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세계수의 수호자들 (8)
카딤은 성큼성큼 세계수의 회랑과 계단을 가로질러 위쪽으로 나아갔다. 두 일행도 분주히 그 뒤를 따랐다.
던컨은 눈치를 살피다, 파르네오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그런데 수호자 나으리…… ‘안식의 주간’이란 게 뭡니까?”
“……‘안식의 주간’은 어머니 세계수께서 친히 강림하시어, 이 세계에 안식을 되찾아주신 걸 기념하는 기간입니다. 본디 그 기간 동안은 수호자들 외엔 세계수로의 출입을 막는 게 맞긴 합니다만…… 지금은 누군가 그걸 임의로 지정하여 악용한 듯하군요.”
“아, 그렇구만요……. 그럼, 다른 엘프 분들이 세계수에 못 들어와서 저렇게 곤란해하는 연유는 뭡니까?”
“세계수로의 출입이 막히면, 이곳에 피를 바치는 공혈을 할 수 없게 되니까요……. 공혈을 하면 그 피의 일부는 ‘생귀스’로 돌려주는데, 많은 엘프들이 그것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 오랫동안 피를 바치지 않은 불성실한 자는 사후에 ‘세계수의 꿈’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규율도 있어서…….”
“…….”
께름칙한 인신공양 이야기가 또다시 튀어나왔다.
아니, 그게 생계 수단일 뿐 아니라 내세의 처우까지 달린 문제였다니? 제도와 규율의 괴이함에 던컨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앞서가던 카딤도 말소리를 엿듣곤 슬몃 눈살을 찌푸렸다.
한편 일행의 발길은 처음 수호자들과 약속을 맺은 장소, ‘접견의 홀’로 향하는 중이었다. 일을 마치고 그 장소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했으니, 일단 거기서부터 이 사단의 원흉들을 찾아볼 계획이었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가는 길에 제가 알아서 납시었으니.
“웬 놈들이냐! ‘안식의 주간’ 동안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금되거늘! 누가 감히 신성한 자연의 규율을 어기고 안식의 기강을 어지럽히느냐!”
‘푸른 독니’와 손잡은 1위계 수호자, ‘무쇠 그루터기’ 로울렐이 거만하게 인상을 쓰고 나타났다.
카딤도 인상을 썼다. 생판 모르는 놈은 아니었다. 이전에 원탁 위에서 무례를 지적하며 가시를 뻗은 수호자.
로울렐은 카딤 일행을 대면하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 뒤로 1위계 수호자 둘, 그리고 하위 수호자들을 잔뜩 대동한 덕분. 부정을 적발한 감찰관처럼 위풍당당하게 다가와 카딤에게 삿대질을 했다.
“하, 누군가 했더니, 또 그 위아래도 없는 그 야만인이었군. 네놈이 방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진 아나? ‘자연의 규율’을 어기는 행위는 어머니 세계수를 모독하는 거나 다름없는 죄악이다! 등짝이 온통 이끼로 덮일 때까지 진창에 엎드려 빌어도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지!”
“…….”
“그리고, 파르네오 경! 그대는 대체 뭐요? 명색이 수호자라는 작자가, 규율을 어긴 자를 만류하진 못할망정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니! 그대의 내면엔 세계수를 공경하는 마음이 새싹만치도 없는 게요?”
파르네오는 가는눈을 뜨고 상급자를 바라봤다.
“……애초에 그릇된 처사 아닙니까, 수호자님? 올해 ‘안식의 주간’은 벌써 지났는데, 이토록 급작스레 재지정하는 건 그 의도가 다분히 불순하다 사료됩니다. 그 탓에 무고한 시민들까지 곤란을 겪는 중인데…….”
“시끄럽소! 다 적합한 이유가 있어 정한 것이니 모르면 가만히 계시오! 그대의 스승인 ‘하얀 거북’께서도 동의한 일인데, 감히 스승에게 거역하겠단 거요?”
“예? 스, 스승님께서도……? 그, 그럴 리가…….”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조소를 흘리는 로울렐.
“하, 못 믿겠다면 직접 가서 물어보시던지.”
“…….”
“쯧…… 그나저나, 테비오 경도 참 불쌍하군. 하나뿐인 수제자가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유폐처를 사사로이 드나든 것도 모자라, 이젠 규율을 어긴 야만인을 두둔하고 자빠졌다라……. 늘그막에 목숨 줄은 질기다만, 아무래도 제자복은 영 없는 것 같구만…….”
로울렐은 잇따라 소년 드루이드의 과오를 들쑤시며 스승의 이름에 먹칠 그만하고 썩 물러나라고 명했다. 파르네오는 모멸감과 노여움으로 귓바퀴를 붉혔으나, 차마 토를 달진 못했다. 결국 억지로 고개를 숙이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자리를 떠났다.
카딤은 얼어 죽을 규율도, 매혈을 못하게 된 엘프들의 사정도, 수호자들의 이해관계도 관심 없었다. 공허한 눈길로 행패 부리는 귀쟁이를 내려다봤다.
“……약속을 지켜라. 뱀 새끼를 잡았으니, 나를 멜리사에게로 안내해라.”
“약속? 무슨 약속 말이지? 어머니 세계수를 모독한 야만인과 지킬 약속 따윈 없…….”
도끼날이 말허리를 잘랐다.
패래래래래래래래랙, 퍼 – 걱!
서늘한 선풍이 로울렐의 귀 끝, 그 뒤에 선 수호자의 귓불, 그 뒤로 선 자들의 어깨와 머리카락 따위를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가 벽에 박혔다. 그러곤 나아간 궤적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후 – 웅, 후 – 웅, 후 – 웅, 훙, 턱 – !
“엇.”
“어어…….”
딱 한 끗 차이로 목숨을 건진 자들이 어리둥절하게 눈시울을 치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자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섰다.
“경고는 한 번뿐이다. 다음엔 빗나가지 않는다.”
“…….”
그러나 로울렐은 동요하지 않았다. 귀 끝을 한번 슬쩍 만지더니, 도끼눈을 치뜨고 입매를 비틀었다.
“하…… 무식하게 도끼질하는 재주는 제법이구나? 숲의 폭군을 잡는 동안 구경만 하진 않았겠군. 뭐, 그래도 제대로 증명을 마친 게 아니니 약속은 지켜줄 수 없겠다만.”
“……무슨 헛소리지.”
“그야, 네놈은 혼자서 바실리스크를 잡은 게 아니지 않나? 먼저 떠난 풋내기 ‘검은 표범’과, 저기 저, 턱수염 달린 난쟁이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잡았겠지.”
“…….”
“……옉?”
던컨으로부터 황당하단 반응이 돌아왔다. 자리에 남았더라면 필시 파르네오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 터.
심지어 같은 편인 수호자들마저도 억지 트집이란 눈치였지만, 로울렐은 아랑곳 않았다. 제멋대로 두 사람의 활약상을 상상하며 카딤의 기여도를 깎아내리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될 또 다른 핑계를 댔다.
분명 일을 마치고 접견의 홀로 ‘바로’ 돌아오기로 약속했는데, 어젯밤에 그곳에 돌아가 있지 않았단 것.
당연히 그 원인은 저들이 출입을 막은 것이었으나, 뻔뻔하게 시침을 뗐다.
“그러니 애초에 우리에겐 ‘세계수의 이름에 건 맹세’를 지킬 의무가 없단 거지! 증명에는 남의 도움을 받았고, 자연의 규율을 어겼고, 수호자들을 위협하기까지 했으니, 네놈은 이대로 유폐처에 평생 구금되어 마땅하다만…….”
“…….”
“……정말로 세계수지기님과 면식이 있을, 떡잎만 한 가능성을 고려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지. 일주일 뒤 ‘안식의 주간’이 끝나는 날까지, 동쪽 삼나무 숲에 있는 폭군을 잡고 다시 돌아와라. 당연하지만 이번엔 남의 도움 없이 반드시 홀로…….”
카딤의 이맛살에 핏줄이 툭 불거졌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이 귀쟁이 새끼, 왜 이렇게 목숨이 여러 개인 것처럼 지랄하는 거지? 고작 그 뱀 새끼 하나 못 잡을 만큼 약해빠진 놈들 아니었나?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확인을 위해, 일단 도끼로 대가리를 내려치고 봤다.
후 – 웅, 콰각 – !
“……흡!”
대번에 믿는 구석의 정체가 드러났다.
놈은 순식간에 ‘금철목’을 수 겹이나 겹친 형상으로 의태했다. 나무 기둥처럼 두꺼운 팔뚝을 들어 도끼날을 가로막고는, 빼뚜름한 미소를 짓고 비아냥거렸다.
“흐, 흐흐…… 왜, 바실리스크를 썰었으니 나까지 쉽게 썰 수 있을 줄 알았나?”
“…….”
“미안하지만, 그 폭군이 세계수 근처에 살았다면 진작에 내 손에 찢겨 죽고도 남았다. 세계수와 가까워지면, 우리 수호자들은 천년 묵은 거목보다도 강건해지니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세계수’는 헤실리아의 신기를 그 어디보다도 충만하게 품은 성소. 수호자들은 이곳과 인접할수록 큰 힘을 발휘했고, 내부에 있으면 아예 제 역량의 몇 배나 뛰어나게 의태할 수도 있었다.
‘무쇠 그루터기’ 로울렐이 괜히 안하무인으로 도발한 게 아니었다. 밖은 몰라도, 여기서만큼은 그 어떤 강적과도 붙어볼 만했다. 게다가 다른 수호자들도 잔뜩 있으니, 이런 야만인 하나쯤은 잔가지 꺾는 것보다 쉽게 제압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만.
이후의 상황은 그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돌아갔다.
콰가각, 콰각…….
껍질에 박히는 데 그치지 않고, 깊숙이 심재로 파고드는 도끼날.
시종일관 헛소리를 내뱉던 입술이 조금씩 굳어 갔다. 카딤은 도끼를 힘껏 찍어누르며, 무기질적인 눈으로 로울렐을 노려봤다.
“뭔가 한 가지 착각한 게 있나 본데.”
“……?”
“나는 네놈들이 세계수에 대고 맹세해서 믿어준 게 아니다. 네놈들의 귀때기와 대가리를 걸고 맹세해서 믿어준 거지.”
“……뭣?”
“그런데 약속을 안 지키고, 이렇게 역겨운 개수작이나 부리고 있으니…….”
콰가각, 콰가가각…….
도끼날이 기어코 줄기의 중심을 가르고 한쪽 팔을 거의 다 끊어버렸다. 로울렐의 낯짝이 급격히 썩은 장작처럼 푸석해졌다.
“자, 잠깐…… 이봐, 자, 잠깐만 멈춰…….”
다급히 파고드는 도끼를 저지하고, 다른 수호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하릴없이 전부, 거둬갈 수밖에 없겠군.”
……카딤이 뇌격에 벼락을 점화하는 게 더 빨랐다.
――――――――― 번쩍, 콰과과과광 – !!
위력을 급속으로 배가하는 뇌전의 충격, 도끼날이 찰나의 시간에 양팔을 갈라버리고 떨어져 정수리에 직격했다. 타점에서 시퍼런 불티가 폭발하고, 목피와 부름켜에 덮여있던 두개골이 일격에 산산조각 났다.
퍼버버버벅 – !
“끄어어어억!!!”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탄화된 뇌 쪼가리가 채굴된 석탄마냥 튀어 올랐다. 두 눈깔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핑글 돌아갔다.
‘무쇠 그루터기’ 로울렐은 머리 터진 목각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그래도 방금 전까지 하던 헛소리보단 가치 있는, 그럴듯한 말을 유언으로 내뱉으며.
“어어, 에에에…… 헤에, 꺼걹, 꺼어어얽…….”
그을린 탄내가 지독스레 피어오르는 실내.
남은 수호자들은 목석처럼 굳어 버렸다. 경직된 혈관을 타고 공포와 경악이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어어…… 로, 로울렐 경……?”
“어, 어머니 세계수시여…….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럴 수가…… ‘무쇠 그루터기’께서 일격에…….”
“으아아악!! 무, 물러나!! 가까이 오지 마라!!”
“…….”
카딤은 지체 없이 도낏자루를 쳐들고, 다른 대가리들마저 터뜨릴 준비를 갖췄다.
*
‘세계수의 수호자들’에 속한 수호자들은 총 5위계로 나뉜다. 당연히 높은 위계의 수호자일수록 드루이드로서의 자질이 뛰어나고, 더 강력한 존재로 의태하는 게 가능했다.
4, 5위계 수호자들은, 주로 곤충이나 미물로 의태한다. 상위 존재로 의태할 순 있지만 불완전하여 어떻게든 엘프의 흔적이 남았다.
3위계 수호자들은, 주로 평범한 야수나 자연물로 의태한다. 세계수에 가까이 있으면 비범한 존재로의 의태도 일시적으론 가능했다.
2위계 수호자들은, 주로 흉악한 맹수나 고강한 자연물로 의태한다. 막대한 힘을 다루지만 그만큼 ‘자연화’의 위험도 커지는 단계였다.
그리고 1위계 수호자들은, 주로 시체로 의태했다.
패래래래랙, 쩌거거거걱 – !
“커헉!”
– 구워어어어어억!
방금 전, 2명의 1위계 수호자들이 또 동관들을 따라 시체로 의태했다.
그들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다. 불가항력으로 날아드는 도끼날과 칼날에 의한 타의적인 의태였다. 그래도 현재 1위계 수호자들이 가장 많이 취한 형태이니, 주로 취하는 의태란 말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사달이 벌어지게 된 원인은, 그들이 한 야만인을 기만한 탓. 그리고 그 야만인, 카딤이 세계수를 오르며 이러한 원칙을 세운 탓이었다.
비키는 놈은, 굳이 죽이지 않는다.
“허헉! 사, 살려주십시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비키지 않는 놈은, 되도록 죽인다.
“무엄하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난동을…… 끄억!”
1위계 수호자라면, 무조건 대가리를 터뜨린다.
“네ㄴ…….”
퍼거걱 – !
“……끄으아아아아악!!”
꽤나 강력한 놈들도 간간이 마주쳤지만, 그럴 땐 악마의 피를 마시거나 신기를 불러내면 그만이었다. 그 어떤 수호자도 버프를 두르고 날뛰는 광전사를 막아내진 못했다. 칼과 도끼가 최고위 드루이드들의 피를 양껏 들이키며 짙붉은 빛깔로 달아올랐다.
망토를 쓰고 은신한 던컨의 조력 역시 쏠쏠한 편이었다. 야만인이 멀리 갔다고 방심하거나, 배후에서 활을 쏘려던 수호자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투명한 칼날에 숨통을 끊기기 일쑤였다.
“뒤, 뒤져랏, 시발!”
쩌 – 걱!
“크헉!”
결정적인 보조까진 아니더라도 시간 절약에는 큰 도움이 됐다. 덕택에 카딤은 발 묶이는 일 없이, 약속을 어긴 수호자들의 대가리를 줄줄이 깨부수며 파죽지세로 세계수를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높이 올라왔을 즈음,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허억, 허억……. 어떡합니까, 나으리? 여기서부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만…….”
“…….”
내부가 개미굴처럼 복잡해져 길을 찾기 힘들어졌단 것.
지금까진 수호자들을 겁박하여 올라가는 길을 물었지만, 여긴 인적도 드물었다. 하필이면 세계수의 내부인지라 벽과 천장을 부수며 가기도 힘들었다. 잔가지를 끊거나 흠집을 내는 정돈 가능해도, 저 초월적으로 단단한 목재를 겹겹이 꿰뚫을 순 없었으니…….
다행히도 머지않아 주변에서 인기척을 포착했다.
뜻밖에도 얼마 전까지 일행의 일원이었던 자였다. 상급자에게 면박을 당하고 쫓겨난 소년 드루이드, 파르네오.
“대, 대 드루이드님……? 그리고 친우분……?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 세상에, 어머니 세계수시여! 그, 그 피는 다 무엇입니까?”
“…….”
“…….”
비록 이전처럼 우호적인 협조를 바라기엔 곤란한 상황이 됐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카딤은 도끼날에 묻은 피를 쓸어내곤, 멜리사가 있는 쪽으로 안내하라고 명했다.
파르네오도 바보는 아니었다. 이미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 알아챈 낌새. 주먹을 꾹 쥐고, 눈초리를 파르르 떨며,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을 번민하다가.
“……알겠습니다. 일단 두 분 다 절 따라오시지요.”
어렵사리 명을 수락했다. 심란한 표정으로 앞장서는 소년 드루이드. 피칠갑을 한 전사와 행상인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파르네오가 안내한 방향은 올바른 길이 아니었다.
길 끝에 음험한 굴혈이 나타났다. 시커멓게 벌어진 입구 너머로 독 이끼와 가시덩굴이 난잡하게 우거져 있었다. 누가 봐도 사람이 지나가라고 만든 장소는 절대 아니었다.
카딤은 슬며시 뇌격을 들어 올렸다.
“……그래, 네놈도 결국은 귀쟁이라는 건가.”
“…….”
성난 도끼날이 쇄도하기 직전, 파르네오는 무릎 꿇고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속여서 죄송합니다, 대 드루이드님! 그렇지만 제가 드루이드 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한 건 아닙니다! 지금이 아니면 도무지 기회가 없을 듯하여, 불가피하게 이런 식으로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
“이곳, 유폐처에는 제 친우가 한 명 갇혀있습니다! 분망하신 와중에 정말로 염치없습니다만…… 부디, 제 친우를 구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힘만으로 탈출시키려 노력해봤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만일 도와주신다면, 이후엔 반드시 원하는 곳으로 안내해드릴 테니…….”
카딤은 눈살을 찌푸렸다. 함정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안내해 준 것도 아니었다. 곧바로 도끼를 던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도낏자루를 내려놓지도 않았다.
불편하게 흐르는 침묵.
던컨은 미적미적 분위기를 살피던 중, 문득 왜 이런 곳에 수호자의 친우가 갇혀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조심스레 그 연유에 대해 물어보자, 파르네오가 착잡하게 답했다.
“아마도 그건, 제 친우가 다크 엘프…… 어머니 세계수 대신 ‘잊힌 신’을 모시길 택한 엘프이기 때문일 겁니다. 다크 엘프들은 모두 배교자라 해서 저희들에게 심하게 배척받고 있거든요…….”
번뜩, 카딤의 눈동자에 예리한 빛살이 스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