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세상을 사르는 겁화 (3)
그 화염구들을 지켜보는 동안, 카딤은 ‘태양’을 떠올렸다.
이 게임 속 세상의 태양이 아닌 현실의 태양. 그러니까 세상을 관음하는 엘가의 눈깔이 아닌, 태양계의 모항성인 태양을.
멀리서 보면, 그건 환한 빛 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건 이글거리는 불덩어리에 가깝다.
이 화염구들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말이 좋아 화염구지, 가장 작은 것도 직경이 5미터는 너끈히 넘다 보니 거리를 두고 보면 항성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다만 한 가지 크나큰 차이점이 있다면……
―――― 화르르륵, 화르르륵, 화르르르륵 – !!
……이 빌어먹을 태양들은 지나치게 많이 떠올랐고, 자신들을 집요하게 노리며 날아들고 있다는 것.
불타는 구체들에 닿기 직전, 라퓨스트란이 날개를 틀었다.
후우우우우우웅 –
네댓 개의 거대 화염구가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큰 희소식이라곤 할 수 없었다. 앞선 경로에는 더 많은 구체가 있었고, 그나마 비껴간 것들도 방향을 틀어 되돌아오고 있었으니.
―――― 화르르륵, 화르르륵 – !
‘……빌어먹을, 유도탄이었던가.’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저 성난 불덩어리에 에워싸이는 꼴을 면하려면, 결국 일일이 터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잠깐 실례하지.”
콰각!
양발을 비늘 틈새에 단단히 처박아 고정했다. 양손의 자유를 확보한 후, 뇌격에 벼락을 점화하여 내던지는 카딤.
번쩍 – !
―――――― 콰과과과과광 – !!!
창연한 섬광이 불타는 구체에 직격하여 더 큰 섬광을 터뜨렸다. 푸른 뇌전과 붉은 불티가 뒤얽혀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이는 사이, 폭발을 일으킨 공이는 다급한 비행을 펼쳐 주인에게 되돌아왔다.
카딤은 한 번 더 벼락을 점화하여 내던졌다.
번쩍 – !
―――――― 콰과광, 콰과과광 – !!!
이번엔 도끼가 구체를 관통하여 두 개를 동시에 제거했다. 그러나 ‘뇌전’ 효과를 전부 소모했으니, 계속 뇌격을 써먹긴 어려울 터. 지체 없이 회수하고 아탈라의 심판으로 무기를 바꿔 들었다.
드래곤도 가만 있진 않았다. 일부러 화염구가 뭉친 구역으로 나아가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라 – 칼 – 페 – 타 – 하 – !!!!]”
―――――― 쩌저저저저정 – !
굉렬한 충격파가 대기층을 온전히 제 울림판으로 삼아 퍼져나갔다. 무려 스무 개에 이르는 화염구가 일거에 그 파장에 휘말려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 콰광, 콰과광, 콰광, 콰과과과 – !!
용언(龍言)은 드래곤의 의지를 발현하는 외침.
뜻 없는 포효로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특정한 효과를 기원하는 고대 문자를 외치면 그 위력이 수 배로 증폭된다. 전력을 발휘한 드래곤의 용언은 고작 용인이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라퓨스트란이 푸륵, 거방진 콧숨을 내쉬었다.
– 보아라, 투신의 졸개여. 이것이 본룡이 발하는 ‘용언’의 진정한 위력이다. 네놈의 어쭙잖은 벼락 장난과 비교해 봤을 때,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은 것 같더냐?
“……두 번 들었다간 귀청 떨어지겠군. 꽤나 요란뻑적지근한 푸스로다였어.”
– 무슨 소리지. 그런 용언은 사용한 적 없다만.
“아니, 아니다……. 남은 불덩이나 정리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지.”
카딤은 기도문을 읊고 아탈라의 신기를 불러들였다.
“[투쟁과 황야의 신, 아탈라시여. 당신의 대전사를 굽어살피소서, 횃불을 들어 전장으로 인도하소서…….]”
흩날리는 운무를 추려 도끼날에 응집, 허공에 싯누런 참격을 날렸다.
―――――― 서 – 겅, 서 – 겅!
뇌격보다 거리는 짧아도 위력은 더 나았다. 범위에 들어온 화염구들은 반 토막 나는 꼴을 면치 못했다.
드래곤도 회피 기동을 펼치며 화염구의 제거를 거들었다. 워낙 개수가 많아 구체 몇 개가 몸통에 직격했으나, 피해는 거의 없었다. 고작 비늘에 살짝 검댕이 묻은 정도. 터럭만 한 피해도 안 입는단 게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 콰과과광 – !!
―――― 콰과광, 콰과과과광 – !!
드래곤과 전사의 분투에 힘입어, 별처럼 가득 떠올라 있던 거대 화염구는 금세 거의 다 자취를 감췄다. 그에 더해, 목적지인 세계수도 이젠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난관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 쿠르륵, 쿠르르르륵 – !
지옥불의 정령, 인페르노.
침입자를 포착한 거인이 사납게 분노를 불태웠다. 눈구멍에선 지옥불이 넘실거렸고, 입가에선 독한 연기가 치솟았다.
그러잖아도 태산처럼 큰 놈들이건만, 눈앞의 녀석은 유달리 더 덩치가 컸다. 팔을 뻗으면 높이가 거의 세계수의 중층부에 이를 정도. 육신에 두른 화력도 남들의 서너 배는 되어 보였고, 심지어 하체가 먹구름처럼 되어 있어 허공을 둥둥 떠다니기까지 했다.
– 쿠르륵! 쿠호오오오오오 – !!
짙붉게 타오르는 재앙의 화신이 세계수로 이어지는 항로를 가로막았다. 그 시야를 가득 메우는 적신호를 보며 카딤은 쯧, 혀를 찼다.
“멜리사가 작정하고 마나를 퍼부어 수문장을 만들어놨군. 무시하고 지나가긴 힘들어 보이는데…… 저거, 어떻게 할 수 있겠나, 드래곤.”
– ……감히 본룡에게,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물은 것이더냐?
“…….”
– 설마 저까짓 잔챙이 따위가, 본룡에게 생채기라도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더냐?
드래곤은 횡으로 갈라진 동공을 선뜩하게 치떴다.
그러곤 설명 대신, 행동으로 자신의 말을 증명했다.
――――― 뻐 – 억!!
섬광처럼 휘둘러지는 앞발. 불타오르던 거인의 머리가 한 찰나에 증발했다.
원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사건의 규모에 비해 인과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저 멀리 날아가는 둥근 불덩이만이 상황의 유일한 증거였다.
목을 잃은 인페르노가 다급히 드래곤을 부여잡으려 했으나, 한발 늦은 발악이었다. 줄벼락처럼 떨어지는 발톱이 먼저 불타는 양팔을 끊어냈다.
쿠르르륵! 화륵, 화르르르…….
절단된 단면으로 응어리진 불티가 용암 폭포처럼 철철 흘러내렸다. 그 출혈을 잠재울 틈도 없이, 이번엔 드래곤이 뒷발로 가슴팍을 움켜쥐곤 육중하게 짓눌러 급강하했다.
―――――― 쩌 – 엉!! 콰과과과과과광 – !!
격동하는 지축, 굉발하는 화염.
잿더미가 된 숲에 거대한 분화구가 생겨났다. 그 중앙에 처박힌 인페르노는 말 그대로 육신이 산산이 폭발해 형체도 남지 않게 되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쇠잔한 연기만이 살기등등했던 수문장의 마지막 잔해였다.
승패는 진작 가려졌거늘, 드래곤은 사소한 불씨조차 남기지 않았다.
―――――――― 콰과과과과과과 – !!!
폭발하는 황금의 숨결이 남은 연기마저 말끔히 소거해버렸다. 여지없이 인페르노를 압살한 후, 라퓨스트란이 잿가루 한 톨 안 남은 땅바닥을 눈짓하며 으스댔다.
– 똑똑히 보았느냐, 투신의 졸개여? 본룡이 왜 ‘살아 숨쉬는 파멸’이라 불렸는지 이제야 좀 알겠더냐? 본룡과 네놈의 격차가 천양지판으로 크다는 걸 이제야 좀 가늠하겠더냐?
안타깝게도 카딤은 드래곤이 기대하던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비스듬히 턱을 쓸며 이렇게 읊조렸을 뿐.
“……황금 땅딸이도마뱀붙이에서, ‘땅딸이’ 정돈 빼줘도 되겠군.”
– …….
황금 도마뱀붙이는 똥 씹은 표정을 하곤 콧잔등을 팍 찡그렸다.
*
결과적으로, 지옥불에 맞불을 놓는 건 지극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무리 강대한 존재라도 먹잇감이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하는 법. 물줄기를 퍼부어도 안 꺼지던 그악스러운 지옥불은, 맞불을 놓아 전소된 구역에 이르자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더구나 인페르노들도 최대한 넓게 숲을 태우려고 하고 있다 보니 진작 불탄 곳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탈환조는 안전하게 헤실리아드로 정면돌파 가능한 침투로를 얻었다.
이 성과의 일등공신은 말할 것도 없이 홀로 불장난을 하던 행상인이었다. 레밀리온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등짝을 연신 퍽퍽 두들겼다.
“하하하하! 자네, 아주 큰일을 해줬네! 둥지에서 기절했을 때만 해도 그냥 겁쟁이 샌님인 줄 알았더니, 아주 기막힌 꾀주머니를 갖고 있었구만!”
“억, 어억! 흠흠, 크흠…… 아, 아닙니다요. 언제나 최고의 길을 찾는 ‘최고의 길잡이’에겐 이 정돈 뭐, 그냥 일상적인 일입니다만, 험험…….”
“하하하, 자신감도 넘치는 게 아주 사나이답고 보기 좋군! 자네는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했지?”
“던컨, 던컨 휠레드입니다, 레밀리온 님!”
던컨은 간만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딴짓한다고 불호령을 들을 줄 알았는데, 무려 전설적인 전략가인 황금의 맹주에게 인정받다니! 카딤에게 인정받을 때와는 또 다른 방향의 충족감이 내면에서 홍수처럼 흘러넘쳤다.
그 기분이 그리 오래 가진 못했지만.
“그래, 그래, 던컨 공! 아무쪼록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한번 말해보게나. 내, 나중에 힘이 닿는대로 무슨 일이든 도와줄 테니!”
“그, 그러면 혹시…… 나중에 드래곤을 설득해서, 그 둥지에 있는 보물을 조금만 가져가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요?”
“흐음…… 글쎄, 다른 소원은 없나? 그게 그 친구에겐 꽤나 중요한 것들이라 말이지.”
“그,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요. 딱 이 가방이 가득 찰 만큼만 담아갈 테니…….”
“……그거, 잊힌 신의 힘이 깃든 가방 아닌가? 우리 측의 다크 엘프 몇몇도 비슷한 걸 갖고 있네만.”
“…….”
탈환조는 영 어색한 분위기 속에 헤실리아드를 향해 출발했다
백여 명에 이르는 인파가 녹음 대신 재와 숯만이 가득한 숲에 들어섰다. 큰 위험을 덜어냈음에도 다크 엘프들의 면면에는 금세 착잡한 빛이 서렸다. 폐허가 된 고향의 광경이 마음에 그늘을 드리웠기에.
세계수를 등졌다 해도 아직 그들에겐 수목을 아끼는 옛 동족의 본성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신속히 진격해야 남은 숲을 지켜낼 거란 레밀리온의 독려와, 세계수의 힘으로 숲도 복원할 거란 릴리아의 약속 덕에 정신을 차렸다. 작전은 이제 시작했을 뿐, 마음을 느슨하게 먹어선 안 됐다.
침투로가 바뀌었다 해도 작전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혹시 모를 위협을 감지하고 멜리사의 감시를 교란하기 위해 탈환조는 일정 거리를 나아갈 때마다 분대를 나누고 산개하여 나아갔다.
릴리아가 소속된 핵심 분대에는 레밀리온이 동행했다. 중책을 맡은 만큼, 그는 자신과 일행들의 갑옷에 잿가루를 퍼 발라 시인성을 낮추는 등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파르네오는 몇몇 다크 엘프들과 동행했고, 남은 자들은 어제 분대 편성을 마친 대로 동행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던컨은……
“가시죠, 던컨 님.”
“엇, 어어, 예…….”
……이젠 고고학자가 아니란 걸 확실히 알게 된, 일레니아와 동행하게 되었다.
던컨은 속이 얹힐 것 같았다. ‘인벤토리’는 이전에 이 잊힌 신의 사제가 만들어 준 물건, 그걸로 헛수작을 부리던 걸 들켜서 그런지 어째 이쪽을 보는 시선이 다소 싸늘해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것 말고도 켕기는 일이 하나 더 있었고…….
“……혹시 예전에 제가 취했을 때 가방 뒤졌던 것도, 뭔가 돈 될 만한 물건을 찾으시려고 그런 거였나요?”
“흐억! 아, 아, 아, 아닙니다요! 그, 그건 전부 다 나으리께서 시키셔서 그런 거…….”
“아, 이젠 자리에 없다고 막 카딤 님도 팔아먹으시고……. 예, 슬슬 알 것 같습니다. 던컨 님이 어떤 분이신지.”
“…….”
던컨은 이 순간, 드래곤을 타고 먼저 떠난 야만인이 진심으로 그리워졌다.
물론 가볍게 곯려 먹은 것일 뿐, 일레니아가 진심으로 던컨에게 악감정을 가진 건 아니었다. 카딤이 지시한 건 알고 있었다고, 그 문제는 벌써 원만하게 해결했다고, 맞불을 놓는 발상은 썩 괜찮은 제안이었다고, 적당히 수습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었다.
던컨은 십년감수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저만 보면 기이하다고 말하는 다크 엘프들보단 이 면식이 있는 여인과 동행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그리 오래 가진 못했지만.
– 쿠르르륵, 쿠르르르…….
“…….”
“…….”
“…….”
“……그, 아가씨? 우리 큰일 난 거 맞지요?”
일레니아는 구구절절 답하는 대신, 굳은 표정과 짧은 끄덕임, 신속한 줄행랑으로 답했다.
– 쿠호오오오오오 – !!
“흐억, 흐아아아아아!!!”
던컨은 황급히 그녀의 뒤를 쫓아, 맥락 없이 나타난 인페르노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허둥지둥 내달렸다.
*
반파된 세계수 뿌리목의 외부.
찬란하게 창공을 가르던 황금빛 거수가 벼랑 끝을 움켜쥐고 착륙했다.
콰 – 앙!!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사분히 그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장 150년 만에 이루어진, ‘최후의 드래곤’과 ‘지옥에서 되돌아온 대마법사’의 해후.
– …….
“…….”
라퓨스트란의 눈동자가 광염을 품고 이글거렸다. 만물의 숨통을 옥죄고 힘줄을 끊어버리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공기를 찍어눌렀다. 그러나 멜리사에겐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저 태연자약하게 옆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을 따름.
“간만이네, 드래곤. 준비해 둔 선물들은 어디, 마음에 좀 들었나 몰라.”
– 성냥불만도 못한 선물이더구나, 하잘것없는 미물아. 본룡의 거체에 흠집을 내려거든 지옥의 가장 깊은 불꽃 정돈 끌어 왔어야지.
“흐흥, 둥지에 처박혀 있는 동안 혓바닥은 안 썩었나 보네. 그보다, 꽤나 깜찍한 꼼수를 부렸더라? 저거, 까만 거 뭐야? 하늘에 뭘 깔아둔 거야?”
– ……온전히 본룡의 저력을 발휘하기 위한 안배일 뿐이다. 저번처럼 엘가의 훼방이 끼어드는 요행 따윈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벌레만도 못한 것아.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기껏 둥지 밖으로 나와놓고 또 이렇게 음침하게 있겠다고? 간만에 외출한 걸 텐데 햇빛도 좀 쬐고 그래야지?”
――――― 화르르르륵 – !!
여인의 손 위에 새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드래곤에겐 그것이 연홍빛으로 보였다. 저 불꽃은 앞서 보았던 불꽃들과 달리 어느 정도 ‘위험’하다는 뜻.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진 않았지?”
– …….
“입 닥치고 카딤이나 내어놓은 다음 꺼지라는 거다, 파충류. 저 암막을 싸그리 불태우고 네놈을 태양의 땔감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멜리사가 정색하며 뇌까렸다.
한순간, 라퓨스트란의 눈에 희미한 두려움이 스몄으나.
촌각도 지나지 않아 말끔히 가라앉았다.
– ……파충류라, 도마뱀붙이보단 좀 나은 것 같은데.
―――― 화르르르륵 – !!
휘우우우웅 – !!
즉각 새하얀 불꽃이 투사됐으나, 드래곤의 세찬 날갯짓이 불길을 도중에 흩어버렸다. 멜리사는 날카로운 눈매로 거룡을 쏘아보며 마나의 감지망을 퍼뜨렸다.
“아무리 그렇게 꽁꽁 숨겨 봤자 헛수고야. 어차피 네놈이 카딤이랑 같이 온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지옥에 처박혀 있는 동안 혼자 망상하던 버릇이 도진 게냐?
“아, 그래. 맞은 지가 오래돼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잊어버렸다고? 알았어, 조금만 기다리면 ‘천벌’이 어떤 느낌인지 다시 깨닫게 해줄…….”
독기에 차 중얼거리던 멜리사가 돌연 우뚝 멈춰 섰다.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던 감지망 끝자락에 이물감이 닿았다. 까드득, 뻣뻣하게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뒤늦게 짙은 운무에 에워싸인 세계수의 뿌리 사이, 위태롭게 그것들을 타고 오르며 ‘균열’로 다가가는 얼룩을 발견했다.
“뭐야……? 왜 카딤이 저기에 있…….”
그 이유를 차근차근 따져볼 여유는 없었다.
―――――――― 콰과과과과과과 – !!!
라퓨스트란은 폭발하는 숨결을 신호탄 삼아, 본격적인 설욕전의 개막을 선포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