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미몽의 숲 (7)
‘미몽의 숲’이 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다.
이곳에 출입을 막는 울타리 따윈 없다. 정처 없이 헤매는 나그네건, 악의를 품고 배회하는 무뢰한이건, 내밀한 숲의 문턱까지 찾아오기만 하면 누구나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수월한 접근성이야말로 여길 ‘불가침’한 영역으로 만드는 핵심 원인이었으니.
그건 달리 말해…… 이 숲이 모든 침입자의 악몽이 무제한으로 현현되는 지옥이란 뜻.
카딤은 칼자루를 꾹 쥐고 종축으로 내리찍었다.
쩌 – 걱!
– 크캬하아악!!
붉은 칼날은 골통만 쪼개는 데 그치지 않고, 거칠게 식도를 절개하며 내려가 창자 끝자락까지 닿았다. 상체가 통째로 양단된 괴생물은 후두둑 내장과 핏물을 쏟고는 비틀거리며 허물어졌다.
– 그르릃, 그릃…….
“…….”
카딤은 핏물을 쓱, 닦고 괴생물을 내려다봤다.
새빨간 눈깔, 꼽추처럼 굽은 척추, 낫처럼 휘어진 손톱……. 뿔만 달면 악마라고 해도 믿을 만큼 괴악한 생김새였다. 다만 저 특징들만 제한다면, 이 괴생물과 외적으로 가장 비슷한 존재는 다름 아닌 그것이었다.
엘프.
저 뾰족한 귀와 창백한 피부는, 전형적인 엘프의 특징이었다.
이 뒤틀린 형상의 엘프는 혼자가 아니었다. 굵직한 나무들과 암녹색 수풀 너머, 시뻘건 안광들이 핏물로 적신 반딧불이 떼처럼 우글거리고 있었다.
– 크르르르…….
– 크르르르, 크르르…….
– 크르르르르르르…….
적게 잡아도 백 마리는 넘지 않을까. 그냥 낯선 기척의 정체를 살피고, 악마의 피나 몇 모금 마신 다음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설마 저렇게 많은 엘프들과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저것들이 진짜 엘프일 리는 없겠지만…….’
카딤은 확신했다. 저것들 역시 ‘환상’이라고.
그러나 먼젓번의 환상과는 달랐다.
허깨비 같았던 악마들과 달리, 이놈들은 뚜렷한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본보기로 쪼개진 엘프에게선 비릿하기 그지없는 혈향이 피어올랐다. 더구나 이 일대는 풍경도 온통 평범한 숲처럼 변해 있었고…….
나오는 결론은 한 가지뿐이었다.
‘……이 숲에, 우리 말고 어떤 놈이 또 있었나 보군.’
저 기형 엘프들은, 아마도 누군가의 환상이 실체화된 것일 터.
– 크후오오오오!!
– 크흐, 크후오오오오!!
누군진 몰라도, 아주 충만한 현실감을 느낀 게 틀림없었다. 더할 나위 없이 생생히 현현된 기형 엘프 무리가 습격을 개시했다. 동시에 욱씬, 피를 바라는 충동이 뇌리를 찔렀다.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긴 했다.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 해결법이 무엇인진 명확했으니.
길을 뚫고 환상을 만든 놈을 찾아 족쳐 버리는 것.
카딤은 악마의 피를 쭉 들이켜고, 벼락이 깃든 도끼를 던져 전투의 포문을 열었다.
파지지지지직, 번쩍 – !
어둠을 가르는 시퍼런 빛살, 선회하는 벼락이 선봉대에 직격했다. 뇌광이 명멸하자 타점 근처에 있던 엘프들이 산개하여 나가떨어지고, 몇 박자 늦은 굉음과 비명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콰과과, 콰과과광 – !!!
– 크하아아아아악 – !!
– 크하아아아악 – !
후 – 웅, 후웅, 훙, 턱 – !
뇌격은 대번에 열 마리에 가까운 엘프들을 터뜨리고 돌아왔다. 철혈귀가 제 먹이를 빼앗긴 짐승처럼 우웅, 몸서리를 쳤다. 보채지 마라, 지금부턴 실컷 피를 먹여줄 테니. 카딤은 불만을 달래주듯 칼자루를 다잡았다.
그러곤 차오르는 혈기를 만끽하며 직접 돌격했다.
“흐어어어어어어업!!”
광포한 기백이 숲 자락을 덮쳤다. 무자비한 일격이 첨병의 옆구리를 갈랐다.
――――― 쩌거거거거걱 – !
척추를 끊고 허리를 통쨰로 반 토막내는 위력. 그러고도 칼질의 기세는 전혀 쇠하지 않았다. 옆에 붙은 두 놈의 허리까지 겹겹이 갈라버리고, 끝 자락에 있던 놈의 창자 다발까지 뭉그러뜨린 후에야 비로소 실린 힘이 다했다.
카딤은 비틀대는 놈의 복부를 걷어차 칼을 뽑았다. 측면에서 옹송그린 엘프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자세를 낮추고, 칼끝을 쏜살같이 뻗어 눈깔에 바람구멍을 내주었다. 그 후로는 전방에 있는 놈들만을 쪼개며 무리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쩌 – 걱! 쩌거거걱!
– 크후오, 크헉…….
– 크하아아아아아, 악!
굽은 허리 탓인지, 기형 엘프들은 대개 낫날 같은 손톱으로 집요하게 발목만을 노렸다. 마치 볏단을 수확하는 농부들처럼.
그러나 원하는 수확물을 거둔 엘프는 아무도 없었다. 발치에 닿기도 전에, 거친 발길질에 깔려 모조리 으깨진 분쇄육이 돼 버렸으니.
퍼 – 걱! 퍼 – 걱!
– 크엑!
– 크후욱!
갈수록 더 많은 엘프들이 달려들어도 전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사의 태세는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기실 스스로 적의 포위망으로 들어가는 형국이긴 했으나, 카딤이 이유 없이 그러는 건 아니었다. 폭탄은 적진의 중앙에서 터뜨려야 가장 큰 피해를 남기는 법이니까.
바로 이렇게 말이다.
―――― 콰과과과과과과가가가 – !
밀집도가 높은 최심부에서, 양껏 머금었던 피를 맹렬히 토하는 붉은 칼날.
– 크후오, 크허어어어어억!!
– 크허어어어억!!
콰가가가가각!! 콰르르르르르르…….
전사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혈기의 파문이 퍼졌다. 두터운 거목들이 쓰러지고 징그럽게 바글대던 무리가 일거에 와해됐다. 찢어진 사지와 육편이 튀어 오르고, 질척하게 허물어진 시체 무더기 위로 분무처럼 피 안개가 흩뿌려졌다.
‘피의 축적’을 통한 참격은, 여전히 일 대 다수의 난전에서 절륜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걸로 끝도 아니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놈들이 피해를 추스르기도 전에, 카딤은 준비해둔 두 번째 폭탄을 터뜨렸다.
정신을 집중하자, 선명한 적광을 발하는 ‘아큘라노스의 문신’.
쿠구구구구구….
땅을 짚는 순간, 노면에서 산양과 사자를 접붙인 거대한 괴생물체의 머리가 치솟아올랐다. 신비와 이적을 삼키는 ‘불가지의 포식자’가 그림자의 해일처럼 무자비하게 남은 환상들을 덮쳤다.
– 크후우우, 크후어어어어억!!
– 크하아아…….
터 – 헙! 쿠후우우우우우…….
엘프들이 외치는 단말마의 외침은 한낱 식후의 트림처럼 허망하게 스러졌다. 고작 그 두 번의 광역기에, 백여 명에 이르렀던 놈들이 거의 다 전멸당하고 말았다.
잠깐 여유를 틈타 카딤은 칼을 치켜들고 살폈다.
우우웅, 우우웅 –
간만의 전투에 흥분하여 거친 떨림을 발하는 철혈귀. 꽤나 험하게 썼는데도, 이가 빠지거나 손상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고위 악마를 썰고도 괜찮을진 두고 봐야 알겠지만…… ‘내구성 강화’를 붙인 보람이 없진 않군.
‘아큘라노스의 문신’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환상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광전사는 비뚜름히 입매를 치켜올리고는, 전의를 상실한 잔당을 향해 재돌격했다.
처음부터 있던 엘프들은 얼마 안 남았다. 남은 잔당은 대개 나중에 합류한 지원군이었다. 이제 저놈들이 온 방향을 거슬러 가다 보면, 순조롭게 환상을 만든 놈을 찾게 될 줄 알았는데…….
그때, 기이한 이변을 목격했다.
카딤은 눈초리를 흠칫, 떨었다.
수풀에 잔뜩 널린 잘린 발목들. 어쩐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래도 뭐, 저것까진 넘어간다 쳐도…… 눈앞에 있는 이것들만큼은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 깔깔깔깔, 등신 같은 놈, 깔깔깔깔깔깔, 너처럼 냄새나고 역겹게 생긴 새끼가 나한테 찝쩍댄다고?
– 깔깔깔, 대가리가 망가진 거 아냐, 너? 깔깔깔깔, 니 낯짝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들여다보고 사니? 깔깔깔…….
눈깔을 허옇게 까뒤집고 조소를 흘리는 일레니아들.
당연히 본인은 아니었다. ‘망국의 은화’로 빚은 분신에 비하면, 헛웃음이 절로 나올 만큼 허접한 분신들이었다. 그렇지만 저것들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 환상의 근원이, 일레니아를 아는 자라는 것.
– 깔깔깔깔깔, 모지리 새끼, 평생 그렇게 여자들 보고 군침이나 질질 흘리면서……
퍼 – 걱!
– ……꺅!
카딤은 가짜 일레니아의 머리통을 박살 낸 후, 심각하게 턱을 쓸었다.
이 숲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 환상을 만든 근원이 엘프 같은 원주민인 줄 알았건만, 아니라는 사실이 방금 증명됐다. 그렇다고 던컨이나 일레니아가 이 환상들을 만든 것 같진 않은데……. 석연찮은 의혹들을 품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으슥한 구석에 이르러, 마침내 목격하게 되었다.
기괴하게 부풀어 오른 새까만 살덩이 구체.
팔다리가 뭉툭하게 잘려 진흙 공 같은 몰골이었다. 가운데 박힌 두꺼비 같은 면상이 꾸역꾸역 기형 엘프와 일레니아의 분신을 토해내고 있었다.
“쿠우우웁, 쿠웨에에엑! 쿠웨에에에엑!”
찌거걱, 찌거거거걱…….
– 크후오, 크후우우욱…….
– 깔깔깔깔깔, 고생이 많네……?
카딤은 미간을 팍 찡그렸다. 모르는 얼굴은 아니었다. 선뜻 아는 얼굴이라고 하기도 그랬지만.
“뭐냐, 네놈.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크허억, 허억, 우욱, 야, 야만인…….”
소박한 용병, 벤슨이 충혈된 눈깔을 처연하게 쳐들었다.
“사, 살려줘…… 구욱…… 계속, 계속 입에서 이것들이 튀어나와……. 나, 나는 에, 엘프랑 여자를 만나고 싶었지…… 구우욱, 그것들을 토해내고 싶진 않았어…….”
“묻는 말에나 답해라. 여기는 어떻게 온 거지.”
“구, 굴……. 커다란 굴……. 그, 그걸 따라서 왔어……. 여기 와서 에, 엘프들도 찾고…… 그 여자도 찾아서…… 처음엔 좋았는데…… 갑자기, 갑자기 잘린 발목들이 나타나고…… 내 몸이 이렇게 변하더니, 구웨에에에에에엑!”
“…….”
어떻게 된 일인지 비로소 가닥이 잡혔다.
이놈은 그때 일레니아에게 퇴짜를 맞고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을 뒤쫓은 모양이었다. 그러다 어찌저찌 뿌리굴까지 이르렀겠지. 그 근처에서 잘린 순찰대원들의 발목들을 보고, 겨우 굴을 통과해서 숲에 이르렀지만, 오면서 본 광경에 대한 충격과 품고 있던 욕망들이 혼재되어 저런 환상들을 빚어냈을 테고…….
의아한 건 육신까지 부풀어 기괴하게 변형된 연유였다. 벤슨은 헐떡거리며 그에 대해서도 푸념했다. 언젠가부터 엘프와 여자들이 뜬금없는 곳에서도 마구 튀어나오다, 끝내 자신의 몸뚱이 속에서도 튀어나오게 됐다고…….
“그러니까 나, 나 좀 도와줘……. 다, 다시는 그 여자 안 건드릴게……. 대수림 근처에, 얼씬, 얼씬도 안 할 테니 제발, 쿠웨에에에에엑!”
“…….”
……아무래도 저런 몸뚱이로 끝없이 악몽을 생산하는 것이 무방비한 침입자들의 말로인 모양.
정신을 잃거나 죽으면 환상도 사라지니까 저런 꼴로 만드는 건가. 악마와도 견줄 만한 숲의 악의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사실과 이놈의 처분은 별개였지만.
저 정도로 망가졌으면 이젠 술을 먹이는 정도로는 택도 없었다. 환상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철혈귀를 치켜드는 카딤.
스릉 –
두꺼비를 닮은 면상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 자, 잠깐만, 뭐…… 뭐 하는 거야? 야, 야만, 아니, 잠깐, 용병님, 제가 잘못 했어요.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일단 그 칼은 내려놓으시고…….”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칼이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 섬찟한 살기가 코앞까지 이르렀다. 끝내 벤슨은 훼까닥 눈이 돌아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아아아!! 씨, 씨팔, 칼 안 내려놔? 따,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
“너, 너만, 너만 없었어도 이럴 일은 없었어! 그때, 그 여자랑 잘돼 가고 있었는데, 씨, 씨팔, 어? 너, 너가 갑자기 눈치도 없이, 꼽사리를 끼는 바람에, 이, 일이 꼬여서 여기까지 따라와 버렸잖아!!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가 이런 꼴이 돼 버렸다고, 이 X 같은 야만인 새끼야아아아!!”
지저분한 욕지거리를 쏟아붓다 서럽게 쿨쩍이는 벤슨.
“너, 넌 그냥,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야만인 계집, 아무나 적당히 골라서 만나도 되잖아, 응? 나한테는 그, 그 여자밖에 없었어! 진짜 소박하게, 그렇게 예쁜 여자 딱 하나만 있으면 됐는데…… 내, 내가 큰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닌데…… 엘프도 사, 사실은 필요 없는데…… 왜, 왜 그것마저 뺏어가서…… 왜 날 이런 곳까지 오게 만, 들어가, 지고…… 쿠웨에에에에엑!”
감정에 동조하여 환상들이 카딤에게 뚜렷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갓 주둥이에서 튀어나온 엘프마저 흉흉하게 안광을 빛내며 콧잔등을 구겼다.
– 크후오, 크르르르……
쩌 – 걱!
– ……쿠헉!
카딤은 기형 엘프의 골통을 쪼개고 무표정하게 벤슨을 바라봤다. 원체 황당한 원망이다보니, 화내거나 반박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했던 말을 지키기로 마음먹었을 뿐.
“……혹시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허억, 허억…… 뭐?”
“네놈이 동행하자고 했을 때, 내가 한 대답 기억하냐고.”
두꺼비처럼 늘어진 눈망울이 볼록 튀어나왔다.
기억하고 있었다. 공손히 동행을 청하자, 야만인은 틀림없이 이러한 대답을 남겼다.
꺼지라고. 뱃가죽을 째고 내장을 절반 덜어 버리기 전에
“……그런데도 꺼지질 않았으니, 나도 뱉은 말을 지켜야겠군.”
“뭐, 뭐? 자, 잠ㄲ…….”
―――――― 쩌거거걱 – !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무자비한 칼질이 부풀어오른 배를 갈랐다. 복막이 절개되며 둑이 터진 것처럼 복수가 콰르르 쏟아졌다.
뱃속에 들어있던 게 대부분 체액이었던지라, 의외로 내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카딤은 가축을 도축해 부속물을 덜어내듯, 다발로 이어진 오장육부를 노련한 칼질로 뚝뚝, 끊어냈다. 질척한 내장들이 줄줄이 적출되어 뱃가죽 틈새로 끌러져 나왔다.
“끄허어억, 쿨럭, 쿨럭, 그릃, 그르르르릃…….”
벤슨은 피거품을 물고 발작했다. 두꺼비 같은 낯짝이 거무죽죽하게 물들고, 뭉툭한 팔다리가 감전된 것처럼 파들파들 떨렸다. 정신이 흐릿해지며 뒤틀린 엘프와 여인의 환상들이 서서히 스러졌다. 머지않아 정말로 절반 가까운 장기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카딤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붉은 눈동자에 섬뜩한 이채가 깃들었다. 절제된 칼질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나중엔 맨손으로 장기를 뜯기까지 했다. 낭자한 유혈과 혈기의 여운이 무언갈 일깨웠다.
피, 살점, 더 많은 살육을 갈구하는 충동.
조악한 숲의 환상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불가항력적인 착란이 엄습했다. 붉게 왜곡된 시야가 벤슨의 관자놀이에서 길게 자란 뿔을 포착했다.
“[……역시나, 역겨운 악마 새끼가 이 숲을 이렇게 만든 원흉이었군.]”
“그릃, 그릃…….”
“[그동안 악몽으로 인간들을 괴롭히며 즐거웠던가? 그렇다면 이번엔 내가 친히 네놈의 악몽이 되어 주마.]”
쩌거거걱 – !
야만인이 창자 줄기를 뽑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격통과 공포가 피고름처럼 비어져 나왔다. 벤슨은 꺼져가는 의식으로 절규했다. 너무 아프다고, 이제 그만두라고, 내가 잘못했다고,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그럼에도 광기의 연회는 끝나지 않았고, 결국 심장까지도 잡아 뽑혀 온몸을 허전하게 텅 비우고 나서야.
쩌 – 걱!
소박한 용병, 벤슨은 비로소 자신의 처지에 불평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
카딤은 슬며시 눈을 떴다.
“……퉷.”
목구멍에서 역겨운 혈향이 피어올랐다. 악마의 피 냄새는 아니었다. 찝찝함에 침을 뱉었는데, 정체 모를 고깃점이 딸려 나왔다. 의도와 달리 찝찝함이 한층 더 커졌다.
때는 막 동이 튼 아침, 장소는 여전히 기이한 초목의 숲.
“…….”
일행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되짚어보니 일행과 동떨어져 누군가를 도륙 내다, 광증에 먹혀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정확한 속사정을 곱씹어 볼 여유는 없었다. 먼저 일행들부터 찾아봐야 했다. 다행히 두 사람이 멀리 있진 않은 것 같았다. 남쪽으로 일각쯤 떨어진 위치를 배회하는 인기척. 카딤은 무기들을 챙기고 서둘러 그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일어서는 찰나, 목전에 이런 것이 보였다.
현란한 광채를 휘감고 갈래갈래 뻗은 그림자.
―――― 우웅, 우웅, 우웅…….
“…….”
범상한 지물이 아니었다. 가슴팍이 뻐근해지는 압박감, 뜻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카딤은 곧장 확신했다.
저것이 바로 이 숲을 지옥으로 만든 근원일 거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