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미몽의 숲 (3)
“저, 용병님……? 실례지만, 혹시 대수림에 가시는 길이면 저도 끼워주실 순 없으시겠습니까?”
벤슨은 최대한 공손하게 카딤에게 동행을 청했고, 이러한 답변을 돌려받았다.
“꺼져라. 뱃가죽을 째고 내장을 절반 덜어 버리기 전에.”
“…….”
도통 농담처럼 들리질 않는 협박. 뒤에 선 여인이 싸늘한 조소를 보냈다. 배알이 꼬였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벤슨은 일단 슬금슬금 물러나고 봤다.
그렇게 일레니아만이 합류하여, 대수림으로 향하는 일행은 셋이 되었다.
던컨은 흘끔, 카딤과 일레니아를 번갈아 흘겼다.
참으로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하필 이런 데서 또 이 여자를 만난단 말인가? 먼저께 겪어보았듯, 이 여자는 평범한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또 암만 봐도 카딤이 일레니아를 마뜩잖게 여기는 눈치란 점도 신경 쓰였고…….
‘……뭔가 안 내키면 그냥 쫓아내셨을 텐데? 왜 굳이 동행을 허락하고 저러시는 거지? 어…… 잠깐? 이거, 설마 정말…….’
분홍빛 상상의 나래가 절로 펼쳐졌다.
카딤과 일레니아. 두 사람은 지난번 만남 이후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 훗날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조를 나누고 눈물의 작별을 나눴다. 한데 웬걸? 막상 와보니 일레니아가 웬 두꺼비를 닮은 놈팽이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단둘이 깊은 대화를 나누며 큰 오해는 풀었으나, 미진한 흉금이 남아 카딤이 저러는 거라면 대충 아귀가 맞…….
“……무슨 잡생각을 하는 거냐. 네놈.”
“으허어어억!!”
상상의 나래가 박살 났다. 어느새 당사자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던컨은 뜨끔하여 손사래를 쳤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나으리. 그, 그게 그냥, 이런 데서 또 저 여자랑 만났다는 게 놀라워서…….”
“……당분간 저 여자가 길잡이 역할을 할 거다. 대수림에 대해선 우리보다 잘 아는 것 같더군.”
“그, 그렇습니까? 하긴, 그, 어쨌든 명색이 고고학자니까 ……. 어, 그런데, 저 여자는 무슨 일로 대수림에 왔답니까?”
“……드래곤 때문이라던데.”
“예……? 드래곤 말입니까? 나, 나으리와 만나기로 미리 약속해서가 아니구요?”
“마탑에서 나온 뒤로 목적지를 정했는데, 어떻게 저 여자와 미리 약속을 하나?”
“아, 아니, 그렇지만…… 너무 뜬금없지 않습니까? 엘프도 아니고, 웬 갑자기 드래곤을 찾으러 대수림에…….”
고개를 갸웃대는데, 별안간 섬찟한 감각이 느껴졌다. 옆을 보니 카딤이 무거운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던컨은 괜시리 침을 꿀꺽 삼켰다.
“던컨, 어제 나를 세 번 기습하는 데 성공하면 네 칼에 이름을 주기로 한 것, 기억하나.”
“예? 아, 아아, 물론입죠, 예에…….”
“조건을 바꾸도록 하지. 딱 한 번만 기습에 성공해도 동일한 보상을 주겠다. 그 대신, 나중에 저 여자의 가방을 몰래 뒤져 보거라.”
“……예?”
“훔칠 필요까진 없다. 그냥 안에 든 걸 확인만 하면 돼. 그리고 무언가 수상한 걸 찾으면 내게 말해 주도록.”
“……예?!”
던컨의 머릿속이 의문 부호로 점철됐다.
아니, 뭐, 나으리를 기습하는 것보다야 쉬운 일 같다만…… 대체 왜? 내용물이 수상하면 그냥 대놓고 검사해도 되지 않나? 마탑 때처럼 비밀 자료를 훔치는 것도 아니고…… 부득불 남의 가방에 몰래 손대야 할 이유가…… 어? 서, 설마 외도의 증거를 찾으려고…….
엄한 추측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카딤이 굳게 입을 다물었기에. 수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앞서가던 일레니아도 걸음을 늦춰 다가왔고.
“여러분, 일단 대수림에 거의 다 오긴 했는데…… 음, 저어기 끝에 숲 자락 보이시죠?”
머나먼 풍경의 끄트머리를 가리키는 일레니아.
손가락 끝을 따라가자, 지평선을 대체한 삼림이 보였다.
아직은 초입까지도 거리가 좀 남았다. 그럼에도 그 존재감은 거리감을 뛰어넘었다. 일행은 잠시간 모든 잡념을 잊고 까마득한 원경에 도취됐다.
무한정 굽이치는 신록의 용틀임, 천지를 구분 짓는 경계를 덧씌운 진녹빛 윤곽. 갈래갈래 뻗어나가던 모든 여로가 저 대자연이 세운 성채에 가로막혔다. 아무리 우회로를 찾으러 나아가도 길은 나타나지 않고, 세상 끝까지 저 무궁한 초목의 장벽만이 펼쳐져 있을 것 같았다.
전사의 눈은 진작 맹금의 수준을 뛰어넘어, 한층 더 세밀하게 숲을 훑었다. 울창하게 나풀거리는 잎사귀, 수천 고리 나이테를 품은 기둥…… 얼핏 보아선 그냥 평범하게 우거진 숲처럼 보였으나.
그건 고작 숲의 껍데기에 불과했다.
일정 경계를 넘어서부턴 풍경에 왜곡과 뒤틀림이 섞여들었다. 그 너머론 감각이 나아가는 게 아니라 비슷한 자리를 맴돌이할 뿐이었다. 절대로 접근을 허락지 않겠단 집념이 깃든 저 위장막을 보고 있노라면, 이 숲의 명성이 허명이 아님을 절절히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수림, 기이한 풍문과 불가사의를 품은 대륙에서 가장 광대한 숲.
1회차의 카딤조차도 가보지 못한 완전한 미지의 영역.
던컨은 마냥 그 위용에 홀려 넋을 놓고 있었다. 반면 카딤은 한 차례 둘러본 직후, 일레니아가 왜 애매하게 말을 끝맺었는지 깨달았다.
“그냥 무작정 들어서면 안 되겠군. 어딘가 따로 입구가 있는 모양인데.”
일레니아가 손뼉을 치며 탄복했다.
“맞아요, 역시 감이 좋으시네요! 대수림의 초입은 이상하게 길이 꼬여있어서, 무작정 들어서면 100년을 헤매도 제자리일 수 있어요! 오직 ‘뿌리굴’이라는 정해진 통로를 통해 들어가야만 한답니다!”
“그럼 그 굴은 어디에 있지.”
“몇 군데가 있긴 한데…… 다른 굴은 좀 멀고, 가까운 데는 저기에 있어요! 금방 도착할 테니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금방이라기엔 다소 긴 시간이었다. 그 말이 나온 뒤로 거진 두 시진을 더 걸어야 했으니.
그래도 길잡이의 안내는 틀리지 않았다. 성큼 가까워진 숲 자락, 족히 수백 년은 묵었을 어느 고목의 뿌리맡에서 카딤 일행은 비로소 동굴처럼 뻥 뚫린 구멍을 찾아냈다.
문제는 그 곁에 미처 안내받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는 점.
“……군손님들이 있군.”
“…….”
창칼을 들고 굴의 입구를 둘러싼 채 서성거리는 이십여 명의 괴한들. 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마주하기엔 다소 거창한 인파였다.
일레니아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유심히 굴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절레절레 도리질을 쳤다.
“음, 저긴…… 안 되겠네요. 다른 굴을 찾아보는 게 낫겠어요.”
“……저놈들이 길을 막은 게 문제인가? 그거라면 여기서 당장 해결 가능한데.”
야만인이 모든 길을 뚫는 마법의 열쇠, 투척도끼를 치켜들었다. 고고학자는 애매하게 입꼬리를 떨며 부인했다.
“아뇨,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 사람들이 뭘 잘못 건드렸는지, 뿌리굴이 ‘깨어나’버렸어요. 저런 상태면 정상적인 방법으론 못 지나가요. 지금이라도 다른 굴을 찾아보는 편이 좋겠네요.”
“……?”
무슨 헛소리냐는 듯 미간을 구기는 카딤. 다시 한번 굴을 둘러보고 나서야 어렴풋이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시커먼 어둠 너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음습한 기척.
저건 그냥 평범한 땅굴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군. 저런 데로 우릴 안내하려고 했다고?”
“자, 잠든 상태에서 지나가면 아무 문제 없어요! 그리고 어차피 저기 말고는 숲에 제대로 들어갈 방법도 없고…….”
“그래서, 저게 깨어나면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이냐.”
“후우, 그건…… 흐음…… 일단 행상인 아저씨는 안 듣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엑? 왭니까?”
“그, 괜히 들었다가 무서워서 안 간다고 날뛰면 곤란해서…….”
세상 억울하다는 듯 용감무쌍한 표정을 짓는 던컨. 그러나 카딤에게선 시큰둥한 시선만이 되돌아왔다. 일레니아는 던컨이 터덜터덜 물러나는 걸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뿌리굴’에 대한 정보를 일러주었다.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난 후, 카딤은 긴 숙고에 잠겼다.
결단을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일레니아에게 물었다.
“……다른 굴은 좀 멀리 있다고?”
“예, 좀 멀리 가야 돼요. 한 나흘 내지 닷새 정도……?”
“그럼 그냥 저 굴로 가도록 하지. 어차피 깨어났다고 못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되레 더 멀리 갈 수도 있다면서.”
“……예? 그, 그렇지만 용병님, 저 굴로 멀리까지 가신다는 건…….”
“아니, 꼭 저놈들을 써먹겠다는 건 아니다.”
카딤은 무심한 눈길로 괴한들을 응시했다. 그들 역시 카딤 일행을 발견하곤 아까부터 이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간만 보고 오질 않자 몸이 달았는지, 아예 저들 중 하나를 내보내기까지 했다.
“……물론 저놈들이 먼저 개수작을 부리는데, 굳이 써먹지 않겠단 것도 아니지만”
“…….”
“……?”
일레니아가 알 듯 말 듯 한 눈빛을 하고 던컨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괴한들이 보낸 전령이 목전에 도달했다.
풀물과 땟국물로 얼룩져 영락없이 산적처럼 보이는 사내. 그는 카딤의 덩치에 놀라 잠시 주저했으나,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걸었다.
“흠흠, 반갑소이다. 댁들도 대수림에 들어가려고 왔소?”
“…….”
“아아, 경계하실 필요 없소. 우린 수상한 사람들이 아니외다. 그…… 길 잃은 여행자들을 돕는 대수림의 순찰대 같은 거라고 해두지. 여기가 좀 외진 곳이긴 해도, 엘프를 찾는다느니 어쩌니 하다 조난당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나타나는지라…….”
“…….”
“뭐, 아무튼 댁들은 아주 운이 좋은 거요. 숲에 들어가기 전에 우릴 만나다니. 이것도 인연이니, 특별히…… 특급 정보 하날 공짜로 알려 주겠소.”
사내는 이 숲은 아무 데로나 들어가면 제자리만 뺑뺑 돌게 되고, 오로지 저 굴을 통해서 들어가야만 한다고 은밀히 일러주었다.
애석하게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보였다. 일레니아와 던컨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카딤은 비뚜름한 미소를 짓고는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감사를 표했다.
“그것참, 고맙군. 하마터면 큰 곤욕을 치를 뻔했어.”
“크흠, 너무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소. 여행자들을 돕는 게 곧 우리들의 보람이니…….”
사내는 우쭐하여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지만 저 굴은 무척 복잡하고 위험하다고, 안전하게 지나가려면 반드시 저들 같은 숙련된 길잡이가 필요하다고, 저들이 있는 굴을 찾은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카딤이 계속 별말도 없이 듣고만 있자 안심하고 본론까지 꺼냈다.
“흠흠, 다만…… 우리도 땅 파서 먹고살 순 없는 노릇이니, 길을 안내해 주는 대가로 약소하게 기부를 받고 있소이다. 아아, 안심하시오. 돈을 달라는 건 아니니까. 그냥 뭐, 가져온 식량이나 한 절반쯤 나눠주면 충분한데…….”
일행을 찬찬히 훑던 사내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됐다. 샛노란 눈동자를 가진, 이런 오지에선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미색의 여인.
탁한 눈동자에 달뜬 욕망이 깃들었다.
“……크험, 험, 사실 근데, 뭐, 사람이란 게 또 마냥 음식만 퍼먹으면서 사는 건 아니지……. 흠흠, 만약 그쪽의 아가씨께서 고생하는 우리 순찰대원들을 조금만 기쁘게 해 주신다면…… 뭐, 먹을거리 정돈 그냥 안 받고 넘어갈 수도…….”
카딤은 거기까지만 듣고 말을 잘랐다.
“먹을 걸 줘야겠구나, 던컨”
“……예?”
“‘저게’ 먹을거릴 달라고 보채고 있지 않나. 늦기 전에 어서 배불리 먹여줘야지.”
“……?”
던컨과 사내는 그 말의 진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던컨은 왜 이 무뢰한들에게 아까운 식량을 내어준다는 건지, 사내는 왜 자신들을 ‘저것’이라 부른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방에서 식료품을 꺼내고 그걸 건네받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얼굴에는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다.
반면 일레니아는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카딤이 배불리 먹이겠다는 대상은 순찰대원이 아니었다. 의미심장하게 카딤을 바라보다, 그를 따라 ‘저것’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꿈틀, 잔뿌리로 뒤덮인 굴혈의 테두리가 아주 희미하게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
카딤 일행은 사내를 앞세워 굴의 입구로 다가갔다.
자칭 순찰대원들은 함지박만 한 미소를 지었다. 사내가 일행에게 뜯어낸 식량이 꽤나 양이 많았기에. 일행에 포함된 일레니아를 본 뒤로는 다들 말 못할 초조함으로 가득한 얼굴이 되었지만.
“저기, 거, 아가씨……? 아가씨는 여기 남아 있다 좀 나중에 지나가쇼. 이게 워낙 위험한 굴이다 보니, 안에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거든?”
“맞습니다. 저기 용감한 일행분들께서 먼저 지나가시고, 별일 없는 거 확인하면 그때 지나가시죠? 저희들이 이따가 잘 모셔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 하하하…….”
한 꺼풀 호의를 덧씌웠으나, 추접한 의중을 감추지 못하는 눈빛. 일레니아는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단칼에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남편만 보내고 저 혼자 여기 남는 건, 너무 의리 없는 것 같아서요.”
“…….”
힐끗, 갸름한 턱 끝이 야만인을 가리켰다. 순찰대원들은 아쉬움에 쭈뼛거리면서도 토를 달지 못하고 물러났다. 카딤이 싸늘한 눈총을 보냈으나, 일레니아는 이만한 핑계가 또 없다는 듯 천연덕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길잡이 사내는 뿌리굴로 들어서기 전, 엄중히 경고했다.
“절대로, 안에서 불을 피우면 안 되오. 여긴 뿌리와 마른 퇴적물이 많아 자칫하면 큰불이 번질 수 있소. 어두워서 잘 보이겠지만, 줄지어 손을 잡고 천천히 나를 따라오면 될 거요.”
“…….”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경고였다. 어렴풋이 이유를 눈치챈 자들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들렸지만.
굴의 초입까진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광경이었다. 묵은 흙내음을 풀풀 피워올리는 부엽토, 수더분하게 깔린 이끼와 버섯, 발처럼 드리워진 잔뿌리들……. 그저 오래 방치되었을 뿐인 야생의 토굴처럼 보였다.
그러나 볕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자, 슬슬 굴의 진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체 모를 고약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축축하고 딱딱한 무언가가 거듭 발에 걸리고, 노면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우욱, 그, 순찰대원 나으리……. 계, 계속 뭔가 발에 걸리는데 이게 대체 뭡니까? 이상하게 땅이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짐승의 사체와 배설물이 뭉친 것이오. 떨림은 짐승 떼가 땅 위로 지나가 생기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아, 연기가 고여 폭발이 일어날 수 있으니, 여기서부턴 정말 작은 불씨도 피우지 않게 주의하시고…….”
수상할 정도로 되풀이되는 불을 피우지 말란 경고. 하지만 핑계가 그럴싸한 데다, 말투도 원체 단호하다 보니 믿지 않기가 힘들었다. 실제로 던컨은 오만상을 쓰면서도 의심 없이 납득한 기색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어둠과 혼돈을 관장하는 잊힌 신의 사제와, 초인적인 시각을 가진 전사는 어둑한 굴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과연 기를 쓰고 불을 못 피우게 할 만했다. 그래, 이런 광경을 대놓고 밝히면 그 누구라도 따라오질 않겠지.
그렇다고 남자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퇴적물은 확실히 동물의 사체와 배설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사람도 동물은 동물이니까.
““…….””
카딤과 일레니아는 굳은 낯으로 즐비하게 널린 백골을 피해 갔다.
사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계속 길잡이 연기에 열성을 다했다. 열심히 벽을 더듬대 길을 찾는 척하고, 은근슬쩍 큼직한 두개골을 치우고, 같은 경고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거의 다 빠져나왔다고 일행을 독려하고…….
그 우스꽝스러운 일인극은, 축축한 굴의 심부에 이르러서야 끝났다.
느닷없이 뒤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음.
두둑, 두둑, 둑…….
“잠깐만…… 다들 정지하시오.”
두두둑, 두둑…….
“흐음, 이게 무슨 소리지. 짐승들이 오가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사내는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허나 어둠에 파묻힌 얼굴엔 안도감이 떠올라 있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신호가 왔다는, 비로소 여길 떠날 수 있다는 안도감.
“그, 아무래도 소리의 정체를 확인해보고 와야겠소. 다들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시오. 내가 금방 확인하고 돌아올 터이니…….”
“아니, 굳이 가볼 필요 없다.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카딤은 한 손으로 사내를 막고는, 말릴 틈도 없이 뇌격을 던졌다.
패래래래래래래…… 쩌 – 걱!
‘끄억!’
후 – 웅, 후 – 웅, 훙, 훙 – 턱!
도끼는 외마디 비명을 피워올리곤 주인의 손에 되돌아왔다. 카딤은 그것을 연달아 던졌다. 파형무늬 도끼날이 암흑을 가로질러 거듭 파멸의 날개를 펼쳤다.
패래래래래래…… 쩌 – 걱! 패래래래래…… 쩌 – 걱!
‘뭐, 뭐얏!’
‘꺽!’
‘으헉!’
후 – 웅, 후 – 웅, 훙, 훙 – 턱!
어느 순간부턴 더 이상 비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카딤은 비릿하게 젖은 도끼를 사내의 면상 위로 들이밀었다.
“보아라, 소리를 일으킨 원인은 전부 제거했다. 걱정 말고 계속 ‘위장’까지 나아가도록.”
“……어, 어어?”
“왜, 우릴 이 굴의 먹잇감으로 주려던 게 아니었나?”
스산한 미소가 어둠 속에서 피어올랐다. 사내는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 경악하여 떨리는 눈시울에 뜨뜻한 액체가 줄지어 투두둑, 떨어졌다.
슬슬 빠져나오라고 신호를 주었던 동료들의 핏방울.
쿠르르르릉…….
음습한 어둠의 저편에서 공복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