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전쟁의 전조 (3)
카딤은 그저 우연히 막 지나가던 아크팔라딘과 마주친 줄로만 알았다.
그 예상은 틀렸다. 사실 헨다르크는 초인적인 감각을 동원해, 대수림 인근에서 열흘이 넘도록 카딤의 흔적을 추적하고 다녔으니.
그럼에도 이렇게 딱 마주친 건 굉장한 요행이 아닐 수 없었다. 대수림의 경계는 그 둘레가 무한한 녹음의 장벽처럼 장대하니까. 물론 요행이란 건 찾아진 쪽이 아닌, 찾아다닌 쪽에만 한정하는 얘기였다. 청자의 시큰둥한 반응도 아랑곳 않고, 헨다르크는 다급하게 카딤에게 찾아온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 식경에 이르는 성토를 지나, 탄식과도 같은 마지막 읊조림이 흐르고.
“……그렇게 에렌스코 대주교가 ‘성전’의 개전을 선포했소. 최우선 표적은 자유도시 동맹으로 정해졌으니, 머지않아 이 땅에는 지독한 피바람이 불게 될 것이오.”
일장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아크팔라딘의 이야기가 끝났다.
듣는 이의 마음을 대변하듯 겨울 들판에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후우우우웅…….
“…….”
“…….”
잠시간 카딤은 가만히 인상을 팍 쓰고만 있었다. 쉬이 믿을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만, 이 성기사가 거짓말하는 게 불가능한 위인이란 건 잘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예전에 죽였던 새끼 성기사가, 그 대주교 놈의 조카라고 했지.”
“……그렇소.”
“그럼 그 미친놈이, 고작 제 조카 하나 죽었다고 맛이 가서 전쟁을 일으켰단 얘기인가.”
“…….”
무거운 고민 끝에, 헨다르크는 진실의 이면을 실토했다.
“에렌스코 대주교는…… 사실 형제가 없소.”
“……뭐?”
“그대가 죽인 성기사, 린튼 펠리퍼스는 본디 대주교가 가장 총애하던 ‘시동’이었소. 단지 그 총애가 너무 깊어 대주교가 린튼의 응석을 다 받아준 게 문제였지. 성기사가 되고 싶단 말을 듣곤 고위 성기사들을 불러 교습시켜주고, 손수 축복을 내려 축병까지 빚어주다, 끝내 그자를 진짜 성기사로 만들어 버렸으니…….”
“…….”
“대주교는 린튼을 특별 대우하는 당위성을 챙기고,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뒤늦게 혈연이란 명분을 만들었소. 이는 나를 제하면 아는 자가 거의 없는 극비 사항이니, 부디 어딘가에 따로 퍼뜨리진 않아 줬으면 하오…….”
어감과 뒤따르는 경고가 어쩐지 싸했다. 카딤은 께름칙한 예감을 느끼며 되물었다.
“그 성기사 놈이, 본디 대주교의 ‘시동’이었다고?”
“그렇소. 대주교의 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는 의미지. 잔심부름이나 허드렛일은 물론, 후우…… 육욕을 해소하는 가장 더러운 일까지…….”
“……분명 그 녀석, 사내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대의 기억이 맞소.”
“…….”
역겨운 욕지기가 욱, 하고 목구멍을 때렸다. 그렇지만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명징해졌다.
‘내가 2회차를 시작하자마자 골통을 으스러뜨렸던 게 대주교의 조카가 아니라, 대주교의 정부(情婦)였군…….’
친족을 잃은 정결한 분노가 아니라, 뒤틀리고 추악한 연정의 복수심이었던가……. 비로소 왜 그토록 추적이 집요했는지, 왜 그놈이 결국은 미쳐서 폭주해 버렸는지 납득이 갔다. 또한 이 시대의 엘가 교단이 얼마나 썩어빠진 집단인지도 새삼 실감했고.
하지만, 이제 그건 자신과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지.”
“그건…….”
“마탑에서 알아낸 정보를 전해준 걸로 우리의 거래는 끝나지 않았나. 설마 이제 와서 그 새끼 성기사 놈이나, 네 제자였던 아크팔라딘을 죽인 책임을 지라는 건 아니겠지.”
“…….”
“그딴 헛소리를 하려거든, 이마빡에 저번보다 도끼날이 훨씬 깊숙이 박힐 각오부터 해두는 게 좋을 거다.”
헨다르크의 안색이 희미하게 어두워졌다. 저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걸 판별하는 데는 성흔까지 쓸 필요도 없었다. 투석기의 밧줄처럼 당겨지는 힘줄, 살벌하게 도낏자루를 휘어잡는 손아귀를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난번에도 만만찮은 상대였다만…… 이 전사의 무력은 이젠 확실히 자신이 감당 못할 경지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포기할 거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니 안심하시오. 다시금 확언하건대, 그 일로 그대를 적대하거나 책임을 물 생각은 추호도 없고, 지난번의 거래는 말끔히 끝난 게 맞소.”
“…….”
“다만 새로운 거래를 또 할 순 있지 않겠소?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나는 결코 신뢰하지 못할 거래 상대는 아니라 생각하오. 비단, 엘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않더라도 말이지.”
전처럼 손등의 십각성 문양을 드러내는 헨다르크. 진실을 간파하는 권능을 주되, 거짓을 말하면 천벌이 직격하는 제약도 거는 ‘성흔’이었다.
나쁘지 않은 방향성의 접근. 카딤이 발하는 경계심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렇다고 태도가 호의적으로 바뀐 것도 아니었지만.
“그 대주교 놈을 죽여달란 건지, 신성한 성전을 거들어 달란 건지…… 부탁하려는 일이 무엇인진 모르겠다만, 어느 쪽이건 들어줄 수 없다. 나 또한 당장 해야 될 일이 있어서 말이지.”
“아니오! 그건 절대로 ‘신성한 성전’ 같은 게 아니오!”
헨다르크가 기겁하여, 그건 광신에 물든 학살이 될 거라 역설했다. 그러곤 부디 동맹 측에 가세하여 성기사들에게 맞서고, 무고한 자들을 지켜달란 용무를 털어놓았다.
카딤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첫 만남 때부터 느꼈다만…… 사사로운 감정이나 교단의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대의를 추구하는 이 성기사의 태도는, 여전히 참으로 고결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짐을 떠맡는 게 이쪽이란 사실도 변함없었다.
“……내 말을 뭘로 들은 거지. 나는 해야 될 일이 있다고 했다만. 그렇게 전쟁을 막고 인명을 구하고 싶거든, 네 손으로 직접 그 대주교를 꿰뚫어 죽이거라.”
“나는…… 후우, 나 또한…… 진심으로 그러고 싶소……. 아니, 이미 한번 시도도 해봤지……. 그렇지만 내 힘으론 감당키 힘든 자가 대주교의 우방이 된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 제자들까지 모조리 볼모로 사로잡히는 바람에…… 더는 나로서도 어찌할 수가…….”
“그러니까 네놈은 힘도 없는 주제에, 아무런 희생도 치르지 않고, 네 알량한 양심을 충족하고 싶다 말하고 있는 건가.”
통렬하게 폐부를 꿰뚫는 지적. 사내의 주름진 눈가에 쓴 회한이 어렸다.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부인하진 않겠소. 그렇지만 ‘데카그램’이 동맹령을 침공하면 어마어마한 희생자가 발생하리란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오. 부디 이 참사를 막는 데 그대의 힘을 빌려주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알량한 양심이라 멸시해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네놈은 여전히 그 이름도 모를 숱한 동맹인들보단, 네놈의 제자 몇몇의 목숨을 더 높게 치고 있다는 것 아니더냐.”
“…….”
끝내 쥐구멍으로 기어갈 듯 떨어지는 시선. 그 위로 꽂히는 나락처럼 공허한 눈길.
카딤은 한참이나 묵묵히 움츠린 사내를 노려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객혈을 토하듯 뇌까렸다.
“내가 베스타나 남쪽에 남겨둔 쪽지는 보았겠지.”
“그렇소…….”
“대수림에서 얼마 전, 온 세상에 악마를 창궐시킨 원흉을 찾아냈다.”
“……뭣!?”
“오래전, 내가 내 목숨보다 중히 여겼던 옛 동료였다. 어딘가로 사라진 나를 찾다 실수로 지옥과 통하는 균열을 열어버린 거였지. 지금도 저 숲의 최심부에 가면 그 균열의 중심을 볼 수 있을 거다.”
그게 정말 사실이냐고 되묻는 과정은 불필요했다. 듣자마자 성흔으로 진실이란 걸 통찰했으니.
“그, 그럼 어떻게 하였소, 그자를?”
“죽였다, 내 손으로 직접.”
“……!!”
“원하던 바는 아니었지만,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선 불가피한 일이었지. 다만 녀석을 죽였다 해서 균열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난 지금부터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또 다른 동료의 행방을 물색하러 갈 예정이었다.”
“…….”
숨통을 옥죄는 촌각의 침묵을 넘어, 스산하게 흘러나오는 반문.
“그래…… 어디 한번 다시 말해봐라. 무얼 하는데 내 힘을 빌려달라고?”
헨다르크는 넋을 잃고 망연히 정지했다.
방금 들은 내용 중엔 일편의 거짓도 없었다.
저자는, 진실로 제 목숨보다 중히 여겼던 동료마저 희생한 것이었다.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제 손으로 직접. 어조는 지극히 담담했으나, 그 과정에 범인은 감히 상상조차 못 할 고뇌와 고통이 있었을 것임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았다.
이윽고 뼈저린 자괴감과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제 제자들 하나 제대로 못 지키고, 대주교의 만행을 코앞에서 보고도 막지 못한 주제에, 심지어 약자들을 지킬 사명까지 남에게 떠밀다니……. 무엇이 고결한 성기사고, 무엇이 길 잃은 자들을 인도하는 별이란 말이던가? 자신은 그저 빛을 우러러볼 자격도 없는 나약한 비겁자에 불과했다.
헨다르크는 결국 설득을 체념했다. 이자는 벌써 한 인간이 감당할 양을 아득히 초과한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하릴없이 제자들을 구하고 전쟁과 희생을 막는 문제는, 어떻게든 자력으로 해결해보기로 작정했다.
그 순간, 난데없이 배후에 나타나는 기척.
“저, 저, 저, 저! 서, 성기사 나으리! 제국의 성기사들이 동맹에 쳐들어오리란 게 참말로 사실입니까?”
“……!”
흠칫, 어깨가 절로 떨렸다. 넋을 놓고 방심하고 있었다곤 하나, 교단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성기사인 자신이 등을 내주다니? 헨다르크는 믿을 수 없단 눈으로 황급히 뒤돌아봤다.
거기엔 까만 거적때기를 뒤집어쓴 웬 꼬질꼬질하고 작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건 그렇다만…… 그대는 대체 누구시오?”
“저, 전, 나으리의 동료인 던컨 휠레드라고 합니다! 그, 그보다 성기사들이 동맹에 쳐들어온다면 혹시 어느 도시부터 침공할지도 알고 계십니까?”
흘끗, 카딤의 동료란 말이 진실이란 걸 간파하고는 대답하는 헨다르크.
“흐음, 뭐, 볼 것도 없이……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델루타나’부터 노리겠지. 그 이후엔 아마 황금 가도를 따라 갈렌타나로…….”
“뭐, 뭐라굽쇼 – !!”
던컨의 눈깔이 회까닥 돌아갔다.
최고위 성기사에게 바락 큰소리를 치고도 뭘 잘못 했는지 몰랐다. ‘델루타나’란 지명을 들은 이후론 더 이상 눈에 뵈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없었다. 벼락 맞은 쥐처럼 바들바들 떨던 행상인의 입에서, 먼저 그 대도시로 떠나보낸 가족들의 이름이 애처로이 흘러나왔다.
“유, 율리아……! 던센……!”
*
그 시각, 델루타나의 어느 대저택.
이곳의 대식당에선 현재, 꽤나 기묘한 만찬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실 만찬보다도 대부호의 연회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윤기가 줄줄 흐르는 돼지고기 통구이, 껍질을 과자처럼 바삭하게 구워낸 오리 콩피, 송로버섯과 귀한 야채들을 아낌없이 넣어 향긋하게 끓인 수프, 내륙에선 보기 힘든 신선한 해산물 요리들까지……. 평범한 촌부들은 한평생 맛도 못 볼 진귀한 요리들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지체 높은 대부호나 귀빈들의 몫이 아니었다.
그 식사를 만끽하는 건, 오로지 하인과 하녀, 부엌데기와 정원사, 청소부와 노예 등의 아랫사람들 뿐이었다. 그들의 절반 정도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웠고, 절반 정도는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먹는 둥 마는 둥 음식을 깨작이기만 했다.
그리고 깨작이는 자들에게는, 어김없이 상석에 앉은 여인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돈두르 씨, 혹시 음식이 입맛에 잘 안 맞으신가요?”
“……예? 아, 아닙니다, 부인! 어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 애들 생각나서 그러시구나. 걱정 마세요. 돈두르 씨 댁에 자녀가 딸 둘, 아들 셋 해서…… 다섯이었죠? 이따가 그 아이들 먹을 음식은 또 따로 챙겨드릴 테니까…….”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 아, 아니…… 그, 그게…… 흐윽,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휠레드 부인! 이 은혜는 제가 정말 죽어서도 잊지 않고 갚겠습니다!”
그을음을 물씬 뒤집어쓴 굴뚝 청소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휠레드 부인, 율리아는 기쁨 반 안쓰러움 반으로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집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삯일로 연명하던 몰타나의 청상과부는, 하루아침에 ‘황금의 도시’ 델루타나 내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부유한 귀부인이 됐다. 그녀가 가진 전재산을 소진하려면, 하루에 몇만 루덴씩 펑펑 써도 코흘리개인 아들까지 다 늙어 죽을 때는 돼서야 잔고가 바닥날 터였다.
벼락부자의 삶에 적응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 식사만 해도 그랬다. 맨 처음 이토록 풍성히 차려진 상을 봤을 때, 율리아는 거진 악마 숭배자의 흔적을 본 사제처럼 질겁했다. 이게 무슨 돈 낭비냐고 집사를 질책하고, 다음 날부턴 촌부였을 적과 같이 검소하게 식단을 차리게 했다.
그것이 큰 실수였단 걸 알아차린 건, 식솔들이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모습을 발견한 뒤였다.
‘저, 집사님……? 요즘 왜 이렇게 다들 마르고 혈색이 안 좋아 보이시죠?’
‘어, 그게 말입니다, 부인……. 저치들은 대개 주인이 식사 후에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때웁니다만……. 그, 부인께서 워낙 식습관이 소탈하시다 보니…….’
‘…….’
빚더미에 파묻힌 촌부였을 때 마냥 악착같이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그날부로 즉시 식단을 풍성하게 복구시켰던 율리아는, 최근에 이르러선 아예 식솔들을 죄다 불러 겸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럭저럭 제 방식대로 벼락부자 생활도 적응해나가고 있었으나…… 막연히 부유한 삶을 상상했던 때처럼 마음껏 호사를 누리진 못했다. 늘상 마음 한구석에 사라지지 않는 응어리가 얹혀 있었기에.
“후우…….”
율리아는 창밖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생각했다. 이렇게 큰돈을 벌어놓고도 저는 한 푼도 못 써먹은 어느 염소 턱수염 달린 머저리를. 주인의 심사를 알아챈 식솔들이 눈치 없이 게걸스레 먹던 자들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이후 식사는 한결 조용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한데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녀 옆에 있던 아들, 던센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엇, 엄마! 아저씨 왔어요, 아저씨!”
누군가 정말 찾아오긴 했다. ‘아저씨’라는 친근한 호칭이 어울리는 자는 아니었다만.
정수리가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덩치, 흉악한 어깨와 팔뚝, 텁수룩한 수염과 부리부리한 눈매……. 숨 막히는 위압감을 풍기는 구릿빛 거한이 대식당에 들어섰다. 식솔들은 일제히 체할 듯한 기분을 느끼며 히끅, 헛숨을 들이켰다.
겉모습만 봐선 곧장 식탁을 와장창 뒤엎고 가진 돈 다 내놓으라고 윽박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으나…… 거한은 아탈라인치곤 지극히 정중하게 예의를 갖췄다.
“이거, 식사 중에 실례한 것 아닌가 모르겠군. 조금 나중에 다시 찾아오는 게 좋겠소, 휠레드 부인?”
“아,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다 먹은 참이었는데요.”
율리아 또한 예를 갖춰 손님을 맞이했다. 던센은 거한을 조금도 두려워 않고 후다닥 다가가 바짓단에 매달렸다.
“와! 우리 아빠한테 진 아저씨다, 우리 아빠한테 진 아저씨! 우리 아빠한테도 지고, 카딤 아저씨한테도 진 골타란 아저씨다!”
“…….”
한때 ‘아곤의 성난 뿔’이라고 불렸던 사나이, 골타란은 어느 행상인을 쏙 빼닮은 땅꼬마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