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
2화. 무고한 죄수 (1)
이름 모를 잡새들이 창공을 가로질렀다. 푸른 하늘에선 뭉게구름이 난잡하게 뒤엉켰고 땅에서는 오색빛 산천초목이 흐드러졌다. 의심할 바 없이 완연한 봄이었다.
때는 태양이 서쪽으로 저물기 시작할 즈음. 더없이 평화롭고 잔잔한 오후였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를테면, 평원 위에 개미떼처럼 길게 늘어선 저 죄수들이라던지.
절그럭, 절그럭 –
양팔을 포박한 쇠사슬.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자근자근한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죄수들의 얼굴에는 하나 같이 우중충한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저지른 죄를 뉘우치기보단 재수 없게 붙잡힌 걸 한탄하는 표정들이었다.
“이봐요, 난 억울합니다! 그 계집을 죽인 건 제가 아니라 빵집 아들 놈이라니까요!”
“제기랄, 귓구녕이 막혔냐! 그 배냇병신은 지 혼자 칼춤 추다 죽은 거라니까?”
“난 진짜 청동 반지 하나밖에 안 훔쳤어! 은목걸이는 씨발, 거기에 있는 줄도 몰랐다고!”
죄수들은 이따금씩 상스러운 말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물론 병사들은 조용히 좀 하라고 윽박만 지를 뿐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호송하는 내내 숨 쉬듯 거짓말을 내뱉는 이 빌어먹을 흉악범들에겐 이골이 난 차였다.
그렇지만 정말로 모두가 억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딱 두 명, 이 행렬에는 정말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는데 붙잡힌 죄수들이 있었다.
한 명은 국경 부근에서 붙잡힌 행상인이었다.
“병사님, 병사님들! 저, 전 정말로 억울합니다! 전 절대로 악마의 부산물을 팔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누군가 절 모함하려고 넣은 거라고요! 예를 들면, 제 가방을 검사한 분이라거나…….”
“시끄럽다! 설마 감히 엘가의 성기사님을 의심하는 거냐?”
“그, 그건 아니지만…….”
병사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어린 성기사가 행상인을 함정에 빠뜨렸음을. 죄수의 머릿수를 늘려 실적을 과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병사들 중 행상인을 옹호할 만한 위인은 없었다. 일개 병사가 성기사에게 밉보여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결국 행상인은 꼼짝없이 누명을 쓰고 성도까지 끌려갈 처지가 되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어디서 온 건지 모를 야만인이었다.
절그럭, 절그럭 –
이자 역시 성기사의 실적을 위해 붙잡힌 희생양이었다. 그러나 이자만큼은 도무지 다른 죄인들과 똑같이 취급할 수가 없었다.
야만인의 체구는 다른 흉악범들이 어린아이로 보일 만큼 커다랬다. 성난 근육들은 쇠사슬도 쉽게 뜯어 버릴 만큼 부풀어 있었다. 짐승과도 같은 불가해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게 되었다.
병사들은 이에 대해서만큼은 내심 성기사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 야만인이 억울하다고 난동을 부리거나 하면 결코 막을 자신이 없었기에. 허나 기이하게도 야만인은 불평 한마디 없이 얌전히 그들을 따라오기만 했다.
야만인, 카딤이 병사들을 순순히 따라간 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지금은 맨몸으로 쇠사슬을 풀어 버릴 만큼의 힘이 없다는 것.
대악마를 격살한 아탈라의 대전사, 혹은 시원한 맥주와 안락한 침대를 갈망하는 현대에서 온 남자는, 결국 어둑한 공간에서 출구의 문턱을 넘고 말았다. 실눈을 뜬 채 찬란한 빛을 가로지르고 떠듬떠듬 정신을 차려 보니 이런 신세였다.
카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육신은 낯설지 않았지만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정신을 좀먹던 광증과 죄책감이 사라졌다. 이전에 쌓아 올렸던 힘이 사라졌다. 그리고 신체의 자유가 사라졌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변화는 그러려니 했다. ‘New Game +’라 적혀 있던 그 빌어먹을 문구에 따르면, 지금 그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새로 시작한 처지였으니.
그렇지만 죄수로 호송되고 있는 이 상황만큼은 쉬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현실에서도 게임이 이런 식으로 시작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는데?’
지그시 눈살을 찌푸리는 카딤. 주변의 죄수들은 지레 겁먹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카딤은 조금 떨어져 있던 행상인을 붙잡고 물었다.
“이봐, 내가 왜 죄수로 붙잡힌 거지?”
“예, 예? 저에게 물으신 겁니까?”
“그래, 너.”
뭐지, 이 인간? 미친 건가? 자기가 붙잡힌 이유도 모른다고?
행상인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목숨이 아까웠기에 속내를 철저히 감추고 떠듬떠듬 설명했다.
“어, 음…… 여긴 자유도시 동맹의 땅이 아니라 제국령이니까요. 아시다시피, 제국의 성기사와 사제들은 이교도들에게 지극히 적대적이지 않습니까? 댁은 아탈라를 섬기는 야만인이니까, 별 죄를 안 지으셨어도 충분히 체포될 만…… 허억, 죄, 죄송합니다!”
카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행상인은 지레 겁먹고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화가 난 게 아니었다. 행상인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거지.
“제국령? 이 대륙에 제국이 있다고?”
“……예? 설마 루카오니아 제국을 모르신다고요?”
“루카오니아? 거긴 대륙 중앙에 있는 왕국 아니었던가?”
행상인은 이제야말로 ‘이 인간이 미쳤구나’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들을 흘끔흘끔 바라보던 병사 하나가 큰소리를 쳤다.
“이봐, 조용히 해! 지금 어디 놀러 가는 줄 아나? 호송 중 잡담은 금지다!”
“예, 예, 죄송합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옳다구나 하고 자리를 벗어나는 행상인. 홀로 남은 카딤은 상념에 잠겼다.
무언가가 단단히 어긋났다. 그냥 단순히 난이도 높은 이벤트가 발생하는 2회차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골 때리는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설마 세계관 설정이 조금 다른 평행세계에 떨어진 건가……?’
아예 다른 세계관인 것 같진 않았다. 저 죄수가 자신을 아탈라를 섬기는 야만인이라 불렀고, ‘루카오니아’라는 이름의 국가가 있긴 했으니까. 세계관을 확실하게 파악하려면 정보를 더 수집해야겠지.
지금은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현재 상황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파악.
카딤은 옆에 서 있던 병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봐, 이 행렬은 어디로 가는 거지? 감옥에 갇히는 건가? 아니면 노예로 팔려 가는 건가?”
병사는 움찔 몸을 떨었다. 그는 야만인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던 중이었다. 다른 죄수처럼 통제하자니 겁이 났는데 그걸 또 티 내는 건 자존심 상했으니까.
그런데 야만인 쪽에서 먼저 말을 붙였으니 도리가 없었다. 병사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애써 근엄한 시늉을 했다.
“말조심해라, 이교도. 너는 죄수로 체포된 입장이다. 허락 없이 우리들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말도록.”
카딤이 보기엔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가 애처로워 보일 뿐이었다.
“미안하군. 내 사과하지, 병사님. 이것만 답해 주면 도로 입을 다물겠어.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한번만 친절하게 알려 줄 수 있겠나?”
“……너희들은 지금 루카오니아 제국의 수도, 성도 루카온으로 호송되는 중이다. 루카온에 도착하면 다른 죄수들은 엘가의 심판관께 판결을 받고 적법한 처벌을 받게 될 거다. 다만 너는 이교도이니 아마 이단심문관님을 뵙게 되겠지.”
“그런가? 그거 다행이군.”
카딤은 그나마 안심했다. 엘가 교단의 성직자들은 대개 딱딱하지만 정의롭고 공정한 자들이었다. 억울하게 끌려왔다는 걸 알면 필시 자신을 풀어 줄 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옆에 서 있던 죄수 하나가 헛웃음을 치며 끼어들었다.
“이봐, 뭐가 다행이란 거야? 이단심문관, 그 새끼들은 죄다 고문에 미친 변태 새끼들이라고! 자네 같은 이교도를 보면 잇몸에 대못을 박은 다음, 콧구멍에 펄펄 끓는 쇳물을 흘려 넣을걸?”
“조용히 하지 못할까! 감히 엘가의 뜻을 대행하는 성직자를 모함하느냐!”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솔직히 내 말이 맞잖아? 그 녀석들 만났다가 살아서 나온 사람 있어? 우리 동네에선 세 살배기들도 다 알아! 이단심문관에게 끌려가면 하루 종일 고문만 당하다 죄다 폐인 돼서 개죽음당하는 거…….”
죄수는 끝까지 기세등등하게 따지고 들진 못했다. 돌연 날카로운 창끝이 목울대를 겨누었기에.
“참으로 방종한 혀로구나. 어디 계속 한번 입을 놀려 보겠느냐?”
“……어, 어억.”
“씁, 지독한 악취로군. 불신자의 냄새가 나. 불신자의 냄새가…….”
창을 겨눈 건 병사가 한 게 아니었다. 어느샌가 등장한 앳된 인상의 청년이 한 일.
청년은 가장 젊은 병사보다도 어려 보였으나 죄수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병사들에겐 신나게 대들었던 나머지 죄수들도 전부 침묵을 지켰다.
십각성 문양이 그려진 코발트빛 판금 갑옷. 다른 병사와는 확연히 다른 중무장이었다. 손에 쥔 창도 범상치 않았다. 금속 창대에는 은은한 파형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푸른 창날에는 기묘하게도 싸늘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카딤은 청년의 정체를 즉각 눈치챘다.
‘엘가의 성기사로군. 아직 풋내 나는 새끼 성기사긴 하지만…….’
창을 잡은 손길이 묘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분위기를 장악한 것에 스스로 도취된 얼굴. 노련한 성기사라면 결코 보이지 않았을 모습이었다.
푹 –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기사는 단순히 창날로 위협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죄수의 목울대를 찔렀다.
“……!”
병사들조차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미 체포된 죄수들을 처형할 권한은 엘가의 심판관들에게만 있었다. 명백한 월권행위였다.
정작 일을 저지른 성기사는 태연했다.
“엘가의 대행자를 모욕한 자는, 죽음으로 그 죄악을 씻어내야 할 터이니.”
“끄렇, 끄러러러럻…….”
죄수는 목을 움켜쥔 채 피거품을 물고 주저앉았다. 그렇게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비뚜름한 미소를 짓고 성호를 긋는 성기사. 곧 창대를 거두었다. 그리곤 병사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대체 뭣들 하는 거지? 어째서 죄수들이 더러운 혓바닥을 놀리는 걸 방관하고 있던 게냐? 며칠 호송하다 보니 그새 정이라도 든 건가?”
“죄송합니다, 린튼 님. 그럴 생각은 아니었…….”
“변명은 듣고 싶지 않군. 누가 이 사단의 근원인지나 말하도록. 저 덩치 큰 이교도인가?”
병사들은 흘끔흘끔 카딤의 눈치를 보았다. 성기사는 그 시선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또다시 멋대로 창을 뻗었다.
푹 –
카딤은 두 눈을 부릅떴다. 어깨 밑을 반 뼘쯤 파고든 창날. 뼈를 찌르는 느낌과 함께 쓰라린 한기가 스며들었다. 피가 얼어붙어 출혈은 저 혼자 멎었으나 맹독 같은 고통이 뒤따랐다.
“…….”
카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속으로 고통을 삭이며 성기사를 묵묵히 노려보았을 뿐.
“……엇.”
성기사는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풋내기라 해도 기사는 기사였다. 그는 카딤의 눈빛에서 고기를 바라보는 도살자의 것과 같은 말끔하게 정제된 살기를 읽었다.
서둘러 창대를 거두었다. 공포를 감추고 물러나는 성기사. 다른 사람이 보기엔 마치 볼일을 다 마쳤다는 듯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크흠, 시체를 치우고 이 이교도를 잘 감시해라. 허튼짓할 기미가 보이면 즉시 처단하도록.”
병사들은 주저주저하면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야만전사는 결심했다. 당장 이 빌어먹을 행렬에서 탈출하기로.
저 풋내기 성기사가 꽂아 넣은 창날이 절절히 깨닫게 해 주었다. 더 이상 엘가 교단이 옛 기억과 같지 않다는 걸. 이대로 이단심문관에게 끌려갔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했다.
상황은 영 녹록지 않았다. 쇠사슬을 풀어버릴 만한 힘도 없는데 부상까지 입어 버렸다. 안 그래도 탈출이 쉽지 않건만 악조건이 겹쳤다.
‘1회차의 힘이 그대로 계승됐다면 이까짓 쇠사슬쯤은 손쉽게 풀었을 텐데…….’
아쉬워할 시간도 아까웠다. 재빨리 미련을 털어 내고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탈출에 도움이 될 만한 요소를 찾기 위해.
그때, 카딤의 눈에 호송 행렬 끝에 있는 커다란 궤짝이 눈에 들어왔다.
뒤에서 앞쪽으로 미풍이 불고 있었다. 바람에 뒤섞인 희미한 이질감. 카딤은 그 안에서 더없이 익숙한, 역겨운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악마의 냄새였다.
눈가가 매섭게 일그러졌다. 카딤은 사슬을 절그럭대며 다급히 나아갔다. 예의 그 행상인을 다시 붙잡고 물어보았다.
“이봐, 저 뒤쪽의 궤짝 안에는 뭐가 있는 거지?”
“악마의 시체요. 이전에 지나온 마을에서 저 성기사가 돈을 주고 산 거지. 그런데 당신, 괜찮은 거요? 상처가 꽤 깊어 보이는데…….”
카딤의 귀엔 행상인이 마지막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돈을 주고 악마의 시체를 샀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얘기였다.
‘……이전 회차에서 악마는 마경이 아니면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 세계에선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만큼 악마가 흔하단 말인가?’
카딤은 이게 희소식인지 비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카딤의 고유 특성, ‘피의 광전사’는 악마의 피를 마시고 일정 시간 특별한 버프를 얻는 특성이다. 즉, 악마가 흔하면 흔할수록 손쉽게 강력한 버프를 얻을 수 있다는 뜻.
하지만 그건 부작용도 마찬가지였다.
악마의 피를 자주 복용하면 1회차에서 그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광증이 재발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피를 쉽게 구하면 더 쉽게 소비할 테니 광증이 더욱 빠르게 정신을 좀먹을 터.
그럼에도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상처 입은 몸뚱이로 쇠사슬을 풀고 달아나기 위해선 악마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뭐가 됐든 이단심문관에게 끌려가는 것보단 낫겠지.’
야만전사는 결단을 내렸다. 눈에 띄게 발걸음을 늦춰 서서히 궤짝을 향해 접근했다.
“…….”
“…….”
병사들 사이에선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졌다.
성기사는 허튼짓을 하면 이교도를 처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행렬을 이탈하여 뒤로 물러나는 건 명백히 ‘허튼짓’이었다. 그러나 병사들 중 누구도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쉬쉬하는 사이 야만인은 궤짝 가까이 이르렀다. 후미를 지키고 있던 십인장은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다. 야만인을 향해 창을 뻗고 단호하게 경고했다.
“멈춰라, 이교도! 어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도…….”
카딤은 십인장의 말을 가뿐히 무시했다.
땅을 박차고 도약, 쇠사슬에 묶인 양 주먹으로 궤짝을 내리쳤다.
콰지지지직 – !
찢어지고 비산하는 나무 파편. 통나무로 만든 튼튼한 나무 궤짝이 지푸라기 상자처럼 허무하게 부서졌다. 주변에 있던 병사와 죄수들이 혼비백산하여 뒷걸음질 쳤다.
“으악!”
“으허어어억!!”
“어? 어, 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힘이었다. 보통 사람은 판자때기 하나 격파하기도 힘들 텐데? 맨손으로, 그것도 쇠사슬에 묶인 채 저 튼튼한 궤짝을 박살 내다니? 모두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아직 경악하기는 일렀다.
카딤은 건조한 시선으로 악마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밥 먹듯이 악마를 도살한 전사답게 순식간에 악마에 대한 정보를 분석해 냈다.
‘죽은 지는 사흘쯤 됐고…… 머리에 뿔이 없으니까 등급은 하급 악마……. 종류는 ‘원종’인가? 정확히 어떤 버프가 나타날지는 모르겠군…….’
단검이 있었다면 동맥을 그어 피만 받아 마셨을 테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카딤은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꾸드득, 쩌저저적 –
잔잔한 오후, 목가적인 평원 위에서 펼쳐지는 선홍빛 카니발.
들짐승처럼 악마의 시체를 물어뜯는 야만인을 보며 병사들은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