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뜻밖의 재회 (4)
멜리사는 어딘가로 떠나 자릴 비운 상태. ‘영원한 꿈의 홀’에는 음습한 고요만이 감돌았다.
카딤은 던컨과 함께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떻게 자신을 찾았냐고 묻자, 던컨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으리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해서 홀 안을 들여다봤는데, 마침 대마법사가 부재해 내부로 잠입할 수 있었고, 중앙의 커다란 구슬에서 나으리의 모습을 발견해서 그 표면을 건드렸더니…….
“……갑자기 수면처럼 물결이 퍼지면서, 히끅, 거기로 이렇게 나으리께서 빠져나오시게 된 것입죠…….”
“그랬군. 잘했다, 던컨. 이번엔 네게 정말 큰 빚을 졌군. 훗날 무기를 벼려주는 것 외에도 반드시 큰 보상을 주도록 하지.”
“후우, 예에…… 가, 감사합니다요, 나으리……. 히끅.”
한데 던컨은 기쁨도 제대로 내색 못할 정도로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 연유를 묻자,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애처롭게 말했다.
“그, 나아으리……. 제가…… 헛것을 본 걸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
“아무래도, 제가…… 그…… 히끅, 지, ‘지옥’을 본 것 같습니다.”
“……뭐?”
“예에, 그, 믿기 힘드시겠지만……. 제가, 제가, 나으리의 명을 따라, 끅, 세계수의 뿌리 끝에 올라갔단 말입죠?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겨우, 그 끄트머리에 다다랐더니…….”
세상 끝까지 잔금이 퍼진 거대한 균열, 그리고 그걸 틀어막은 세계수의 뿌리만 해도 충분히 심신을 압도당할 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영혼을 불쏘시개처럼 살라 버리는 진정한 마경(魔境)은 균열 너머에 있었다.
오감이 나락처럼 깜깜해졌다가, 겨우 시야만을 튼 던컨은 보게 되었다.
“들어가길 거부한 자들은 온몸의 구멍으로 벌레들을 쏟아냈습니다……. 살가죽을 벗겨진 어미들이 다리 잃은 자식들을 업고 기어갔습니다……. 이빨과 창자로만 이루어진 괴물이 인간의 머리를 콩알처럼 떼어먹었습니다……. 지독한 유황 냄새를 풍기는 불 구덩이에 쏟아진 인간들은, 고름과 수포로 이루어진 가죽 주머니가 되어 터져버렸습니다…….”
살벌한 증언이 봇물처럼 흘러나왔다. 말하면 말할수록 넋이 흐릿해졌다. 동공이 초점을 잃고 극심한 공포가 피어올라 뇌리를 잠식했다.
“그곳엔 악마들, 기괴망측한 악마들이 들끓었습니다……! 황야의 모래알처럼, 굶주린 불개미떼처럼,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악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도 아니었습니다……! 불타는 시체들의 산맥, 핏물을 한순간에 붉은 증기로 증발시키는 불 구덩이의 언덕을 넘어가면…….”
“[오오, 뭇 생명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두려워할지어다! 인간의 파멸과 죽음이 구더기와 뼈가 들끓는 하얀 골짜기로부터 오는도다! 어둠을 삼키는 별이 부서진 혼령의 파편을 찾고, 대적자의 부작(斧斫)이 산산이 깨어지는 날, 이 땅 위에 다시금 거악이 도래할지어니……! 마툼, 게헨나, 마툼, 골가타, 마툼, 그리…….]”
엄습하는 뺨따귀가 무아경의 간증을 멎게 했다.
철썩 – !
“……허억!”
턱뼈가 돌아가는 충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퉁퉁 부은 뺨을 움켜쥐는 던컨. 카딤이 거듭 뺨을 때릴 것처럼 손을 쳐들자, 기겁하여 움츠렸다.
“흐억! 왜, 왜 그러십니까요, 나으리!”
“……정신이 좀 드나? 계속 말하게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예? 제, 제가 방금 무슨 말을 했습니까요?”
“악마에 홀린 놈들이 하는 것과 비슷한 헛소리를 지껄였다. 아무래도, 그곳에 대해선 더 이상 떠올리지 않는 게 좋겠군.”
“헉, 허억, 예에…….”
그나마 카딤의 피를 전해받아 마기에 대한 저항이 있어 이 정도로 끝난 것이었다. 만일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풍경을 보는 순간 바로 미치거나 홀려버렸을 터.
하여간 반응을 보아하니, 방금 들은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딤의 내면에 맹렬한 파랑이 일었다.
행상인이 목격한 건 단순히 끔찍한 살풍경이 아니었다.
‘온 대륙에 악마들이 창궐한 이유, 그 원흉이 옛 동료들 중 하나라는 히드라의 말, 세상 모든 마나를 고갈시킨 대마법의 정체, 대악마의 창궐에도 꿈쩍 않던 천상의 신이 이 땅에 강림한 원인…….’
그건, 2회차에 생긴 무수한 의문들을 맺음 짓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그리고 그 결과 도출되는 결론은…… 한 가지뿐이었고.
심장이 납덩이를 매달고 추락하는 기분. 아무리 속내를 추슬러도 입매가 굳는 걸 막지 못했다. 던컨이 불안으로 바들바들 떨며 물었다.
“저, 나으리……. 근데 세계수의 뿌리가 벌써 반쯤은 떨어져 나갔던데…… 만일 균열이 무너져, 그 많은 악마들이 모조리 이 세상에 창궐하면 어떡합니까?”
“되도록 그전에 어떻게든 막아야겠지. 아니면…….”
“…….”
“……창궐한 악마 새끼들을 싸그리 다 처죽이든지.”
말문이 막혀 눈만 깜빡거리는 던컨.
이어서 카딤은 멜리사와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정말로 대마법사의 정신이 온전치 않단 걸 깨달은 던컨은, 초주검을 넘어 송장 같은 몰골이 되었다.
그럼에도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두 사람은 일단 세계수를 빠져나가는 걸 목표로 정했다. 대책을 세우든, 대화를 하든, 대거리를 하든, 일단 대마법사의 세력권을 벗어나서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통로를 내려오다 바로 장애물을 맞닥뜨렸다.
철컥, 철컥 –
“어엇, 나으리……? 열리지 않습니다요, 이거?”
겹겹이 잠겨 앞길을 틀어막는 두꺼운 나무 방벽들. 들어왔을 때처럼 고동빛 나무 열쇠를 사용해 봐도 열리지 않았다. 멜리사가 완전히 봉쇄해 놓은 게 틀림없었다.
세계수의 목재로 이루어진 방벽을 몇 겹이나 뚫기는 무리였다. 그래도 어렵잖게 돌파구를 찾았다. 카딤은 바닥 곳곳을 발끝으로 두들겨 보다, 가장 빈 소리가 크게 울리는 부분에 이르러 아탈라의 심판을 꺼내 들었다.
“[투쟁과 황야의 신, 아탈라시여. 당신의 대전사를 굽어살피소서, 횃불을 들어 전장으로 인도하소서…….]”
―――――― 콰과과과가각 – !
황색 잔영을 흩뿌리며 쇄도하는 도끼날, 얄팍한 바닥이 박살 나며 푹 꺼졌다. 카딤은 던컨을 들쳐메고 망설임 없이 구멍 속으로 뛰어내렸다.
뜻밖에도 나타난 장소는 통로가 아니었다.
천장이 반구형의 곡면을 이룬 광활한 공동.
그들이 내려온 지점은 층고가 그럭저럭 낮았으나, 가장 높은 중앙은 20미터는 너끈히 될 만큼 높았다. 그리고 그 자리엔 도통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거대한 구체가 하나 놓여 있었다.
쿠르륵, 쿠르르륵, 쿠륵…….
섬유질의 반투명한 표면 너머로 그득하게 차오른 액체들이 출렁거렸다. 각막이 아릴 정도로 붉은 빛깔, 익숙한 비린 내음이 액체의 정체를 뚜렷이 알리고 있었다.
“허억, 나으리……! 저, 저거 다 피 아닙니까?”
“…….”
피, 족히 수만 명분은 쥐어짜야 나올 법한 막대한 양의 피였다.
자세히 보니, 이 구체는 피를 담은 열매인 ‘생귀스’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그 크기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했지만.
카딤은 흐릿하게 인상을 구겼다. 머릿속에서 또 다른 의문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정황상 이건 엘프들이 바친 피를 모아둔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이게 세계수의 양분으로 활용되는 것 같진 않았다. 정작 그 뿌리는 균열을 틀어막고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다니까.
‘그럼 이것의 용도는 필시…….’
생각을 정리하려고 더 애쓸 필요는 없었다.
어느샌가 만사의 근원이 나타났으니.
“……그새 거길 빠져나왔구나, 카딤.”
“흐어억!!”
“가다가 느낌이 영 싸해서 돌아왔는데, 그러길 잘했네.”
어둠 한구석에서 불그스름한 광채가 명멸했다. 스산한 눈길이 진저리치는 던컨을 응시했다.
“그래, 네가 있는 걸 깜빡했네. 되게 좋았겠다? 그냥 별거 안 하고 ‘세계수의 꿈’을 건드리기만 했는데, 아탈라의 대전사를 구출한 은인도 되어보고…….”
“허억…….”
“그런데 그거, 카딤의 소식을 놓치면 안 되니까 출입을 쉽게 해놓은 거지, 너 같은 쥐새끼가 함부로 누굴 내빼라고 그렇게 해놓은 건 아닌데……?”
“흐억, 흐어어억…….”
일견 장난기 어린 것처럼 보여도, 멜리사의 육성엔 섬찟한 살의가 실려 있었다. 카딤은 던컨을 급히 뒤로 떠밀고, 구리 가면처럼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친구는 건드리지 마라, 멜리사. 그보다, 이 거대한 피 주머니는 무엇이지.”
“…….”
멜리사는 짧게 뜸 들이다 비틀린 조소를 머금고 답했다.
“간단한 문제야, 카딤. 너도 알다시피, 인간이 정해진 수명을 넘어 살아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잖아?”
모를 리가 없었다. 악마와 계약하는 것, 신의 축복을 받는 것, 그리고 엘프의 피를 마시는 것.
“그렇다면 악마를 벌레처럼 혐오하고, 신을 티끌만치도 믿지 않고, 기약 없이 누군가를 오래오래 기다려야만 하는 마법사는…… 어떤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해야 할까?”
“…….”
마치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듯 거리낌 없는 태도. 카딤의 미간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엘프들의 수명이 죄다 짧게 줄어든 것도 저렇게 막대한 피를 뽑아낸 탓인가?”
“응, 뜻밖의 발견이었지. 엘프들이 가진 긴 생명의 근원이 바로 이 피였다니. 마탑에 두고 온 연구 일지가 있었다면, 분명 빼먹지 않고 기록해뒀을 거야.”
“……자책감 따윈 느끼지 않는 건가, 멜리사? 네가 저지른 짓거리는 더러운 악마 새끼들의 악행과도 별 차이가 없다.”
나른했던 눈시울이 부릅 뜨였다.
“아냐!! 달라!!!”
화르르르륵 – !
절규에 가까운 반박이 메아리쳤다. 머리칼 위로 홍염이 일고, 이지를 잃은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나는, 나는, 악마들과는 달라……. 어차피, 어차피…… 저 귀쟁이 놈들에겐 필요 없는 거였다고……. 아무리 수명이 많아 봤자 어차피 다 누리지도 못할 거……. 차라리 나한테 다 바치고, 한시라도 빨리 ‘세계수의 꿈’에 처박히는 편이 저들에게도 좋은 일…….”
“엘프들이 제명을 못 누릴 거라는 걸, 네가 어떻게 알지.”
그 말에 다시 한번 분위기가 돌변했다.
멜리사는 침묵을 곱씹다, 화장(火葬)을 마친 유골처럼 바스라진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탄내를 머금고 문드러진 혀를 떼어, 음절 하나하나에 그을음처럼 얼룩진 확신을 담아 선언했다.
“이 세계는 곧 멸망할 거야, 카딤.”
“…….”
“…….”
둔중히 내리깔리는 정적.
심연의 기저처럼 공기의 질감이 쓰고 무거워졌다. 흉곽을 찍어누르는 중압감에 감히 심폐를 부풀릴 수조차 없었다.
허황된 종말론 따위가 아니었다. 불확실한 경전의 문구나, 선지자가 흘린 애매한 예언 따위에 의거한 말이 아니었다. 카딤은 저 선언의 근거가 무엇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왜 이곳에 ‘지옥’으로 통하는 균열을 연 거냐, 멜리사.”
무표정한 공백 위로 어그러진 뒤틀림이 떠올랐다.
저지른 만행의 규모에 비해 대답은 간결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
“그냥, 그냥 열었어. 네가 그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어서. 이 세상에 없으니 저세상에라도 가보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열었어.”
카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단순한 사정일 리가 없다는 걸. 저 뒤틀림과 공백 너머에는 틀림없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엉망진창 곪아 터진 이야기가 존재했다.
그러나 멜리사는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마지막 진실만큼은 실토하지 않았다. 아무리 추궁해봐도 모든 게 의도적인 일이었다고, 저 균열이 낳을 여파 따윈 알 바 아니었다고, 거듭 자기 파괴적인 고백만을 일삼을 따름.
카딤은 하릴없이 말을 돌려 균열을 닫을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돌아온 답변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여는 건 내 힘만으로도 가능했지만, 닫는 건 신의 힘으로도 무리더라고. 봐봐, 엘프들의 신이 세계수가 되어 강림했는데도 고작 균열의 중심만을 틀어막는 데 그쳤잖아?”
“…….”
대악마의 창궐에도 거동하지 않았던 천상의 신이 강림한 이유는, 지옥으로 통하는 균열이 열린 탓이었다. 지옥과 현세가 완전히 이어지면 어떻게 손 쓸 틈도 없이 세계가 멸망했을 테니.
온 대륙에 악마의 창궐이 일어난 이유도, 미처 막지 못한 균열로 악마들이 빠져나온 탓이었다. 아무리 세계수가 거대하다 해도 세상 끝까지 뻗은 잔금까지 말끔히 봉쇄하긴 무리였으니.
그나마 가장 위험한 중심만큼은 뿌리로 단단히 옥죄고 틀어막았으나…….
“……이젠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지. 뭐, 강림하며 훼손된 신체와 신격으로 이만큼이나 버틴 것도 용하지만. 세계수의 뿌리가 다 떨어져 나가고, 균열의 중심이 열리면…… 지옥의 악마들이 모조리 도래하는 ‘대창궐’이 일어날 거야. 현세에서 죽은 악마들은 지옥으로 되돌아갈 뿐이니, 그때부턴 아무리 많은 악마들을 잡아 죽여도 무의미하겠지.”
“…….”
“그러니까, 이 세계의 멸망은 확정적인 일이야, 카딤. 그 하인을 애써 그렇게 피신시켜 봤자 결국은 무의미한 짓이라고.”
몰래 공동을 빠져나가던 던컨이 움찔, 멈춰 섰다. 카딤이 아랑곳 않고 어서 가라고 재촉하자 엉금엉금 내달려 사라졌다. 멜리사는 굳이 그쪽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수의 꿈’은 달라. 이 세계가 멸망해도 세계수의 꿈만큼은 내가 지킬 수 있어. 비축해 둔 엘프의 피를 활용하면 수명 걱정도 없고. 그러니까 카딤, 너는 반드시 나와 함께 그곳에 머물러야 해.”
“그러면, 이 세계에 남겨질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할 거지.”
불긋한 홍채에 동요가 일었으나, 물결처럼 덧없이 가라앉았다. 카딤은 준엄하게 질문을 되풀이했다.
“시릴과, 고든과, 게일은, 어떻게 할 거지.”
“……원한다면 기억과 똑같이 재현해서 만들어줄게. 아니, 오히려 잘 됐지. 설령 이 세계에서 이미 죽었다 해도, 세계수의 꿈에서만큼은 되살릴 수 있으니까.”
그 말이 카딤의 심장에 쐐기를 박았다.
차게 식은 눈길을 보내며 짓씹어 뱉듯이 뇌까렸다.
“너는 멜리사가 아니로군.”
“……뭐?”
“내가 아는 멜리사는, 까칠하게 굴면서도 속으론 누구보다 동료들을 아끼는 소녀였다. 자신의 기록에 매 페이지마다 포기하고 싶단 문장을 새기면서도, 끝까지 포기 않고 세상을 구원한 소녀였다. 제 손으로 일으킨 참사를 외면하며 달아나고, 제 동료들을 허깨비로 갈아치우는 비겁자가 아니라.”
“…….”
쇠락한 낯에 번지는 쓴웃음, 메마른 응답이 이어졌다.
“응, 그 소녀는 죽었어. 300년 전, 끔찍한 고난을 견디는 이유였던 사내가 말 한마디 없이 떠난 바로 그 순간에.”
“…….”
“하지만 남겨진 여인은 300년간 악착같이 살아남아…… 돌아온 사내를 능히 쥐락펴락할 힘을 갖게 되었지.”
구우웅 ――――――
광범위한 왜곡이 배경을 집어삼켰다. 반구형의 은신처를 둘러싸고 먼지 한 톨 못 빠져나가게 퇴로를 봉쇄했다.
―――――――― 화르르르르르륵 – !!
온 천지에 열기가 끓어올랐다. 몰아치는 화염의 폭풍, 태양처럼 떠오르는 화염구. 동시 발현된 무수한 마법진이 심야의 어둠마저 초개처럼 살라버릴 화마를 불러들였다.
“이제부터 네 의사는 신경 쓰지 않겠어, 카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강제로라도…… 네 몸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고, 영원히 ‘세계수의 꿈’ 속에서 살게 해줄게.”
카딤은 굴하지 않고 아탈라의 심판을 꾹 쥐어들었다.
“죽은 게 아니다, 그 소녀는.”
“……?”
“산더미 같은 고통과 절망에 파묻혀 뒤틀리고 오염된 거지. 도끼질로 더께를 거둬내면 조금이나마 제 모습을 되찾을 거다.”
타오르는 아미가 꿈틀, 경련했다.
“그 도끼 내려놔, 카딤. 꿈속이 아니라 해도 네게 승산은 없어. 네 힘만으론 절대 나에게 대적 못 해.”
“물론, ‘지금’ 내 힘만으론 힘들겠지.”
“……?”
“그렇지만, 네가 익히 기억하고 있는 ‘그때’라면 어떨까.”
멜리사가 의혹이 깃든 시선을 보내는 찰나.
카딤은 ‘페빌라투스의 문신’을 발동했다.
핑그르르르르 –
청색의 회중시계를 쥐고 거꾸로 흔들자, 도래하는 파멸의 신영. 전신의 근육이 기암괴석처럼 부풀어 올랐다. 서늘한 중압감이 만연한 폭염을 찍어눌렀다.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던 전투의 형세에 단숨에 경종을 울렸다.
1회차의 광전사는 무정한 재회의 인사말을 건넸다.
“……네 골통을 쪼개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주마, 멜리사.”
“…….”
――――― 콰과과과과과과과 – !!!
멜리사는 폭발하는 분노와 애증으로 영혼을 불태우며, 일거에 마법을 쏟아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