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전쟁의 전조 (5)
근 몇 달 사이, ‘황금의 도시’ 델루타나의 정계엔 크나큰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아크팔라딘과 고위 마법사의 사망 사건이 일어나고, 황금 가도의 악마들을 학살한 어느 용병이 위명을 떨치고, 제국의 위협이 가시화되고, 참사회 의장이 중병으로 쓰러지는 등 여러 중대 사건이 있었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로는 ‘불굴의 군세’의 합류를 꼽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굴의 군세’, ‘아곤의 성난 뿔’이라 불렸던 자가 이끄는 정예 아탈라인 부대.
수장의 유명세와 황금 가도에서의 활약으로 일약 큰 주목을 받게 된 군사 세력.
그 부대는 본디 갈렌타나 참사회의 아곤파 의원들이 거느린 직속 부대였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아곤이 쑥대밭이 된 후론 본적지를 떠나 델루타나 참사회로 소속을 옮겼다. 덕분에 재력에 비해 군사력은 비교적 빈약했던 ‘황금의 도시’는 든든한 파수꾼을 울타리 안에 두게 됐다.
그리고 두말할 것 없이, 그 업적의 일등공신은 ‘튜리스 가문’이었다.
애초에 ‘불굴의 군세’가 델루타나에 온 이유가 그 가문과의 연줄을 소개받아서였다. 처음에 웬 야만인들이 집구석에 굴러 들어왔을 땐 당황을 금치 못했다만…… 튜리스 가문의 형제들은 지극히 기민하게 대처했다. 거처를 원하는 전사들, 파수꾼을 바라는 참사회, 쌍방의 이해관계가 일치함을 파악하고 곧장 직속 부대가 되도록 주선한 것.
‘튜리스 가문’은 그러잖아도 델루타나에서 알아주는 명가였다. 거기다 빈약했던 군사력을 성대히 보강하는 성과까지 올렸으니…… 델루타나의 세력도가 ‘튜리스 가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건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리라.
펠리코와 엔리코, 튜리스 가문을 이끄는 이 형제는 금세 델루타나 정계의 중심에 우뚝 섰다. 병석에 누운 참사회 의장을 대신해, 튜리스 형제가 대도시의 대표가 모이는 회담에 참석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번 회담이 소집된 이유는 제국의 위협에 대한 대처 논의.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델루타나가 다른 대도시에 도움을 청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어째…… 얘기하다 보니 흐름이 영 녹록지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갈렌타나 참사회는 제국과 맞서는 데 협력할 생각이 전혀 없소.”
갈렌타나 참사회 중진 의원, 발레리오가 딱 잘라 선을 그었다.
델루타나 참사회 중진 의원, 펠리코가 미간을 슬몃 좁혔다. 렘타나의 참사관, 엔리코는 어렵사리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이건…… 생각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봅니다만, 발레리오 의원. 설마 제국이 동맹을 침공해도 갈렌타나만은 안전하리라 생각하는 것이오?”
“허참, 댁들이 우리 측의 직속 부대를 앗아간 주제에 그게 할 소리요? 그치들이 떠난 탓에 굳이 제국이 아니더라도 갈렌타나의 안보가 심대히 위협받게 됐거늘…….”
엔리코는 하마터면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발레리오는 도리어 ‘불굴의 군세’가 이적하여 큰 이득을 본 입장이었다. 그 탓에 그 직속 부대를 키워낸 정적이었던 ‘아곤파’가 몰락했고, 이자가 소속된 ‘대학파’가 다시 갈렌타나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으니.
하지만 그건 물 밑의 사정일 뿐,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그의 지적은 도의상 타당했다. 발레리오는 타 도시에 직속 부대를 빼앗겼단 명분을 움켜쥐고, 최선을 다해 정당한 언짢음을 표출했다.
“말도 마시오. 황금 가도 창궐의 여파도 다 못 수습했던 차에, 아곤의 투기장이 붕괴하는 대참사까지 벌어졌는데, 설상가상으로 혼란을 막아야 할 직속 부대까지 이적하는 바람에…… 갈렌타나 관할령은 이미 뭐, 전역이 다 초토화된 전쟁터나 다름없게 됐소이다.”
“……초토화된 전쟁터라니? 되레 아곤 쪽은 투기장이 무너진 후 녹지로 변해 가고 있다 들었소이만?”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대체? 그리고 뭐, 크흠…… 설령 그까짓 녹지가 백만 평쯤 있다 한들, 어디, 투기장 하나에서 나오는 수익을 발끝만치라도 따라갈 것 같소?”
“그러니까, 그 투기장을 복구할 지원금을 우리 측에서 준다 하지 않았소? 갈렌타나가 우리와 군사적으로 협력하고, 제국에 함께 맞서주기만 한다면…….”
“크흠, 험험…… 아무리 돈 궤짝이 많아봤자 제국의 성기사들이 쳐들어오면 무슨 소용인지……. 뭐, 그 옛날, 위대하신 황금의 맹주, 레밀리온 님께선 달랑 금화 한 푼만 가지고도 도시를 구하셨다지만…… 존경하는 우리 델루타나 의원님들께 그만한 능력이 있어 보이진 않소이다만…….”
슬슬 대화의 흐름이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했다. 더 늘어지기 전에 펠리코가 나섰다.
“그럼, 어디 한번 말해보시오. 갈렌타나 측이 바라는 조건은 대관절 무엇이오?”
“……‘불굴의 군세’를 다시 갈렌타나에 되돌려주는 것, 그리고 투기장과 황금 가도의 복구 비용 전액 부담. 이 두 조건을 들어주지 않는 한, 우리가 ‘황금의 도시’를 거들어 제국에 맞설 일은 결단코 없을 거요.”
“…….”
거진 코흘리개가 생떼 부리는 것 같은 조건. 펠리코와 엔리코 형제는 할 말을 잃었다. 갈렌타나는 아마 제국의 위협을 투기장 울타리 너머에서 벌어지는 개싸움 정도로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일단 베스타나 대표 쪽으로 대화의 초점을 틀었다. 그러나 이쪽이 하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현재 델루타나 관할령에 파견된 모든 마법사들을 조속히 마탑에 복귀시켜주길 바라오.”
“……무슨 소리오, 갑자기? 그들은 정당한 계약을 맺고 파견된 것이지 않소?”
“마탑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전원 복귀시킨단 조건을 달지 않았소이까. 실종된 탑주님의 행방을 추적하고, 장로 두 분이 벌인 내전의 뒷수습을 하느라 현재 마탑엔 인력이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오. 아, 이 사항은 갈렌타나 관할령도 마찬가지이니 참고 바라고.”
베스타나 참사회 의원 겸 컨저러 등위 마법사, 포르실리온이 폭탄 발언을 던졌다.
그동안 위험할 때를 대비해 마법사를 상비군 삼아 뒀건만, 대놓고 지난 이득만 꿀꺽하고 발을 쏙 빼겠단 의미. 되레 델루타나 측보다 크게 폭발한 건 갈렌타나 쪽이었다. 그들은 이미 황금 가도의 악마 창궐 때 한 차례 비슷한 일을 당한 참이었으니…….
드잡이질하는 의원들로 장내는 잠시 아수라장이 됐다. 다만 펠리코는 그 와중에 포르실리온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었다.
“마탑의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혹여 참사의 뒷수습 때문이 아니라…… 얼마 전 돌아온 ‘무언가’의 연구 때문에 그런 것 아니오?”
“…….”
무얼 말하는 건진 뻔했다. 본디 마법의 근원이었던 초자연적인 기운, ‘고대 마나’.
고갈됐다고만 알려졌던 그 기운이 얼마 전 갑자기 대륙에 되돌아왔다. 아직은 아는 사람도 얼마 없고, 마탑에서도 갓 파악한 데 그친 정보지만…… 만일 그 활용법이 정립되고 고대 마법들이 복구된다면, 대륙의 판도가 뒤흔들릴 것임은 자명한 사실.
극비 사항인 만큼, 포르실리온은 물론 시침을 떼며 어물쩍 말을 돌렸다. 그런데 그 말을 돌린 방향이라는 게 꽤나 핵심적이고 묘한 방향이었다. 서로를 죽일 듯이 으르렁대던 갈렌타나와 베스타나의 의원들이 돌연 합심하여 저들끼리 수군덕대기 시작했다.
그러곤 머지않아 입을 모아 이렇게 물었다.
“엔리코 참사관, 그대가 정말 ‘악마 학살자’란 용병에게 황금 가도의 통행증을 내어주었소?”
“그대가 ‘악마 학살자’와 유착 관계에 있다는 게 진정 사실이오?”
“…….”
묵묵부답. 엔리코는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타 도시의 의원들이 일제히 뱁새눈을 치뜨고 단언했다.
“조건을 추가하지. ‘악마 학살자’의 신병을 우리 측에 인도하기 전까진, 갈렌타나는 절대 델루타나에 협력하지 않겠소.”
“파견 마법사들을 복귀시킬 시, ‘악마 학살자’도 함께 후송해주길 바라오. 그자는 근래 마탑에 일어난 모든 참사에 깊이 연루된 인물이니.”
““…….””
튜리스 형제는 애써 동요를 감추며 착잡한 기분을 곱씹었다.
*
회담은 결국 별다른 합의나 소득 없이 종결됐다.
펠리코는 즉각 개별 협상을 위해 다른 자리로 떠났다. 엔리코는 회담장 앞에서 기다리던 골타란, 그리고 아탈라인 전사들과 합류했다. 회담장 안에선 ‘불굴의 군세’를 돌려달라 목청을 높였던 갈렌타나의 의원은, 정작 당사자들을 마주하곤 찍소리도 못 한 채 후다닥 달아나듯 사라졌다.
골타란이 실소를 터뜨리곤 엔리코 쪽을 흘겼다. 굳이 듣지 않아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만했다.
“역시, 다른 도시 놈들은 협조하질 않겠다던가, 참사관.”
“……그렇소.”
“그거야 뭐, 예상하던 일이니 크게 놀랄 것도 없지.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나쁜 소식과 기쁜 소식이 하나씩 있다.”
“그게 무엇이오?”
슬쩍 듣는 귀가 없는지 살핀 후, 골타란은 낮게 뇌까렸다.
“나쁜 소식은, ‘쇠망치 영감’이 주문을 거절했단 것이다. 주문이 원체 밀려서 웃돈을 열 배 얹어줘도 병장기를 더 만들어 주긴 힘들겠다더군.”
“…….”
“게다가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니 후방으로 피신하란 제안도 거절했다. 대장장이가 제 대장간을 버리고 떠나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면서. 설령 델루타나가 함락되더라도 계속 거기 남아서 망치질과 풀무질을 할 작정으로 보이더군.”
참사관의 입꼬리가 씁쓸하게 비틀렸다.
그 절름발이 대장장이는 본래 렘타나에 발이 묶였던 자였다. 어느 용병의 부탁을 받아, 자신이 델루타나로 올 때 함께 데려온 것. 덕분에 생이별했던 가족들과 재회하고, 자신만의 공방을 차리고, 이제야 좀 행복한 말년을 보내나 했더니만, 하필 이 시국에 또 제국과 전쟁이 터지게 생겼으니……. 대장장이의 기구한 운명에 동정심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엔리코는 마른세수를 하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만한 장인의 고집을 꺾는 건 쇠밧줄을 이빨로 끊는 것보다 힘들겠지……. 델루타나에 있는 동안은 쇠망치 영감과 그 가족들이 위해를 안 입게 각별히 신경 써주시오, 골타란 공.”
“……알겠다.”
“그래, 그럼 나쁜 소식은 그것이고, 좋은 소식이란 건 무엇이오?”
“좋은 소식은, 우리 측에 있던 여인들, 황야의 딸들 중 몇몇이 아탈…….”
골타란은 급히 말을 자르고 입을 다물었다. 인기척, 그리고 낯설지 않은 짐승들의 살기를 감지했기에.
– 컹, 커헝, 컹! 컹! 컹!
– 커헝, 컹! 컹! 크르르르…….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짐승 소리. 난데없이 등장한 땅딸막한 사내가, 늑대인지 개인지 모를 짐승들의 목줄을 틀어쥐고 앞길을 막아섰다.
“아니, 이거, 존경받아 마땅한 튜리스 가문의 일익(一翼), 엔리코 참사관님 아니십니까? 하하하, 마침 또 저희 집 개들을 산책시키던 중이었는데 이런 우연이……. 어디, 다른 도시 측과의 회담은 잘 마치고 오셨는지요?”
“…….”
아탈라인 전사들이 재빨리 참사관과 수장을 엄호했다. 엔리코는 뒤에서 쯧, 혀를 찼다.
비협조적인 태도로 속 썩이는 자들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저 눈앞의 사내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자신들의 훼방꾼이었다.
델루타나 참사회 의장의 사위이자, 펠리코와 차기 의장직을 두고 경쟁하던 의원, 라뮬렉 볼가루이스.
이자의 입장에선 튜리스 형제의 대두가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을 터였다. 장인이 병석에 누워 자연스레 제가 계파를 흡수하고 의장직을 차지할 줄 알았건만, 튜리스 가문이 정계의 중심에 서 그 꿈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때문에 형제가 행하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어깃장을 놓는 중이었다.
“흐음, 뭐…… 저처럼 여유롭게 기르는 개들이나 산책시키고 계신 걸 보니, 보나 마나 회담은 잘 풀린 모양이군요! 이거, 조만간 갈렌타나의 참사군과 마탑의 배틀메이지들이 델루타나에 대거 입성하길 기대해보겠습니다, 참사관님!”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오. 당장 그럴 일은 없겠지만, 조만간은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
“…….”
회담이 실패한 걸 빤히 알고 비꼬는 말을 듣고도, 엔리코는 무덤덤하게 맞받아쳤다. 기르는 개라 일컬어진 아탈라인 전사들도 별다른 내색은 없었다. 사는 동안 숱하게 당해온 익숙한 모욕이었기에.
도리어 흥분하여 날뛴 건 라뮬렉의 개들이었다.
“어이쿠, 어이쿠…… 이놈들이 갑자기 왜 이런담?”
– 크르르르, 크르르르…….
– 크헝, 컹, 커헝, 컹!
“워워, 얘들아! 진정해라, 진정해! 델루타나를 위해 한 몸 바쳐 헌신하는 참사관님을 걸레짝으로 만들려고 들면 안 되지!”
“…….”
이자의 고약한 버릇 중 하나는, 제가 기르는 맹견을 산책시키는 척하며 정적들을 찾아가 위협하는 것이었다.
라뮬렉의 개들은 보통 개가 아니었다. 칼날 늑대와 도사견을 교배시켜 낳은 잡종을, 인간의 피를 먹여 키웠단 흉흉한 소문이 도는 맹수들. 오래전, 라뮬렉의 비리를 파헤치던 의원 하나가 청문회 다음 날 ‘원인불명의 사유’로 뼈만 남은 채 발견된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를 무서워하는 자들은 라뮬렉에게 입바른 소리 한번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지간히 간 큰 자들 역시, 라뮬렉이 개 목줄을 느슨하게 잡거나 실수로 놓친 척하면 껌뻑 죽고 자지러지기 마련.
하지만 오늘은 임자를 잘못 만났다.
“어, 어어, 어이쿠, 이런! 얘야, 돌아오려무나!”
– 컹, 커헝, 컹, 컹!
목줄이 풀린 맹견이 내달려오자, 한 손으로 그 목을 움켜쥐는 골타란.
꽈 – 득!
– 케헹 – !
거진 송아지보다 큰 개가 새끼 강아지처럼 번쩍 들렸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벌써 이전에도 저놈은 몇 차례나 목줄을 풀고 엔리코와 자신을 위협해 왔다. 골타란은 앞으론 저 의원 놈이 절대 개짓거리를 벌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경고해주기로 결심했다.
아탈라인의 방식대로.
콰득, 쩌거거거거걱…….
우악스레 짓씹는 입아귀, 철철 흘러 쏟아지는 핏물, 몸부림치는 맹견.
– 깨개개갱!! 깽! 깽! 깨개갱…….
골타란의 손에서 놓여 떨어졌을 때, 맹견은 그 주둥이가 아랫부분만 남아 있었다.
라뮬렉은 제 두뇌를 물어뜯기기라도 한 것마냥 굳어버렸다. 엔리코도 순간 당황했으나 기민하게 내색을 감췄다. 골타란은 생이빨만으로 뜯어낸 주둥이 윗부분을 질겅이다가 툽, 바닥에 내뱉었다.
“개새끼들끼리 싸움이 붙었다가 다친 거니까, 따로 책임을 물진 않겠지.”
“어, 어어, 어어…….”
– 끼잉, 낑, 끼잉, 끼잉…….
– 끄응, 끙, 끼이잉…….
코와 윗턱을 잃은 맹견이 버르적대며 주인에게 돌아갔다. 다른 개들은 서슬에 질려 뒷걸음질 치며 오줌을 찍찍 지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라뮬렉이 온몸을 발작하듯 떨며 뇌까렸다.
“야, 야, 야만인……. 이런 정신 나간, 미친, 미개한, 미개한 야만인 새끼…….”
“기르는 개에서 야만인이라니. 고맙네, 의원. 잠깐 사이 출세했군.”
도무지 인간의 상식으론 받아들일 수가 없는 광경. 욕을 하며 허세 부려봐도, 깊은 내면의 기저에서 올라오는 지독한 공포는 사라지질 않았다. 라뮬렉은 피치 못하게 시선을 엔리코 쪽에만 집중했다.
“아주, 대단히, 몰상식하기 그지없는 개새끼를 거느리셨습니다, 참사관님……? 저런 자가 참사회 직속 부대의 수장이라니, 델루타나의 뭇 시민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큰 불안에 떨지 않을까요……?”
“글쎄…… 내 생각엔 괜찮을 것 같소. 개로 포장한 늑대를 데리고 거리를 쏘다니는 누군가 때문에, 델루타나 시민들은 담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거든.”
라뮬렉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패를 감춰야 한단 사실도 잊고, 가진 정보를 모조리 쏟아부어 엔리코를 맹비난했다.
“하, 참사관님이 거느린 개새끼가, 고작 저자 하나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 더욱 위험한 개새끼는 따로 있지요! 다른 도시들이 델루타나에 협조하는 대가로 ‘그자’의 신병을 요구했다 들었습니다만, 그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십니까, 예!?”
“……다친 개의 치료비는 집사 편을 통해 보내겠소. 만나서 반가웠고 많이 놀랐을 텐데 들어가서 푹 쉬시오, 라뮬렉 의원.”
엔리코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골타란과 아탈라인 전사들이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개 주인의 목소리도 아스라이 스러졌다. 저택으로 돌아가는 동안, 엔리코와 골타란은 한 마디도 더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럼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서로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그들이 제국이나 다른 도시와의 대립까지 불사하며 손에 넣은 패, 그러나 정작 지금 어디 있는지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패, ‘악마 학살자’.
카딤을 찾아야만 했다.
오