일조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난 그 탑주란 놈이 누군지도 모른다만.”
“아, 아아. 아, 하하하, 아하하하! 그렇, 그렇습니까. 그, 그렇군요. 아, 아닙니다! 방금 한 말은 농담, 농담입니다……. 하하, 제가 무슨 실없는 소리를…… 뭐, 그분을 죽일 방법이 있을 리도 없고…….”
농담이 아니었다. 방금 전, 이자의 눈빛엔 진심으로 탑주의 숙청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죽일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물어보려는 찰나, 의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다른 말을 꺼냈다.
“다만, 그…… 정말로 마탑의 최하층에 가실 거라면…… 한 가지 경고 드릴 게 있습니다. 저는 현대 탑주님을 제하면…… 유일하게 마탑의 최하층, 초대 마탑주의 무덤 앞에 가본 사람이라 말이지요…….”
“……!”
“저는 마법사도 아니고 용병도 아닌지라, 그 정체를 명확히 알아채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층에는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는, 굉장히, 굉장히 불길한 뭔가가 있었습니다. 그 느낌을, 하아…… 뭐라 해야 될까요? 뭔가, 가만 있다 보면 온몸의 감각이 전부 깜깜해진다고 해야 되나……?”
“…….”
“아무튼 맘 편히 다녀올 만한 공간은 절대 아니니까,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는 게…….”
카딤의 귀에는 경고가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의장이 최하층에 가봤다는 말을 꺼낸 후, 그의 신경은 오로지 한 군데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혹시 거기서 초대 마탑주의 시신을 직접 보았나?”
“예? 아, 아뇨. 시신은 관짝 안에 안치되어 있을 텐데…… 제가 본 건 그 바깥뿐이어서…….”
“…….”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일반적인 무덤이라면 당연히 시체를 밖으로 드러낼 일은 없겠지. 혹여 가짜 무덤이 아닐까,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던 카딤으로선 도저히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직 실망하기는 일렀다.
의장이 미처 못다 한 말이 있는 것처럼 스리슬쩍 운을 떼더니……
“그, 으흠…… 그런데…… 말이 나와서 그러는 건데, 그…… 초대 마탑주…… 멜리사 님 말입니다.”
……이미 사그라들어 잿더미만 남은 소망에 잔불을 붙였다.
“어쩌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허한 눈동자 속에 불씨가 일었다.
*
최고의 길잡이, 던컨 휠레드는 붉은 로브를 입고 마탑 내부를 서성이고 있었다.
무슨 고위 마법사 일일 체험 같은 걸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출입을 허락받지 못한 염탐꾼이었고, 이 옷은 카딤이 죽인 고위 마법사의 복장을 벗겨온 것이었다.
“…….”
웬 경매 탓에 장로와 고위 마법사들이 대거 자리를 비운단 말을 전해 들었다. 가보지 못한 심층부를 둘러볼 절호의 기회이긴 했다.
하지만 위험천만한 마법사들의 소굴을 몰래 드나드는데 어떻게 심사가 유쾌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바로 어제 마법사들에게 습격당해 죽을 뻔했는데?
“하아…….”
그래도 던컨은 자신의 소임을 게을리하진 않았다.
어젯밤, 두려움에 떠는 던컨에게 카딤은 추가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자신에게 마탑의 정찰을 명한 이유, 고대 마나와 악마의 창궐에 관해.
지금껏 맡았던 임무들과는 그 중요도가 달랐다. 단순히 카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륙의 명운까지도 달려있을지 모를 일. 우거지상을 지으면서도, 하릴없이 ‘밤그림자 망토’를 뒤집어쓰고 층계 출입벽으로 향했다.
“……오르고, 알, 마르키네, 엔시오, 그룬. 80층으로.”
벽에 새겨진 신비 문자를 짚으며 암호문을 읊자, 지그재그로 비틀리며 물러나는 벽.
쿠구구구구구구…….
던컨은 마탑의 층계를 오가는 방법을 거의 완벽하게 터득했다. 마법사들이 출입하는 모습을 하루 종일 훔쳐 보고, 가져온 책들로 기초적인 술식 지식을 익힌 덕분. 그래도 80층이 넘는 심층부로 가는 건 처음이다 보니 긴장이 되는 건 불가피했다.
벽의 구멍을 넘자 나타나는 어둑한 복도. 신중하게 슬쩍, 발을 들였다. 한 걸음 나아가자 열렸던 출입벽이 절로 닫혔다.
쿠구구구구구…….
그리고 벽이 닫히기 무섭게, 복도의 저편에서 인기척이 접근했다.
“……말야. 컨저러만 해도 이젠 넘을 수 없는…….”
“……가망이 없는데, 차라리 배틀메이지라도…….”
“……!”
처음엔 도로 출입벽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뒤늦게 자신이 ‘밤그림자 망토’를 뒤집어썼단 걸 깨닫곤, 일단 달아나지 않고 상황을 관망했다.
터벅터벅, 드르륵, 드르륵 –
발걸음과 함께 다가오는 바퀴 소리, 푸른 로브를 입은 두 마법사가 수레를 이끌고 있었다. 그 안에는 정체 모를 짐짝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어쩐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 짐짝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순간.
하마터면 던컨은 끄악,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악마, 무참히 난자당한 악마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갈라진 배에서 썩은 내장이 흘러내리고, 토막 난 팔다리가 지옥의 조경수처럼 살 무더기에 꽂혀 있었다.
던컨은 질겁하여 치를 떨었으나……
‘아, 아니, 어떻게 악마를 저렇게 푸줏간 고기처럼 썰어서 가지고 다닐 수가…… 아, 그런데 나도 해 봤구나.’
……비슷한 수레를 황금 가도에서 일주일 넘게 끈 기억을 떠올리곤 재빨리 침착함을 되찾았다.
“어우, 썩은 내가 코를 찌르는구만. 그나마 우리는 이렇게 마탑 안에서만 날라서 다행이지…….”
“하긴, 여름철에 이걸 여기까지 나를 걸 생각하면 배틀메이지도 못 해 먹을 짓이긴 해.”
드르륵, 드르륵 –
마법사들은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갔다.
던컨은 예리하게 눈매를 좁혔다. 놀람이 가라앉자 의구심이 찾아왔다. 마탑의 심층부에 악마의 시체라……. 척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조합이었다.
‘……한번 따라가 보자.’
어두운 복도는 서서히 밝아지다가, 채광이 잘 드는 열린 공간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마냥 시야가 확 트이진 않았다. 사방에 맵싸한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차 원활한 정찰을 방해했다.
쿠르륵, 쿠르륵, 쿠르륵 –
마법사들은 이곳에서 멈춰 섰다. 켈룩켈룩, 잔기침을 하며 수레에 담겨 있던 것들을 우르르 쏟았다. 악마의 시체는 바닥에 난 구멍으로 쏙 빨려 들어가더니, 훅, 곰방대 연기처럼 짙은 매연을 피워올렸다. 아무래도 저 구멍이 여길 너구리 굴로 만든 원흉인 모양이었다.
그나마 창문으로 실바람이 불어 아예 숨을 못 쉴 정돈 아니었다. 던컨은 소맷단으로 입을 틀어막곤 좀 더 가까이 접근했다.
그런데 그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밤그림자 망토’는 오직 야밤이나 음지에서만 그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
부연 연기 사이로 산란하는 햇볕을 뒤집어쓴 순간, 망토의 은신 효과가 말끔히 사라졌다. 그러나 던컨은 그것도 모른 채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기척이 얕다 해도 안 들킬 수가 없었다.
“뭐, 뭐야! 누구냐!”
“누구냐! 누가 감히 허락도 없이 통제 구역에…….”
“…….”
최고의 길잡이, 던컨 휠레드는 동요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당황하여 버벅대는 건 모자란 길잡이나 하는 짓이다.
……사실 너무 놀라서 굳은 거지만 그냥 그렇게 치기로 했다. 기왕 굳은 김에, 그는 일이 잘되어 가는지 감독하러 온 고위 간부처럼 근엄한 표정을 짓고는 생각했다.
나으리, 살려 주세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