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그런 친구 하나쯤 (8)
사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발상이었다. 해야 될 거라곤 있는 힘껏 몸을 뒤로 던지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그 여파는 결코 우습지 않았다.
――――――― 콰 – 앙!! 쿠르르르…….
벽면이 움푹 패였다. 고급스러운 벽지 중앙에 분화구가 생기고, 주변으로 거미줄 같은 문양이 쩍쩍 그려졌다. 온 골조에 광대한 진동이 일어, 저택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순간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정작 가장 멀쩡한 건 벽에 부딪힌 당사자였다. 카딤은 태연히 걸어 나오며 혀를 내둘렀다.
“굉장한 위력이야. 인간의 힘이 아니로군. 대체 어떻게 그런 힘을 손에 넣은 거지?”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은 용병들의 단장, 알루벤이었다.
던컨 부자가 어리벙벙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부하들도 토끼눈을 뜨고 저들의 우두머리를 주목했다.
“다, 단장이 그런 겁니까, 저거?”
“어, 어떻게 저렇게 큰 떡대를…… 가뿐히 한 방에 날려 보낼 수가…….”
“왜, 왜, 여태 이런 힘을 감추시고…….”
“아, 아냐…… 무, 무슨…… 내가 그런 게 아니…….”
알루벤은 더듬더듬 변명을 뇌까렸다. 무슨 상황인지 대관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터럭만치도 타격을 안 입었으면서, 왜 갑자기 저 혼자 미친 짓거리를 하는 거…….
생각을 추스르기도 전에, 억센 손아귀가 어깨를 움켜쥐었다.
“끄억!”
“하지만 나를 쓰러뜨리기엔 모자랐다. 다시 기회를 주지. 이번엔 그 몽둥이를 좀 더 세게 휘둘러 보거라.”
“끄윽! 아니, 무슨 소리……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잖…….”
“안 그러면, 네놈도 내 주먹에 한 방 맞아야 할 테니.”
주먹이라기보단 철퇴나 바윗돌에 가까운 야만인의 정권이 꾹 쥐어졌다. 저것에 한 방 맞으면 아무리 단단한 골통이라도 산산조각이 나겠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루벤은 입을 꾹 다물고 힘껏 몽둥이를 휘두르는 척했다. 카딤은 그 몽둥이질이 닿기도 전에 다시금 벽면으로 몸을 던졌다.
――――――― 콰 – 앙! 콰르르르…….
이번엔 아예 벽면이 뚫려 밖까지 날아갔다. 그러고도 담담하게 돌아와 투신을 반복했다.
벽과 사람이 부딪히면 사람이 박살 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건 틀린 상식이다. 벽과 사람이 부딪히면, 박살 나는 건 더 약한 쪽이다. 카딤은 수차례나 벽과 부딪혀 몸소 그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 콰 – 앙!
――――――― 콰 – 앙!! 콰르르르르…….
공성추를 처박은 것처럼 사방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고급 원목 가구들과 값비싼 액자들이 으스러져 쓰레기 더미가 되었다. 처음엔 단장이 감춰두었던 어마어마한 괴력에 경탄하던 부하들은, 이내 저렇게 맞고도 멀쩡한 야만인의 내구력에 경탄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맘 편히 경탄하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소란인가! 아니, 알루벤! 자네가 저택을 이 꼴로 만들었나?”
이 저택의 주인인 사무관. 아들과 꽁꽁 숨어 있다가 집이 박살 나는 소릴 듣고 기어 나온 참이었다. 알루벤은 억울하단 듯이 항변하려 했으나……
“아, 아닙니다, 사무관님! 제가 이런 게 아니…….”
“고작 몽둥이 하나로 저택을 이렇게 박살 내다니……. 변방의 용병으로 있기엔 아까운 힘이로군. 어디, 황야나 마경으로 가서 악마라도 잡아보는 건 어떤가.”
“…….”
……카딤이 옆에서 이렇게 중얼대는 바람에 도리어 오해가 더 깊어지고 말았다.
아무쪼록 기둥과 내력벽이 부서져, 저택은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가 됐다. 천장과 기둥이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경고하듯 쿠르릉, 비명을 내질렀다. 멍하니 넋을 놓고 구경하던 용병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타, 탈출해!”
“저택이 무너진다! 모두 빠져나가!”
“잠깐만, 지하실에 아직 금화가…….”
“에라이, 미친 새끼야! 일단 목숨부터 챙겨!”
카딤은 층계 위를 바라보았다. 던컨 부자는 눈치껏 소란을 틈타 빠져나간 뒤. 아직 쓸모가 남은 용병단장을 덥썩 잡아 내던지고, 자신도 한달음에 저택을 빠져나왔다.
――――― 콰르르르르르 – !!
모두가 탈출한 직후, 저택이 폭삭 무너져내렸다. 주저앉은 잔해에서 자욱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사무관의 낯짝에는 그보다 짙은 낙망이 드리워졌다.
“어, 어어, 어어어…… 내, 내 저태애애액!! 내 저택이이이이!!”
그 소란에 이끌려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마당에서 절규하는 사무관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다가, 처참한 잔해를 보고는 동그랗게 눈을 치켜떴다.
“뭐여, 바, 방금 사무관님 댁이 무너져내린 거여?”
“어머, 맞나 본데요? 세상에, 아침부터 계속 웬일이야…….”
무너진 원인과 사무관의 악행에 대해 쑥덕대던 화제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인해 바뀌었다.
“그런데…… 저희 빚 문서도 다 저 저택에 있지 않아요?”
“……어?”
“만약에 그게 저기 깔려서 영영 못 찾게 된다면…….”
분위기가 왁자하게 달아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입꼬리를 씰룩대며 혹시 모를 빚 청산에 대해 열띤 토의를 나눴다.
잔해에 깔린 사람은 없는지, 던컨 부자가 저곳에 가지 않았는지, 어서 구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 화제는 전부 관심 밖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한 발 뒤로 물러서 불행은 전부 남의 일이라는 것처럼.
카딤은 이번엔 그들에게도 불행에 동참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흙바닥을 구르는 알루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저택이 무너지기 직전에 탈출해서 다행이군. 하마터면 깔려 죽을 뻔했는데. 그렇지 않나?”
“개, 개소리하지 말 거라, 이 괴물 같은 새끼! 맨몸으로 벽도 박살 내는 놈이 무슨 깔려 죽…… 우읍!”
“닥치고, 아까처럼 계속 몽둥이나 휘두르거라. 아가리를 귀밑까지 찢어버리기 전에.”
“…….”
비유적인 표현은 아닌 듯했다. 알루벤은 입을 틀어막힌 채, 하릴없이 고분고분 몽둥이만 휘둘렀다.
이윽고 방금과 비슷한 일이 보다 큰 규모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대는 마을 전체로 넓어졌고, 목표물은 사무관의 저택에서 마을 사람들의 민가로 바뀌었다.
――――――― 콰 – 앙! 콰과과광!
민가는 당연히 저택보다 내구도가 약했다. 야만인과 충돌한 집들이 줄줄이 풍비박산 났다. 구름처럼 분진이 피어오르고, 불길처럼 경악이 번졌다.
“어, 어어어……? 저, 저거…… 우리 집 아냐?”
“어머, 어머, 어머!”
“아이고, 아이고! 어떡해, 저거! 바로 뒤에 우리 집인데!”
시종일관 여유롭던 주민들은, 제 발등에 불똥이 떨어지자 새파랗게 질렸다. 날아가는 거한과 용병단장을 망연히 번갈아 보길 잠시. 허둥지둥 원흉이라 생각되는 쪽으로 찾아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렸다.
“요, 용병단장 나으리! 뭐, 뭘 어떻게 하신 겁니까? 어떻게 저만한 덩치를 조약돌처럼 날려 보낼 수가…….”
“아니, 지금 그게 문제요? 이봐요, 뭣 하시는 겁니까! 저희들의 집이 모조리 박살 나고 있지 않습니까! 당장 그만둬주십시오!”
“저희, 집 없으면 빚도 못 갚습니다……. 제발 다른 데로 가서 싸우시던지, 아니면 잠깐 참아주시던지……”
“아니, 이건…… 아니, 이, 이건…… 내가 한 게 아니…….”
변명은 또 사전 차단됐다. 그새 되돌아온 야만인에 의해.
“네놈, 정말 무자비하구나. 나를 처치하기 위해서라면 이 마을 따윈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건가.”
“…….”
“하긴, 더 맞으면 아무리 나라 해도 못 버티겠어. 남의 집을 줄지어 박살 낸 보람은 있겠군.”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뻔뻔하게 말하는 카딤을 바라보며, 알루벤은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발 여기까지만 하자고 간절한 눈빛을 보냈으나 가뿐히 묵살. 결국 주민들의 요구도 무시하고 계속 마을을 순회하며 몽둥이를 휘둘러야만 했다. 카딤도 그에 호응하여 한 몸 아끼지 않고 양껏 건물을 부숴나갔다.
――――――― 콰 – 앙!!
――――――― 콰과과과광!!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붕괴음, 그 위로 덧씌워지는 절규.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내 집만은…… 안 돼애애애액!!”
“이, 이럴 수가…… 레밀리온이시여……. 우리, 우리 집이…….”
주민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잇따라 민가를 부숴 먹고도 제 발로 돌아오는 야만인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아직 집이 망가지지 않은 치들이 허겁지겁 카딤에게로 내달려갔다.
“이보시오! 그만두시오! 왜, 왜 일부러 몸을 던져 남의 집들을 부수는 것이오!”
“……무슨 얘기지. 아까부터 계속 두들겨 맞고 있는 거 안 보이나.”
“허, 헛소리하지 마시오! 아까는 이, 일부러 벽을 어깨로 밀치지 않았소! 어디서 어린애들도 안 믿을 만한 거짓말을…….”
“……그렇다면 내가 한 마디 거짓말하는 건 안 되고, 네놈들이 수백 마디 혓바닥을 놀려온 건 괜찮다는 건가.”
마을 사람들은 바짝 얼어붙었다. 눈동자들이 정처 없이 뙤록뙤록 굴러다녔다. 카딤이 냉엄한 경멸이 깃든 시선을 보냈다.
“혀로 지은 죄가 칼로 지은 죄보다 가벼우리란 법은 없지. 썩 꺼져라. 네놈들의 둥우리뿐 아니라 몸뚱이까지 죄다 작살내 버리기 전에.”
“…….”
그러고 보니…… 이자는 행상인 던컨이 데려온 자였더랬다.
짚이는 죄가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얗게 질려 어물거리며 물러났다.
이후, 야만인의 육탄 돌격은 훼방 없이 이어졌다. 한 시진쯤 후엔 기어코 거의 모든 집을 박살 냈다. 이제 마을에 멀쩡한 집은 딱 한 채, 행상인 던컨의 집밖에 없었다.
카딤은 그쯤 해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핏물과 엉겨 붙어 딱지 진 먼지를 닦고는, 살짝 금이 간 어깨와 갈비뼈를 어루만졌다. 나중에 대충 혈귀로 회복하자고 생각하며 알루벤에게로 다가갔다.
“수고했다. 굉장한 힘이지만, 조금 모자랐어. 아무튼 그만큼 얻어맞았으니 슬슬 내가 반격할 차례로군.”
“그, 그게 무슨 말…… 허억!”
철퇴 같은 주먹에 핏줄이 불거졌다. 알루벤의 안색이 푸르죽죽하게 질렸다. 발악하는 심정으로 최후의 교섭을 걸었다.
“그, 나, 날 죽이진 마시오! 갈렌타나의 암흑가에 내 뒷배들이 몇몇 있소! 그들에게 부탁해 돈이든 뭐든 다 구해다 줄 테니, 제발 목숨만큼은…….”
암흑가라, 간만에 듣는 지명이었다. 카딤은 그곳에서 벌인 학살극을 회고하며 넌지시 물었다.
“그 암흑가에, 마지막으로 가본 게 언제지?”
“어? 어어, 한…… 1년…… 아, 아니, 반년 전쯤에…….”
“그럼 네 뒷배란 놈들도 이미 다 죽었을지 모르겠군. 지난번에 내가 거기서 족친 놈들이 워낙 많아서.”
“……뭣? 그, 그럼 당신이 정말 소문의 그 ‘악마 학’…….”
더 놀랄 틈도 없이 주먹이 뻗어 나왔다.
쩌 – 걱!
안면이 우묵하게 찌그러졌다. 면피가 두개골 안으로 말려 들어가고, 골통과 뇌 찌꺼기가 뒤통수 너머로 폭발했다. 이목구비 대신 너절한 구멍만이 남아, 용병단장은 사람이라기보단 초현실적인 조각상 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알루벤!! 안돼!! 이, 이럴 수가…….”
“제기랄, 다들 도망ㅊ…….”
뻐 – 걱!
“……컥!!”
사무관과 다른 용병들도 전부 비슷한 말로를 맞이했다. 뇌격에 찍히거나, 혈귀에 베이거나, 주먹에 골통이 박살 나 숨을 거두는 잔당들.
소탕이 다 끝났을 무렵, 인근의 숲으로 달아났던 던컨 부자가 현장으로 돌아왔다.
던컨은 각오하고 있었다. 카딤이 나선 이상, 무언가 파멸적인 참변이 벌어질 거라는 걸. 그런데도 눈앞에 드러난 광경은 그 각오를 무색게 했다.
“나으리…… 이, 이런…… 맙소사, 레밀리온이시여…….”
피떡처럼 뭉친 용병들의 시체, 마을 사람들의 곡소리, 그리고 전부 다 흙먼지 무더기로 변해 버린 민가들.
보고 충격받을까 봐 황급히 아들의 눈부터 가렸다. 카딤은 눈 하나 깜빡 않고 덤덤하게 둘러댔다.
“면목 없군. 그 용병들의 우두머리가 생각보다 강했다. 거칠게 대거리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됐군.”
“…….”
던컨은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굳어 버렸다.
그의 아들, 던센이 몰래 눈을 가린 손을 치웠다. 폐허가 된 마을을 보고 처음엔 화들짝 놀랐으나, 곧 속내를 추스르고 카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 가, 가, 감사합니다, 아, 아저씨……. 야, 약속한 대로 저, 저랑 아, 아빠를 구해주셔서…….”
“…….”
카딤은 맹랑한 꼬마를 빤히 바라보다, 슬쩍 그 아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네 아들의 담력이 너보다 나은 것 같군, 던컨.”
*
몰타나 전역이 초상집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주민들은 마을 외곽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폐허가 된 마을, 무너진 보금자리를 보고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차라리 빚이 남더라도, 사무관 일가는 망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럼 당장 먹을거리와 새로 집을 지을 돈은 빌릴 수 있었을 텐데…….
그때, 어떤 여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던컨 씨네 때문 아니에요?”
“…….”
엄밀히 말하면, 마을을 초토화시킨 원흉은 용병단장과 야만인 용병이었다. 허나 용병단장은 죽었고, 야만인 용병은 직접 탓하기 무서웠다. 일어선 여인, 메델 부인은 씩씩대며 주장을 이어 나갔다.
“저 야만인, 던컨 씨가 데려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던컨 씨가 모든 책임을 져야죠! 사무관님도 죽어서 이제 저흴 도와줄 분도 없는데…….”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부인. 지금 가서 따져봤자 부서진 집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아뇨! 돌아오지요! 던컨 씨가 이번에 큰돈을 벌었다고 했잖아요? 당연히 그걸로 저희들 집이랑 세간살이 전부 물어줘야 하는 거 아녜요?”
“……!!”
먹구름 사이에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주민들은 헐레벌떡 던컨의 집으로 내달려 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계획을 바로 실천하진 못했다.
던컨이 아니라 험상궂은 야만인이 튀어나왔기에.
“……무슨 일이지.”
““…….””
“혹여 몸뚱이까지 작살나고 싶어서 온 건가.”
사람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처음으로 말을 꺼낸 사람을 앞으로 떠밀었다. 억지로 끌려 나온 메델 부인은 애처롭게 떨며 주절거렸다.
“아, 아뇨, 그, 그게 말이죠…… 그게, 던컨 씨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저 말입디까?”
말을 잇다 말고 멈췄다. 던컨도 낮에 뒤집어쓴 핏자국이 남아 흉흉하기 그지없는 몰골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도 누가 던컨을 비웃다 큰 봉변을 당했다 하지 않았나?
메델 부인은 황급히 또 목표물을 바꿨다.
“아, 그게, 사실! 던컨 씨가 아니라, 휠레드 부인께! 휠레드 부인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 혹시 다른 분은 좀 빼고…… 휠레드 부인만 오셔서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
제일 만만한 아녀자만 부르는 게, 척 봐도 매우 의도가 불순해 보였다. 카딤의 이마에 핏줄이 툭 불거졌다. 역시 둥우리만 부술 게 아니라, 거기 이 살던 벌레들까지 박멸해야 했나…….
그런데 그때, 정중히 자중을 청하는 율리아.
“……저, 용병님. 괜찮아요. 별일 아니니 걱정 말고 들어가 보세요. 제가 나가볼게요.”
겨우 되찾은 아들을 막 잠재웠기 때문인지, 지친 얼굴엔 더 이상의 소란을 원치 않는 낌새가 완연했다. 카딤은 그 뜻을 존중해 일단 비켜섰고, 율리아는 홀로 나와 주민들과 대면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신 건데요.”
공기가 무거웠다. 메델 부인은 가식적인 가면을 썼다.
“어머, 휠레드 부인! 안색이 좀 그런데, 괜찮으세요? 하긴 아침엔 아드님이 잡혀가더니, 갑자기 마을에 이런저런 소란이 일어나서 많이 놀라셨겠어요. 그래도 부인네 집은 이렇게 멀쩡해서 참 다행이지 뭐예요? 부러워요, 정말!”
“…….”
“그, 이렇게 부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보시다시피 댁의 용병분 때문에 저희들 집이 많이 망가졌잖아요? 그러니 약소하게라도 배상을 받을 순 없을까 하고…….”
“……그 말을 하려고 이렇게 부른 거예요?”
“예? 아, 예, 예, 물론이죠!”
“……그것 말고 더 하실 말씀은 없고요?”
인위적으로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고개를 까딱까딱 흔드는 메델 부인.
율리아의 입가에 쓰디쓴 고소를 머금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그동안의 일을 진심으로 사과하면 조금이나마 돕고 가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부인. 배상은 힘들고, 제가 드릴 만한 건 이런 것밖에 없겠네요.”
율리아는 메델 부인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잡고 시원하게 뺨따귀를 올려 쳤다.
철썩 – !
“꺅!”
워낙 손이 매웠던지라, 메델 부인은 주먹질이라도 당한 듯 한바탕 흙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율리아는 그 꼬락서니를 바라보며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혹시 더 필요하면 나중에라도 말씀하세요. 다른 건 좀 힘들어도, 이런 건 얼마든지 드릴 수 있거든요.”
“어, 어어…… 어……?”
메델 부인이 벙어리처럼 뻐끔대는 사이, 율리아는 집으로 돌아가 단호하게 문을 닫았다.
쾅 – !
아무리 황망한 눈길로 바라봐도, 닫힌 문이 다시 열리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