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그대들을 위한 천국 (3)
카딤은 무녀의 이마에서 뽑은 ‘각인의 바늘’을 철 수통에 담갔다.
다행히 엄한 데 꽂혀 있었음에도 기능에 이상은 없었다. 악마의 피를 머금고 짙붉게 달아오른 촉을 등짝에 찔러넣었다. 역시 독한 피라 그런지, 인상을 절로 쓰게 되는 현기증과 격통이 뒤따랐다.
시간이 흘러 문양의 획이 안정되었다. 폐부에 압축된 날숨을 단번에 푹 내뱉었다.
카딤은 이번에도 무녀의 손을 빌리지 않고, 무사히 ‘아큘라노스의 문신’을 새기는 데 성공했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러다 나 혼자 문신을 새기는데 통달하겠군. 저번에는 미친 무녀가 튀어나오더니, 이번엔 죽은 무녀라……. 처음에 연달아 멀쩡한 무녀들을 만났던 게 엄청난 행운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카딤은 고소를 머금고 무녀의 시체에 다가갔다.
이마 정중앙에 남은 자국은 깊이가 무려 한 뼘에 이르렀다. 아무리 바늘이 길고 튼튼하다 해도, 웬만큼 지독한 의지로는 이만한 상흔을 만들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게 자기 자신을 향해 휘두른 것이라면 더더욱.
자세와 각도로 보아, 이마에 바늘을 박은 원흉은 다름 아닌 무녀 자신이었다.
“…….”
무녀가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가 무엇인진 불분명했다. 원체 길고 고독한 기다림이었을 테니, 그냥 마음이 꺾여서 그랬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진짜 이유는 어쩌면, 저 발치에 놓인 돌무덤 때문일지도 몰랐다.
카딤은 무녀의 시체를 뒤로 돌려놓았다. 그러곤 앞에 있던 돌무덤을 흩었다. 곧 자갈 부스러기 틈에서 기이한 유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이라기엔 너무 작은 소인의 뼈.
그리고 그 흉골에 들러붙은 밤톨만 한 연둣빛 구체.
두근두근, 구체는 병든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삐쭉, 좌우로 길이가 다른 뿔이 하나씩 솟아 있었다. 상급 악마로 자라나는 중급 악마였다는 뜻.
역시나 여기에 있을 줄 알았다. 분열종 악마의 핵.
카딤은 주저 없이 그것을 떼어내 터뜨렸다.
쯔 – 걱!
– 키유유우우우웅…….
구체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카딤은 아랑곳 않고 쏟아지는 피를 빈 수통에 받았다. 분열종의 피는 그 활용처가 다소 애매하다만, 모아두면 또 어딘가에 쓸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악마가 죽으며 얄팍하게 남아 있던 마기도 걷혔다. 문신도 새겼고, 악마도 제거했고, 피도 받았고…… 기실 이 유적에서 볼 일은 다 마쳤다. 아까처럼 공간을 부수고 풍경을 찢던지 해서, 유적 밖으로 나갈 일만 남았지만…….
“…….”
카딤은 쉬이 자리를 뜨질 못했다.
돌무덤에 덩그러니 남은 유해, 그리고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무녀의 모습이 발목을 붙잡았기에.
“…….”
문득 무언가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카딤의 눈초리가 꿈틀 떨렸다. 뒤로 돌려놓았던 무녀의 시체가 돌무덤 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우연일 테지만…… 카딤은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갓난아이만큼 작은 유해, 괴상했던 악마의 말버릇, 바늘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러나 끝까지 필사적으로 이 돌무덤의 앞을 지킨 무녀…… 여러 가지 증거와 정황의 아귀가 촘촘히 맞물렸다.
일각의 추론 끝에, 대전사는 얼추 진상을 조립해 냈다.
‘……이 무녀는 아이를 밴 채로 유적에 들어섰군.’
그것 외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마 그 사실은 무녀 본인만 아는, 혹은 본인조차 몰랐던 비밀이었겠지. 시릴이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유적에 들어서는 걸 허락지 않았을 테니.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 어쨌건 수백 년 전, 무녀는 홑몸이 아닌 채로 유폐되었다.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불러오는 배를 지켜보았을지 짐작하긴 어렵지 않았다. 폐쇄된 환경에 대한 불안, 아이의 건강에 대한 걱정, 깜깜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럼에도 실낱처럼 존재하는 기대감.
그러나 그토록 진실되고 깊은 모성애도, 결국 모조리 부질없는 허사가 되고 말았으니.
아이는 무녀의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숨을 거두고 만다.
“…….”
저 유해의 골격은 분명 신생아의 것이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한 게 틀림없었다.
감정을 수치화할 순 없다. 감정의 세기로 우열을 나누는 건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딱딱한 벽돌을 잘게 쪼개, 두꺼비집만도 못한 돌무덤을 만들고, 그 안에 차게 식은 갓난아이를 묻는 순간 무녀가 느꼈을 절망은, 필시 범인이 평생 느낄 감정을 압축한 것 이상으로 무거웠을 게 분명했다.
그건 단순히 한 명의 자식을 잃는 일이 아니었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희망을 상실한, 영원히 홀로 유폐의 세월을 지새우게 될 것을 확정 짓는 사건이었으니.
그리고 그토록 무거운 절망은, 어떤 존재들에겐 더없이 달콤한 먹이로 보이기 마련.
안 봐도 뻔했다. 썩은 고기에 파리떼가 꼬이듯, 악마들이 석판 곁에 바글바글 몰려들었을 광경이. 어떻게든 유적에 들어가 무녀의 절망을 취하고 싶어 온갖 달콤한 감언이설을 지껄여댔겠지.
악마의 속삭임은 가장 고매한 자의 정신마저도 모래벽처럼 허문다. 하물며 지옥보다 끔찍한 절망에 빠진 자가 그걸 버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무녀는 놀랍게도, 백 년이 넘게 그 유혹을 견뎌냈다.
인간에게 허락된 수명을 넘어서 온몸이 바싹 쪼그라들 때까지, 무녀는 그 무엇도 유적에 들이지 않고 고독히 대전사만을 기다렸다. 그만한 절망을 짊어지고 범부의 일생이 넘는 세월 동안 사명을 지킨 건, 그야말로 초인적인 극기심을 발휘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끝없이 두들기면 언젠간 깨지기 마련이니.
조금씩 금이 가던 무녀의 마음을 깨뜨린 건, 아마 이와 같은 속삭임이지 않았을까.
– 엄마, 저 좀 들여보내 주세요. 엄마, 저 좀 들여보내 주세요. 엄마, 저 좀 들여보내 주세요…….
‘……!!’
순간의 방심 탓인지, 누적된 피로 탓인지…… 무녀는 그만 실수로 분열종 악마를 유적에 들여보내고 말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그사이 악마가 돌무덤에 파묻힌 유해에 자신의 ‘핵’을 단단히 붙였으니.
악마를 추방하려면, 아이의 유해까지 유적 밖으로 내버려야만 하는 상황. 도무지 치를 만한 희생이 아니었다. 결국 무녀는 악마를 쫓아내는 걸 포기하고 만다.
그 뒤론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이 시작됐다. 악마는 수백 개의 입으로 끊임없이 아이 목소리를 흉내 내며, 무녀에게서 가혹하게 절망을 쥐어짰다.
– 전 왜 죽었어요, 엄마? 저 살고 싶었는데. 전 왜 죽었어요, 엄마? 저 살고 싶었는데. 전 왜 죽었어요, 엄마…….
– 엄마, 저 갑갑해요. 무덤에서 꺼내줘요. 엄마, 저 갑갑해요. 무덤에서 꺼내줘요. 엄마, 저 갑갑해요…….
– 바깥세상은 어떻게 생겼어요? 저는 왜 갇혀 살아야 돼요? 바깥세상은 어떻게 생겼어요? 저는 왜 갇혀 살아야 돼요…….
무녀의 정신은 빠르게 망가져 갔다. 언젠가부터 악마의 목소리를 진짜 아이의 뜻으로 혼동하기 시작했다. 끝내 바깥세상이 궁금하다는 악마를 위해, 손가락을 잘근잘근 짓씹어 그 피로 온 벽면에 풍경화를 그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무녀는 완전히 꺾이진 않았다. 마음에 아직 한 줄기 희망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 돌아와 이 끔찍한 악을 멸해 줄 구원자, 잃어버린 힘을 되돌려 주고 우리를 황야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이끌 아탈라의 대전사.
하지만 인고의 세월을 지새우는 동안, 악마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자신이 토한 고통과 절망을 삼키고 놈은 어느새 거대한 살덩이처럼 불어났다. 여기서 더 자랐다간 대전사께서 상대하시기도 쉽지 않을 텐데…….
고뇌 끝에, 무녀는 결국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악마에게 절망을 내어 주는 근원을 제거하기로.
– ……엄마나갑갑해꺼내줘잘근잘근씹어서죽여버리기전에엄마나갑갑해꺼내줘잘근잘근씹어서죽여버리기전에엄마나갑갑해꺼내줘잘근…….
무녀는 메마른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만두거라. 너는 내 아이가 아니다. 그 피어나지도 못하고 저문 가엾은 영혼을, 더는 욕보이지 말거라.’
그러곤 돌무덤 앞으로 가서 앉았다.
‘탐식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네놈은 단 한 톨의 절망조차 더 취하지 못할 것이다. 기근에 허덕이며, 고통에 몸부림치거라. 그렇게 가엾은 세월을 지새우다 보면 언젠가, 투신의 대전사께서 돌아와 심판을 내리실지어니……,’
찬란하게 빛나는 바늘을 두 손으로 꾹 움켜쥐고.
‘……부디 그때까지 이곳이, 네놈만을 위한 지옥이 되길 간절히 기원하겠다, 악마여.’
혼신의 힘을 다해 그것을 이마에 박아넣는 순간.
푹.
서늘하게 꿰뚫는 감각, 급격히 암전되는 시야.
카딤은 눈시울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렸다.
‘……뭐지?’
방금 본 광경은 추론으로 닿은 영역이 아니었다. 아니, 언젠가부터 상상이라기엔 지나치게 세세한 부분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이건 마치…… 무녀의 기억을 직접 전달받기라도 한 듯한…….
원인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데, 손에 들린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제 역할을 다하고 빛을 잃은 ‘각인의 바늘’.
이 바늘은 본디 무녀의 이마에 꽂혀 있었다. 그다음 악마의 피를 머금고 자신의 등짝에 꽂혔지. 한데 혹여, 그 촉에 무녀의 피도 일부 남아 기억을 전한 것이라면…….
쉽게 이해할 만한 인과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주술적인 차원에서 볼 때, 피는 단순히 육신에 흐르는 체액이 아니었다. 악마의 피로 그 권능을 새기듯, 무녀의 피에 실린 강렬한 의지를 전해 받았다 하면 그리 납득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카딤은 무녀의 시체를 굽어보았다. 이마에 난 상흔이 아까와는 다소 달리 보였다.
“…….”
무녀는 사명이 버거워 포기한 게 아니었다. 무녀는 자신을 죽임으로써 사명을 완수했다. 이것은 뒷일은 남에게 맡기고 포기하는 비겁자의 방식이 아니었다. 강적에 닿을 제단을 쌓기 위해 제 몸을 초석으로 바친 아탈라인의 방식이었다.
만일 분열종 악마가 지금까지 무녀의 절망을 취했더라면, 자신도 그토록 수월히 상대하진 못했을 터.
범인이 악마를 마주하면 생의 모든 고결한 의지가 꺾인다. 그러나 무녀는 끝끝내 굴하지 않고 투쟁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대전사가 돌아와 악마를 심판함으로써 그 불굴의 의지는 기어코 보답받는 데 성공했다.
“…….”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족한가?
무녀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단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데?
쓰러진 시체는 여전히 돌무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어서도 잊을 수 없다는 듯, 황량하고 처연한 시선. 몽당연필처럼 살점이 닳은 손가락도 눈에 들어왔다. 벽면을 가득 채운 검붉은 바깥의 풍경화는, 저 고통과 자책의 물감으로 그려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카딤은 결심했다.
무녀의 넋을 위령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진짜 바깥’을 볼 기회를 주자고.
돌무덤에서 조그마한 유해를 수습해, 무녀의 품에 안겨 주었다. 그러곤 아탈라의 심판을 움켜쥐고 기도문을 외웠다.
“[투쟁과 황야의 신, 아탈라시여. 당신의 대전사를 굽어살피소서, 횃불을 들어 전장으로 인도하소서…….]”
우우우우우우웅…….
이미 한 번 저질러 본 일이라 두 번째는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전방위로 도끼를 휘둘러, 거침없이 비좁은 골방을 무너뜨렸다.
―――――――― 콰과과과과과 – !!
무녀와 아이의 유해를 들쳐 안고 석벽을 돌파했다. 거친 질감을 가진 어둠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단호한 도끼질로 어둠을 갈랐다. 빛무리가 홀연히 스며드는 틈새를 넘어서, 마침내 이르렀다.
끄저저저저적…….
유적의 바깥에.
검붉은 색채가 아닌 총천연색으로 흐드러진 풍경에.
무녀가 그토록 간절히, 피어나지 못하고 저문 영혼에게 보여 주고자 했던 세상에.
찬란하게 흐드러진 빛살, 구름 한 점 없이 펼쳐진 하늘, 산들산들 흔들리는 마른 수풀……. 잠자리 떼가 번잡스레 바람을 희롱하고, 단풍잎이 팔랑팔랑 잔디에 손자국을 남겼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을 들판의 정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사소한 평범함이 세상 그 무엇보다 특별한 것이 되었다. 아이를 떠안은 노파의 입매가 가녀린 미풍을 따라 아릿하게 떨렸다.
아쉽게도 감상에 잠길 여유는 길지 않았다. 유적을 벗어나 육신을 보존하는 주술의 힘이 다했다. 흙먼지처럼 분분히 떨어져 나가는 메마른 살점들.
파스스스스…….
그 와중에도 무녀는 품에 끌어안은 아이를 필사적으로 지켰다.
퍼석한 팔뚝이 오그라들었다. 말라비틀어진 허리가 안으로 굽었다. 팔이 부서지면 몸으로, 몸이 부서지면 뼈로, 뼈가 부서지면 뼛조각으로 아이를 비호했다. 그 탓에 아이의 유해는 무녀가 산산이 다 부서지는 지경이 되도록 그 형상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무정한 풍화의 시간을 비껴갈 순 없었고.
파스스스스…….
어느덧,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덧없는 먼지 무더기만이 남았다.
카딤은 그 먼지를 조심스레 쓸어모았다. 넉넉히 구덩이를 파 한자리에 묻어 주었다. 묘비 삼아 유적의 석판까지 올려놓고는, 넋두리하듯 추도사를 읊었다.
“……황야의 계율은 말하지. 생의 여정을 다한 전사들은 아탈라와 맞설 기회를 얻고, 그의 피를 보면 전쟁과 연회가 끊이지 않는 천국에 이르게 될 거라고. 허나 그렇게 번잡스런 곳은 아이를 평안히 기르기엔 부적절하지 않을까 싶군.”
도낏자루를 땅에 꽂고, 숙엄히 선언하는 대전사.
“그러니, 아탈라의 이름을 걸고 기원하겠다.”
한 많은 일생을, 그대들을 괴롭힌 지옥에 갇혀 지샜으니.
저 천상엔, 그대들을 위한 천국이 따로 있기를.
그러니까, 이를테면.
영원히 해가 저물지 않는 들판에서, 달처럼 미소 짓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부디, 그곳에선 절대로 서로 다시 사별하는 일이 없기를.
묵묵히 기원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땐, 벌써 온 들판에 땅거미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을 꽤 지체하고 말았다.
‘던컨이 많이 기다리고 있겠군.’
카딤은 서둘러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렇게 등 돌려 걸음을 떼는 순간, 무언가 발치를 스쳐 앞길에 내깔렸다.
들러붙은 두 개의 단풍잎.
하나는 여인의 손바닥만큼 컸고, 하나는 아이의 손바닥만큼 작았다. 크기는 달라도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단단히 겹쳐져 있었다. 이후론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흩날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
우연히 벌어진 일은 아닌 듯했다. 굳은 입매가 희미한 곡선을 그렸다. 카딤은 잎새를 가벼이 집어 들곤, 멈춰 섰던 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식으로 작별 인사를 남기다니, 참으로 예의 바른 모자였다고 생각하며.
*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 온다던 야만인은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흙먼지와 돌 부스러기를 잔뜩 뒤집어쓴 너저분한 몰골로.
던컨은 그때까지도 유실물처럼 덩그러니 들판에 놓여 있던 참이었다. 카딤을 발견하자마자 허겁지겁 내달려와 호들갑을 떨었다.
“나, 나으리!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요? 행색은 왜 또 그리 엉망이 되셨는지…….”
카딤은 슬쩍 시선을 내리깔았다. 손에 쥔 단풍잎을 비로소 바람결에 흘려보내며, 감정이 아스라이 사그라든 목소리로 답했다.
“……별일 아니다. 잠깐, 누군가를 좀 파묻어주고 왔다.”
“……?”
던컨은 휘둥그레 토끼 눈을 떴다.
처음엔 깜짝 놀랐는데, 가만 보니 그리 놀라운 말도 아니었다. 이 야만인이 대관절 어떤 사람이었던가? 곧 무슨 사정인지 알 만하다는 듯, 저 홀로 납득하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하, 나으리께서 또 몇 놈 담그고 오셨구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