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꽃 (5)
규격 외의 이적인, 신의 권능과 드래곤의 숨결 정도를 제외한다면.
단언컨대, 세상 모든 불 중 가장 파괴적인 불은 ‘지옥불’이다.
게헨나의 불꽃, 골가타의 불꽃, 그리모스의 불꽃……. 셋 다 지상의 평범한 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을 자랑했다. 가장 약한 ‘게헨나의 불꽃’마저도 인간이 전력을 다해 피운 불의 열기를 거뜬히 뛰어넘을 정도.
하물며 가장 깊은 심연의 지옥불, ‘그리모스의 불꽃’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건, 거진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한 궁극의 불꽃이었다. 지옥의 최심부, ‘그리모스’는 어지간한 악마들도 들어가길 꺼리는 복마전. 산 자들이 그곳의 불을 볼 기회가 있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그리모스’에 머무는 고강한 악마들조차 그 검은 불꽃을 위험하게 여겨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이 ‘그리모스의 불꽃’을 다루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오직 한 명, 유일한 예외가 존재했다.
지옥의 심연에서 직접 그 불꽃을 대면하고 재현해낸 ‘대마법사’.
오랜 시행착오 끝에 재현에 성공한 이후, ‘그리모스의 불꽃’은 멜리사가 지닌 가장 매서운 비수가 되었다. 그 불꽃으로 지옥에서 소멸시킨 악마들만 물경 네 자릿수. 막강한 권능을 지닌 고위 악마조차도 일단 불에 닿으면 속수무책으로 전소되기 일쑤였다.
그러니까 이 불꽃은, 드래곤의 용언 정도가 아니면 단 한 번도 가로막힌 적이 없는, 방어나 파훼를 불허하는 궁극의 불꽃이었는데.
그랬는데.
쿠후우우…….
그 흑염이, 또 한 번 간단히 소거당했다.
―――― 쿠과과과과광 – !!
막히거나, 흩어지거나, 왜곡되거나, 굳어버린 게 아니었다, 그리모스의 불꽃은 주홍빛 불꽃에 의해 정확히 ‘소거’당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불꽃이 불꽃에 불타다니? 그것도, 존재를 소멸시키는 지옥불이 같은 불꽃에 불타다니? 세상에 지옥불보다 파괴적인 불은 없다는 상식이 무참히 박살 나고 있었다.
멜리사가 깊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곤 살아 날뛰는 화마처럼 변한 전사를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불은 대체 무슨…….”
“[네가 한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육신에 담긴 연료로 불을 피웠지.]”
카딤은 예사로운 투로 답했다. 발음에 불길이 섞여 언성이 웅혼하게 울렸다. 그 모습은 얼핏 봐선 숨결을 토하는 드래곤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아니, 그거…… 그냥 불꽃이 아니잖아? 어떻게…… ‘그리모스의 불꽃’을 없애버릴 수가…….”
써 – 겅!
단호히 말을 끊는 참격, 일직선으로 쇄도하는 폭발.
――――――― 콰과과과광 – !!
워낙 급작스런 공격이었던 지라 피하질 못했다. 멜리사는 몰려드는 불길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옛 조언을 잊은 건가. 현혹하려는 게 아니면, 적에겐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
멜리사가 입술을 터져라 질끈 깨물었다. 불현듯 날아든 옛 동료의 문책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이유.
화르르륵 – !
저 ‘피의 불꽃’은, ‘마나의 가호’마저 무시하고 외상을 입혔다.
엄밀히 따지면 무시한다고 보긴 어려웠다. 대부분의 피해가 마나 소모로 경감되긴 했으니. 하지만 ‘마나의 가호’가 미량이라도 꿰뚫린 게 전례가 없는 일인 데다, 원체 불의 화력이 강해 아주 조금만으로도 충분히 치명적이란 게 문제였다.
‘그 드래곤의 숨결까지도 다 마나로 막아냈는데……. 세상에 무슨 저딴 불꽃이…….’
화염 제어 마법으로도 통제가 되질 않았다. 하릴없이 몸에 붙은 불을 끄려면 공간 자체를 분리해 덜어내야만 했다. 그새 쪼그라들고 껍질이 벗겨진 피부, 얼마 만에 겪는지 모를 작열통을 이를 악물고 삭였다.
써 – 겅! 써 – 겅! 써 – 겅!
대처할 시간을 벌기도 어려웠다. 저 불꽃은 일회성의 필살기 따위가 아닌 언제 끝날지 모를 지속 상태였다. 가까스로 한번을 피해도 거듭 폭발이 날아들어, 끝없이 긴장하며 회피 마법을 준비해야만 했다.
―――――― 콰과과과광, 콰과과과광 – !
재현하거나 분석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저 불꽃을 빚어낸 건 투신의 기운과 드래곤의 피. 아무리 화염의 신비에 통달한 대마법사라 한들, 마나만으로 그만한 원료를 쉬이 꿰뚫어 보고 대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여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달아나고만 있었는데.
콰 – 앙!
카딤이 돌연 섬화처럼 뛰어올라 거리를 좁혔다.
뜨겁게 흉곽을 짓누르는 열압. 쫓아내기 위해 면전에 새하얀 지옥불을 쏟아 부었으나 가뿐히 소거되었다. 몸을 에워싼 불길로 지옥불을 삼키며 종축으로 도끼를 휘두르는 카딤. 궤적을 뒤따른 폭발이 저릿하게 멜리사의 복부를 찢어발겼다.
――――――― 콰과과과과 – !!
“흐윽…….”
콰르륵, 후 – 웅!
숨 돌릴 틈도 없었다. 도끼머리의 불꽃이 역추진으로 관성을 통제하여, 휘둘러진 도끼날이 일절의 지연 없이 되돌아왔다.
화륵, 화륵, 화륵, 화르르륵 – !!
멜리사는 다급히 수백 가닥의 불줄기로 도낏자루를 묶었다. 이어서 용암의 해일을 소환하고, 흑염의 장벽을 세우고, 어떻게든 참격을 막으려 분투했지만……
――――――― 쩌저저저적, 콰과과과과과광 – !
……소용없었다. 카딤은 이번에도 단 한 획의 일섬으로 모든 불의 견제를 소거해버렸다.
써 – 겅! 써 – 겅! 써 – 겅!
뒤이어 연쇄 공격이 무참히 날아들었다. 작열하는 도끼날의 불꽃이 시뻘겋게 사지의 살가죽을 찢고 태웠다. 멜리사는 이맛살까지 쪼개지기 직전에야 겨우 순간 이동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흐윽, 끅…….”
상성적으로 ‘화염’으론 저 ‘피의 불꽃’을 절대 못 이긴단 걸 절절히 깨달았다. 차선책으로 택한 방법은 다른 속성의 마법들.
하지만 그 또한 통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쿠르륵 – !
―――――――― 콰과과과광 – !!
물은 증발했고, 얼음은 승화했고, 바람은 흩어졌고, 왜곡은 깨졌다. 피비린내 나는 광염은 대상이 무엇이든 평등하게 소거해버렸다. 멜리사는 비로소 이게 ‘상성’의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이건 ‘힘’의 문제였다.
저 ‘피의 불꽃’은 불을 제압하는 특별한 효과를 가진 게 아니라, 단순히 ‘초월적인 화력’만으로 모든 걸 살라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같은 불이나 불가사의한 이적인 고유 특성마저도. 자신이 불나방처럼 허망히 타죽으리란 카딤의 단언은 티끌만치도 허언이 아니었다.
무력감, 압도적인 무력감이 내면을 물들였다.
저건 천벌이나 드래곤의 숨결과 같은 ‘규격 외의 이적’이었다. 천상의 신이 아니고선, 그 누구도 정면으로 대처할 방법이 없는. 초월의 문턱을 갓 넘은 대마법사조차도 예외일 순 없었다.
그럼에도…… 지옥에서조차 살아남은 이 대마법사는 예사 인물이 아니었으니.
멜리사는 곧 배후로 뚫린 활로를 찾아냈다. 몇 시진 전, 똑같이 규격 외의 이적을 지닌 드래곤을 추락시켰을 때처럼.
“흐흐흑, 흐흐……. 재밌네, 카딤. 네가 그런 깜찍한 불을 숨기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지 뭐야?”
“[…….]”
“그런데, 우리…… 누구누구 불꽃이 더 뜨거운지 가리려고 싸우는 건 아니었지?”
무표정하게 정색하며 손짓하는 멜리사.
콰드득, 콰드드득, 콰드드득 – !!
천장, 바닥, 벽, 허공…… 오만 곳에서 용암 거인의 손이 치솟았다. 그 모든 손길들은 선혈처럼 용암을 뚝뚝 떨어뜨리며 탐욕스레 한곳으로 뻗어나갔다.
아슬아슬하게 불길을 피하던 ‘세계수의 꿈’을 향해.
쿠르르륵, 콰드드드드득 – !!
카딤은 미간을 팍 찡그렸다.
확실히, 그들이 싸우는 목적은 누가 더 강한지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었다. 멜리사는 저 구체를 부술 수만 있다면 져도 상관없고, 그는 저 구체가 부서진다면 이겨도 별 의미가 없었다.
―――――――― 콰과과과광 – !!
참격의 폭발로 갈라버려도, 뇌격의 벼락으로 터뜨려 봐도 금세 사방팔방에서 새로운 손들이 자라났다. 되레 멜리사가 계속 마법을 추가 시전하여 갈수록 용암의 손들이 더 많아졌다. 이러다간 언젠가 필연적으로 구체가 망가지게 될 터.
카딤은 좀 더 근본적인 해결법을 택하기로 했다.
마법의 근원을 제거하는 쪽으로.
콰 – 앙!
노면을 박차고 돌격하자, 멜리사가 예상했다는 듯 바로 순간 이동을 하려 했다. 하나 그녀는 앞으로 달려드는 전사만 보았을 뿐 배후까진 살피진 못했다.
――――― 번 – 쩍! 콰과과과광 – !!
“……흣!”
벼락불을 튀기는 투척도끼가 마법사의 등 뒤를 강타했다.
이렇게 쓰기 위해 카딤은 방금 뇌격을 던지고 일부러 회수하지 않았다. ‘마나의 가호’에 막혀 피해는 없었지만, 집중을 흩뜨리기엔 충분한 기습이었다. 표적이 머뭇대는 틈을 타 카딤은 수월히 그 앞에 이르고.
그 이후, 다시 마법이 시전되는 일은 없었다.
뻐 – 억! 뻐 – 억!
“흡!”
묵직한 주먹이 사정없이 멜리사의 안면을 강타했다.
대마법사인 멜리사는 영창과 마법진 없이 오직 집중과 생각만으로도 온갖 대마법을 시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집중과 생각마저 힘든 상황엔, 아무리 대마법사라도 마법을 쓸 수 없는 법.
뻐 – 억! 뻐 – 억! 뻐 – 억!
거진 불타는 철퇴에 두들겨 맞는 격이었다. 주먹질마다 불꽃이 폭발을 일으켜 ‘마나의 가호’도 의미가 없었다. 세찬 충격이 가는 입술을 터뜨리고, 뺨가죽을 찢고, 머리뼈를 뒤흔들었다. 곧 모든 용암 거인의 손들이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쿠드드드득, 쿠드드드…….
“흐윽, 끅, 끄윽…….”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 멜리사. 카딤은 준열하게 물었다.
“[……아픈가?]”
“흐흐흑, 흐흑…… 흐흐…… 아니.”
뻐 – 억! 뻐 – 억!
“[……아픈가?]”
“흐흑, 아니…… 하나도 안 아파……. 솜방망이로 얻어맞는 것 같네…….”
“…….”
거짓말이었다. 몇백 년 만에 겪는 격통일 것이다.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카딤은 험악하게 인상을 굳히고 멜리사를 노려보다가.
덥썩, 우악스레 멱살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그러곤 그대로 홀 밖으로 뛰쳐나간 다음, 벼랑 끝까지 한달음에 내달려 세계수 밑으로 투신했다.
화르르르르르르륵 – !!!
무겁게 육신을 짓누르는 중력, 귓가를 얼얼하게 스치는 강풍, 유성처럼 따라붙는 불의 꼬리…….
추락하는 궤도를 따라 허공에 불길의 물감으로 칠한 혈흔이 남았다. 순간 이동이나 공간 왜곡 따위로 빠져나갈 수 없게, 그 와중에도 카딤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엘프들의 도시, 헤실리아드 외곽의 공터에 충돌했다.
――――――――― 콰 – 앙!!!
추락한 충격에 불꽃이 폭발하는 충격이 덧씌워졌다. 땅바닥이 움푹 침강하고, 전소된 그루터기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밑바닥에 내리깔린 멜리사가 격하게 기침했다. 카딤은 멱살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찍어누르며 물었다.
“[……아픈가?]”
“쿨럭, 쿨럭……. 흐흑, 아니, 안 아파…….”
뻐 – 억! 뻐 – 억!”
“[……아픈가?]”
“흐흑, 흐…… 안 아파, 안 아프다니까…….”
카딤은 이를 부러져라 악물었다. 두 눈을 시뻘겋게 치뜨고, 뭉개 죽일 듯 살벌한 기세로 낯짝을 난타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라!! 실수였으면 실수였다고 말해라!! 왜, 왜, 입을 필요 없는 상처까지 새기며 자학하고, 남들에게까지 날붙이를 휘두르는 거냐!! 네가 그런다고 뭐가, 상황이 터럭만치라도 나아질 것 같더냐!!]”
뻐 – 억! 뻐 – 억! 뻐 – 억!
멜리사는 얼굴에 또다시 무표정한 공백을 떠올렸다.
아파.
“안 아파…….”
아파.
“안 아파…….”
아파.
“아, 안 아파…….”
아파.
“아, 아파…….”
아파.
“아파, 아프다고……. 응, 아파…….”
핏자국과 눈물 자국에 뒤덮여 사라지는, 무표정한 공백.
나무꾼의 책망하는 도끼질에 사라지는, 자신이 피운 불꽃이 온 세상을 전부 태워버려 어찌할 줄 모르고 저까지 태워 버리던 나무 인형의 표정.
카딤은 폐가 터져라 거칠게 훅, 숨을 몰아쉬었다. 비로소 스스로를 망가뜨리던 위악의 가식을 깨부쉈다. 자리에서 일어나 먼 창공의 균열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균열, 실은 열고 싶지 않았던 게 맞나.]”
멜리사가 피눈물로 눈시울을 붉혔다. 웃음과 울음이 엉망진창 뒤섞인 흐느낌을 흘렸다.
“응, 맞아……. 나도,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
“나는 그저, 그저 네가 떠난 세계를 찾고 싶을 뿐이었어……. 저 균열이 당연히, 그 세계로 통할 줄로만 알았어…….”
“[…….]”
“저게 악마들이 들끓는 지옥으로 통하는 균열인 줄 알았더라면…… 저것 때문에 온 대륙에 악마들이 창궐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동안 내가, 내가 모든 걸 걸고 쏟아부은 헌신과 노력이 그런 재앙으로 치환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저 균열을 열지 않았을 텐데……. 흐흑, 그냥, 그냥 마탑에서 잠자코, 마법이라도 연구하면서 너를 기다렸을 텐데…….”
썩어 문드러진 내면의 흉터가 드러났다. 카딤은 고막에 독약을 흘려 넣는 기분으로, 이를 악문 채 진실을 청취했다.
“그거, 그거 알아, 카딤……? 나, 저걸 열고, 백 년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지옥에서까지, 맨 정신으로도 꿈을 꿨다……? 균열을 여는 순간, 딱 그 직전으로 돌아가는 꿈이거든? 그, 그런데 내가 아무리 그 몸뚱이 안에서, 나를 멈춰 세우려고 소리치고, 발악하고, 몸부림치고, 절규해도, 나를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
“그러면, 그러면 꿈속의 나는 또다시 마나를 그러모으고, 마법을 발동하고, 균열이 열리고, 악마들이 쏟아지고…… 결국은, 결국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그날처럼, 아무도 돌보지 않는, 오두막에 버려진 나무 인형같이, 멍청하게 주저앉아 그걸 바라보고만 있고…….”
한참이나 두서없이 지리멸렬한 고백과 한탄과 탄식과 비탄과 오열과 후회가 이어졌다. 오물을 배설하듯 진심을 전부 다 토해낸 멜리사는, 끝내 다시 잿더미처럼 허망히 연소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카딤.”
“[…….]”
“지옥에서 내가 본 걸…… 너도 봤다 그랬지?”
멜리사가 시선을 고정했다. 먹먹한 눈빛으로, 되살아난 뿌리에 차츰차츰 틀어막히는 저 지옥의 균열을 향해.
“게일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 아직도…… 악마들한테 온몸을 찢기면서 고통받고 있어?”
“[…….]”
그녀의 품에는 아직도 소녀가 남긴 기록이 남아있었다. 이제는 거의 다 불타 손만 대도 바스라질 것만 같은 기록 틈에서, 자그마한 종이 조각 하나가 나풀나풀 떨어졌다.
카딤은 손에 붙은 불꽃만을 꺼뜨렸다. 잠자코 허리 숙여 그 종이 조각을 줍고는, 한 글자 한 글자 내용을 읽어내렸다.
그리고 불길마저 빛이 바랠 정도로 어둡게 낯을 굳혔다.
*
대악마가 죽은 후, 정체불명의 균열을 넘어 카딤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다음.
우리들의 용사였던 게일이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